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영화 제보자의 실제 주인공
한학수 PD가 쓴 황우석 사태의 전말!
2005년 5월, 대한민국에는 ‘묻지마 국익’의 줄기세포 광풍이 몰아쳤다. 황우석 박사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과학 저널 《사이언스》지에 체세포 핵이식을 이용한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체세포 핵이식 줄기세포는 불가능하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는 것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은 자국의 과학자가 낸 이런 놀라운 성과에 열광했다. 이를 이용해 곧바로 난치병이 치유될 것처럼 들떴다. 한국 정부와 언론, 국민들은 줄기세포가 막대한 부를 가져올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해 12월,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불편한 진실이 밝혀졌다. 줄기세포는 없고 논문 데이터는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에는 한 명의 용감한 제보자와 ‘증거를 좇아서 취재하고 취재된 진실만을 보도한다’는 원칙을 지키며 소임을 다했던 언론인(들)이 있었다. 줄기세포 조작을 소재로 한 영화 제보자의 실제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이 책 『진실, 그것을 믿었다』는 바로 그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온 나라를 적으로 돌려야 할지도 모르는 놀라운 제보를 받고 그것을 사실로 밝혀내기까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취재 과정의 풀스토리를 담고 있다.
상식의 저항, “정말로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나요?”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사건이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일단 그것을 의심한다. ‘상식의 저항’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국이 ‘황우석 사태’를 마주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사이언스》지에 실린 논문이 조작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논문 조작 논란이 불거진 이후 검증에 들어간 서울대 조사위원회에서 줄기세포는 모두 가짜였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이언스》지가 스스로 논문을 철회한 이후에도 사람들은 물었다. “정말로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나요?” 사람들의 상식은 도저히 ‘국민적 영웅’이었던 한 과학자의 연구가 모두 거짓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 사건을 취재했던 한학수 PD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도 황우석의 쾌거에 뿌듯해하던 한국인 중 하나였다. 그런 세계적인 과학자의 논문이 조작됐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통의 제보가 그의 운명을 바꿔 놓고 말았다.
“진실과 국익 중에 어느 것이 우선인가요?”
2005년 6월 1일 당시 한학수 PD가 속해 있던 PD수첩 게시판에 ‘황우석 교수 관련’이라는 제목의 한 통의 제보가 도착한다.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제보자를 만나러 간 한 PD에게 제보자는 대뜸 묻는다. “진실과 국익 중에 어느 것이 우선인가요?”
제보자의 이 질문만큼 사건의 ‘진실’은 한 나라의 국민을 충격에 빠뜨릴 수도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세계적 저널에 실린 논문이 가짜이며 연구 과정에서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한 PD 역시 ‘상식의 저항’에 직면했다. 더욱이 제보자에게는 증거도 없었다. 논문의 진위를 입증하려면 줄기세포와 체세포를 얻어 검증을 해야 했지만 그것은 황 박사 측이 가지고 있었다. 한 PD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모든 것을 의심한 채 ‘진실’만을 믿어야 했다.
제보 그 후 198일, 줄기세포는 없었다
PD수첩과 한 PD의 끈질긴 취재는 결국 줄기세포가 모두 가짜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난자를 매매하고, 연구원의 난자를 이용하는 등 생명 윤리 및 연구 윤리를 배반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척수장애를 가진 9세 아동에게 임상실험을 약속하는 비윤리적 과학자의 면모가 폭로되었다. 만약 그것이 실행되었다면 그 아이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었던 위험한 발상이었다. 그의 논문을 게재했던 《사이언스》지는 결국 논문을 철회했고, 황우석은 연구비 횡령, 사기 등의 혐의를 안고 법정으로 갔다. 2006년 4월, 황우석 박사는 서울대에서 파면을 당했고, 2006년 11월에 서울대 총장을 상대로 교수직 파면처분 취소청구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2014년 2월 파면이 정당하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책으로 펴낸 ‘오늘의 뉴스’
이 책은 우선 취재기이다. 형식이 그렇고 내용도 그렇다. 저자는 발단부터 결말까지 사건의 경과를 따라 가면서, 취재된 사실들을 촘촘히 엮어 ‘사태의 진상’을 그려 보인다. 그가 어렵게 재구성한 그림은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국민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거짓 신화’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한국 사회의 욕구와 시스템은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와 시스템이 온존하는 한 제2, 제3의 ‘황우석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경고음을 발하고 있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환자의 심리 과정에 관한 결론부의 이야기는 그 점에서 시사적이다. 암 선고를 받으면 보통 환자들은 ‘부정 → 분노(화냄) → 우울(의미부여) → 수용(문제 해결)’의 네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황 교수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그랬다. 대다수 국민들은 처음에 그 사실을 믿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마음속에 ‘영웅’으로 자리 잡은 황 교수가 매도되는 데 대하여 분노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조작의 증거가 속속 드러나자, 이제 새로운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따져 보기도 하고, 그나마 국내 언론과 과학자들이 앞장서 사태를 수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제 ‘문제 해결’의 단계로 나아가야 하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한 지 9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취재 후기라 아니라 여전히 ‘오늘의 뉴스’다.
