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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민며느리제에 대한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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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5-10-13 조회조회수: 1,1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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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며느리제에 대한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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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며느리제에 대한 설명은 아래 (1) ~ (4)와 같은 이유로 피고들의 ‘용선생 한국사’가 원고의 ‘한국사 편지’를 표절하지 않은 것이 명백합니다.



(1) 여러 역사교과서만 보더라도 위 부분과 문자적으로 유사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역사사실을 기반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역사교과서를 보더라도 유사한 표현이 나옵니다. 고구려와 옥저의 결혼풍습을 따로 설명할 때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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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옥저의 결혼풍습을 같이 설명할 때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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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고구려와 옥저의 결혼풍습에 대한 서술이 유사한 이유는 고구려와 옥저의 사회풍습에 관한 거의 유일한 역사사료가 ‘삼국지 위지 동이전’이기 때문입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살펴보면 문자적으로 유사한 서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옥저.. 사람들의 성질은 질박하고 정직하며 굳세고 용감하다. .. 음식, 주거, 의복, 예절은 고구려와 흡사하다. 그 나라의 혼인하는 풍속은 여자의 나이가 10살이 되면 이미 혼인을 약속하고 신랑집에서는 그 여자를 맞이하여 장성하도록 길러 아내로 삼는다. 여자가 성인이 되면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게 한다. 여자의 친정에서는 돈을 요구하는데, 신랑집에서 돈을 지불한 후 다시 신랑집으로 돌아온다”(삼국지위지동이전)



(2) ‘한국사 편지’의 1.‘고구려에서는 결혼하면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살았거든’과 ‘용선생 한국사’의 1)‘고구려에서는 결혼하면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살았다고 했잖아’라는 문장은 전혀 다른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사 편지’는‘살았거든’그리고 ‘용선생 한국사’는‘살았다고 했잖아’로 되어 있어 양 문장은 끝 종결어미만 다른 것으로 보이나 앞뒤 문맥상 두 문장은 전달하는 내용이 전혀 다릅니다.


<용선생한국사>의 ‘살았다고 했잖아’라는 종결 서술은 바로 앞 절에 이미 나왔던 고구려의 데릴사위제에 관한 서술 내용을 상기시키는 표현입니다. 반면 <한국사편지>의 ‘살았거든’이라는 표현은 앞에서 고구려에 관한 서술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고구려의 데릴사위제를 등장시켜 설명하기위해 사용한 종결어미입니다. 


<용선생한국사>와 <한국사편지>의 두 개의 문장은 둘 다 한국사를 서술함에 있어 고조선의 멸망 이후 한반도에 등장한 고대국가를 서술하는 장에서 "옥저·동예"를 설명하면서 나타나는 문장들입니다.


<용선생한국사>는 7장 <크고 작은 여러 나라가 생겨나다>라는 장을 두고 있는데 <북쪽에 세워진 두 번째 나라, 부여>라는 절에서 6쪽에 걸쳐 부여를, <고구려엔 들판보다 산이 많아>라는 절에서 4쪽에 걸쳐 고구려를 서술하고 있고, 그에 뒤이은 절에서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옥저와 동예>라는 제목으로 4쪽에 걸쳐 옥저와 동예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사편지>는 <고조선 다음에는 어떤 나라들이 있었을까?>라는 장에서 고대국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부여를 2쪽에 걸쳐 설명한 뒤 고구려를 서술하지 않고 바로 이어서 <고구려와 비슷한 옥저와 동예>라는 절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편지>에서는 이 민며느리제 서술 부분에서 고구려라는 단어 자체가 처음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설명 방식은 거의 모든 표준적인 역사서와는 상이한 것입니다.) 



