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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재 · 학술

본문

전쟁 고고학

저자
장 길렌  저, 장 자미트  저, 박성진  역
  • 가격

    28 원

  • 출간일

    2020년 07월 17일

  • 쪽수

    416

  • 판형

    188*257

  • ISBN

    9791189946654

  • 구매처 링크

요약

 

이 책은 선사시대 전쟁과 폭력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고고학 안내서로, 기존의 고고학적 연구 성과에 의학적 지식을 결합한 새로운 역사 해석을 들려준다. 일반적으로 선사시대 사람들은 혹독한 자연환경과 싸우며 고립된 채 에덴동산에서처럼 매우 평화롭게 살았을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옛날 사람들의 삶을 단순화하고 그들의 사회를 낙원처럼 보려 했던 기존 시각에 맞서 탈신비화를 시도한다. 화살이나 투창이 난무하는 오래된 바위 그림과 부서지고 공격받은 인골의 고고학적 분석과 의학적 해석을 통해 인류의 감추고 싶은 흑역사를 있는 그대로 생생히 복원한다. 선사시대의 대학살, 무력충돌, 식인, 희생, 처형 같은 끔찍하고 비극적인 주제를 다룬 이 책은 마치 줌렌즈를 자유자재로 밀고 당기듯, 때론 거시적으로 때론 미시적으로 접근함으로써 폭력과 전쟁의 다양한 양상을 여러 각도에서 포착할 수 있게 한다. 대륙과 대륙을 가로지르고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넘나들며 수많은 시공간의 폭력과 전쟁을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인간의 폭력 행위에 대해 깊이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수작이다.

 

출판사 서평

고고학이 들려주는 전쟁과 폭력의 흑역사

― 고고학과 의학적 분석의 결합으로 새롭게 해석된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

문자 발명 이전 선사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석기시대는 빙하기의 혹독한 자연환경과 싸워야 했지만 에덴동산에서처럼 동료애와 이타심 넘치는 평화로운 삶을 살았을 것이라 상상한다. 그런데 과연 고고학적 증거 또한 이를 뒷받침하고 있을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해 선사시대에 대한 탈신비화를 시도한다.

프랑스의 고고학자 장 길렌과 의사가 본업인 고고학자 장 자미트는 지중해 주변과 유럽 전역을 중심 무대 삼아 최말기 구석기시대와 마지막 사냥-채집 사회의 유적들을 밀도 있게 살펴봄으로써 선사시대에도 집단학살, 무력충돌, 식인, 희생, 처형, 전쟁 등과 같은 폭력 행위가 존재했음을 들려준다. 특히 석기와 토기, 동굴의 바위 그림과 화살촉 같은 간접적인 증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골이라는 직접적 증거를 토대로 기존 고고학적 연구에 의학적 분석을 결합시킴으로써 선사시대를 ‘두껍게’ 읽고 있다. 석기에 벤 자국이 있는 뼈, 망치 같은 도구에 맞은 뼈, 뼈에 박힌 화살촉 몸과 분리된 머리, 원형 절제 수술을 받은 머리 등 유적에서 출토된 인골에 관한 의학적 접근과 정밀분석을 통해 고고학의 연구 영역을 확장시켰을 뿐 아니라 선사시대 폭력과 전쟁의 양상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또한 집단무덤 유적의 인골을 통해서는 실제 폭력의 대상이 건장한 남성을 넘어 어린아이와 여성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음을 고증하고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인류가 감추고 싶어 하는 선사시대 전쟁과 폭력의 흑역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들은 다양한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을 통해 선사시대 사람들이 언제나 맹수나 괴물 같은 전사가 아니었듯이 선한 어린 양과 같은 존재 또한 아니었음을 근거 있게 들려줌으로써, 선사시대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과 폭력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성찰케 한다.

 

