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살아가는 것은 장소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먹고, 자고, 일하며, 노는 모든 행위는 장소가 있기에 가능하다. 삶은 장소가 되고 장소는 삶이 된다. 문학은 우리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문학은 우리의 장소를 이야기하고, 장소는 문학에 이야기할 모든 것을 내어준다. 사람과 장소와 문학은 애초부터 하나였고 그래서 함께 살아 움직인다.
경기도에서 삶은 경기도라는 장소이고 그것은 경기도의 문학이 된다. 삶과 장소와 문학이 어떻게 하나인 채로 왔는가. 경기도에서 우리네 삶의 기억을 하나둘씩 꺼내본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서울이 아닌 경기도의 문학지리
한국을 이야기할 때 서울을 빼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인구 천만의 거대도시 서울이 한국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의 중심인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네 삶이 서울로만 한정되느냐 하면 또 그것은 아니다. 중심의 삶이 있다면 주변의 삶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 서울을 벗어나 이 땅 전체로 눈을 돌리려는 노력들이 서서히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이 모두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서울 중심주의에서 왜 벗어나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맹목적인 탈출(?)만을 감행하는 시도들은 그 무모함으로 인해 오히려 서울 중심주의를 정당화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지자체들이 벌이는 수많은 축제를 비롯한 문화행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지역화/특성화인지 서울화/천편일률화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이 책 『장소의 기억을 꺼내다』도 주변을 바라보고 읽어내려는 노력들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장소와 사람과 작품, 그리고 이들을 관통하는 삶은 모두 경기도와 얽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맹목적이고 단순한, ‘서울이 아닌 경기도’가 아니라 ‘경기도라는 공간으로서 경기도’이다. 그래서 경기도라는 공간, 그 공간에서의 문학과 삶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결코 부자연스럽지 않다. 『장소의 기억을 꺼내다』는 서울을 벗어나기 위한 억지스러운 시도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주변을 바라보고 읽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장소의 기억을 꺼내다』는 진정한 의미에서 서울 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살아가는 것은 장소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먹고, 자고, 일하며, 노는 행위는 모두 장소가 있기에 가능하다. 삶은 장소가 되는 것이고 장소는 삶이 된다. 문학이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결국 문학은 장소를 이야기하는 것도 된다. 경기도의 삶은 경기도의 장소이고 경기도의 문학이 되는 것이다. 바로 경기도의 문학지리다.
문학을 읽어내는 새로운 방법 문학지리
문학을 시대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문학작품에는 시대의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대라는 시간적인 개념이 문학 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문학에서 장소라는 공간적인 개념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시대와 달리 장소는 문학작품 속에서 그저 작품의 배경으로만 작용하는 하나의 장치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 『장소의 기억을 꺼내다』를 차분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장소의 기억을 꺼내다』는 경기도라는 공간과 그 안에 있는 작가, 그리고 그 공간과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경기도라는 공간을 분석하고 그 공간이 삶에 주는 의미를 분석한다. 경기도라는 공간에서 한 명의 개인으로 삶을 살았을 작가가 어떻게 작품에 그 삶을 담아내는가 하는 점을 추적해 들어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낯설어 보일 수도 있는 ‘문학지리’라는 개념은, 삶과 문학을 가장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일 것이다.
책 속에서 만나는 경기도의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
『장소의 기억을 꺼내다』의 저자 장석주는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이라는 다섯 권짜리 책을 쓴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저자의 경기도라는 장소, 그곳의 문학, 그 한가운데 있는 작가를 분석하는 작업을 따라가는 길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산과 들, 강과 바다, 뭍과 섬이 공존하는 다양한 경기도의 지형?지리만큼이나 다양한 작가와 작품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소의 기억을 꺼내다』는 백운거사 이규보, 신여성 나혜석, 그 이름만으로도 압도하는 김지하?고은, 한국 여성소설가의 전범 오정희,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에 늘 자리하는 기형도, 농부시인 최창균, 언제나 당당하게 고민하는 공지영, 이외에도 조병화, 박두진부터 김중식, 박철, 고형렬, 윤흥길, 박후기까지 경기도 땅에서 살아갔고,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작가와 이들이 만들어낸 문학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그저 단순하게 병렬적으로 나열하고 있지 않다. 저자는 그저 막연하게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라고만 여겨졌던 이들이 공간과는 어떻게 소통하며 작품을 탄생시켰는가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가지 렌즈가 모두 들어간, 완성된 안경을 끼고 본 우리 문학. 한 쪽 렌즈만으로 문학을 들여다보았을 때 느꼈던 어지러움은 말끔하게 사라지고, 깔끔하고 시원하게 문학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저 : 장석주
시인, 문장노동자, 독서광.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고 서울에서 성장했다.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문학평론이 당선하면서 등단했다. ‘고려원’의 편집장을 거쳐 ‘청하’ 출판사를 설립해 13년 동안 편집자 겸 발행인으로 일했다.
2002년부터 동덕여대, 명지전문대, 경희사이버대학교에서 강의하고, EBS와 국악방송 등에서 ‘문화사랑방’, ‘행복한 문학’ 등의 프로그램 진행자로, KBS 1TV ‘TV-책을 말하다’ 자문위원, 조선일보 ‘이달의 책’ 선정위원으로 활동했다.
동서고금의 고전들에 대한 폭넓은 독서력을 바탕으로 『주간경향』과 월간 『신동아』 등에 독서일기를, 세계일보에 ‘장석주시인의 인문학 산책’을, 『신동아』에 ‘크로스인문학’을 연재하고, MBC 라디오의 ‘성경섭이 만난 사람들’에서 ‘인문학카페’를 1년 동안 꾸리고, 지금은 『월간중앙』에 ‘장석주의 서재’를 연재 중이다.
시집 『몽해항로』, 『오랫동안』을 포함하여 『이상과 모던뽀이들』, 『일상의 인문학』, 『마흔의 서재』, 『동물원과 유토피아』, 『철학자의 사물들』 같은 감성적 문장과 인문학적 통찰이 돋보이는 책들을 내서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금융연수원, 전경련, 서울상공회의소, 한국능률협회, 국립중앙도서관, MBC TV 인문학특강, 강진도서관, 토평도서관, 영등포도서관, 광명도서관, 당진문화원, 안성도서관, 평택도서관, 그리고 연세대, 강남대, 목원대, 백석대, 인하대, 충북대, 충남대, 한국교통대, 서울사이버대, 홍익대, 이밖에 기업체와 울산시, 대전시 등 100여 곳에서 초청 강연을 했다.
애지문학상(2003), 질마재문학상(2010), 동북아역사재단의 독도사랑상(2012), 영랑시문학상(2013)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서울의 집필실과 안성의 ‘수졸재’를 오가며 책을 읽고 책을 쓰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