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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재 · 학술

본문

블랙마운틴 칼리지 - 예술을 통한 미래 교육의 실험실

저자
김희영  저
  • 가격

    25 원

  • 출간일

    2020년 04월 28일

  • 쪽수

    336

  • 판형

    165*235

  • ISBN

    9791189946579

  • 구매처 링크

요약

 

블랙마운틴 칼리지(Black Mountain College)는 경제 대공황 시기인 1933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산자락의 작은 마을 블랙마운틴에 세워진 교양대학으로, 실험과 경험을 중요시한 존 듀이의 교육 철학에 근거하여 설립·운영되었다. 고전학자 존 라이스와 물리학자 테오도르 드레이어가 설립을 주도했으며, 히틀러 치하의 독일을 떠나 대서양을 건너온 바우하우스의 요제프 알베르스가 미술을 가르친 이 학교는, 실습과 학제 간 교육을 통해 학생 개인이 창의력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여 미래를 이끌어 갈 주체적인 민주 시민으로 키우려 했던 실험적인 예술 공동체였다. 비록 재정 문제로 인해 1957년 24년간의 교육 실험은 막을 내렸지만,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에서 국제적인 아방가르드 예술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으며, 예술 이외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선도함으로써 학교의 명성을 이어나갔다. 이성과 감성의 균형적인 성장을 통한 전인교육을 목표로 했던 블랙마운틴 칼리지는 시대를 앞서간 ‘미래 교육의 실험실’이었다.

위기의 시기 개인의 창의력을 발현하고 주체적인 민주 시민을 키우고자 했던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교육적 실천은 21세기 한국 교육에 도전적인 전망을 던진다. 이 책은 1세기 이전에 이미 예술을 통한 통섭과 융합 교육을 실제로 진행했던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설립 배경을 비롯해 실제 이루어진 교육과정을 상세하게 들려줌으로써 21세기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뿐 아니라 새로운 교육 담론을 형성하는 데 단단한 밑거름을 제공한다.

 

추천사

로버트 머더웰, 사이 트웜블리, 로버트 라우션버그, 머스 커닝햄, 존 케이지 같은 뛰어난 전위예술가들을 배출한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위상은 20세기 현대 미술사에서 한결같이 회자되어 왔으나 실체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블랙마운틴 칼리지는 개인의 사고의 자유뿐 아니라 상상과 판단의 자유를 강조했던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사상가 존 듀이의 교육 철학과 실용주의적인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이념을 결합해 열린 교육 환경을 제공했으며, 지금까지도 가장 이상적인 전위예술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 왔다.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교육 이념과 철학, 구체적인 교육과정과 교육 환경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아직도 과거의 교육 틀과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네 미술 교육계에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송미숙 미술사학자,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오래된 미래 교육의 실험실, 블랙마운틴 칼리지

― 예술을 통한 통섭과 융합 교육의 실천 현장을 가다

근대 예술 교육기관을 언급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1919년 독일에 세워진 ‘바우하우스’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바우하우스는 수많은 실험 교육을 통해 다수의 예술가와 건축가를 양산했으나 히틀러 정권의 탄압으로 인해 1933년 문을 닫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같은 해 미국에서는 예술 교육을 표방한 블랙마운틴 칼리지(이하 BMC)가 세워진다. 국내에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이름의 이 학교는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 인근의 작은 마을 블랙마운틴에 세워진 교양대학이다. 실험과 경험을 중요시한 존 듀이의 진보적인 교육 철학에 근거하여 고전학자 존 라이스와 물리학자 테오도르 드레이어가 설립을 주도한 이 학교는 지식을 축적하기보다는 지성과 감성을 균형 있게 키우는 전인교육을 목표로 하였고, 예술을 배움의 중심에 두면서 실습과 학제 간 교육을 함께 해 나갔다. 초기에는 히틀러의 전체주의를 피해 대서양을 건너온 바우하우스의 요제프 알베르스가 미술을 가르쳤는데, 이처럼 BMC는 유럽의 권위주의 독재를 피해 망명한 사람들의 은신처로도 기능했다.

BMC는 경제 대공황 시기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위기의 시기에 진보적인 교육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실험하며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곳이다. 즉, 경쟁에 기초한 교육에 대항하는 대안적인 교육을 통해 학생 개인이 창의력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여 미래를 이끌어 갈 주체적인 민주 시민으로 키우려 했던 실험적인 공동체였다. 특히 배경과 관심사가 다른 학생과 교수들은 자유롭게 소통하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실행이 없는 배움은 무가치하다는 것을 배웠으며, 관습에 매인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진취적인 태도를 익혔다. 이러한 교육을 바탕으로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기 BMC에서는 1944년 여름에 처음으로 흑인 학생의 입학을 허용하기도 했다.

