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예수, 마리아, 루시퍼...중세 미술의 주인공들이 변하기 시작하다
중세는 교회의 시대였다. 교회는 종교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을 관장하고 있었다. 대성당 앞의 광장에는 시장이 섰고, 은행들이 자리했다. 광장 주변에는 시청, 재판소, 경찰청 등 주요 관공서가 있었다. 교회는 생활의 중심이었고 권력의 핵심부였다. 중세인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교회와 함께 해야 했다. 태어나 기독교 공동체의 첫 일원이 되는 유아 세례부터, 성인식, 결혼,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절차인 장례까지 모두 교회에서 이루어졌다.
중세인들의 삶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던 교회의 건축, 회화, 조각에 당대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한 예술작품은 거의 종교미술로 구성되었고, 이 시대의 가장 유명한 ‘스타’는 교회를 장식하는 미술작품 속에 그려진 예수나 마리아, 루시퍼 등이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비슷한 모습으로, 즉 전형적인 모습으로 교회에 등장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변화의 절정기, 13-14세기 ‘프로토 르네상스’
그런데 몇백 년간 지속된 중세의 슈퍼스타들 모습은 어느 순간 돌연 그 모습을 바꾼다. 예수, 마리아, 이브, 막달라 마리아, 루시퍼와 같은 중세 종교 미술 속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이 시기에 모습을 바꾸고 나타난다. 이와 같은 변화의 특징이 가장 강력하게 나타난 때는 13-14세기, 바로 중세 말이다. 일반적으로 이 시기는 르네상스에 앞섰다는 의미에서 ‘프로토 르네상스’라고 불린다. 엄연히 중세임에도 ‘르네상스 직전 시기’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듯이 그동안 이 시기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중턱으로만 읽혀왔다.
하지만 다음 시대를 예비하는 시대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몇백 년을 지속해오던, 중세인들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고 있던 미술에서 큰 변화가 나타났음에도, 그저 르네상스라는 빛나는 시기를 준비하는 차원에서만 고려된다는 것이 공정한 평가일까? 이 책은 이런 관점에서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변화는 어떻게 일어났으며, 왜 일어났으며, 이런 변화로 우리는 중세를 어떻게 읽을 수 있는가. 그리고 궁금증이 시작되었던 미술에서 해답을 찾기 시작한다.
인간의 모습을 닮아가는 예수와 성 프란체스코
중세 말 미술의 변화양상은 크게 네 영역으로 나누어 접근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예수와 성 프란체스코, 즉 남성 성인의 변화모습이다. 무엇보다도 예수의 변화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며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은 현대의 전형적인 십자가상이지만, 이러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바로 중세 말이었다. 긴 중세의 대부분은 전혀 다른 모습의 예수가 지배했다. 12세기까지의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린 채 눈을 크게 뜨고 팔을 벌리고 서 있었던 데 반해, 13세기 중엽부터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등장하여 마치 보통의 인간이 십자가에 매달린 듯한 현재의 형상으로 변화한다. 그 이유는, 12세기까지는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으나 죽음으로 오히려 승리한 ‘심판자 하느님으로서의 예수’를 신성시한 반면 13-14세기에는 현세에 ‘고통받은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인간 삶의 모범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후에는 성 프란체스코가 있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중세 말 종교와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종교개혁자다. 프란체스코 교단의 수도자들은 대부분 글을 중요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글보다 그림을 중시했다. 성 프란체스코는 신앙을 영혼의 영역에만 가두어두지 않고 사물을 통하여 오감으로 느끼고자 하였고, 그러한 관점에서 미술품을 활용하려 했다. 예술가들은 예수를 좀더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해달라는 교단의 주문을 받았다. 사람들은 달라진 예수의 형상 앞에서 비로소 그리스도를 육신을 가진 친형제로 느끼고 그 고통에 공감하게 되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예수의 십자가상은 감성을 전달하는 매체가 되어 기도하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사용되었던 것이다.