‘상식의 저항’을 ‘진실’의 길로 이끈 저널리스트의 열정이 책의 주인공은 ‘사건’이 아니다. 모든 것을 걸고 온몸으로 진실을 추구한 젊은 언론인(들)의 열정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만한 제보를 접하고 저자가 처음 느꼈던 것은 ‘상식의 저항’이었다. 의혹을 검증하는 과정에서는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실제로, 그 과정에서 저자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진실의 힘이 언젠가는 빛을 본다’는 소박한 믿음을 붙들고 끝까지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진실을 밝히려는 한 인간이 얼마나 처절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역경을 진실을 향한 열정의 힘으로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를 보여 주는 휴먼 다큐멘터리다. 취재가 고비를 맞이할 때마다 저자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저널리스트로서 느껴야 했던 고뇌와 갈등이 책갈피마다 묻어나는 이 책을 희망의 메시지로 읽히게 하는 것은, 진실을 덮으려는 쪽의 온갖 방해 공작을 이겨 내고 마침내 ‘황우석 신화’의 종말을 알리는 ‘특집, 은 왜 재검증을 요구하였는가’를 방영하게 된 대반전의 순간에 저자가 도달한 다음과 같은 자각이다. ‘그렇게 대반전의 막이 내렸다. 이 반전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힘을 모았다. 진실! 그것은 여리고 쉽게 망가져서 이 거친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힘을 누구도 거스를 수 없었다.’
세상을 그래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거짓된 희망’이 아니라 ‘정직한 절망’이다사태 진행 과정에서 저자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취재의 어려움이 아니었다. 도처에 자리 잡은 강고한 허위의 벽, 시시각각 압박해 들어오는 ‘어둠의 힘’도 아니었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국민들이 황우석 교수에게 건 ‘희망’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한 PD는 몇 번이나 자신의 ‘합리적 의심’을 의심했다. 자신이 취재한 사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취재팀 전체가 가장 우려했던 점도 만약에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국민적 쇼크 상태’가 초래”되리라는 것이었고, 가장 신경 썼던 점도 “이것을 어떻게 다독거리고 추스를 수 있는지”였다. 결국 희망은 무너졌고, 희망과 배신감 사이의 진폭이 너무 컸던 탓인지 아무도 그들의 마음을 다독거리고 추스를 수 없었고, 그들은 냉담하게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다. 그러나 세상을 그래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거짓된 희망’이 아니라 ‘정직한 절망’이다. 망각과 냉담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근거 없는 희망이 무너지면 다시 일어설 힘도 사라진다. 그러나 사실을 직시하고 정직하게 절망하면,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있다. 황우석 신화는 무너졌지만, 그 그늘에서 뚜벅뚜벅 연구에 매진해 온 진짜배기 과학자들은 건재하다. 한때 거짓이 세상을 덮었지만, 양심적인 젊은 과학도들과 언론인들은 끝내 그 허위의 벽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의 근거이자 출발점은 우리 사회의 그러한 자정 능력, 결국 ‘진실의 힘!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연대’일 수밖에 없다.
『다빈치 코드』보다 재미있다사건 자체의 무게를 생각하면 ‘재미있다’는 표현은 삼가야 마땅할 터이다. 그러나 한 편의 이야기로 보면, 이 책은 재미있다. 이 책이야말로 현실이 소설보다,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이다. 어찌 보면 이 책 전체가 하나의 조각그림 맞추기이다. 상대편의 거짓을 입증하기 위해 저자가 확보해야 할 증거는 거의 입수 불가능한 것이었다. 저자는 이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밝히려는 쪽과 감추려는 쪽 사이에 접전이 벌어질 것을 예감한다. 그 전투를 헤쳐 나가기 위해 세운 가설들, 그리고 그것들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양측이 벌이는 치열한 두뇌 게임! 상대에게 접근하기 위한 위장, 상대가 내놓을 수를 미리 읽고 그것을 차단하기 위해 짜낸 전술들, 생각지 못했던 약점이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파국으로 몰렸을 때 등장하는 의인들, 이 모든 순간이 박진감 넘치는 추리소설을 연상시킨다.자칫 고통스러울 수 있는 기억의 반추가 덜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이 단행본으로서 독자적 가치를 가진다고 판단하게 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또한 바로 이 ‘원고의 힘’이다.
한학수 PD가 쓴 황우석 사태의 전말!