BMC의 창의적인 교육은 재정 문제로 인해 1957년 막을 내렸지만, 24년 동안 이 학교를 거쳐 간 다수의 교수와 학생은 1950년대 이후 뉴욕에서 전개된 국제적 아방가르드 예술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으며,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선도해 나갔다. 이처럼 전체주의의 위협에 직면했던 시기에 전인교육을 꿈꾸고 민주적 시민으로 교육하고자 했던 BMC에서의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교육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1세기 전 이미 예술을 기반으로 진보적인 교육을 실험했던 BMC의 교육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학교의 설립 배경과 바탕이 된 교육 철학, 실제 교수와 학생 사이에 이루어진 통섭과 융합의 ‘학제 간 교육과정’을 세밀하게 들려줌으로써, 21세기 한국 사회가 오래된 미래 교육의 실험실이었던 BMC에서 어떤 교육적 자양분을 받아야 할지, 그로 인해 어떠한 교육적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예술을 통한 창의적이고 민주적인 전인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한국 사회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교육 철학과 방법론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상상한 미래가 궁금하다!

― BMC 교육의 특징과 실험 교육을 이끈 주역들, 그리고 BMC의 유산

예술을 통한 통섭과 융합 교육을 실험했던 BMC에서는 구체적인 어떤 교육이 이루어졌을까? 먼저 BMC에서는 존 듀이의 교육 철학을 교육에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고전학자 존 라이스와 바우하우스에서 건너온 요제프 알베르스이다. 라이스는 능동적 ‘지각’을 습득해 가는 과정을 연극 작업에 참여하는 것에 비유하며 책을 강독하는 것에 주력하는 보수적인 교육 방식을 거부하고 관찰과 실험적 행동을 우선하는 교육 원리를 내세웠으며, 알베르스 또한 ‘보는 것’과 ‘관계의 존중’을 강조하며 음악, 연극, 드라마, 문학, 사진, 드로잉, 회화, 디자인을 포함한 광범위한 예술 교육을 진행했다.

BMC 교육과정의 특징 중 하나는 ‘실습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이는 학교 공동체에 필요한 음식을 직접 제공하기 위해 농장을 운영하고, 건물을 짓거나 도로와 건물을 보수하며, 조경 작업뿐 아니라 무대 장치 설치 공사 등의 업무에 교수와 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교실 밖 학습 프로그램으로, 모든 유형의 일과 직업을 존중하고 근본적인 사회성을 키우는 교육과정이기도 했다. 또 다른 하나는 ‘학제 간 교육’으로, 당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건축학자 등이 이 교육과정에 참여했다. 특히 비공식적으로 진행된 ‘여름학교’에서는 로버트 머더웰, 제이컵 로런스, 빌렘 데 쿠닝, 레오 리오니, 발터 그로피우스 등이 참여해 풍성한 프로그램을 이어갔는데, 당시 건축가이자 공학자였던 리처드 버크민스터 풀러는 여름학교의 건축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 ‘지오데식 돔’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272-273쪽 참조).

주목할 점은 BMC 교육의 목표가 뛰어난 예술가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BMC는 화가, 음악가, 시인보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민주주의자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예술을 통한 융합 교육이 필수라고 여겼다. 존 케이지, 나타샤 골도프스키, 산티 샤빈스키, 머스 커닝햄 등 이곳을 거쳐 간 다양한 분야의 교수들과 화가로 활발히 활동한 루스 아사와, 사이 트웜블리, 로버트 라우션버그 등 BMC가 배출한 학생들의 이후 행보가 이를 증명한다. 현실적인 재정 문제로 인해 BMC의 교육 실험은 24년 만에 끝났지만, 이곳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몇몇 저명한 인물들이 미국의 미술과 문학계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학생과 교수진은 미국 교육 체계의 길을 서서히 바꾸어 놓았다. 1세기가 지난 현재 시점에서 돌이켜봤을 때 BMC의 교육 실험은 실패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들이 상상한 오래된 미래는 오늘날 우리에게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책 속에서

 

BMC에서의 교육은 민주적(democratic)이기보다는 민주주의를 위한(for democracy) 것이었다. 즉, 교육 자체가 민주주의를 위한 수단이었다. BMC의 목표는 학생들이 윤리적으로 감응하는 것을 배워 변화하고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중략) BMC는 1930년대 유럽의 권위주의적 독재를 피해 망명한 사람들의 은신처가 되었다. 바우하우스 창립자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는 1944년 8월 BMC에서 했던 강연에서 “BMC는 정신적 영향력을 강하게 높일 수 있기에, 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은 여기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진수가 주는 매력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전체주의의 위협에 직면했던 시기에 전인교육을 꿈꾸고 민주적 시민으로 교육하고자 했던 BMC에서의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교육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감성과 이성의 균형을 이룬 개인의 전인적인 성장,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라는 근원적인 교육을 예술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상상력과 창의력에 연관시켰던 점은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1장 ‘경험을 통한 전인교육’ 중에서