마리아와 이브,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
두 번째 영역에서는 여성 성인들의 변화모습을 다룬다. 중세의 세 성녀―성모 마리아, 이브, 막달라 마리아는 각기 다른 길을 걸어 숭배의 대상이 된다. 현대의 가톨릭교에서는 성모 마리아상을 두고 기도드리는데 이러한 마리아 신앙은 중세 말에 비로소 등장한 것이었다. 이전의 마리아는 ‘하느님이 인간의 몸으로 화한 사람’이 예수라는, 예수의 육화(肉化)를 증거하기 위한 보조 역할을 할 뿐이었다. 언제나 아기 예수와 함께 그려졌으며 함께 정면을 바라보거나 마리아가 슬픈 시선으로 예수를 바라보는 유형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13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마리아상은 독자적인 제단화로 발전한다. 이제 마리아는 예수를 나타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독립된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마리아의 커다란 망토 아래 숨어 하느님께 대신 중보해달라고 기도한다. 인간 마리아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 부상한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제단화 역시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요구한 것이었다. ‘최후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좀더 접근하기 쉬운 구원자를 제시해줌으로써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려 한 것이다. 동시에 구원을 원하는 재력가들은 화가의 손을 빌려 마리아 제단화를 교회에 바쳤다. 마리아를 중재자로 만들어 놓고 마리아를 통해 교회는 부를 얻고, 재력가들은 천국으로 가는 티켓을 얻었던 것이다.
한편 이브와 막달라 마리아는 금욕주의하에 금기의 대상이었다가 중세 말에 들어 숭배의 대상으로 바뀐 인물들이다. 아담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했다는 이유로, 이브는 정숙한 마리아와 대조되는 여성으로 그려졌다. 마리아는 젖을 먹이기 위해 드러낸 오른쪽 가슴 외에는 온몸을 감싸고 있었으나 이브는 대게 금발을 풀어헤친 누드로 표현되었다. 쉽게 말해 마리아는 ‘좋은 여자’, 이브는 ‘나쁜 여자’였다.
그러나 중세 말의 이브는 아기를 낳은 인류의 조상, 인류의 어머니로 재평가되며 그 모습에서도 변화를 보인다. 준성인(準星人)에게 부여하는 육각형 형태의 두광을 머리에 쓰고 두 아이를 데리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이어져 『위대한 사람들』(1450)에서는 이브가 물렛가락을 들고 일하는 건장한 여성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브의 이러한 변화는 점점 현실화되어가던 중세 사회에서 양극으로 치닫던 여성상의 거리 역시 좁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창녀 막달라 마리아는 성녀로서 그려졌다. 그녀가 30년의 고행을 거쳐 성녀가 되었다는 전설 때문이었다. 이 전설을 공식적인 교회 입장으로 정착시킨 이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였다. 참회를 통해 구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교회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가 창녀라는 근거는 없었다. 성경에는 세 명의 마리아가 나오는데 이 인물들을 한데 섞어 만들어낸 여성이 막달라 마리아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당시 가장 죄악시되었던 성욕의 죄를 범한 여인도 참회와 고행을 거치면 얼마든지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전설은 교회사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막달라 마리아를 그린 초기의 그림들은 고행으로 피골이 상접하고 머리가 발목까지 늘어진 처절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막달라 마리아는 희고 고운 알몸을 금발의 긴 머리로 감추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심지어 조토가 그린 그림에서는 마치 그리스 신화의 비너스처럼 보였다. 이는 분명 아름다운 창녀의 모습이었다. 성녀가 되었지만 원래 창녀였던 그녀이기에 화가들은 마음껏 관능적인 누드로 그녀를 표현하였고 사람들 역시 성녀를 숭배한다는 빌미로 그녀의 그림을 즐겼던 것이다.
