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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재 · 학술

본문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

저자
오희문  저, 신병주  정보글
  • 가격

    15,800 원

  • 출간일

    2020년 11월 06일

  • 쪽수

    464

  • 판형

    148*215

  • ISBN

    9791189946845

  • 구매처 링크

요약

이 책은 임진왜란 3대 기록물 중 하나인 쇄미록(瑣尾錄)을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보잘것없이 떠도는 자의 기록’이란 뜻을 지닌 쇄미록은 16세기 조선 양반 오희문이 임진왜란 시기를 전후해 9년 3개월 동안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로 피란을 다니며 쓴 일기책으로, 조선 중기의 일상사, 생활사, 사회경제사 연구에서는 빠질 수 없는 오래된 고전이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평범한 양반이 전란의 시기를 어떻게 살아남아 가문을 일으켰는지를 하루도 빠짐없이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는 쇄미록에는 오희문이란 점잖고 소심한 양반과 그의 수족 같은 사내종 막정과 송노, 여동생과 매부들, 아들딸과 사위 등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져 역사 소설을 능가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전쟁의 시간을 버텨 내며 삶을 이어온 파란만장한 오희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삶의 일상성, 지속성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된다.

 

추천사  

임진왜란에 관한 조선시대의 3대 기록물로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류성룡의 징비록, 그리고 오희문의 쇄미록을 뽑는다. 난중일기가 전투를 지휘하며 난세를 헤쳐 나간 영웅의 일기라면 징비록은 관료의 시선으로 국가와 전쟁을 반성적으로 살펴본 국가 차원의 기록물이라 하겠다. 이와 달리 쇄미록은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평범한 양반이 전란의 시기를 어떻게 살아남아 가문을 일으켰는지를 세밀하게 기록한 일기글로, 개인 차원의 기록물이라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세 권의 책을 함께 읽는다면 400년 전 임진왜란 시기, 더 나아가 조선시대를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신병주(건국대학교 교수)

 

쇄미록은 전쟁일기의 백미다. 어디를 펼쳐도 죽음에 코가 닿은 군상이 들끓는다. 비겁한 자도 사람이고 용감한 자도 사람이다. 또 하루를 살아 냈다고 안도하는 자 역시 사람이다. 오희문은 특별한 날도 평범한 날도 문장으로 옮기는 데 정성을 다한다.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낱낱이 담는다. 그 눈이 깊고 그 손이 따듯하다. ― 김탁환(소설가)

 

피란 중의 생활은 ‘비일상’이지만 오래 이어지면 ‘일상’이 된다. 9년 3개월 동안의 전란일기에는 평소라면 기록하지 않았을 먹을거리 이야기와 자잘한 일화들이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작고 보잘것없는 소소한 기록이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 역사가 되는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 주영하(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오희문에게 임진왜란은 난리일 뿐이었다. 사랑하는 딸 단아를 잃고 슬퍼하는 장면에서는 나 역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삶의 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 서윤희(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제사를 걱정하고 노비 부리는 일에 늘 노심초사하는 조선 양반 오희문의 고단한 피란살이가 그 어떤 역사책보다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 이성호(서울 배명중학교 역사교사)

