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2001년 3월 2일 세계의 주요 언론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그 동안 경고한 대로 바미얀의 유명한 대불들을 폭파하고 있다는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고대와 중세시대에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이었으며 간다라 불교미술이 활짝 꽃핀 문화의 옥토, 헬레니즘과 불교문화의 성지였던 이 땅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대불이 굉음을 울리며 폭파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21세기 벽두에 일어난 믿지 못할 현실에 경악해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은 동서문화의 지류가 모여드는 ‘라운더바우트(roundabout)’였다. 사방에서 오는 길이 한 점에 모였다가 다시 퍼져 나가는 원형의 로터리인 라운더바우트의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아프가니스탄이었던 것이다. 로마와 그리스, 그리고 중동의 모든 문물들은 동방으로 가려면 중앙아시아와 인도 평원, 파미르 고원이 만나는 아프간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 역사학자 아널드 플레처는 아프가니스탄을 ‘정복자의 대로’라고 불렀다. 그러나 불교와 헬레니즘, 아랍문화가 아프간 실크로드에서 복잡하게 뒤섞이며 꽃피운 찬란한 고대 문화유산은 이 길을 ‘문명이 오가는 대로’이도록 하였다.
이 지역을 스쳐 가고 이곳에 정착한 수많은 민족, 그리고 이곳에서 번성한 여러 종교와 다양한 문화가 투영되어 아프가니스탄에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문화유산이 남겨졌다. 이 중에는 이란계, 인도계, 서양 고전계, 중앙아시아계, 아랍계, 또 조로아스터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실로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유적과 유물은 다양성과 복합성에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독특하고 높은 수준을 이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을 만하다. 더욱이 그 하나하나에는 그러한 문화유산을 창출하고 간직했던 사람들, 버리고 파괴했던 사람들, 먼 훗날 그것을 다시 발견하고 평가했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 속 이야기가 투영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길은 지구촌의 벽지를 찾아가는 험로(險路) 같지만, 실은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에 있던 ‘문명의 대로’를 찾는 노정인 것이다.
이 책은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이자 동서 문화의 접점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들어지고 남겨진 문화유산의 역사이자, 후대에 그러한 문화유산이 겪은 망각과 발견과 파괴라는 굴곡진 운명의 역사이다. 저자는 힌두쿠시에 묻힌 은둔의 나라, 오랜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이 땅에 찾아가 파란의 현대사 속에 문화유산이 당한 비극적인 운명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 ‘화려한 비극’을 담담하고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저 : 이주형
국내 인도 불교미술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자 현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1960년에 태어났고, 미국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에서 불교미술 및 인도미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간다라 미술 전반에 대해 탄탄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국제적인 전문가이자 불교문헌이나 불교사에 정통한 미술 연구자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특히 미술 유물로부터 대승불교와 간다라에 관계를 해석해 많은 불교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99년에는 캐나다의 맥마스터 대학에서 열린 '간다라의 불교' 학술회의에 초청되었고, 2001년에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 불교학 센터가 주최한 '초기 대승불교' 학술회의에 초청되어 '간다라 미술과 대승불교의 관계'를 논의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세계 최고의 불교 전문가 20여 명이 모인 자리에 초청된 단 두 명의 미술사학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2003년에는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누마타 불교학 해외 초빙교수로 선임되어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였으며, 5월에는 일본의 권위 있는 학술기관인 동방학회에서 주관하는 학술회의에 초청받아 '간다라에서 이용된 대승불교 문헌들과 불교미술의 관계'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2006년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인도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New Delhi)이 공동주최한 "인도불교미술-인도국립박물관 소장품전(Buddhist Art of India: Exhibition from the National Museum)"의 객원 큐레이터를 맡기도 했다.
「한국 고대 불교미술의 상에 대한 의식과 경험」등 여러 편의 불교미술 관련 논문을 썼으며, 1999년 서울에서 열린 간다리미술대전의 도록인『간다리 미술』을 비롯하여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 : 사라진 바미얀 대불을 위한 헌사』, 『한국의 미를 다시 읽는다』 등의 책을 집필했다. 역서로는 『인도 미술사』와 『불교미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