2005년 5월, 대한민국에는 ‘묻지마 국익’의 줄기세포 광풍이 몰아쳤다. 황우석 박사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과학 저널 《사이언스》지에 체세포 핵이식을 이용한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체세포 핵이식 줄기세포는 불가능하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는 것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은 자국의 과학자가 낸 이런 놀라운 성과에 열광했다. 이를 이용해 곧바로 난치병이 치유될 것처럼 들떴다. 한국 정부와 언론, 국민들은 줄기세포가 막대한 부를 가져올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해 12월,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불편한 진실이 밝혀졌다. 줄기세포는 없고 논문 데이터는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에는 한 명의 용감한 제보자와 ‘증거를 좇아서 취재하고 취재된 진실만을 보도한다’는 원칙을 지키며 소임을 다했던 언론인(들)이 있었다. 줄기세포 조작을 소재로 한 영화 제보자의 실제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이 책 『진실, 그것을 믿었다』는 바로 그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온 나라를 적으로 돌려야 할지도 모르는 놀라운 제보를 받고 그것을 사실로 밝혀내기까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취재 과정의 풀스토리를 담고 있다.
상식의 저항, “정말로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나요?”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사건이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일단 그것을 의심한다. ‘상식의 저항’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국이 ‘황우석 사태’를 마주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사이언스》지에 실린 논문이 조작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논문 조작 논란이 불거진 이후 검증에 들어간 서울대 조사위원회에서 줄기세포는 모두 가짜였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이언스》지가 스스로 논문을 철회한 이후에도 사람들은 물었다. “정말로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나요?” 사람들의 상식은 도저히 ‘국민적 영웅’이었던 한 과학자의 연구가 모두 거짓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 사건을 취재했던 한학수 PD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도 황우석의 쾌거에 뿌듯해하던 한국인 중 하나였다. 그런 세계적인 과학자의 논문이 조작됐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통의 제보가 그의 운명을 바꿔 놓고 말았다.
“진실과 국익 중에 어느 것이 우선인가요?”
2005년 6월 1일 당시 한학수 PD가 속해 있던 PD수첩 게시판에 ‘황우석 교수 관련’이라는 제목의 한 통의 제보가 도착한다.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제보자를 만나러 간 한 PD에게 제보자는 대뜸 묻는다. “진실과 국익 중에 어느 것이 우선인가요?”
제보자의 이 질문만큼 사건의 ‘진실’은 한 나라의 국민을 충격에 빠뜨릴 수도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세계적 저널에 실린 논문이 가짜이며 연구 과정에서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한 PD 역시 ‘상식의 저항’에 직면했다. 더욱이 제보자에게는 증거도 없었다. 논문의 진위를 입증하려면 줄기세포와 체세포를 얻어 검증을 해야 했지만 그것은 황 박사 측이 가지고 있었다. 한 PD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모든 것을 의심한 채 ‘진실’만을 믿어야 했다.
제보 그 후 198일, 줄기세포는 없었다
PD수첩과 한 PD의 끈질긴 취재는 결국 줄기세포가 모두 가짜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난자를 매매하고, 연구원의 난자를 이용하는 등 생명 윤리 및 연구 윤리를 배반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척수장애를 가진 9세 아동에게 임상실험을 약속하는 비윤리적 과학자의 면모가 폭로되었다. 만약 그것이 실행되었다면 그 아이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었던 위험한 발상이었다. 그의 논문을 게재했던 《사이언스》지는 결국 논문을 철회했고, 황우석은 연구비 횡령, 사기 등의 혐의를 안고 법정으로 갔다. 2006년 4월, 황우석 박사는 서울대에서 파면을 당했고, 2006년 11월에 서울대 총장을 상대로 교수직 파면처분 취소청구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2014년 2월 파면이 정당하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책으로 펴낸 ‘오늘의 뉴스’
이 책은 우선 취재기이다. 형식이 그렇고 내용도 그렇다. 저자는 발단부터 결말까지 사건의 경과를 따라 가면서, 취재된 사실들을 촘촘히 엮어 ‘사태의 진상’을 그려 보인다. 그가 어렵게 재구성한 그림은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국민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거짓 신화’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한국 사회의 욕구와 시스템은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와 시스템이 온존하는 한 제2, 제3의 ‘황우석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경고음을 발하고 있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환자의 심리 과정에 관한 결론부의 이야기는 그 점에서 시사적이다. 암 선고를 받으면 보통 환자들은 ‘부정 → 분노(화냄) → 우울(의미부여) → 수용(문제 해결)’의 네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황 교수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그랬다. 대다수 국민들은 처음에 그 사실을 믿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마음속에 ‘영웅’으로 자리 잡은 황 교수가 매도되는 데 대하여 분노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조작의 증거가 속속 드러나자, 이제 새로운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따져 보기도 하고, 그나마 국내 언론과 과학자들이 앞장서 사태를 수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제 ‘문제 해결’의 단계로 나아가야 하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한 지 9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취재 후기라 아니라 여전히 ‘오늘의 뉴스’다.
