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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반 사우마의 서방견문록

저자
모리스 로사비(Morris Rossabi)  저, 권용철  역
  • 가격

    18,000 원

  • 출간일

    2021년 08월 16일

  • 쪽수

    320

  • 판형

    152*224 (신국판)

  • ISBN

    9791167070166

  • 구매처 링크

요약

 

13세기 후반 베네치아 출신의 마르코 폴로가 몽골제국의 쿠빌라이 칸을 만날 무렵, 그와 정반대로 중국에서 유럽으로 여행한 사람이 있었다. 중앙아시아 소수민족 출신의 네스토리우스교 기독교 수도사 랍반 사우마! 쿠빌라이 칸의 특사로 파견된 그는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떠났으나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에 막혀 바그다드에 머물렀다. 이후 몽골 일 칸국의 통치자 아르군 칸의 사절이 되어 새로운 정치적 임무를 띠고 유럽으로 향한다. 과연 그에게 주어진 정치적 임무는 무엇이었으며, 여행 동안 그는 무엇을 보고 기록했을까?

랍반 사우마는 마르코 폴로, 이븐 바투타와 동시대 사람으로, 중국에서 유럽으로 향한 최초의 여행가였다. 그러나 19세기 말 그의 시리아어판 기록물이 발견되기 전까지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진 인물이었다. 탁월한 이야기꾼이자 몽골사 전문 역사가 모리스 로사비는 이 짤막한 기록을 토대로 랍반 사우마의 일대기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했을 뿐 아니라, 13세기 유럽과 몽골제국의 역사를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랍반 사우마의 서방견문록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13세기 동서양 역사를 하나의 세계사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추천사

“13세기 말 랍반 사우마의 여행 이야기는 그 자체로 시선을 빼앗는다. 모리스 로사비는 이 모험을 더욱 광범한 영역으로 넓혔으며, 마르코 폴로의 여행을 반대의 시각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중국과 서구 세계를 읽는 참신한 시각을 얻었다.” — 조너선 스펜스(전 예일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매혹적인 읽을거리! 인간적이면서도 세련된 세계적인 스토리텔링의 성공작. 랍반 사우마는 살아 있다!” — 프레더릭 모우트(전 프린스턴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출판사 서평


중국인 최초로 유럽을 방문한 13세기 여행가

랍반 사우마의 서방견문록을 새롭게 복원하다!

― 잘 알려지지 않은 몽골제국 출신 여행가의 역사적 재발견

13세기는 몽골제국의 영토 확장에 힘입어 광범하게 형성된 교통망을 통해 동서양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새롭게 등장한 ‘대여행의 시대’였다. 이 시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마르코 폴로와 모로코 출신의 이븐 바투타는 서방 세계에서 중국으로 여행하며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오늘날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이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여행하며 기록을 남긴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중앙아시아 소수민족 출신의 네스토리우스교 수도사 랍반 사우마다. 그러나 그가 쓴 여행기는 원본이 남아 있지 않아 랍반 사우마 역시 오랫동안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었다. 19세기 말 우연한 기회에 페르시아 지역에서 시리아어로 번역된 기록물 사본이 발견되면서 그는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랍반 사우마와 동시대를 살았던 시리아인 편집자가 발췌 번역한 이 기록물은 비록 종교적인 내용 중심으로 편집되어 있지만 그 사이사이 당시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특히 이 기록물은 동아시아인의 시선으로 13세기 유럽의 풍습과 예식을 기록한 유일한 문헌이라는 점에서 매우 가치 있는 문헌이라 할 수 있다.

이 기록물의 중요성을 눈여겨본 중앙아시아사 전문 역사가 모리스 로사비는 이를 바탕으로 13세기 말 랍반 사우마의 생애와 여정을 새롭게 복원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마르코 폴로와 이븐 바투타의 그늘에 가려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동시대의 여행가 랍반 사우마를 망각의 역사에서 구출해냄으로써 13세기 유럽과 중동, 그리고 몽골제국의 역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특히 저자는 당대 역사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활약하며 그 문화들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아주었던 랍반 사우마의 파란만장한 삶을, 때로는 종교인의 모습으로, 때로는 몽골제국의 주요한 임무를 띤 사절의 모습으로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그의 생애가 곧 중세 유라시아 역사의 일부이자 그 자체임을 깨닫게 된다.

