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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주자 서한집 첫째 권

저자
주희(朱熹)  저, 김용수, 조남호  역
  • 가격

    30,000 원

  • 출간일

    2021년 11월 01일

  • 쪽수

    448

  • 판형

    152*225 (신국판)

  • ISBN

    9791167070210

  • 구매처 링크

요약

이 책은 주자(주희)가 쓴 편지글을 모아 번역한 주자 서한집이다. 중국 남송시대 학자로 유학을 집대성해 주자학(성리학)을 창시한 주자는 동아시아의 정치, 사상,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사후 그가 생전에 쓴 글들을 모은 주자문집(100권)이 편찬되었는데, 그중 24권부터 64권까지 41권은 편지글[書]로 구성되어 있다. 일찍이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 등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동시대 지식인들에게 보낸 주자의 편지글에 주목했는데, 여기에는 현실 정치에 대한 그의 구체적인 활동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해 주자학을 깊이 이해하고 성리학적 이상을 실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 주자 서한집: 첫째 권주자문집의 24, 25권을 번역한 것으로, 1155년부터 1178년까지 주자의 나이 26세부터 49세에 이르는 동안 송대 지식인들에게 띄운 47편의 편지글이 실려 있다. 또한 원문에 더해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덧붙인 상세한 주석이 함께 들어 있다. 이 책을 통해 형이상학적 이기론과 심성론에 치우친 도학자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개혁을 추구한 전통적 사회과학자로서의 주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출판사 서평


이황, 송시열 등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주목한 ‘주자의 편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 즉 주희(朱熹, 1130~1200)는 동아시아의 정치, 사상, 문화를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사상가로, 그는 이기론뿐 아니라 인간 내면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규명한 심성론,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사물의 이치를 구하는 학문 수양법인 거경궁리론을 주장한 철학자이자, 향약과 사창법 등을 주창하여 민생 안정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세론을 펼친 정치인이었다. 그의 영향력은 대단해서, 성리학은 이후 중국의 관학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그가 집필한 소학은 아동교육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으며, 주자가례는 관혼상제의 일상생활 규범의 기초가 되었다.

사후에는 문인들과 주고받은 문답을 모은 주자어류(朱子語類)와 직접 쓴 글들을 모은 주자문집(朱子文集)이 편찬되었는데, 주자어류는 주희가 40대 이후에 했던 강의 내용을 제자들이 저마다 기록하여 편집한 것이기 때문에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주자문집은 주희가 직접 쓴 글을 모았기 때문에 주자어류보다 신뢰할 만하다.

주자대전(朱子大全)으로도 불리는 주자문집은 정집 100권, 속집 11권, 별집 10권, 부록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집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주자의 편지글로, 24권부터 64권까지 총 41권에 이른다. 주자의 편지글은 동시대 지식인들에게 띄운 편지와 이들에게 받은 서간문에 대한 답신으로 이루어져 있어, 남송의 시대상을 비롯해 현실적인 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한 주희의 생각과 당대 지식인들의 고민, 그리고 송대의 사상적 지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일찍이 퇴계 이황은 주희의 학술사상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1543년 중종의 명으로 간행된 주자전서(朱子全書)』의 서간문에 주목해 이를 연구하였으며, 이 가운데 특히 사상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간추려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간행해 조선의 주자학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조선 후기 학자 우암 송시열 역시 평생에 걸쳐 주자 서간문을 연구했으며, 그의 연구는 제자 권상하와 김창협 등 후대 학자들에게 이어졌다.

조선시대 학자들이 주자의 편지글에 주목한 까닭은 당대 지식인들과 주고받은 주자의 편지에 송대의 정치와 경제, 사회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뿐 아니라 당대 지식인들의 생각의 지도가 함께 담겨 있어, 이를 통해 주자의 학술사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송나라 지식인에게 띄운 47편의 편지글을 통해

현실 정치와 사회에 대한 주자의 생각을 읽는다!

