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버트런드 러셀, 차가운 이성으로 뜨거운 사랑을 탐구하다
“사랑은 인생이 제공하는 가장 강렬한 기쁨의 원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대한 세계대전의 재앙이 휩쓸고 간 뒤, 경제대공황과 또 다른 세계대전의 어두운 전조가 사람들의 마음을 위협하고 있던 1929년. 버트런드 러셀은 사랑에 관한 한 권의 책을 출간했다. 가장 뛰어난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인정받았으며, 반전 운동과 새로운 전쟁을 경고하며 전방위적인 사회 활동을 펼치던 러셀이 갑자기 사랑과 결혼에 대한 책을 집필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학자로서 러셀은 1+1=2라는 모두가 당연히 받아들이는 공리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세하게 감지되던 수학 세계의 균열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수학의 확고부동한 기초를 닦고자 했기 때문이다. 러셀에게 있어 사랑과 결혼에 대한 탐구는 이와 동일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단지 그 주제가 수학에서 인간사회로 옮겨갔을 뿐이다. 이 책에서는 러셀은 사랑과 결혼이 사회의 가장 기초가 된다는 것을 밝히고, 지금껏 억압받고 구속되어 왔던 사랑을 위한 새로운 결혼과 도덕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제목이 『결혼과 도덕MARRIAGE AND MORALS』인 이유는 러셀이 사랑이 사회에서 맡고 있는 역할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셀은 이 책에서 개인의 가장 내밀한 감정인 사랑이 어떻게 사회의 필수적 요소로서 기능하게 되는지를 추적한다. 러셀에 따르면 사랑은 단순히 개인 간의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회 근간을 지탱하는 요소이며, 이런 사랑이 억압받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삶의 본질을 놓친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책은 세상에 널리고 널린 흔한 사랑놀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너진 사회를 재건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러셀이 이 책을 시작으로 잇달아 『행복의 정복』, 『교육과 사회질서, 『자유와 조직』, 『어느 것이 평화로 가는 길인가?』, 『권력: 새로운 사회 분석』 등 일련의 사회서를 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책이 러셀의 수많은 저작 중에서 러셀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결정적 역할을 하고, 출간된 지 80년이 넘었음에도 한국의 삼포세대와 공명할 수 있는 지점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로운 사랑과 행복한 결혼은 개인의 삶을 넘어 안정된 사회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보편적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러셀은 사랑의 해방을 강조하면서도 무제한적 사랑의 자유를 마냥 옹호하지 않는다. 러셀은 부부 간의 이혼을 용이하게 해야 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에게 언제든지 이혼할 수 있는 ‘우애결혼’을 필요성을 제기하는 등 파격적인 주장을 하면서도, 무절제한 육체적 탐닉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한다. 또한 자녀가 생기게 되면 결혼은 더 이상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이혼이 능사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러셀은 사랑이 결혼과 도덕이라는 관문을 통해 어떻게 사회화되는지를 때론 낭만적으로 사랑이 개인의 삶에 차지하는 지위와 영향력을 묘사하고, 때론 가장 차가운 눈으로 ‘20세기의 볼테르’답게 폭넓은 사례와 논거를 통해 설명해준다.
이성의 진보와 장밋빛 미래를 꿈꿨던 계몽주의의 시대가 3,0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세계대전과 배금주의로 막을 내렸을 때, 러셀은 잿더미 속에서 불타버린 사랑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인간이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사랑으로 새로운 사회의 기초를 다시 세우고자 한다.
“사랑의 해방은 어떻게 자유로운 사회의 기초가 되는가? 새로운 결혼과 도덕은 어떻게 행복한 삶을 만드는가?”
『결혼과 도덕』 이렇게 새로운 사회의 재건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대한 버트런드 러셀의 대답인 것이다.
“결혼은 부부가 반려 관계에서 느끼는 기쁨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결혼은 남편과 아내가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서서 아이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사회의 긴밀한 구조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중요한 제도이다.”
“자식이 자신의 ‘씨앗’이라는 인식을 가지는 순간 권력욕과 죽음을 뛰어넘으려는 욕구가 형성되고, 이 요인은 부성의 감정을 강화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한 남성의 자손들이 이루는 업적은 그 남성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고, 자손들의 인생은 그 남성 인생의 연장이다. 야망은 그 남성이 무덤에 들어간 뒤에도 시들지 않고 자손들의 생애를 통해서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교회는 육체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하나같이 죄로 이어지기 쉽다는 이유로 목욕하는 습관을 비난했다. 불결한 것을 칭송했고, 신성한 냄새는 날이 갈수록 지독해졌다.”