출판사 서평

이제 임진왜란 3대 기록물 『쇄미록』을 읽어야 할 때

― 『쇄미록』, 임진왜란 당시 후방의 삶을 기록한 독특한 개인 기록물

이 책은 임진왜란 3대 기록물 중 하나인 쇄미록(瑣尾錄)을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보잘것없이 떠도는 자의 기록’이란 뜻을 지닌 쇄미록은 16세기 조선 양반 오희문이 임진왜란 시기를 전후해 9년 3개월 동안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로 피란을 다니며 쓴 일기 기록으로, 이순신의 난중일기, 류성룡의 징비록과 함께 임진왜란 3대 기록물로 꼽힌다.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전투를 지휘하며 난세를 헤쳐 나간 영웅의 일기라면 류성룡의 징비록은 관료의 시선으로 국가와 전쟁을 반성적으로 살펴본 국가 차원의 기록물이다. 이와 달리 쇄미록은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평범한 양반이 전란의 시기를 겪으면서 쓴 일기글로, 개인 차원의 기록물이라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양반 오희문의 난중일기’라 부를 수 있는 이 책은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방의 생생함은 없지만 당시 후방의 삶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생존이 가장 중요했던 전란 시기의 기록이어서 평소라면 기록하지 않았을 먹을거리를 비롯한 일상의 소소한 기록이 넘쳐난다. 16세기 조선의 일상사, 생활사, 풍속사, 사회경제사 연구에 꼭 필요한 사료의 보물창고라 할 만한 이 기록의 중요성 때문에 쇄미록은 오래전부터 역사학계, 특히 조선시대 연구자들에게 주목받아 왔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1년 보물 제1096호로 지정되었다.

쇄미록은 오희문이란 점잖고 소심한 양반과 그의 수족 같은 사내종 막정과 송노, 여동생과 매부들, 아들딸과 사위 등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펼쳐져 역사 소설을 능가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기나긴 피란 생활을 버텨 내며 삶을 이어온 파란만장한 오희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삶의 일상성, 지속성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된다. 쇄미록은 일기 형식의 생활글을 읽는 소소한 즐거움을 넘어 400년 전 임진왜란 시기, 더 나아가 조선시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오희문의 난중일기’를 한 권으로 만나다

― 9년 3개월, 51만 9,973자로 이루어진 『쇄미록』을 한 권의 책으로 엮다

쇄미록은 9년 3개월의 일기 기록인 만큼 그 분량 또한 방대하다. 현존하는 쇄미록 필사본은 총 7책, 1,670쪽, 51만 9,973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2019년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발간한 한글 번역서는 6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리 중요하고 흥미로운 역사 기록물이라 하더라도 분량 때문에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웠는데, 이번에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을 통해 누구라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은 원문의 흐름을 따르되 반복하는 이야기를 줄이고 중요한 내용 중심으로 딱 한 권 분량으로 만들어져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가능한 원문의 맛을 살려 있는 그대로의 오희문의 모습과 그의 시대를 읽을 수 있게 했다. 또한 각 장을 연도별로 구성하고 이야기 흐름에 맞추어 소제목을 임의로 추가하여 독자로 하여금 한 편의 역사 소설을 읽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특히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은 각 장마다 역사학자 신병주 교수의 ‘함께 읽는 쇄미록’ 코너를 마련해 일기에서 눈여겨볼 만한 내용에 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을 덧붙였다. 임진왜란 시기의 참혹한 실상과 전염병인 학질에 대해, 그리고 오희문의 일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노비 이야기와 양반에게 중요했던 봉제사와 접빈객, 혼인과 과거 급제, 전란 기간의 생계수단과 먹을거리, 술과 놀이문화, 꿈과 점복, 호환 등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좋을 주제를 선정해 해설을 덧붙였다. 마지막 장에는 쇄미록이 어떻게 살아남아 지금의 우리가 접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관한 ‘책의 역사’를 들려준다.

 

총 3,368일 동안의 일기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나?

― 16세기 조선의 일상사, 생활사, 사회경제사 연구의 보물창고

오희문은 9년 3개월, 총 3,368일 동안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종이를 구하기 어려운 전쟁 통에 쓰인 것이기에 더욱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오희문은 평소라면 기록하지 않았을 소소한 이야기를 모두 기록했다. 여느 역사 소설보다 재미있고, 여느 역사 교과서보다 생생한 서술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데, 여기에는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대목도 있고, 반대로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있는 우리의 상식을 깨뜨리는 내용도 있다.