 

BMC는 진정한 자치로 운영된 공동체였다. 교수진이 학교를 소유하고 총장과 이사회가 없는 BMC는 교수들의 천국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설립 당시부터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진이 학교 업무를 관장하여 교육과 행정이 분리되지 않았다. 교수들은 교육 정책과 학생생활 지도를 담당했을 뿐 아니라 회계, 기금 마련, 신임 교원 임용, 학생 입학 같은 행정 업무를 교대로 맡았다. 부분적으로는 대학 안에서의 당연한 책임으로서, 부분적으로는 대학 업무에 교육적인 태도를 반영하기 위해 행정 업무를 했다. 어떠한 외부의 통제도 없이 운영된 민주주의 원칙은 폐교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 32쪽, 2장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역사와 교육 철학’ 중에서

 

1941년 당시 여유가 있는 학생들은 기숙사와 식사 비용을 포함해 연간 1,200달러의 등록금을 냈다. 그러나 낼 능력이 없는 학생들은 이보다 적은 비용, 경우에 따라서는 300달러를 내고도 입학할 수 있었다. 등록금 납부 사항에 대해서는 철저한 보안이 지켜져 입학 심사위원 외에는 교장조차 누가 전액을 납부하는지 몰랐다. 등록금 전액을 내지 못하는 경우, 부족한 액수를 보충하기 위한 어떤 일도 학생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이처럼 학생의 재정 상황이 BMC 공동체 안에서의 대우나 입장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 이 점은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 가능한 한 민주주의에 가까워야 한다고 했던 라이스의 주장이 반영된 것이다. ― 36쪽, 2장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역사와 교육 철학’ 중에서

BMC는 개인주의를 지양하고 개인의 전인적 성장을 통해 민주적 공동체를 만들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것은 당시 대부분의 학교에서 전문화와 효율성을 추구했던 것에 맞서는 것이었다. BMC 설립자들은 이성적 훈련과 함께 상상력을 키워 주려는 꿈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BMC는 지적인 교육에 치중하여 실천적인 교육을 간과하는 전통과 결별하고 양자를 연계하는 것을 교육의 근본으로 삼았다. 지식이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했고, 공동체로서의 BMC는 이러한 교육을 위한 실험실이었다. 따라서 개인의 자기계발과 공동의 관심사 간의 균형을 찾아 협업과 경쟁의 목적을 알게 했다. ― 64~65쪽, 2장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역사와 교육 철학’ 중에서

 

라이스는 듀이의 진보주의 교육 철학을 실행에 옮김으로써 보수적인 교육 이론에 대항했다. 그는 교육이란 단일한 차원에 한정되어서는 안 되며, 경험을 단계적으로 충분히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능동적인 ‘지각’을 습득해 가는 과정을 연극 작업에 참여하는 것, 즉 배우가 소리와 움직임 간의 미묘한 변증법적 관계를 경험하는 것과 비교하여 설명했다. 인간의 사고가 정해진 규율을 따르지 않는다고 믿었던 그는 책을 강독하는 것에 주력하는 보수적인 교육 방식을 거부했다. 그 대신 관찰과 실험적 행동을 우선적인 교육 원리로 내세웠다. 그리고 개인의 성향과 잠재력에 따라 학생이 개별적으로 교육 내용을 선택하여 만들어 가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윤리적 가치를 강조했다. ― 109쪽, 3장 ‘존 라이스와 요제프 알베르스’ 중에서

 

바우하우스가 디자인 훈련에 중점을 두었다면, BMC의 목표는 일반 교육이었다. 바우하우스는 산업 생산과 현대 사회에 적합한 예술의 기능을 새롭게 하고자 했다. 바우하우스는 예술, 산업, 대량생산을 융합하고, 이미 숙련된 학생들을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 전문가로 키우는 데 주력했던 전문학교였다. 반면 BMC는 일반 교육을 목표로 삼고 개별 학생들의 성장을 위한 환경을 마련하고자 했던 실험적인 공동체였다, 실험은 모든 창조적인 생산자들과 공유될 수 있는 실행으로 여겨졌다. BMC에서 예술은 다른 학술 분야와 동일하게 중시되었다. 이는 감정과 지력 모두가 계발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 128쪽, 3장 ‘존 라이스와 요제프 알베르스’ 중에서