주자 서한집: 첫째 권주자문집 중에서 24, 25권에 실린 주자의 편지글을 번역한 것이다. 1155년부터 1178년까지 주자의 나이 26세부터 49세에 이르는 동안 송나라 지식인들에게 띄운 47편의 편지글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매우 다양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학교 교육에 대한 지방 관리로서의 입장을 비롯해 소금에 매기는 세금에 대한 의견 등 당면한 사회문제에 대한 주자의 정치적 견해가 상세히 실려 있을 뿐 아니라, 당시 금나라와 대치하고 있는 남송시대 학자로서 한족 중심의 굳건한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한 노모인 축씨부인의 병환으로 인해 관직에 나아갈 수 없는 주자의 개인 사정을 알 수 있는 내용과, 송대 재상을 지낸 진준경 등 편지를 주고받은 인물들을 통해 주자와 친분관계를 맺은 당대 지식인들이 누구이며, 이들과 어떤 내용을 주고받으며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는지 등, 주자의 경세론을 실제적으로 살필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편지 내용을 통해 주자가 형이상학적 이기론과 심성론에 치우친 도학자 또는 성리학자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개혁을 추구한 전통적 사회과학자이자 개혁가로서의 모습도 함께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주자의 편지는 인간 주자뿐 아니라 남송시대 지식의 지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조선시대 주자학 연구의 결정판 『주자대전차의집보』의

상세한 주석을 원문과 번역문으로 만나다!

주자 서한집: 첫째 권에는 주자문집 24, 25권의 번역문뿐 아니라 원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더불어 번역문과 원문에는 상세한 주석이 곁들여 있는데, 이는 바로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서간문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주자대전차의집보(朱子大全箚疑輯補)(이하 집보)의 주석이다. 집보는 조선 말기인 1850년에 이항로와 그의 아들 이준이 정리해 출간한 것으로, 총 121권 70책에 이른다. 집보는 그동안 이어져 온 퇴계학파와 율곡학파의 주자문집 연구 작업뿐 아니라 정조대왕의 주희 연구 성과를 모두 집대성한 주희 학술사상에 관한 종합 연구서로서, 학파끼리 또는 학자마다 앞서서 단 주석을 철저하고 상세하게 비판하며 의견을 개진한 내용을 자세히 수록하고 있다.

집보의 주석에 언급된 책명으로는 이황의 주자서절요, 정경세의 주문작해(朱文酌海), 송시열의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 정조의 주시아송주(朱詩雅誦註), 서유구의 두릉서씨설(斗陵徐氏說)등 20권이 넘는다. 조선 성리학자들의 치열한 학술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집보의 주석 내용은 곧 조선 시기 350년간 이어온 주자학 연구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주자 서한집: 첫째 권은 여기에 더해 이 책을 번역한 김용수, 조남호 두 옮긴이의 주를 부분적으로 추가함으로써 집보의 주자학 연구의 맥을 잇고 있다. 옮긴이들은 주자와 주자문집, 집보에 대한 ‘해제’와 함께 ‘부록’으로 송나라 지방장관제도와 주요 지방장관에 대한 소개글과 소논문 주희 철학의 보편적 인간성과 차별적 민족성을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참고문헌’ 또한 주자 관련 도서들을 자세히 설명해놓고 있어 필독을 권한다.

 

책 속에서

주희 학술에 관한 기존의 많은 연구는 대체로 철학사상에 치우쳤다. 따라서 주희 학술의 전면적인 연구에는 문집이 더욱 중요하다. 다시 말해 심성론이나 공부론 같은 철학사상도 중요하지만, 주희가 정치, 경제, 사회 등 전통적 사회과학에서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입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연구는 오늘날 일반 독자들이 주희 학술의 전체적인 모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주희가 형이상학적 이기론과 심성론에 치우친 도학자 또는 성리학자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개혁을 추구한 전통적 사회과학자로서의 모습 또한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14~15쪽, <해제> 중에서