집단학살, 무력충돌, 식인, 희생, 매장, 처형 등

선사시대 폭력의 실체를 만나다

― ‘왜’가 아닌 ‘어떻게’에 주목한 폭력의 고고학

이 책은 선사시대의 폭력의 실체를 다양한 유적을 통해 입체적으로 들려준다. 나일강 오른쪽 수단 북부에 위치한 제벨 사하바 집단무덤 유적에서부터 스페인의 레반트 동굴 유적, 다뉴브강 유역의 탈하임 대학살 유적, 덴마크 톨룬의 미라 유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선사시대 학살 유적과 집단무덤에 나타난 흔적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폭력의 실체에 접근하고 있다. 대학살과 무력충돌의 양상을 비롯해 동굴 그림에 나오는 창과 활 등 무기의 변화 과정, 족내 또는 족외에서 벌어진 식인 풍습과 매장 문화, 인골 유적을 통해 당시 폭력의 표적의 주 대상이 되었던 희생자에 대한 정밀한 분석은 선사시대 폭력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저자들은 마치 줌렌즈를 밀고 당기듯, 때론 거시적으로 때론 미시적으로 접근함으로써 폭력의 다양한 양상을 여러 각도에서 포착하고 있다. 대륙과 대륙을 가로지르고 선사시대 유적과 역사시대의 기록물을 넘나들며 수많은 시공간의 폭력과 전쟁을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렇듯 집단학살, 무력충돌, 식인, 희생, 매장, 처형 같은 끔찍하고 비극적인 주제를 다룬 이 책은 선사시대에 폭력이 ‘왜’ 일어났는가보다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주목한다. ‘왜’라는 원인 탐구에 중점을 둘 경우 대부분의 연구는 이론이나 법칙을 만들기 위해 고고학적 사실들에서 인과관계를 확인하는 데 집중하게 되며, 자칫 해당 지역의 문화와 역사의 전개 과정을 등한시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어떻게’라는 과정 탐구에 집중할 경우에는 동일한 이유에서 비롯된 행위라도 지역의 문화적 전통에 따라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게 된다. 이 책 또한 모델을 만들거나 법칙을 발견하는 것보다 ‘어떻게’라는 과정을 중시하는 접근 태도로 개별 문화의 독창성과 다양성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쟁의 역사가 만든 전사 이데올로기, 그리고 영웅의 탄생

― 무기와 석조 기념비로 이어진 폭력의 진화 과정

이 책은 유적과 유물을 통해 전쟁과 폭력의 다양한 양상을 입체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전쟁과 폭력의 역사가 어떻게 인류의 진화를 이끌어왔는지 살피고 있다. 저자들은 농경의 발달과 함께 공동체 안에서 사냥과 전쟁이 개인의 위세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갈수록 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폭력 행위 또한 증가했다고 보았다. 이러한 폭력 행위의 증가는 돌로 만든 단검에서 구리로 만든 단검으로, 다시 장검으로의 진화로 이어졌으며, 아울러 갑옷, 투구, 전차 보루, 요새 등 무기와 방어 시설의 발달과 전술의 다양화로도 이어졌다. 특히 전사의 모습이 투영된 석조 기념물과 스키타이족의 거대한 무덤을 통해서는 전사 이데올로기를 넘어 영웅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책 속에서

이 책에서 인골의 분석을 담당한 장 자미트의 본업은 고고학자가 아니라 의사이다. (…) 그는 본업인 의사로서 일하는 틈틈이 스승이자 친구인 장 길렌과 함께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출토되는 인골을 분석하여 고 고인류학적 연구를 줄곧 해 왔다. (…) 이 책에서 두 사람의 역할을 비유해서 말하자면 마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라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하는 비익조(比翼鳥)와 같다. 한 사람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큰 틀에서 고고학적 맥락을 살피고, 또 한 사람은 인골에 돋보기를 바짝 들이대고는 선사시대에 일어났던 폭력과 전쟁을 두껍게 읽는다. (…) 이 책을 번역하면서 사람 뼈에 박힌 화살촉의 각도와 깊이를 통해 추정된 화살의 궤도로 해당 인골이 어떤 상황에서 죽임을 당했는지 알 수 있다는 점과 어떤 자세로 가해자가 화살을 쐈는지도 알 수 있다는 점에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 18쪽, <옮긴이 서문> 중에서

 

여기서 말하는 전쟁이라는 용어는 무장한 집단 간의 정면 대결을 뜻할 뿐만 아니라, 이웃한 무리에 대한 기습과 매복, 심지어 개인적 차원의 살인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그 의미가 매우 넓다. 만약 이와 같은 정의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사냥-채집 시대에 대한 이미지는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자연의 혜택으로 풍요로웠기 때문에 사냥-채집 사회가 서로 돕고 다른 사람에게 한없이 베풀기만 할 뿐 해코지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로 이뤄진 사회였다는 주장은 더는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달리 말하면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 살지 않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동족을 살해하는 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 64~65쪽, <시작하는 말> 중에서

어떤 사람은 무기가 단백질 공급원인 고기를 얻기 위해 필수적인 사냥 능력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탄생

