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파노프스키의 르네상스 미술사, 해석은 어떻게 권력이 되는가?
20세기 초 독일 출신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는 같은 독일 태생 화가 뒤러를 통해 르네상스 미술사를 정립해나간다. 그의 도상 연구 ‘아이코놀로지’는 르네상스 미술사를 읽는 모범답안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르네상스를 서구 이성의 승리로 보는 유럽 중심주의적 세계관이 깊게 스며들어 있다. 이 책은 하나의 해석이 어떻게 보편 지식으로 올라서는지 추적한다. 2004년 출간된 『파노프스키와 뒤러―르네상스 미술과 유럽중심주의』의 개정판.
20세기 미술사학의 아버지, 어윈 파노프스키
어윈 파노프스키.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이미 알고 있다. 전시장의 그림을 보다가 ‘이게 무슨 의미지?’ 한 번이라도 궁금해 한 적이 있다면, 파노프스키의 영토에 일단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파노프스키는 1892년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났다. 그는 베를린, 뮌헨, 프라이부르크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1921년부터 1933년까지 함부르크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미국으로 망명해 죽기 전까지 미국 미술사학계에서 활동했다. 그는 유대인이었다. 2차 대전 무렵 독일 나치스가 유대인들을 공직에서 추방하자, 그는 아내와 함께 미국 망명길에 오른다. 이 책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에서 파노프스키의 이름 ‘Erwin’을 독일어식 ‘에르빈’이 아닌 영어식 ‘어윈’으로 표기하는 이유다.
파노프스키의 미술사는 이런 개인사와 무관하지 않다. 젊은 시절 그는 북유럽 르네상스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를 연구하며 일생일대의 주제를 만난다. 공교롭게도 파노프스키와 뒤러 사이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다. 우선 두 사람 모두 독일인이면서,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각각 미국과 이탈리아라는 더 넓은 중심지를 상대로 활동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둘 다 혈통상 ‘순수 게르만’이 아니라 각각 유대인, 헝가리 이주민의 자손이다. 이들은 어딜 가나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파노프스키가 뒤러를 선택한 데에는 모종의 동류의식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러한 미술사가와 미술가의 시대를 초월한 교감이,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를 쓴 저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파노프스키는 독일에 있던 시절부터 멜랑콜리아 Ⅰ, 갈림길에 선 헤라클레스 등 뒤러의 작품을 연구하며 저술 활동을 했다. 망명 이후에는 뒤러에 대한 가장 심도 깊은 저작 『알브레히트 뒤러의 생애와 예술』(1943)을 내기도 했다. 주목할 것은 그가 뒤러 연구를 통해서 자신의 미술사 연구방법론을 정립해나갔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말한 ‘그림에서 숨은 의미를 찾는 방식’, 이것이 파노프스키 미술사의 핵심이다. 우리말로 흔히 ‘도상해석학’이라고 번역되는 아이코놀로지(Iconology) 방법론이다.
파노프스키는 아이코놀로지를 고안하여 20세기 미술사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이코놀로지와, 그 아이코놀로지를 적용한 뒤러에 관한 연구는 이후 르네상스 미술사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술사를 누군가의 관점에 따라 쓰인 하나의 해석으로 본다면, 파노프스키의 미술사는 하나의 해석이 어떻게 지식이 되고 권력이 되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아이코놀로지와 유럽 중심주의
파노프스키가 그림에서 찾으려 한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 그에 따르면 “민족, 시대, 계급, 종교 또는 철학적 경향성의 기본적인 태도”가 “한 사람의 예술가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형상화되어 작품으로 집약된 것”이다.(본문 30쪽) 화가 개개인은 다 다른 사람이지만, 동시대를 살아간 화가들이라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는 정신적 경향성이 있고, 그것이 그림에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그림(표면)을 통해 시대(심층)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파노프스키가 제시한 아이코놀로지는 미술이야말로 한 시대의 거울이라는 획기적인 선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20세기 초 서구 사회에 유행했던 구조주의와 맞물려 있다. 저자가 예로 든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프로이트의 심리학, 에드거 앨런 포의 추리소설 모두, 표면으로 드러나는 단서를 가지고 숨은 전모를 파악하는 방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파노프스키는 이 방식을 북유럽 르네상스 화가 뒤러에게 적용했다. 뒤러가 나고 자란 독일 뉘른베르크는 상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활기찬 도시였지만, 고전 문화의 중심인 이탈리아 로마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변방이었다. 그래서 뒤러는 두 차례 베네치아 여행을 하며(로마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고 위험했으므로),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제대로 익혀 고향에 돌아왔다. 뒤러의 그림은 수학적 질서에 바탕을 둔 투시원근법과 인체비례 등, 형식적인 면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요소를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다. 파노프스키가 보기에 이러한 형식 요소는 유럽의 진보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이성에 바탕을 둔 수학적 질서는 계몽주의시대 이래로 유럽에서는 지고의 가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파노프스키는 이러한 특징들이 르네상스를 이전의 고대나 중세 시기와 구별해줄 뿐만 아니라, 유럽을 비유럽 세계와 변별시켜주는 증거라고 여겼다.