주와 현이 마땅히 서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야 할 텐데, 반대로 일률적으로 모든 현의 학전을 없애서 현에서 스스로 교육을 하지 못하게 하니, 이게 무슨 논리입니까? 저는 이미 공문서를 갖추어 상신했기에 이를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알려 드립니다. 삼가 바라건대 조정에서 학교를 세워 선비를 기르는 의미를 고려하여 살펴보시고 재용의 법을 제정한 뜻을 고찰하시고 관리와 백성의 고난과 폐단을 통념해 주십시오. ― 35쪽, <24-2 이교수께 보내는 편지(1155년)> 중에서

제 생각에 일을 의론하는 자는 마땅히 사리의 장단곡직(長短曲直)을 따져야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따져서는 안 됩니다. 만약 오직 연장자만 옳다고 한다면 나이 적은 사람은 이치가 비록 더 낫더라도 끝내 자기 의견을 펼칠 수 없습니다. ― 38쪽, <24-3 진재께 답하는 편지(1155년)> 중에서

금나라 오랑캐 군대의 날쌔고 강함은 본래 손상된 적이 없고 지금 금나라가 잃은 건 단지 완안량 한 사내일 뿐입니다. 만일 한 달 사이에 다시 그 무리를 다 모아서 자기 임금을 잃은 치욕을 갚는다는 핑계로 쳐들어와서 우리에게 보복한다면 조정은 다시 어떤 계략으로 이를 방어할지 모르겠습니다. 백성들에게 군량을 거두면 백성들이 초췌해져서 감당할 수 없고 병사들을 징발하면 병사들은 취약해져 쓸모가 없을 듯합니다. 장차 중원을 근거로 그들과 싸우려 하면 형세에 익숙하지 않고, 장차 중원을 버리고 회수와 사수를 지키려 하면 중원의 회복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중략) 이 내용은 사사로운 근심과 외람된 계책이지만 종일토록 전전긍긍하며 그만둘 수 없습니다. ― 42쪽, <24-4 황추밀께 보내는 편지(1161년 겨울)> 중에서

제 생각에 염법의 본령은 실제로 더 편리해진 듯합니다. 아마도 백성의 형편에 맞게 균등하게 배부해서 하층의 가난한 백성들의 부담을 많이 덜어 주어 부역에 징용되는 백성들이 몇 배씩 더 부담하던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듯합니다. 또 갖가지 폐단과 요행수가 모두 의도치 않게 일어나니 참으로 가볍게 바꿔서는 안 됩니다. 다만 여러 사람의 생각을 모으고 다방면으로 조치해서 관청에 내는 소금 값의 액수가 과거에 비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고 소금을 사는 가격이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게 한다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다 편리해서 염법이 오래도록 시행될 수 있을 듯합니다. ― 50쪽, <24-5 진조사의 염법 논의에 답하는 편지(1163년, 계미)> 중에서

저는 일찍이 천하의 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어서, 근본을 바로잡는 일은 비록 우활하고 느린 듯하지만 실제로는 힘쓰기가 쉽고, 말단을 추구하는 일은 비록 절실하고 극진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 성과를 이루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옛날에 일을 잘 의론한 자는 반드시 그 근본과 말단의 소재를 잘 밝혀서 먼저 그 근본을 바로잡았는데, 근본이 바로잡히면 말단이 다스려지지 않음은 염려할 일이 아닙니다. 우선 지금의 천하 일을 의론하자면, 위로는 천심이 기꺼워하지 않아서 기근이 자주 오고, 아래로는 백성의 재력이 이미 다 탕진됐는데도 세금 징수가 바야흐로 심해져서 도적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인심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그 폐단을 다 열거하면서 회복을 도모하는 술책을 구하려 한다면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큰 환란의 근본을 말하자면 참으로 근본이 존재합니다. ― 80쪽, <24-10

진시랑께 보내는 편지(1165년 5월)> 중에서

제 생각에 맹자의 “성공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말씀과 동중서의 “도를 밝히고 의리를 바루다”는 말 씀과 제갈량의 “온몸을 바쳐 힘을 다하다가 죽은 다음에야 그치다”는 말은 성패와 유리한지 여부를 미리 헤아리지 않은 것이니, 바로 오늘날에 힘쓸 점입니다. ― 115~116쪽, <24-16 위원리께 답하는 편지(1169년)> 중에서