랍반 사우마의 여정을 둘러싸고 펼쳐진 13세기 말의 몽골제국과 이슬람, 유럽 이야기는 지금까지 우리가 분절적으로 이해해온 동양과 서양의 역사를 온전한 하나의 세계사로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베이징에서부터 파리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여정을 매력적인 필체로 살려낸 이 책은 한 편의 역사 소설을 읽는 재미뿐 아니라 13세기 유라시아 역사를 한눈에 꿰뚫을 수 있는 혜안을 제공한다.


동양의 마르코 폴로, 랍반 사우마는 누구인가

― 몽골제국의 특사가 되어 베이징에서 파리까지 유라시아를 횡단하다

랍반 사우마(1225?~1294)는 고비사막 남쪽의 만리장성 일대에 살았던 웅구드족 출신의 네스토리우스교 수도사였다. 네스토리우스교는 삼위일체, 즉 성부, 성자, 성령이 동일하다는 교리를 부정하여 유럽에서 이단으로 취급된 후 동쪽으로 퍼져나간 기독교파의 하나로, 7세기경 당나라에 들어와 ‘경교(景敎)’라 불렸다. 랍반 사우마는 이 네스토리우스교를 믿은 종교인으로, 자신의 제자이자 동료인 마르코스와 함께 쿠빌라이 칸의 특사가 되어 베이징에서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떠난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에 막혀 몽골제국의 끝자락에 위치한 일 칸국의 도시 바그다드에 머물렀다. 이후 그는 유럽의 왕국들과 손잡고 새로운 십자군을 일으켜 이슬람 세력인 맘루크 왕국을 몰아내고 싶어 했던 일 칸국의 통치자 아르군 칸의 사절이 되어 서유럽으로 향한다.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콘스탄티노플, 나폴리, 로마, 제노바, 파리, 보르도 등의 지역을 여행하며 비잔틴제국의 황제 안드로니쿠스 2세, 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와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1세, 그리고 교황 니콜라우스 4세와의 만남을 차례로 기록한 랍반 사우마는 중국에서 유럽으로 여행한 최초의 여행가였으며, 당시 동서양의 세력 판도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정치적 임무를 띤 최초의 중국 사절단의 대표였다.

이 책은 랍반 사우마뿐 아니라 그의 신앙의 동반자인 마르코스 이야기 또한 놓치지 않는다. 랍반 사우마보다 스무 살가량 젊은 마르코스는 이후 네스토리우스교회의 총대주교가 된 인물로, 이 책 곳곳에는 이 둘의 서로에 대한 동지애와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유럽 도시를 누비며 기독교 성지를 순례하다

― 동아시아인의 관점으로 서유럽을 기록한 13세기의 유일한 문헌

랍반 사우마의 기록은 유럽의 풍습과 예식에 대한 동아시아인의 관점을 제공하는 그 시대의 유일한 문헌으로서, 중국과 몽골 문화에 익숙한 인물이 어떻게 서유럽 세계를 바라보았는지 그의 독특한 시선을 통해 서유럽을 새롭게 조명한다. 랍반 사우마의 기록 중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그가 유럽에서 방문했던 도시와 종교 시설, 그리고 사람들과 예식에 대한 부분이다. 랍반 사우마는 방문한 도시에서 종교 지도자 또는 정치 지도자를 만나 선물을 주고받는 의례적인 예식에 대해서뿐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의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 파리의 생 드니 성당 등 주요 종교 시설을 방문해 그곳에 보관된 종교적 유물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특히 랍반 사우마는 이탈리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메마른 지역도 거의 없고 건물들이 없는 지역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이는 중앙아시아의 일반적인 풍경과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진정한 묘미는 랍반 사우마의 기록에 더해진 모리스 로사비의 해석을 읽는 데 있다. 그는 랍반 사우마의 여정을 직접 따라가면서 방문한 후 당시의 기록이 지금과는 어떻게 다른지 세밀하게 관찰한 후 재구성해 들려준다. 시대를 초월한 역사적 만남이 아닐 수 없다. 랍반 사우마가 성당 등의 종교 시절의 방문과 기록에 집착한 이유를 비롯해 파리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유에 대한 그의 해석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본문 230쪽 참조).