파노프스키는 이처럼 뒤러의 그림을, 나아가 르네상스 미술을 서구 이성의 승리로 보는 관점을 설파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는 파노프스키 개인의 욕망이 투사되고 있었다. 파노프스키는 나치스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신분이다. 유대인이면서도, 그는 독일인, 나아가 유럽인이라는 의식이 투철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보기에 반(反)이성의 광기에 휩싸인 20세기 독일과 정연한 합리주의의 16세기 독일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는 과거의 영광을 불러들여 현재 유럽의 위상을 제고하려고 했다. 파노프스키의 연구는 독일인이자 유럽인으로서 자기 계통을 세우려는 연구자 개인의 의지와 맞물려 있다.
“파노프스키의 연구는 그가 신봉한 르네상스의 이상을 15, 16세기의 이탈리아 미술과 독일 미술에 주관적으로 투사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힘들다. 고대의 그리스는 전혀 이상향이 아니었다. 그리스는 문학과 학문의 놀라운 발전 이면에 노예제, 여성에 대한 차별, 비그리스인에 대한 경멸(이것을 인종차별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가?)이 상존한 인간 사회였을 뿐이며, 그것을 다시 부활시킨 르네상스 시기 또한 양면성을 가진 인간의 문명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완고하게 르네상스에서 이상적인 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한 것은 학문적인 태도가 아니라 이미 종교적인 태도다.”(본문 176~177쪽)
이러한 귀결은 근대 유럽의 비유럽에 대한 우월의식과 역사관을 반영한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유럽 중심주의, 헤겔식 목적론, 거대역사관의 공통점은 인류의 역사를 하나의 목표, 즉 근대 유럽이라는 도달점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파노프스키 당시만 해도 유럽을 세계사의 중심에 놓고 보는 시각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파노프스키는 자신의 시대적 한계에 그야말로 충실했던 것이다. 저자는 파노프스키의 미술사 이면에 있는 이와 같은 토대를 추적함으로써 20세기 미술사의 명암을 드러낸다.
넘어서야 할 아버지의 그림자. 파노프스키 이후의 미술사는 어떠해야 하는가?
파노프스키 이후로 르네상스 미술사 연구는 그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다. 파노프스키는 미술사를 보는 하나의 방법론을 만들었고, 그 방법론을 무기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막강한 해석을 내놓았다. 지금까지도 르네상스 미술사 연구는 파노프스키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역사학의 미시사 방법론, 과학사의 패러다임 개념, 사회학의 오리엔탈리즘 개념 등 미술사 외부의 다양한 이론에서 자극을 받으며, 그간 르네상스 미술사 연구가 유럽 중심의 편견에 치우쳐 있었음을 보여준다. 르네상스 미술에 대해 새로 말을 보태기보다는, 이제까지 르네상스 미술이 무엇이었는지를 되짚어보는 고고학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누구도 르네상스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이상 르네상스 미술사란 여러 학자들이 만들어낸 각각의 내러티브일 뿐”이다(본문 267쪽).
미술사는, 해석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미술사 쓰기를 포함하는 말이다. 파노프스키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다른 해석, 파노프스키의 해석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이 책은 르네상스 미술을 유럽 문명의 절정으로 보았던 20세기 미술사와 작별하고, 이제 르네상스 미술을 세계 교류사의 일환으로 재배치할 것을 제안한다.
저 : 신준형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부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오스틴)에서 미술사학 석사학위를, 위스콘신 주립대학(매디슨)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뮌헨 대학에서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금으로 수학했으며, 아칸소 주립대학 미술과 조교수,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미술사학과 부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 - 가톨릭개혁의 시각문화』(사회평론, 2007), 『파노프스키와 뒤러 - 르네상스 미술과 유럽중심주의』(시공사, 2004)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