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풍경과 장소가 연출하는 입체적 역사의 현장
지리의 역사학, 공간의 정치학, 풍경의 건축학
『고대도시 경주의 탄생』에서 천년고도 경주의 공간적 분석을 통해 신라가 강력한 계급사회와 지방차별 정책으로 정복국가의 성격을 띠었다는 새로운 해석을 선보였던 저자는 『임금의 도시』로 공간 속 역사, 역사 속 지리라는 주제를 더 확장시킨다. 저자는 문화유산과 전통건축물의 배경으로만 머물렀던 풍경과 역사의 공간적 무대로만 여겨진 장소성을 주인공으로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던져준다.
저자는 광화문 풍경을 보여주면서 과연 우리가 낯익은 우리 풍경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 물은 후 서울의 여러 궁궐을 답사하면서 풍경이 감추고 있는 권력의 맥락을 찾아낸다. 이를 통해 주관적 감상의 대상이었던 풍경을 역사 읽기와 문화유산 연구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처럼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실에 대해 저자는 질문을 이어가면서 우리가 사실은 풍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꼬집어낸다.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풍경 이야기는 한양 천도를 둘러싼 임금과 신하의 신경전으로 이어졌다가 다시 한양의 특이한 도시구조의 미스터리로 연결되고, 한국 전통건축물의 규모는 왜 작은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간다. 서울에서 개성과 경주로, 조선에서 고려와 신라로 거슬러올라가면서 저자는 평면적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 다채롭게 펼쳐지는 공간과 풍경 그리고 건축에 얽힌 다양한 질문들을 던진다.
태조와 공신은 왜 천도를 두고 대립하였는가?
광화문과 경복궁 풍경은 소박하고 아늑한 풍경일까?
한양의 설계자들은 왜 숭례문과 광화문을 연결해주는 대로를 만들지 않았을까?
왜 우리 전통건축물은 작을까?
어떻게 시야를 통제해서 권위를 연출할 수 있을까?
삼국시대의 그 많던 거대한 목탑들은 어디로 갔을까?
목탑이 석탑으로 변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풍수는 미신에 불과한 비합리적 믿음이었을까?
풍수는 어떻게 무덤에서 도시로 확장되었을까?
선조와 인조는 왜 방어 한번 못하고 서울을 포기했을까?
조선은 어떻게 산성의 나라가 되었을까?
보신각 종소리는 어떤 의미였을까?
서울에는 왜 전통정원이 적을까?
이처럼 장소와 풍경에 얽힌 다양한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역사 이해와 문화유산 감상이 가능해진다. 또 지금껏 간과되어 왔던 장소와 풍경을 통해 역사를 접근함으로써 인물과 사건 중심의 역사로는 놓칠 수밖에 없었던 공간적 행간과 사회적 맥락을 불어넣는다.
『임금의 도시』가 보여주는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역사의 장기적 흐름을 조망하게 해줌으로써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를 훨씬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차례
프롤로그 ― 우리 풍경의 뿌리를 찾아서
1 임금의 도시, 서울의 탄생
성씨가 다른 새로운 왕이 즉위하다 / 고려의 흔적을 지워라
최후의 수단, 천도 / 천도를 둘러싼 임금과 신하의 줄다리기
사는 곳이 곧 권력이다 / 명분을 가진 자가 모든 걸 가진다
태조의 승리 / 마침내 태어난 ‘임금의 도시’
2 보이지 않는 서울의 풍경
신도시 한양의 청사진 / 궁궐 앞에 주작대로 대신 시장이 있다?
계승과 단절, 두 마리 토끼를 잡다 / 조선시대에 태평로는 왜 없었을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경복궁 / 과거 보러 가는 선비의 한양 구경
시야를 통제하며 3단계 풍경을 만들다 / 나라의 근본, 종묘와 사직
골육상쟁의 기억을 품은 창덕궁 / 세종의 효심, 창경궁
왕기가 서린 경희궁 / 임금의 풍경을 연출하라
3 우리 전통건축물은 왜 작을까?
위치가 바뀌면 풍경이 바뀐다 / 외국의 건축물은 왜 이리 거대한 걸까?
하늘을 찌를 듯한 삼국시대의 탑들 / 권위를 시각화하는 또 다른 방법
4 한국 풍경의 기원을 찾아서
서울 풍경은 유교 때문에 생긴 것일까? / 법흥왕, 죽음까지 혁신하다
가장 오래된 3단계 풍경 / 풍수는 지배자를 위한 사상이었다
명당은 살기 좋은 땅일까? / 지배와 피지배의 살풍경이 남아 있는 풍수
땅의 논리인가, 하늘의 논리인가? / 하늘, 배경으로 밀려나다
이데올로기의 풍경
5 장소가 만든 역사의 풍경
거대도시 경주의 풍경 / 그 많던 높은 목탑들은 어디로 갔을까?
낮은 석탑이 만든 감은사의 3단계 풍경 / 목탑에서 석탑으로
궁예, 견훤, 왕건, 그리고 도시 삼국지 / 개성은 최초의 풍수 도시였다
6 임금과 공간의 정치학
고려는 풍수 때문에 망한 걸까? / 위태로운 왕권과 훈요십조
천도가 아니면 새 나라를?묘청의 서경천도운동 / 고려 최후의 시도
풍수는 어떻게 한반도의 문화유전자가 되었나
7 방어력 없는 성곽의 비밀
선조, 도성을 버리고 피난 가다 / 한양은 왜 무방비로 함락되었을까?
명당은 방어에 유리할까? / 서울 성벽은 왜 해자가 없고, 낮을까?
왜 높은 성벽을 만들지 않았을까?
산이 드문 곳에는 높은 건물을 짓고, 산이 많은 곳에는 낮은 것을 만든다
소 잃고 산성 고치기 / 산성의 나라가 된 조선
8 감시와 통제의 밤 풍경
보신각의 종소리는 아름다웠을까? / 음모의 밤 / 야경꾼과 딱다기
물시계는 누구를 위해 흘렀을까?
9 사라진 정원의 풍경
우리나라에는 왜 정원이 별로 없을까? / 임금의 정원
높고 웅장하게 솟은 경회루 / 조선의 미니멀리즘, 향원정
골짜기에 숨겨진 절경, 창덕궁 후원 / 손가락이 아닌 달을 봐야 정원이 보인다
외부로 펼쳐진 정원 / 가공하지 않은 자연 속 정원
에필로그 ― 보이지 않는 우리 풍경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저 : 이기봉
1967년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서 태어나 수원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 2월부터 2009년 3월까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그 후 현재까지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고대도시 경주의 탄생』, 『지리학교실』, 『조선의 도시, 권위와 상징의 공간』, 『평민 김정호의 꿈』, 『조선의 지도 천재들』, 『근대를 들어올린 거인 김정호』, 『땅과 사람을 담은 우리 옛 지도』, 『슬픈 우리 땅이름』, 『천년의 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