오희문은 일본군이 지나간 곳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전쟁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일기 곳곳에 임진왜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조정에서 벌어지는 일과 명나라 군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는 조선의 조정에서 발행한 조보(朝報)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원칙적으로는 전현직 고급 관리들만 볼 수 있었지만, 오희문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일부 사대부들도 비공식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오희문의 기록을 통해 신립, 원균, 이순신뿐 아니라 의병 곽재우, 고경명, 김천일 등 임진왜란의 영웅들 이야기를 접할 수 있으며, 이들에 대한 당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전란의 시기였으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일이었는데, 오희문의 일기에는 그날그날 무엇을 먹었는지, 누가 어떤 먹을거리를 선물로 보내왔는지를 세밀하게 기록한 음식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를 이처럼 솔직하게 기록한 일기는 지금까지 없었다. 특히 충청도 임천과 강원도 평강에서 오래 머물며 농사를 지을 때는 마치 촌부의 농사일기처럼 어떤 작물을 키우고 수확했는지를 상세히 적어 놓았다. 이들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고추, 호박,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이는 모두 아메리카대륙이 원산지인 작물들로 조선 후기에 들여온 것이어서 16세기 오희문의 일기에서는 이 식재료에 대한 기록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무엇을 주로 먹었을까?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에서 그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쇄미록의 가치는 먹을거리에 대한 기록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조선은 양반의 나라이자 노비의 나라였다. 양반보다 많은 인구 비율을 차지한 노비는 고조선시대부터 존재했는데, 조선시대의 노비는 가사 노동에서 편지 전달까지 양반의 수족 같은 역할을 하였다. 쇄미록에는 덕수, 인수, 끗손, 강춘, 광이(광노), 춘이, 세만, 금손, 눌은개 덕룡, 덕개, 동을비, 막정, 분개, 송이(송노), 명노, 안손, 춘옥, 춘금이, 향비, 서대, 향춘, 옥금, 흔비, 어둔, 삼작질개 등 다수의 노(사내종)와 비(계집종) 이름이 나온다. 일기에는 말과 노비가 없어 길을 떠나지 못하거나 문상을 가지 못하는 오희문, 노비를 끊임없이 게으름을 피우고 거짓말을 일삼는 자들로 묘사하며 괘씸해하는 오희문, 충직한 사내종이었던 막정이 죽자 불쌍하여 제사를 지내 주는 인간적인 오희문이 등장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인간 오희문에 대한 이해를 넘어 조선시대 양반과 노비 제도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 외에도 쇄미록에는 양반에게 가장 중요한 제사를 지내는 일, 손님을 맞이하는 일 등 일상이 기록되어 있다. 처가의 제사까지 챙기는 모습과 외가 사촌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통해 16세기에는 처가살이가 당연하게 이루어졌던 당시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한다. 쇄미록에는 오희문의 가족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처럼 펼쳐진다. 약 10년의 세월 동안 큰딸과 막내아들, 둘째딸의 혼인이 있었으며, 막내딸 단아의 죽음과 손주들의 탄생, 그리고 큰아들 윤겸의 과거 급제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학질로 목숨을 잃은 막내딸의 죽음 앞에서는 자식 잃은 아비의 절절한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함께 애통한 마음을 나누게 된다.

일기 형식의 생활글이어서 어렵지 않고, 또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 읽다 보면 특별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어느 순간 16세기 조선의 일상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오희문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계절을 지내고 해를 넘기다 보면, 전쟁의 고통과 삶의 고단함을 잊고 10년 세월을 함께 훌쩍 지나게 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책 속에서

4월 16일, 왜선 수백 척이 부산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소문이 돌더니, 저녁나절에는 부산과 동래가 함락되었다는 말이 들려와 경악을 금치 못했다. … 옛날 역사책에서 난리를 만난 사람들이 이리저리 각자 피란하여 사느라 부모, 처자, 형제, 친척도 서로 보존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마다 책을 덮고 가슴 아파했는데, 오늘 내가 그 꼴을 당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 1장 <임진왜란이 일어나다> 중에서

 

또 들으니, 왜적이 영남 지역 반가의 여인 중 얼굴이 고운 사람을 뽑아 다섯 척의 배에 가득 실어 제 나라로 보내 빗질하고 화장을 시켰는데, 순종하지 않으면 대번에 노하기 때문에 모두들 죽음이 두려워 억지로 따른다고 한다. 이들은 사실 여기서 먼저 겁탈한 뒤 보낸 여자들이다. 그 뒤에도 그들의 뜻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여러 적이 돌아가면서 강간한다고 하니, 더욱 비통한 일이다. 이는 이 고을 복병장 김성업이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사람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라고 하니, 분명 헛말이 아닐 것이다. ― 1장 <임진왜란이 일어나다> 중에서