했다고 본다. 하지만 사냥 도구는 개량되자마자 동물이 아닌 사람을 겨냥하였다. 모든 것은 후기 구석기시대에 가속화된 듯하다. (…) 투창기, 활, 새총 등 물리 운동에 따라 작동되는 무기 사용으로 사냥 및 공격 기술이 더욱 향상되었다. (…) 신체 접촉 없이 먼 거리에서 공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원시적 기계화 부대’가 탄생한 것이다. ― 120쪽, <사냥-채집 사회에서의 폭력> 중에서

 

고고인류학적으로 인류 최초의 무력충돌 정황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은 수단 공화국 북부에 있다. (…) 1965년부터 1966년까지 미국·핀란드 연합발굴단이 발굴했던 제벨 사하바 공동묘지 유적에서 적어도 남녀노소 59개체분의 인골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점은 연대이다. 석기 유형을 보면 유적의 연대는 기원전 1만 2000년에서 기원전 1만 년 사이의 후기 구석기 또는 ‘최말기’ 구석기 문화인 카단(Qadan) 문화기로 추정된다. (…) 제벨 사하바 유적에 묻힌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대량’ 학살의 희생자로 추정된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 묻힌 사람들이 전사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 한편 이 유적에는 머리뼈는 없고 긴 뼈를 비롯해 시신 일부만 매장된 무덤이 많았는데, 이 점이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혹시 승리한 자들이 돌아가 자랑하려고 머리만 떼어 간 것은 아닐까? ― 128, 133쪽, <사냥-채집 사회에서의 폭력> 중에서

패배한 적의 살을 먹는 행위는 단순히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적을 영원히 없애 버리는 행위이며, 적의 힘, 에너지, 원기를 빼앗기 위한 행위다. 즉 식인은 적의 모든 흔적을 없애고 싶은 과도한 승부욕과 소유욕에서 비롯된 행위이고, 심지어 자신의 몸속에 라이벌의 일부를 간직하려는 의도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족외 식인(族外食人)’은 같은 사회적 집단 안에서 의례적 목적에서 거행되는 ‘족내 식인(族內食人)’과 대조를 이룬다. 족내 식인은 장례를 치르면서 죽은 일가친척이나 가까운 지인의 영혼이나 재능을 붙잡으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 즉 죽은 이의 몸을 먹는 행위는 순전히 죽은 사람과 맺었던 인연이라는 감정적 요인 때문에 발생한 것이지, 다른 요인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 175~176쪽, <농경 사회는 평화로웠나, 요란스러웠나> 중에서

 

화살촉은 공격과 방어의 수단임과 동시에 자신을 사회적으로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무덤까지 함께 가져가야 할 물품이 됨으로써, 화살촉 제작은 매우 특별한 활동이 되었다. 이제 화살촉은 단순히 늘 지니고 다녀야 할 생필품을 넘어, 사냥과 습격에서 보호와 질서 그리고 억제력을 뜻하는 상징적 기능도 갖추게 됨으로써, 전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레반트의 바위 그림은 특정 사건을 단순하게 묘사한 게 아니라 당시 사회가 어떻게 작동되었는가를 보여 주는 거울이다. ― 204~205쪽, <농경 사회는 평화로웠나, 요란스러웠나> 중에서

 

고고학적 방법을 통해 신석기시대에 처형 또는 희생되었던 피해자들의 성별과 나이를 조사하면서, 여성과 아이의 비중이 유난히 높다는 사실을 바로 깨닫게 된다. (…) 다뉴브강 저지대에 자리 잡은 흐르쇼바(Harșova) 유적에서는 손과 발이 묶인 채 광주리에 담겨 생매장당한 두 아이의 뼈가 발견되었다. 이 아이들도 희생 의례 때문에 죽임을 당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폭력이 어찌나 심했던지 아이가 광주리에 똥까지 쌌다. 인류학적 분석에 따르면 희생당한 아이들은 장애인 또는 기형아였다. 이 아이들은 신체적 장애로 인해 선택되어 살해된 듯하다. 마치 신체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개체들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우생학의 논리를 보는 것 같다. ― 205~206쪽, <농경 사회는 평화로웠나, 요란스러웠나> 중에서

 

신석기시대 말기에 머리 원형 절제술이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점은 사실이며 이 시기 화살을 맞아 부상당한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프랑스 영역 안에서 발견된 화살에 부상을 입은 뼈의 절반이 프랑스 남부에서 발견되고 이 지방에 머리 원형 절제술의 증거도 많다는 사실은 머리 수술 증가와 전쟁 간에 연관성을 보여 주는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 ― 235~236쪽, <표적이 되어 버린 사람들> 중에서