한 편의 역사 소설처럼 읽히는 13세기 유라시아 세계사

― 탁월한 이야기꾼 역사가 모리스 로사비가 들려주는 몽골족, 무슬림, 유럽인 이야기

모리스 로사비는 랍반 사우마의 조각난 기록의 일부를 모아 한 편의 역사 소설처럼 재구성했지만, 오로지 랍반 사우마 개인의 생애를 들려주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랍반 사우마 사절단의 여정을 좇되 개인의 일생에 매몰되지 않도록, 또 개인의 생이 거대한 역사에 파묻히지 않도록, 시대와 인물의 균형 잡힌 역사 서술을 통해 세계 외교 및 상업 네트워킹의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인 13세기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전문 역사 지식과 식견을 바탕으로 랍반 사우마가 어떻게 쿠빌라이의 특사가 될 수 있었는지, 예루살렘의 성지 순례는 왜 성공할 수 없었는지를 당시의 세계 정세를 토대로 세밀하게 들려준다. 특히 랍반 사우마의 절친인 마르코스가 네스토리우스교 총대주교가 된 일과 당시 일 칸인 아흐마드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를 넘긴 이야기는 한 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쿠빌라이의 동생인 훌레구가 세운 일 칸국의 왕위가 아바카에서 아흐마드, 아르군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 이야기는 우리가 그동안 잘 몰랐던 몽골제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그와 더불어 랍반 사우마가 일 칸의 정치 사절단 대표로 유럽을 방문하게 된 국제 정세, 그가 만난 유럽의 정치와 종교 지도자를 둘러싼 상황, 이슬람 세력과의 관계 등에 대한 흥미진진한 서술은 그간 동양과 서양의 역사로 나뉘어 인식해온 지역사를 하나의 온전한 세계사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저자의 섬세한 설명을 통해 13세기 격동의 유라시아의 역사를 이해한 순간 우리는 왜 모리스 로사비가 랍반 사우마의 기록과 그의 종교적, 정치적 임무에 이토록 주목했는지 확실히 깨닫게 된다. 만약 그의 정치적 임무가 성공을 거두었다면 13세기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러한 상상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책 속에서

수 세기에 걸쳐 랍반 사우마는 사실상 알려지지 않았다. 만약 1887년 3월에 일어난 한 우연한 사건이 없었다면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북서부 페르시아에 거주하던 살로몬이라는 사람이 랍반 사우마의 시리아어 번역자와 같은 기독교 종파에 속한 한 젊은 튀르크인을 우연히 만났는데, 이 청년이 시리아어 사본을 가지고 있었다. 사본은 랍반 사우마의 일생과 여행 기록을 번역하고 편집한 것이었는데, 조사를 부탁받은 살로몬은 그 가치를 인지하고 재빨리 복사하여 시리아어 문서 전문가로 이름난 베드잔 신부에게 보냈다. 이 발견으로 페르시아에서 랍반 사우마의 기록이 널리 알려졌으며, 이는 또 다른 사본의 발견으로 이어졌고, 1888년 대영박물관에서 이 사본을 구입했다. 이러한 우연한 상황은 랍반 사우마를 망각의 상태에서 구조해냈고, 그 덕분에 그의 일생과 중세 유럽으로 향한 그의 독특한 사절단에 관한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 5~6쪽, <초판 서문> 중에서

 

나의 주된 관심사는 유럽과 중동에서 랍반 사우마의 여행이 남긴 외교적, 종교적 영향이다. 특히 눈에

띄지 않는 역사 기록의 변방에서 랍반 사우마를 구출해내어 더 많은 사람이 주목하게 하는 것도 나의 주된 목표이다. 그의 일생과 모험에는 일부 기상천외한 요소가 있고, 더 잘 알려져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 7쪽, <초판 서문> 중에서

 

쿠빌라이가 자신을 대신해 기독교 성지를 방문할 사절의 임무를 사우마와 마르코스에게 맡겼다는 내용은 대략 동시대에 저술된 두 건의 중동 자료에서 확인된다. (중략) 아랍어로 된 14세기 네스토리우스교 연대기에는 쿠빌라이가 수도사들에게 자신이 준 옷을 가지고 가서 요르단강에서 그 옷에 세례를 받고 예수의 무덤에 올려놓으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중략) 이러한 기록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것은 쿠빌라이의 웅대한 전략으로, 그는 자신의 영토에 있는 모든 주도적인 종교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통치자라고 스스로를 대변하고자 했다. ― 82~84쪽, <2장 예루살렘을 향하여> 중에서