“낭만적 사랑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여성, 도덕과 인습이라는 드높은 장벽 너머에 있는 여성이 대상이었다. 남성들이 손에 넣을 수 없는 여성에게 낭만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은 교회가 성을 본질적으로 불결한 것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과업을 철저하게 수행한 덕분이었다. 따라서 아름다운 사랑은 정신적인 사랑이어야 했다.”
“사랑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인생을 두려워하고, 인생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
“열정적인 사랑은 자아의 단단한 벽을 깨부수고, 둘이 하나로 통합된 새로운 존재를 낳는다. 자연은 인간을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놓지 않았다.”
“성에 관한 강박관념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자유밖에 없다. 그러나 습관화되지 않은 자유, 성 문제에 대한 현명한 교육과 자유가 결합되지 않는 자유는 이런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사랑은 생애의 대부분에 걸쳐서 대부분의 남녀를 괴롭히는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탈출구이다.”
“남녀 간의 진지한 사랑은 인간의 모든 체험 가운데서 가장 풍요로운 것이 된다. 이런 사랑은모든 위대하고 귀중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도덕을 필요로 하며, 더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희생은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희생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 사랑의 토대 자체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저 :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20세기 최고의 지성,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여성 성해방 운동가, 전투적 평화주의자, 철학ㆍ수학ㆍ과학ㆍ교육ㆍ정치ㆍ예술과 종교를 아우르는 전방위 문학가로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논리학자인 러셀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건재하다.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사람으로로 철학, 수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할 정도로 왕성한 지식욕을 가진 인물이었다.
1872년, 제국주의 영국의 수상을 두 차례나 역임한 존 러셀 경의 손자로 태어난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이 가진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행동으로써, 글로써 시대의 진실을 알린 저항하는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의 강사가 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중 반전운동(反戰運動)에 참여한 것이 화근이 되어 사직했고, 1918년에는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후 유럽 및 러시아와 미국 등을 방문하여 대학의 강의를 맡기도 했으나 주로 저술활동에만 전념했다.
그의 탁월함은 자신의 지능을 최대한 사용하는 놀라운 능력(그는 하루에 거의 고칠 필요가 없는 3,000 단어 분량의 글을 썼다고한다)과 기억력이 밑받침 되었지만 그의 활동력의 원천은 심오한 휴머니즘적 감수성이었다. 그의 사상은 분리된 두 개의 주제를 갖고 있었다. 그 하나는 절대 확실한 지식의 탐구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이었다. 전자는 그의 스승이며 협력자였던 화이트 헤드와의 공저 "수학원리"로 결실을 맺어 현대의 기호논리학과 분석철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이 책은 수학적 대상을 실재라고 간주하여 논리에 의해 기초를 세우고 수학을 논리로부터 도출하려는 그의 시도를 담고 있었다.
철학자로서의 그의 업적은 특히 이론철학에서 두드러지고 있다.그는 무어, 비트겐슈타인 등과 더불어 케임브리지 학파의 일원으로 19세기 말부터 영국에서 유력한 학설이었던 관념론에 대한 실재론을 주장했었다. 하지만 그는 곧 헤겔학파, A.마이농 등 당대의 철학 흐름 변화를 따라 자신의 사상을 조금씩 발전시켰으며 신실재론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는 인식론과 존재론을 사상의 소재로 활용했으며 영국 고유의 경험론을 그 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의 사상은 빈학파나 논리적 실증주의를 중시하는 철학자 및 논리학자에게 자극을 주게 된다. 논리학자로서의 러셀은 프레게의 업적을 계승했으며, 페아노와 쿠츨러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며 데데킨트와 칸토어 등의 현대수학의 성과를 근거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했다.
현실 사회에 대한 진솔한 관심과 스스로가 자유로운 무정부주의, 좌파, 회의적 무신론적 기질이라고 불렀던 그의 성향은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평화주의자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핵 무장 반대자로서 사회변혁운동에서 일관성 있게 표현되었으며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1979년 웨일즈에서 사망할 때까지 문필가, 철학자, 무정부주의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외계의 지식』,『철학이란 무엇인가』,『서양 철학사』,『사회개조의 제원리』, 『심리분석』, 『서양철학사』, 『물질의 분석』, 『의미와 진실의 탐구』, 『수리철학 서설』 등이 있으며, 특히 1950년에는 『철학에 있어서의 과학적 방법』, 『자유와 조직』, 『권위와 개인』 등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