 

귀금속으로 제작된 장신구들은 엘리트 계층에 속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가치재로 여겨졌지만, 도끼나 단검처럼 청동을 다루는 기술은 남성을 위한 도구 생산에 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신소재도 남성 영역에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금속제 도구는 남녀의 성별을 구별 짓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 한마디로 신기술은 사회적 구별 짓기의 원천이었다. ― 259쪽, <전사 이데올로기의 형성> 중에서

 

다뉴브강 저지대부터 이베리아반도까지 퍼져 있는 판석 모양의 기둥이나 사람 모양의 선돌은 모두 남성 우위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사람 모양의 이 석조 기념비는 해부학적 특징 또는 성을 지시하는 코드화된 기호를 사용함으로써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된다(그림 41). (…) 사람 모양 선돌을 만들었던 사람은 여성의 지위를 먹거리를 제공하는 자연의 영역 속에 한정했던 반면, 남성은 무기나 금속 같은 기술적 혁신을 담당하고 물리적이고 윤리적으로 지배하는 존재로 인식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사람 모양 선돌은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 매체인 동시에 성에 따른 사회적 행위를 명확하게 구별 짓는 표식이었다. ― 260~261쪽, <전사 이데올로기의 형성> 중에서

 

앞에서 ‘유럽의 인도・유럽화 과정’에 관해 언급했지만, 인도-유럽조어(protoindo-europeen)라는 언어학적 논쟁에 휘말려 들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고고학 영역에 머무르면서 흑해에서 대서양까지 무기를 든 남자 형상이 기원전 3000년 기부터 세워지는 현상이 초원 지대의 민족 대이동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각 지역의 문화에서 기술․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비슷해져 가는 수렴 현상만으로도 신석기시대 후기에 사람 모양 선돌이 유럽 곳곳에서 출현하는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83쪽, <전사 이데올로기의 형성> 중에서

 

구석기시대 사냥꾼에서 시작된 이와 같은 남성 이미지는 기원전 3000년 기에 이르러서 원시 전사의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전쟁이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생겨났다. 그것은 바로 전사 중에서도 최고의 전사, 즉 영웅이란 개념이었다. ― 305쪽, <전사 이데올로기의 형성> 중에서

 

선사시대 또는 원사시대의 세계가 끝나갈 무렵 사회 질서에 불응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새로운 사회적 조건 또는 강제가 출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어쩌면 처형은 희생 의례와 징벌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공동체를 ‘구한다’는 구실 아래 사회에서 추방된 사람 중에 적당한 희생자를 골랐을 것이다. 금기를 어겼다는 이유, 제정신이 아니라는 이유, 죄를 저질렀다는 이유, 포로라는 이유 등, 참, 죽여야 할 이유도 가지가지다. ― 364~365쪽, <영웅의 출현> 중에서

 

종교적 근본주의처럼 끔찍한 참상을 겪었으면서도 과연 우리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착해져 왔고, 또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먼 옛날에 사람들이 평화롭고 순진했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로렌스 H. 킬리가 말했듯이 선사시대 사람들을 이상화하는 것은 그들을 비인간화하는 것이다. 고고학적 사실과 역사적 사실을 돌이켜 보면 호모 사피엔스는 기나긴 여정 동안 최선과 최악 사이를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 377쪽, <맺음말> 중에서

 

 

차례

들어가기 전에

감사의 글

옮긴이 서문 고고학이 들려주는 선사시대 전쟁과 폭력의 흑역사

일러두기

 

 

시작하는 말

역사시대 초기의 무력충돌 | 문학과 종교: 언제나 전쟁 | 역사학을 뒤따라가는 고고학 | 선사시대 전쟁: 랑그독에서 몰타의 신전까지 | 코르시카: 정복되고 또 정복된 땅 | 인류 출현 이전의 폭력과 공격성 | 전쟁: 본성이냐, 문화냐? | 교환이냐, 전쟁이냐? | 구석기시대에도 ‘전쟁’은 있었을까? | 의례적 전쟁과 ‘빅맨’ 간 전쟁 | 맹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린 양도 아닌 선사시대 사람들 | 희생의 문제 |선사시대의 폭력을 ‘읽어 낼’ 수 있는가?