 

◎ ─ 5월 1일

(막내딸) 단아가 초학草瘧(학질의 초기 단계)에 걸려서 처음에는 오후에 앓더니 그저께부터 밤 이경二更

(21~23시)에 몸을 떨었다. 조금 있다가는 속머리를 몹시 아파하다가 이튿날 아침까지도 낫지 않고 오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가라앉았다. 오늘 밤에 또 크게 앓으니 곧 4직直(추워서 떨다가 높은 열이 나고 땀을 흘리는 증상이 나타나는 주기)이다.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니 매우 걱정스럽다. ― 2장 <흉적은 아직도 섬멸하지 못하고> 중에서

 

◎ ─ 3월 29일

설을 쇤 뒤로 한집의 위아래 사람들이 계속 죽만 먹고 밥을 지어 먹은 적이 없는데, 근래에는 더욱 심하다. 게다가 장과 소금물도 없이 산나물을 삶아 쌀과 섞어서 죽을 쑤어 모두 반 그릇씩만 먹었다. 아이들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니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나만 7홉의 밥을 먹는데, 밥상을 대할 때마다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두루 나누어 줄 수 없는 형편이라 막내딸에게만 조금 나눠 주었다. ― 3장 <그저 하늘의 뜻을 따를 뿐> 중에서

 

◎ ─ 6월 2일

지금 어머니께서 학질을 앓으시어 학질을 빨리 없애는 세 가지 방법을 써 보았다. 하나는 복숭아 열매를 주문을 외며 먹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래된 신발 밑창을 불에 태워 가루로 만들어서 물에 타서 먹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제비 똥을 가루로 만들어 술에 담가 코 밑에 대고 냄새를 맡게 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옛날부터 썼던 방법으로, 효력이 가장 잘 나타나고 하기에도 어렵지 않다. ― 4장 <이루 말할 수 없는 농사의 기쁨> 중에서

 

◎ ─ 12월 18일

… 막정은 본래 평양에서 살았는데, 14세에 붙잡아 와서 심부름을 시킨 지 이제 37년이 되었다. 여러 곳의 노비들에게 해마다 목화 번동(다른 물건끼리 값을 쳐서 셈을 따지는 일)을 하고 자식들의 혼인 때 남에게 요청하거나 빌리는 일 등을 도맡아 했다. 그런데 조금도 지체하거나 기만하여 제때 미치지 못하는 걱정이 없었으니, 나와 처자식이 난리 속에 피란하면서도 의지하여 일을 맡겼다. … 마침 그의 처 분개가 도망간 뒤로는 상전을 원망하며 더욱 집안일을 살피지 않고 명을 따르지 않았다. … 열흘 전부터 병세가 몹시 위중해져서 마침내 죽기에 이르렀으니 매우 불쌍하다. 근래 막정이 한 짓을 보면 죽어도 아까울 것은 없지만, 이전에 애쓴 일이 매우 많고 타향에서 객사했으니 애통함을 금치 못하겠다. 관을 준비해서 묻어 주고 술과 과일을 차려 제사 지내 주었다. ― 4장 <이루 말할 수 없는 농사의 기쁨> 중에서

◎ ─ 2월 6일

새벽에 집사람이 꿈속에서 죽은 딸을 보았는데, 완연히 평소의 모습과 같았다고 한다. 집사람과 서로 마주보며 애통해했다. 오늘이 발인이라 분명 떠도는 넋이 먼저 와서 꿈에 보였나 보다. 슬퍼서 통곡했다. 둘째 딸도 두 번이나 꿈에서 보았다고 한다. 평소에 슬하를 떠나지 않았던 아이를 이제 산골짜기에 묻으니, 외로운 넋이 분명 컴컴한 무덤 속에서 슬피 울고 있겠지. 더욱 지극히 애통하다. ― 6장 <지극한 기쁨 뒤에 비통한 마음이> 중에서