풍속이 이미 참으로 경박하고, 이를 본받아 선발된 자들은 또다시 그들을 따라 경박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날로 더 심해지고 해가 지날수록 심각해져서 옛 도를 참으로 행할 수 없을 듯합니다. 병자에 비유하자면, 하체는 차디찬데 상체에서 허열이 치열할 경우 한기를 치료하면 열은 다시 크게 일어납니다. 세속의 의생들은 한기를 치료하는 방책을 찾지 않고 끝내 진짜 열병이라고 여겨서 망령되이 해열제로 열을 내리니, 이로써 병자를 죽이지 않는 경우가 거의 드뭅니다. ― 128쪽, <24-18 왕상서께 보내는 편지(1169년 5월)> 중에서

또 귀하에게 말씀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우매해서 본래 벼슬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성장하면서 점점 공부하는 방법을 알게 되어 선생과 군자들의 가르침을 곁눈질해서 알고서는 이에 문득 생각을 고쳐먹고, 그릇되게 세상을 구하고 사물을 감화시키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기질이 편벽되고 막혔는데 뜻만 높아 망발을 하여 세상과 부합하고 용납을 받지 못합니다. 이런 까닭에 지향하는 점이 세상과 동떨어져서 함께할 사람이 없습니다. 게다가 우환이 겹쳐 심지가 쇠잔해서 오래전부터 이미 다시는 세상일을 맡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끝내 끌어다가 벼슬하는 자들의 대열에 두고자 하시니 당신이 장차 저를 어떻게 쓰시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236~237쪽, <25-16 공참정께 보내는 편지(1176년 8월)> 중에서

근래에 언관들이 군주의 부족한 점과 잘못된 점을 적시하고, 간사하고 기만하는 실상을 낱낱이 군주에게 밝히지 않음이 없는데, 아직 군주를 깨우치는 데 진전이 없는 까닭은 바로 근본을 바로잡지 않고 말단만 바로잡으려 하며, 이치에서 구하지 않고 개별적인 일에서만 구하려 하며, 임금 덕의 앙양과 정치체통의 기강확립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생각은 말하지 않고 오직 여러 소인의 과오와 악행만을 공격한 데에 있으니, 이 점이 공력은 많지만 효과가 적은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부디 귀하께서 이 점에 대해 깊이 살피셔서 반대로 하신다면 거의 천하의 여망을 위로할 듯합니다. 대체로 원로대신이 군주에게 고함이 그 체통으로 보아 당연합니다. ― 246~247쪽, <25-20 진승상께 보내는 편지(1178년 여름에서 가을 사이)> 중에서

 

차례

옮긴이의 글 1 김용수

옮긴이의 글 2 조남호

해제

일러두기

주자문집 24권 편지

24-1 경총제전의 부족분을 의논하여 종호부께 보내는 편지(115521일)

24-2 이교수께 보내는 편지(1155년)

24-3 진재께 답하는 편지(1155년)

24-4 황추밀께 보내는 편지(1161년 겨울)

24-5 진조사의 염법 논의에 답하는 편지(1163년, 계미)

24-6 유평보께 답하는 편지(116311월)

24-7 연평 이 선생께 드리는 편지(1163926일)

24-8 위원리께 보내는 편지(116311월)

24-9 위원리께 보내는 편지(1164년)

24-10 진시랑께 보내는 편지(11655월)

24-11 왕수께 보낸 편지에서 둔전의 일을 논함(1165년)

24-12 조진숙께 보내는 편지(11679월 말)

24-13 위원리께 보내는 편지(11687월)

24-14 위원리께 보내는 편지(11689월)

24-15 진승상께 경하를 드리는 편지(116811월 겨울)

24-16 위원리께 답하는 편지(1169년)

24-17 진승상께 보내는 편지(11695월)

24-18 왕상서께 보내는 편지(11695월)

24-19 왕상서께 답하는 편지(1169611일)

24-20 왕상서께 답하는 편지(116972일)

24-21 진승상께 보내는 편지(1169714일)

24-22 왕상서께 답하는 편지(1169726일)