 

BMC 교육의 핵심은 예술과 일상적 경험이 어우러지며 연속성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학제 간 맥락에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탐구적이고 변형적인 실행의 일환으로 학생과 교수 모두의 일상생활에 예술이 통합되었다. (중략) BMC에서 실행된 학제 간 예술 교육에서 주목할 만한 측면 네 가지는 공동생활, 실험, 미적-교육적 모델 작업, 그리고 예술의 사회적 효율성에서 경계를 초월한 실행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여전히 현재에도 유효하고 많이 논의되고 있는 실행들이다. ― 202~203쪽, 4장 ‘학제 간 교육’ 중에서

 

1948년과 1949년 BMC 여름학교에서 풀러가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만든 지오데식 돔은 그가 평생 추구했던 인도주의적 디자인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것은 모든 인류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풀러에게 디자인은 생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이었다. 그는 실험을 ‘통합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지오데식 돔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비록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품질의 주택을 제공하려는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으나, 그의 공학 원리는 지구상의 주택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가장 발전된 사고에 필요한 것이었다. 풀러에게 BMC는 예술·과학·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이상적으로 키워 갈 수 있었던 기반이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미래 연구의 유형으로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단위였다. ― 271쪽, 5장 ‘여름학교’ 중에서

BMC를 거쳐 간 모든 학생과 교수들이 유명해지거나 예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아니다. BMC에서 공부하고 떠난 학생들은 미국 전역과 세계로 퍼져 나갔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많은 학생들과 교수들이 뉴욕으로 이주하여 연대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BMC에서 발전시켰던 예술을 종종 협업하거나 독립적으로 이어갔다. BMC가 학문적 자유와 예술적인 실험에서 선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BMC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대변한다. 개인의 성장에 주력하고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BMC의 정신적인 힘은 1950년대 이후 미국의 아방가르드 예술과 문화를 선도했던 인물들의 눈부신 공헌에 머물지 않았다. BMC를 졸업한 몇몇 저명한 인물들이 미국의 미술과 문학계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면, 이름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많은 학생들과 교수진은 미국 교육 체계의 길을 바꾸어 놓았다. BMC의 진보적 교육의 유산은 주부, 화가, 음악가, 교사, 의사, 사업가, 은행가, 행정가, 출판업자, 저자와 같이 많이 드러나지 않으나 사회의 기반을 닦는 데 기여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을 통해 미국 문화와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면서 전수되어 왔다. 그들은 여전히 BMC에서 배운 사고와 교훈을 자신의 일상생활과 융합하고 있다. ― 304~305쪽, 6장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유산’ 중에서

 

 

차례

 

들어가는 글

 

1. 경험을 통한 전인교육

 

2.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역사와 교육 철학

2.1. 설립 배경과 운영 방식

BMC의 설립 | 진정한 자치 공동체 | 학교 운영 방식 | 공동체 생활을 통한 교육

2.2. 교육 혁신에 대한 시대적 요구

존 듀이의 진보주의 교육 철학 | 2.2.2. 존 듀이와 BMC | BMC 교육의 목표

 

3. 존 라이스와 요제프 알베르스

3.1. 존 라이스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 | 민주적 인간과 예술 | 경험을 통한 개인의 성장 | 예술-경험

3.2. 요제프 알베르스

바우하우스와 BMC | 눈을 뜨고 보라 | 실험과 실습교육 | 관계의 존중

 

4. 학제 간 교육

4.1. BMC의 학제 간 교육

예술 영역의 위상 | 실습 프로그램

4.2. 교육과정의 특성

입학 | 수업 과정 | 졸업

4.3. 학제 간 교육의 실행

다양한 학제의 교수진 | 예술과 과학의 관계 | 무대 예술 | 예술 학생의 활동

 

5. 여름학교

5.1. 여름학교 운영

설립 초창기 | 주요 활동기

5.2. 버크민스터 풀러의 지오데식 돔

5.3. 창의적 협업

5.4. 존 케이지의 〈무대 작품 1번〉

5.5. 여름학교에 초빙된 화가들

로버트 머더웰 | 제이컵 로런스 | 빌렘 데 쿠닝

 

6.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유산

 

본문의 주

참고문헌

도판 및 자료 출처

찾아보기

 


저 : 김희영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르네상스 분야로 미술사학 석사학위를,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20세기 미국미술사 연구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Korean Abstract Painting: A Formation of Korean Avant-Garde(2013), The Vestige of Resistance: Harold Rosenberg’s Action Criticism(2009), 해롤드 로젠버그의 모더니즘 비평(2009)이 있고, 역서로는 20세기 현대예술이론(201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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