 

이탈리아의 수많은 도시국가, 비잔틴제국, 그리고 십자군 국가는 각자 자신들의 관심사를 계속 수행하고 있었다. 에드워드 1세는 여전히 십자군 원정의 열렬한 지지자였지만 1277년에 웨일스에서 일어난 정치적 도전과 전쟁에 시선이 쏠려 있었다. 프랑스의 왕 필리프 3세는 그의 아버지 생 루이와는 상당히 달랐는데, 혼인동맹과 사망한 지방 지도자들의 땅을 몰수하는 방법을 통해 프랑스의 영토를 늘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1270년대 내내 그는 성지 혹은 일 칸들과의 동맹에 별다른 관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 149쪽, <3장 13세기 말의 몽골족과 무슬림, 유럽인> 중에서

1286년 아르군은 맘루크 왕조를 패배시키고 그들을 시리아와 성지 밖으로 몰아내는 데 도움을 구하기 위해 서유럽으로 사절단을 파견할 준비를 했다. (중략) 아르군은 자신의 사절단이 유럽에서 인상을 확실히 남기면, 유럽인들이 협정을 맺으러 올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사절단의 구성이 중요했다. 만약 여행 경험이 많고, 지성을 갖추고 있으며 여러 외국어에 능통하고, 존경받는 사절을 영입할 수 있다면 아르군은 최선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중략) 모든 점에서 랍반 사우마가 이상적인 선택지였다. 그는 대도에서 타브리즈까지 아시아의 광범한 지역을 여행했고, 성지와 다양한 종교 유적과 유물을 보기 위해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여행을 수행하는 담력과 대담한 정신을 보여주었다. ― 160~161쪽, <4장 몽골제국의 사절단, 서유럽으로 출발하다> 중에서

 

1287년 11월 말이 되자 랍반 사우마는 임무의 3분의 2를 완수했다고 믿었다. 그는 경건한 잉글랜드 군주와 젊은 프랑스 왕으로부터 맘루크 왕조에 대항하는 십자군에 참여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론적으로는, 유럽의 가장 강력한 두 군주의 군대가 세 방면으로의 공격을 위해 일 칸국과 연합할 준비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유럽의 정신적 지도자는 이 원정을 승인하지 않았다. 교황의 허가가 없으면 이 원정은 통합된 기독교 유럽의 지원을 끌어내고 유지하면서 성지의 무슬림 지도자에 대한 도전을 강화할 종교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다. 프랑스와 잉글랜드 군주가 이끌 원정을 지원하기 위해 서유

럽 기독교 세계의 다른 세속 지도자들을 끌어들이려면 교황을 설득해야 했다. ― 238~239쪽, <5장 파리에서 다시 페르시아로> 중에서

 

2주 동안의 여행 이후 그와 동료들은 로마의 변두리에 도착했고, 여기에서 그들은 교황이 파견한 주교와 성직자 집단을 만났다. (중략) 방문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형성된 것으로 보이자, 이에 기운이 솟구친 랍반 사우마는 아주 당당하게 새로운 교황을 접견하러 갔다. 니콜라우스 4세가 있는 곳으로 안내된 그는 고개를 숙이고, 손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교황의 손과 발에 입을 맞추었다. 그 후 그는 똑바로 일어서서 양손을 가슴 앞에 엇갈리게 얹은 채 물러났는데, 이는 아마 네스토리우스교의 전통이었을 것이다. 복종의 예를 갖춘 후, 그는 교황청은 물론이고 당시 교황청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을 칭송하면서 교황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 244~245쪽, <5장 파리에서 다시 페르시아로> 중에서

 

랍반 사우마가 유럽에서 돌아온 이후에 관해 서술한 기록에 따르면, 아르군은 임무가 성공했다고 간주하고 매우 기뻐했다. 무엇보다도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왕이 맘루크 왕조에 대항하는 십자군에 합류할 것을 약속했다. 비록 교황은 이 원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더욱 긴밀한 종교적 연계를 요청했다. 이러한 놀라운 결과에 만족한 아르군은 네스토리우스교 성직자를 특별히 더 정중하게 대접했다. 그는 이 귀중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사우마가 많은 고난을 겪게 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자신의 사절에게 보상하겠다고 결심한 아르군은 사우마의 노년을 돌보고, 일 칸국 궁전 근처에 그를 위한 교회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우마는 아르군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난 후, 자신의 은거를 위해 건설될 교회 터를 방문해 봉헌했다. ― 263쪽, <5장 파리에서 다시 페르시아로> 중에서