고구려엔 들판보다 산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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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부여 출신의 주몽이 세운 나라야. 단군 신화처럼 주몽과 고구려에 대해서도 건국 신화가 전해져....”
(생략)
고구려에서는 결혼을 하면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살았단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 커서 어른이 되면 신랑 집으로 가서 살았대. 이런 풍습을 신부 집에서 사위를 데리고 산다 해서 ‘데릴사위제’라고 불러.”
“어머, 그거 괜찮다!”
(중략)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옥저와 동예
용선생은 다시 지도를 가리켰다.
“옥저와 동예는 여기 동해안 근처에 있었어....”(생략)
“하다야, 추측은 훌륭하다만, 안타깝게도 틀렸다. 옥저와 동예에는 아예 왕이 없었거든. 왕 대신 군장들이 각자 자기 부족들을 다스렸지. 군장이란 작고 덜 발달된 사회를 다스리는 사람을 말해. 아직 왕도 없었으니 힘이 센 고구려의 지배를 받으며 특산물을 바쳐야 했던 거야. 그래서인지 말이나 풍습도 고구려와 비슷했대. 아! 그런데 이상하게도 옥저의 결혼 풍습은 고구려의 데릴사위제와는 정반대였어.”
옥저는 결혼 풍습이 어땠는데요?”
고구려에서는 결혼하면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살았다고 했잖아. 그런데 옥저에서는 반대로 신부가 열 살이 되면 약혼을 하고 신랑 집에 가서 살았어. 신부는 어른이 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가, 신랑이 신부의 몸값을 치른 다음 결혼을 했어. 이런 풍습을 ‘민며느리제’라고 불러. ‘민며느리’란 며느리를 삼으려고 미리 데려다가 기르는 여자 아이라는 뜻이지! 어때, 재밌지?”



위와 같이 <용선생한국사>의 ‘살았다고 했잖아’라는 표현은 그 앞절에 서술된 고구려의 데릴 사위제를 상기시키는 문장 표현인 반면, <편지>의 ‘살았거든’이라는 표현은 데릴사위제를 처음으로 등장시켜 새롭게 소개하는 문장종결어미입니다. 이처럼 두 개의 문장은 문자적으로 유사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의미하는 바가 전혀 다른 문장으로 표절과는 무관한 문장 표현이라 할 것입니다.



(3) 민며느리제를 설명하고 있는 3번째 문장에서 ‘한국사 편지’는 사료해석상의 오류를 범하고 있지만, ‘용선생 한국사’는 올바르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만일 ‘용선생 한국사’가 ‘한국사 편지’를 원고의 주장과 같이‘표절’하였다면 똑같은 오류를 갖고 있어야 할 것이나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사 편지’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 서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료해석의 오류를 범했습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는 “여자가 성인이 되면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게 한다. ...신랑집에서 돈을 지불한 후 다시 신랑집으로 돌아온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사 편지’에는‘어른이 될 때까지 살다가 신랑이 신부의 몸값을 치른 다음 결혼을 했단다’라고만 서술되어 있고, 친정으로 돌려보낸 내용은 빠져있습니다.


이 부분은 신부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신부 집에서 신랑집으로부터 몸값을 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민며느리제의 매매혼의 성격을 뚜렷하게 드러내 보이는 내용이므로 굉장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신부가 계속해서 신랑집에 머물 경우 신랑집에서 몸값을 치르지 않아도 결혼을 둘러싼 양쪽의 계약관계를 한쪽이 일방적으로 깨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신부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면, 신랑집에서 몸값을 제대로 치르기 전에는 신랑집으로 다시 옮겨 다음 단계인 정식 결혼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쉽게 생략해서는 안되는 부분입니다.


‘용선생 한국사’를 비롯해 민며느리제를 설명하는 대부분의 책들은 그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있습니다.(밑줄 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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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용선생 한국사’가 ‘한국사 편지’의 내용을 표절한 것이라면 ‘용선생 한국사’ 역시 이런 오류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나, ‘용선생 한국사’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가’라고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4) 2번째 문장의 ‘반대로’라는 설명은 이미 다른 여러 서적에서도 사용되었던 부분입니다.


고구려와 옥저는 모두 고조선 이후 탄생한 고대 국가이고 인접해있기 때문에 두 개의 나라를 이어서 비교해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는 서술은 여러 역사책에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두 개의 나라의 결혼풍습이 대조적이기 때문에 비교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있고 그런 경우에는 “반대로”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반대로’라는 단어의 사용 역시 두 개를 대조할 때 불가피하게 사용되는 것으로 이미 여러 교과서에서도 아래와 같이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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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선희님의 댓글

김선희 작성일

올려 주신 답변 잘 보았습니다. 제가 용선생에 기대했던 만큼의 답변이 아녀서 조금은 실망스럽지만 첨부화일까지 해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로서 상식적인 수준에서 볼 때, 왠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용선생의 입장이 어떤지는 잘 알겠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용선생과 한국사 편지를 함께 놓고 꼼꼼히 읽어봐야겠습니다. 적극적인 독자라면 당연히 그래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