 

사냥-채집 사회에서의 폭력

네안데르탈 사람들과 식인 | 선사시대의 식인 문제 | 샤랑트 지방의 실종자들 | 카인의 조상들 | 구석기시대 예술에서 드러난 폭력 | 시칠리아에서: 1만 년 전에도 고문이? | 창던지기에서 활쏘기로 | 최초의 활 | 수단의 대학살 | 땅을 둘러싼 탐욕 | 중석기시대의 무력충돌 | 갈기갈기 찢기고 학살당한 적들

 

농경 사회는 평화로웠나, 요란스러웠나

유럽의 신석기화: 평화적 확산, 아니면 폭력적 정복? | 탈하임 대학살 | 신석기 사회의 혼란상 | 또 식인?: 퐁브레구아의 사례 | 사람 고기를 먹는 농부들? | 신석기시대 예술은 폭력의 매체였나? | 스페인 레반트 산악 지대의 전투 장면 바위 그림 | 부상자들과 처형 | 불화의 원인 | 사냥꾼과 농사꾼의 충돌 | 강자와 약자

 

표적이 되어 버린 사람들

지역적 차이가 큰 폭력의 증거들 | 점차 격렬해지는 갈등? | 프랑스 남부의 호전적인 사람들? | 희생자 추정의 어려움 | 효과적인 살상 무기 | 부상과 머리 원형 절제 수술 | 집단무덤은 가끔 대학살의 시체 구덩이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 알라바 지역의 집단무덤 유적 사례 | 부상 흔적의 위치와 궤도상의 특징

 

전사 이데올로기의 형성

남자의 무게 | 한 남자를 위한 죽음 | 사냥, 전투 그리고 과시를 위해 가득 채워진 화살통 | 화살과 보석: 남성 대 여성 | 사람 모양 선돌: 무장한 최초의 석조 기념비 | 몽베고에서 이탈리아령 알프스 지역까지 | 남성 대 여성: 상징의 역설 | 열린 마을과 닫힌 요새 | 유럽의 원시 전사

 

영웅의 출현

무기의 무게 | 야만의 유럽, 전사의 탄생 | 무기의 왕, 장검 | 성곽, 요새 그리고 성채 | 오리엔트에서의 전차 출현 | 초기의 기병대 | 영웅의 발자취를 따라서 | 석조 기념비와 전사의 영원성 | 다수의 희생양 | 토탄층에서 출토된 미라들 360

 

맺음말

 

원주

연표 1. 유럽 신석기시대 편년

연표 2. 유럽 청동기시대 편년

부록 1. 화살에 맞은 부상 흔적이 관찰되는 프랑스 신석기시대 인골 목록

부록 2. 폭력 흔적이 뚜렷하게 보이는 뼈가 출토된 신석기시대 유적들의 연표

서평 『과학사 비평』에 실린 『전쟁 고고학』 서평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 : 장 길렌

프랑스의 대표적 고고학자이다. 툴루즈 소재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고고학연구소 연구원을 시작으로,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의 선임연구원,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 교수를 역임하였다. 197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남부를 비롯한 지중해 일대 수많은 선사시대 유적을 발굴·조사하였으며, 키프로스섬의 한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양이를 발견하기도 했다. 고고학의 대중화에도 힘써 La France d’avant la France(프랑스 이전의 프랑스), La mer partagée(공유된 바다), Les Racines de la Méditerranée et de l’Europe(지중해와 유럽의 뿌리), Les Chemins de la Protohistoire(원사시대의 길) 등 다수의 고고학 관련서를 집필하였다. 국내에 번역된 책(공저)으로는 『인간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La Plus Belle Histoire de L’Homme)』가 있다.


저 : 장 자미트

툴루즈III대학교에서 의학박사(1974년)와 고고학박사(1989년)를 취득하고 현재 의사로 활동하면서 고인류학적 연구도 함께하고 있다. 신석기시대 인골에서 나타나는 폭력 흔적을 통해 선사시대 폭력과 전쟁 활동을 규명하는 학제 간 연대 프로젝트에 여러 차례 참여하였다. 최근에는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인류학센터의 객원연구원으로 선사시대 외과 수술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Populations néolithiques et environnements(신석기시대의 인구와 환경)가 있다.


역 : 박성진

단국대학교 사학과에서 공부하고 1998년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고고미술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듬해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 고인류학연구소(IPH)에서 박사예비과정(DEA)을 마친 다음 2008년에 파리-낭테르대학교에서 선사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선사시대 석기 제작 기술을 전공했으며, 생물 고고학과 고고학사에도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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