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이한열 열사의 마지막 한 달, 그리고
그를 둘러싼 모든 이의 뜨거운 분투기!
1987년 6월, 우리가 몰랐던 이한열의 이야기
1987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몇십 년 동안 이어진 군부 독재가 막을 내리고 직선제 개헌안이 공포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해 6월에 있었던 민주항쟁은 거대한 분수령을 이루었다. 그때 국민들이 거리에 나와 한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더욱 어려워졌을지 모른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을 더욱 똘똘 뭉치게 만든 인물이 바로 이한열이다. 이한열은 그해 6월 10일에 예정된 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쓰러졌다.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 학우들과 함께 출정식을 갖다가 경찰이 쏜 직격 최루탄을 맞고 의식을 잃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나자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한열이 병실에 누워 있는 사이에 국민들은 여권으로부터 6.29민주화선언을 이끌어 냈다. 그렇게 국민들 사이에 희망의 기운이 퍼지는 사이에 이한열은 영면했다. 때는 7월 5일, 사인은 최루탄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둘에 불과했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이한열과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한열이 의식을 잃은 1987년 6월 9일부터 그의 장례식이 치러진 7월 9일까지 약 한 달 동안의 궤적을 따른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이한열이 왜 폭압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는지, 사람들은 왜 이한열을 지켜야 했는지, 이한열은 왜 지금도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는지 알 수 있다. 이한열기념사업회가 30년 동안 축적한 방대한 기초 자료와 다수의 증언이 바탕이 된 만큼, 이야기의 결은 촘촘하다.
공권력의 폭압에 쓰러지고 만 스물두 살 청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86학번 이한열.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집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효자, 학교에서는 모두가 인정하는 진국이었다. 매사에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다. 자신보다 불우한 사람을 걱정했을 뿐 아니라 부당한 사회를 고민하곤 했다. 학과 공부에 부지런 했던 만큼 학생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래서 1987년 6월 10일 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학교에서 열린 총궐기 대회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날 이한열은 몇몇 학우들과 같이 ‘소크(soc)’를 맡았다. “시위하는 학생들과 전투경찰들 사이에 최소한의 거리를 확보하고, 경찰들이 시위대를 공격할 경우 이를 막기 위해 무장 상태에서 시위대를 보호하는 이들”(26쪽)이 바로 소크다. 그날따라 누나가 이른 외출을 만류할 정도로 몸살이 심했음에도 이한열은 일찍 집을 나섰다. 자신과 한 약속, 학우들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헌데 그날 전경들의 진압은 유난스러웠다. 최루탄이 생각보다 많이 터졌고, 그중 다수가 학생들에게 직격으로 날아왔다. 최루탄이 하늘에서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거든 그것을 직접 확인하고 피하곤 하던 보통 때와 달랐다. 당황한 학생들은 황급히 학교 안쪽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이한열만은 그러지 못했다. 직격탄에 맞고 홀로 길 한복판에 쓰러졌다. 그렇게 이한열은 폭압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방대한 자료들이 엮어낸 생생한 기록지
이외에도 이 책에는 많은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쓰러진 학우를 처음 부축한 이종창, 이한열의 신발을 주워 가족에게 전달한 이정희 등 이한열의 동문들은 물론 그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을 가족들도 말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어머니의 담담한 에필로그는 심금을 울린다. 여기에 이한열을 지키지 못해 줄곧 죄책감에 시달린 총학생회장 우상호(현 국회의원), 총학생회 사회부장으로서 삭발까지 감행한 우현(배우), 쓰러진 중학교 동창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금치 못한 박철민(배우) 등 유명인들도 이한열에 얽힌 가슴 찡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저자를 비롯한 이한열기념사업회가 모은 방대한 자료들이 오롯이 빛을 발한다.
차례
친구를 추억하며
그해 여름의 기억 (소설가 김영하)
프롤로그
꽃이 피었다
1부
중요한 약속
그래도 앞에 선다
힘드니까 쉬었다 가라
신발 찾아가세요
우리 한이
한 장의 사진
세브란스의 기적
모두가 만든 걸개그림
연세 공동체
운동의 풍경
뜨거운 동행
나의 중학교 동창 한열이
그들이 강요당한 분노
계엄령이 선포된다면
2부
한열이 손에 힘이 없어요
불을 붙이겠다
최종 사인 ‘최루탄’
작별을 준비하며
그림으로 음악으로
가자, 광주로 가자
옷 속에 숨긴 낫
그의 나이 스물둘
에필로그
어머니
그리고 남은 사람들
그리고 남은 물건들
* 감사의 글
*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습니다’ 프로젝트 후원자 명단
글 : 김정희
이한열이 입학한 같은 해인 1986년에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고, 1987년 6월 9일 이한열이 쓰러진 시위 현장에 서 있었다. 그 인연이 이어져 2011년부터 (사)이한열기념사업회 일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출판국에서 기자로 10년 동안 일했고, 이후 자유기고가로서 몇 권의 책을 번역, 편집했다.
기획 : (사)이한열기념사업회
1987년 8월 결성된 ‘고 이한열 열사 추모사업회’를 모체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한열을 기억하고 그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되살리고자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 1987년 이후 매년 이한열 추모제를 열었고, 2008년부터 이한열장학회를 운영 중이다. 서울 신촌의 이한열기념관을 둥지 삼아 이한열의 유품과 그와 관련된 1987년 자료를 보존, 상설 전시하는 한편 연 3회 기획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