 

◎ ─ 7월 11일

지난밤 동쪽 마을에 사는 채억복 집의 마구간에 큰 호랑이가 들어와서 휘젓고 망아지를 물어 갔는데, 억복이 몽둥이를 들고 횃불을 밝혀 쫓아가서 도로 빼앗아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호랑이가 다시 와서 햇닭을 물어 갔다고 한다. 매우 두렵다. 우리 집의 계집종들은 호랑이를 두려워하지 않아 밤마다 문밖에 횃불을 밝히고 둘러앉아서 길쌈을 한다. 말려도 말을 듣지 않으니,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다. 밉살스럽다. ― 7장 <흉악한 왜적은 여전히 변경을 차지하고> 중에서

◎ ─ 12월 16일

조보를 보니, 흉악한 왜적이 모두 바다를 건너갔고 명나라 수군과 우리나라 수군이 뒤쫓아 공격하여 다수의 수급을 베었다고 한다. 그런데 통제사 이순신이 탄환에 맞아 죽었고 전사한 수령 및 첨사, 만호가

10여 명에 이르니, 죽은 군졸도 분명 많을 것이다. 탄식할 일이다. … 흉악한 왜적이 와서 소굴을 만든 지 7년 만에 이제야 돌아갔는데, 장수 1명도 베지 못했고 우리네 죽은 장수와 군사는 전후로 몇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분하고 애통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 7장 <흉악한 왜적은 여전히 변경을 차지하고> 중에서

 

◎ ─ 8월 6일

마을 사람들이 술과 안주를 모아서 냇가에 모여 무당을 불러다가 북을 치면서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호환을 물리치기 위해서란다. 노래하고 춤추면서 놀고 종일 유희를 즐겼다. 우리 집의 계집종들도 가서 참여했다. 술 1동이와 떡 1바구니를 갖다 바치기에, 온 집안 식구가 함께 먹었다. 이는 해마다 초가을이면 한 번씩 통상적으로 하는 일인데, 혹 하는 말이 밭 갈고 김매는 일이 끝났으므로 호미를 씻는 것이라고 한다. ― 9장 <쇠한 가문을 창성하게 떨치기를> 중에서

 

차례

추천의 글_이제는 임진왜란 3대 기록물 『쇄미록』을 읽어야 할 때

저 : 오희문

조선 중기의 지식인으로, 토목 일을 담당했던 선공감(繕工監)에서 종9품의 감역(監役)을 지냈다. 외가가 있는 황간에서 출생하여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연안 이씨 이정수의 딸과 혼인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몇 년 전까지 한양 관북에 있는 처가에서 거주하였다. 4남 3녀를 두었는데, 맏아들 오윤겸이 영의정을 지내는 등 영달하면서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오윤겸의 호를 딴 해주 오씨 추탄공파(楸灘公派)가 성립되었다. 둘째 오윤해의 아들인 오달제는 병자호란 때 청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다 끌려 간 삼학사 중 한 명이다. 1591년 11월 27일 지방에 살고 있는 외거노비들에게 공물을 받을 목적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이듬해(1592) 4월 전라도 장수에서 임진왜란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후 1601년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9년 3개월 동안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지역을 옮겨 다니며 일기를 썼다. 그가 직접 이름 붙인 쇄미록(瑣尾錄)시경의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보잘것없이 떠도는 자의 기록’이란 뜻을 지닌다.

정보글 : 신병주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 대중화에 관심이 많아 KBS의 역사추리, 역사스페셜, TV조선왕조실록과 EBS의 역사특강 프로그램의 자문을 맡았으며, KBS 역사저널 그날과 JTBC 차이나는 클라스 등 역사 교양 프로그램에 다수 출연했다. 주요 저서로 남명학파와 화담학파 연구,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고전 소설 속 역사기행』, 『조선평전, 왕비로 산다는 것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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