지옥과 루시퍼의 등장
세 번째 변화는 앞서 언급한 지옥과 루시퍼의 등장이다. 중세 말에는 본격적으로 교회 안에 지옥과 루시퍼가 그려지는데 대부분 『최후의 심판』과 연계되어 제작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지옥의 광경이 당시의 현실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다. 조토가 그린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지옥에서는 사람이 곡물을 운반하고, 고위 성직자가 돈을 받고 성직을 팔며, 돈으로 여자를 사기도 한다. 모두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또한 죄목에 따라 해당되는 벌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그려놓았다. 부팔마코가 그린 캄포산토의 지옥에는 자만, 탐욕, 음욕, 분노, 식탐, 시기, 태만의 죄를 지은 자들이 구획별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죄에 따라 쇳물을 먹거나 창자가 뽑히는 등 끔찍한 형벌을 받고 있다.
이렇게 중세 교회에 본격적으로 지옥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하였듯이 중세의 이미지는 지금보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가상의 지옥을 실제로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공포스러운 장면을 구체적으로 전달함으로써 공포감을 증대시키고 결과적으로 신의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의 권력을 쥐었던 것이다. 죄의식을 조장한 후 참회하는 자를 면죄해줌으로써 교회는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신자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교회의 권력을 인정한 대가로 면죄를 받았다.
루시퍼가 등장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괴물의 모습을 한 루시퍼는 공포심을 더하는 수단인 동시에 하느님을 빛내는 조연의 역할을 하였다. 선한 인간 모습의 하느님과 동물과 상상의 괴물을 합성시킨 지옥의 마왕 루시퍼, 빛으로 가득 찬 하느님과 시커먼 털북숭이 루시퍼는 천당과 지옥의 대비보다 더 극명한 반대 이미지로 기능했다.
현실에서의 미술
마지막 영역에서는 실제로 종교미술이 어떻게 사용되었으며, 제작비는 누가 대었는지, 단테의 『신곡』이 당시 미술과 상호작용한 결과는 어떠한 것이었는지 등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룬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예배당을 지어 헌납한 엔리코 스크로베니의 일화다. 고리대금업자라는 아버지의 오명을 씻기 위해 예배당을 짓고 조토에게 벽화를 주문한 스크로베니는, 돈으로 천국을 예약하려 한 당시 상인계급의 욕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조토는 주문자의 요구에 완벽히 부응했다. 그는 『최후의 심판』 천국 부분에 마리아와 천사들에게 예배당을 헌납하는 스크로베니를 대문짝만하게 그려 넣었다. 간절한 눈빛으로 마리아를 올려다보는 스크로베니의 뻔뻔한 얼굴과 예배당을 받아들고 스크로베니를 내려다보는 마리아의 자애로운 얼굴에서 중세 말의 뒤틀린 욕망을 읽을 수 있다.
미술을 통해 들여다본 욕망의 각축장 중세
많은 판타지 소설과 영화는 중세를 배경으로 한다. 중세는 금욕의 시대였지만, 인간에게 완벽한 금욕의 시대는 존재할 수 없었다. 중세의 실상은 어떤 시대 못지않게 다양한 욕망으로 얽힌 욕망의 각축장이었고, 그렇게 드러나는 욕망은 지금 우리들이 갈구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소설과 영화가 인기 있는 이유는 이와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욕망하는 중세』는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의 오래된 궁금증과 그 궁금증을 풀어가는 오랜 기간 동안의 노력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직접 이탈리아의 교회와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았지만, 시대에 대해 광범위하게 정의하려 하지 않고, 핵심이 되는 단서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접근해 들어갔다. 그렇다 보니 조토와 같은 유명한 화가의 작품은 물론이고, 우리가 접할 수 없었던 풍부한 작품들까지 분석해 내용에 깊이를 더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베를링기에리나 준타 피사노 등의 십자형 채색패널이, 한 시대를 풍미한 조토의 십자형 채색패널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이다.
저 : 이은기
서양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사학자.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였고, 이탈리아 피사 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목원대학교 미술교육과에 오래 재직하였으며, 현재는 이 대학의 명예교수이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방문학자,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방문학자, 서양미술사학회 회장,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르네상스 미술과 후원자』(2002), 『서양미술사』(공저, 2006), 『욕망하는 중세』(2013), 『권력이 묻고 이미지가 답하다』(2016)가 있으며,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을 통해 보는 여성상에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