24-23 진승상께 보내는 편지(1169726일)

24-24 유평보께 답하는 편지(11697월)

24-25 장흠부께 답함(1169년 가을)

 

주자문집 25권 편지

25-1 장경부께 답하는 편지(1170년 윤5월에서 6월 사이)

25-2 장경부께 답함(11706월)

25-3 장경부께 답함(11707월)

25-4 장경부께 답함(1171년 봄)

25-5 심시랑께 답하는 편지(1172년 여름에서 가을 사이)

25-6 건령부 여러 관사에 보내는 진휼을 논하는 차자( 1174년 여름에서 가을 사이)

25-7 건령의 부사또께 보내는 차자(11749월 말)

25-8 부사또께 답하는 차자(1174년)

25-9 공참정께 답하는 편지(1175년 봄)

25-10 공참정께 답하는 편지(1176년 여름에서 가을 사이)

25-11 진비감께 답하는 편지(1176년 여름에서 가을 사이)

25-12 부조운사께 보내는 편지(1176년 가을)

25-13 여백공께 보내는 편지(11767월)

25-14 여백공께 보내는 편지(1176년 가을)

25-15 한상서께 답하는 편지(11767월)

25-16 공참정께 보내는 편지(11768월)

25-17 공참정께 보내는 편지(11776월)

25-18 진승상께 답하는 편지(11779월)

25-19 진공께 보내는 별지(11779월)

25-20 진승상께 보내는 편지(1178년 여름에서 가을 사이)

25-21 여백공께 답하는 편지(1178817일)

25-22 정자명께 답하는 편지(117810월)

저 : 주희(朱熹)

주희(朱熹, 1130-1200) : 중국 남송시대 학자로 유학을 집대성하였다. 자는 원회(元晦), 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창주병수(滄洲病叟), 둔옹(遯翁) 등으로 불렸으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복건성 우계에서 태어나 5세 때부터 문장 공부를 시작해 19세에 진사가 되었다. 21세부터 50대까지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현직에 있던 시기는 얼마 되지 않으며, 대부분 명예직이었다.

공자, 맹자의 학문을 공부했으며 주돈이, 정이, 정호의 사상을 이어받은 도학파의 일원이었다. 불교와 도교에 대항해 이(理)와 기(氣) 개념으로 합리적인 유학의 형이상학을 완성하였다. 그가 창시한 주자학(성리학)은 사대부 계층과 한족 중심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에도 원, 명, 청대에 관학으로서 관원을 양성하는 기초 학문이 되었으며, 동아시아의 정치, 사상,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주희는 이기론 인간 내면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규명한 심성론,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사물의 이치를 구하는 학문 수양법인 거경궁리론을 주장하였으며, 향약과 사창법 등을 주창하여 민생 안정 등 현실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세론을 펼쳤다.

『사서집주』를 저술하여 오경(『시경』·『서경』·『역경』·『예기』·『춘추』) 중심의 경학을 사서(『논어』·『맹자』·『대학』·『중용』) 중심으로 바꾸었으며, 『소학』을 집필하여 아동교육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하고, 『주자가례』를 만들어 관혼상제의 일상생활 규범을 정초하였다. 이 외에도 여조겸과 함께 지은 『근사록』 등 80여 종의 책을 편찬하였다.

사후에는 문인들과 주고받은 문답을 모은 『주자어류』와 직접 쓴 글들을 모은 『주자문집』이 편찬되었다. 『주자대전』으로도 불리는 『주자문집』은 정집 100권, 속집 11권, 별집 10권, 부록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정집 24권부터 64권까지의 편지글[書]은 현실 정치에 대한 주희의 구체적인 활동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주자 서한집: 첫째 권』은 『주자문집』 24, 25권에 실린 주희의 편지글을 번역한 것이다. 

역 : 김용수

전남 함평 출생. 자는 무경(無竟), 호는 덕헌(德軒).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백석예술대학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삼진회계세무사무소 대표를 맡고 있다. 한송(寒松) 성백효(成百曉) 선생님께 배웠다.

역 : 조남호

충북 청주 출생.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법학연구단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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