 

그동안 랍반 사우마는 마르코 폴로와 이븐 바투타의 명성에 가려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가 남긴 기록은 원본이 소실된 데다 시리아어로 번역된 일부 ‘편집본’만 남아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조차 받기 힘들었다. (중략) 이런 상황에서 모리스 로사비의 이 책은 랍반 사우마의 생애와 그의 여행을 살펴봄으로써 몽골제국 시대가 낳은 또 다른 인물의 형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마르코 폴로와는 반대로 중국에서 출발하여 서유럽까지 여행한 사람이 13세기에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275쪽, <옮긴이의 글> 중에서

 

나는 마르코 폴로와는 전혀 다른 출신과 배경을 가진 인물이 같은 시기에 유럽으로 갔다는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마르코 폴로가 구술한 기록을 ‘동방견문록’이라 부르는 것처럼 그와 반대 방향의 여행 기록인 이 책을 ‘랍반 사우마의 서방견문록’이라 이름하였다. 또한 랍반 사우마 일행이 쿠빌라이 칸의 허가를 받아 종교적 임무를 띠고 여행을 떠날 수 있었기에 그에게 쿠빌라이 칸의 ‘특사’로서 최초로 유럽을 여행한 중국인이라는 위상을 함께 부여했다.

랍반 사우마는 몽골제국 시대가 만들어낸 ‘세계인’이자 정통 기독교에서는 이단으로 취급된 교파를 신봉하면서도 성지 순례를 위해 페르시아를 향해 고된 여행을 자처했던 ‘종교인’이었다. 몽골의 사절단을 이끌면서 기독교 유적과 유물을 비롯해 유럽 세계를 둘러보았던 랍반 사우마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 책을 통해 13세기 후반 유라시아 세계에 관한 역사적 지식을 채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 ― 279쪽, <옮긴이의 글> 중에서

 

 

차례

초판 서문

2010년판 서문

주요 인물 소개

일러두기

 

1. 바르 사우마의 활동무대

몽골제국의 동쪽과 서쪽

‘금식의 아들’ 바르 사우마의 초기 행적


2. 예루살렘을 향하여

몽골제국의 위기, 쿠빌라이의 선택

사우마와 마르코스, 여행을 시작하다

몽골제국의 끝, 일 칸국에 도착하다

격변의 시기, 총대주교가 된 마르코스

 

3. 13세기 말의 몽골족과 무슬림, 유럽인

성지를 둘러싼 국제정세

반가운 유럽의 변화

 

4. 몽골제국의 사절단, 서유럽으로 출발하다

사절단의 대표가 된 랍반 사우마

비잔틴제국에서의 여정

이탈리아에 도착하다

네스토리우스교 수도사의 신앙심

영원한 도시 로마를 여행하다

항구도시 제노바의 따뜻한 환대

 

5. 파리에서 다시 페르시아로

파리, 필리프 4세와의 의욕적인 만남

보르도에서 만난 잉글랜드의 왕

제노바의 겨울

로마에서, 드디어 교황을 만나다

여행의 끝, 페르시아로 돌아오다

 

옮긴이의 글: 아시아의 시선으로 13세기 유럽을 기록한 랍반 사우마

 

본문의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 : 모리스 로사비(Morris Rossabi)

미국의 저명한 동아시아·중앙아시아 전문가.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동아시아·중앙아시아 역사 분야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뉴욕 시티 대학교의 역사학과 석좌 교수이자 콜롬비아 대학교 동아시아·내륙아시아 역사학과의 외래 교수로서 활발한 강의와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중국사와 중앙아시아사에 대해 수많은 책과 논문 등을 집필했으며, 2009년에는 몽골 국립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2006년에는 열린사회재단의 문화예술이사회의 의장으로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등에서 전시회를 기획했다. 40년 이상 연구해온 결과 이 분야의 저명한 연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역 : 권용철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현재 단국대학교 북방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고려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원대 중후기 정치사 연구』가 있으며, 원제국의 정치와 인물에 관한 논문을 20여 편 집필했다. 번역 기획 공동체 ‘창窓’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몽골족의 역사』, 『킵차크 칸국』, 『칭기스의 교환』, 『몽골제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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