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엄청나게 복잡하고 믿을 수 없이 광대한,
마법 같은 세계로의 초대!
작가 아서 클라크는 자신이 명명한 과학 3법칙에서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고 말했다.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이 평범한 우리들의 이해력을 뛰어넘어 마치 마법처럼 신비롭게 느껴지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 아서 클라크의 말을 떠올리게 할 만큼 마법 같은 세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스마트폰에서 우주선까지 화제의 중심에 있는 과학과 달리 이 세계가 있다는 사실조차 잘 느끼지 못한 채 살고 있다.
현대 문명을 지탱하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 바로 교통과 물류의 세계이다. ‘교통과 물류’라는 주제는 인문학적 지식을 논하는 대화에서도, 세계 경제와 미래 트렌드 현안을 다루는 회담에서도 얘기하기 애매한 주제로 여겨진다. 모두들 역사나 문화적 지식과 식견, 새로운 아이디어, 상품에 열광할 뿐, 사람과 상품을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것은 지루하고 단순한 귀찮은 ‘과정’으로 무시한다.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매일 수천만 명이 이동하고 수억 개의 물품이 항공기와 선박과 자동차를 거쳐 운송된다. 오늘날 단 하루치의 세계 상품의 이동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아폴로 달 착륙 프로젝트를 합친 것보다 더 규모가 크다. 더 직관적으로 비유하자면, 피라미드, 후버 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하루 만에 짓는 것과 같다. 이런 마법 같은 일이 아주 조용히 누구의 감탄 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매일매일, 지극히 당연한 일상처럼.
전작 《102톤의 물음》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쓰레기를 다룸으로써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흄스는 이번에도 우리가 몰랐던 광대한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너무나 거대해서 한 단어로 명명하기조차 쉽지 않은 이 세계를 저자는 도어투도어 세계라고 이름 짓는다. 이 이름은 문에서 문으로, 출발에서 도착까지, 실상 우리 생활의 시작에서 끝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도어투도어 세계임을 상기시킨다. 사람을 옮겨주고, 상품을 배달하는 이동에 관한 모든 역사와 경제, 인물과 삶의 이야기가 이 안에서 펼쳐진다.
‘카마겟돈’과 ‘카마헤븐’의 사이
“속도는 유혹적입니다. 우리는 고효율을 중시해 도로를 설계합니다. 그래놓고 설계 방식을 이용한 운전자를 탓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운전자들이 그러리라는 사실을 압니다…. 이는 거리와 도로를 대하는 우리의 접근법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157쪽)
도어투도어 세계의 또 다른 한 축에는 인류를 이동시키는 교통수단이 있다. 저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카마겟돈’과 ‘카마헤븐’ 현상을 통해 현재의 교통 현실을 설명하고 나아가 자동차 중심의 교통문화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로스앤젤레스의 405번 주간 도로는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곳이다. 심지어 일론 머스크는 이 도로의 교통체증에 지친 나머지 하이퍼루프 열차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마법 같은 아이디어를 탄생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405번 도로는 결국 확장 공사를 위해 임시 폐쇄를 하게 된다. 임시 폐쇄를 앞두고 언론은 ‘카마겟돈’(Carmageddon: car+armageddon)이라고 부를 정도로 호들갑을 떨었고, 시정부는 준準비상사태를 대비할 정도로 모두들 곧 일어날 종말인 교통지옥을 예상했다. 그러나 다른 우회도로가 없었음에도 임시폐쇄 후 오히려 로스앤젤레스의 교통 상황은 더 나아졌다. 매연은 일반적인 수준보다 10분의 1이나 줄고, 도시 전체의 오염물질도 25%나 줄었다. 이 역설적인 상황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차선을 폐쇄하니 정체가 심해지는 게 아니라 완화된 ‘카마헤븐’ 사건이야말로 공급 중심의 교통정책에 대한 가장 극적인 경고라고 설명한다. 무한정 도로를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자동차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증명된 것이다. 이처럼 교통체증으로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 낭비, 환경오염 등 여러 부작용은 다양한 이동수단에 초점을 맞춰 줄여나가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비판하고 있는 대상은 ‘자동차 중심의 문화’이다. 저자는 극히 드문 확률로 일어나는 항공기 사고에 호들갑을 떨면서도 매일 수많은 사람이 죽는 자동차 사고에는 무심한 우리의 인식을 질타한다. 저자는 너무나 평범했던 13일의 금요일 단 하루에 일어난 어이없는 부주의, 졸음,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지 열거하면서 자동차 사고에 대한 우리의 근본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자동차 사고로 미국에서 죽은 사람이 베트남전쟁, 한국전쟁,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1812년 전쟁, 독립전쟁 동안 죽은 사람보다 많다.
무인자동차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현재도 전방충돌방지시스템(FCA)과 같은 기술이 이미 가능하지만 비용을 이유로 부착 의무가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도로에서 빼앗기는 많은 생명의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저자는 새로운 기술도 중요하지만 이 ‘조용한 재난’에 대한 우리의 각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며, 이것이야말로 안전한 도어투도어 세계를 위한 첫 번째 조건임을 지적한다.
저자가 안내하는 도어투도어 세계로의 여행은 아이폰 알람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모두 안전띠를 꽉 매기 바란다!
차례
서문 480만 킬로미터의 통근
1장: 자명종
2장: 캔 안의 유령
3장: 아침 커피
4장: 일주일에 비행기 4대
5장: 13일의 금요일
6장: 피자와 항구 그리고 밸런타인
7장: 물류 세계의 여인들
8장: 천사의 문
9장: 항구의 발레
10장: 마지막 여정
11장: 방향 전환
12장: 낙원의 로봇들
13장: 다음 문
감사의 글
부록
주
저 : 에드워드 흄스
Edward Humes
미국의 저널리스트로 1989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뉴욕 타임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로스앤젤레스 매거진》, 《시에라》 등에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102톤의 물음』, ‘PEN 상’ 수상작 『No Matter How Loud I Shout』, 『Mississippi Mud』, 『Forces of Nature』, 『Monkey Girl』 등이 있다.
역 : 김태훈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현재 번역 에이전시 하니브릿지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센스 메이킹』,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인포메이션』,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야성적 충동』, 『욕망의 경제학』, 『딥 워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