‘상식의 저항’을 ‘진실’의 길로 이끈 저널리스트의 열정이 책의 주인공은 ‘사건’이 아니다. 모든 것을 걸고 온몸으로 진실을 추구한 젊은 언론인(들)의 열정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만한 제보를 접하고 저자가 처음 느꼈던 것은 ‘상식의 저항’이었다. 의혹을 검증하는 과정에서는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실제로, 그 과정에서 저자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진실의 힘이 언젠가는 빛을 본다’는 소박한 믿음을 붙들고 끝까지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진실을 밝히려는 한 인간이 얼마나 처절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역경을 진실을 향한 열정의 힘으로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를 보여 주는 휴먼 다큐멘터리다. 취재가 고비를 맞이할 때마다 저자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저널리스트로서 느껴야 했던 고뇌와 갈등이 책갈피마다 묻어나는 이 책을 희망의 메시지로 읽히게 하는 것은, 진실을 덮으려는 쪽의 온갖 방해 공작을 이겨 내고 마침내 ‘황우석 신화’의 종말을 알리는 ‘특집, 은 왜 재검증을 요구하였는가’를 방영하게 된 대반전의 순간에 저자가 도달한 다음과 같은 자각이다. ‘그렇게 대반전의 막이 내렸다. 이 반전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힘을 모았다. 진실! 그것은 여리고 쉽게 망가져서 이 거친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힘을 누구도 거스를 수 없었다.’
세상을 그래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거짓된 희망’이 아니라 ‘정직한 절망’이다사태 진행 과정에서 저자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취재의 어려움이 아니었다. 도처에 자리 잡은 강고한 허위의 벽, 시시각각 압박해 들어오는 ‘어둠의 힘’도 아니었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국민들이 황우석 교수에게 건 ‘희망’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한 PD는 몇 번이나 자신의 ‘합리적 의심’을 의심했다. 자신이 취재한 사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취재팀 전체가 가장 우려했던 점도 만약에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국민적 쇼크 상태’가 초래”되리라는 것이었고, 가장 신경 썼던 점도 “이것을 어떻게 다독거리고 추스를 수 있는지”였다. 결국 희망은 무너졌고, 희망과 배신감 사이의 진폭이 너무 컸던 탓인지 아무도 그들의 마음을 다독거리고 추스를 수 없었고, 그들은 냉담하게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다. 그러나 세상을 그래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거짓된 희망’이 아니라 ‘정직한 절망’이다. 망각과 냉담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근거 없는 희망이 무너지면 다시 일어설 힘도 사라진다. 그러나 사실을 직시하고 정직하게 절망하면,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있다. 황우석 신화는 무너졌지만, 그 그늘에서 뚜벅뚜벅 연구에 매진해 온 진짜배기 과학자들은 건재하다. 한때 거짓이 세상을 덮었지만, 양심적인 젊은 과학도들과 언론인들은 끝내 그 허위의 벽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의 근거이자 출발점은 우리 사회의 그러한 자정 능력, 결국 ‘진실의 힘!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연대’일 수밖에 없다.
『다빈치 코드』보다 재미있다사건 자체의 무게를 생각하면 ‘재미있다’는 표현은 삼가야 마땅할 터이다. 그러나 한 편의 이야기로 보면, 이 책은 재미있다. 이 책이야말로 현실이 소설보다,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이다. 어찌 보면 이 책 전체가 하나의 조각그림 맞추기이다. 상대편의 거짓을 입증하기 위해 저자가 확보해야 할 증거는 거의 입수 불가능한 것이었다. 저자는 이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밝히려는 쪽과 감추려는 쪽 사이에 접전이 벌어질 것을 예감한다. 그 전투를 헤쳐 나가기 위해 세운 가설들, 그리고 그것들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양측이 벌이는 치열한 두뇌 게임! 상대에게 접근하기 위한 위장, 상대가 내놓을 수를 미리 읽고 그것을 차단하기 위해 짜낸 전술들, 생각지 못했던 약점이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파국으로 몰렸을 때 등장하는 의인들, 이 모든 순간이 박진감 넘치는 추리소설을 연상시킨다.자칫 고통스러울 수 있는 기억의 반추가 덜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이 단행본으로서 독자적 가치를 가진다고 판단하게 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또한 바로 이 ‘원고의 힘’이다.
PD : 한학수
1969년에 태어났다. 1987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까지 마쳤다. 이후 1997년 MBC에 입사해 지금까지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생방송 화제집중, 생방송 모닝 스페셜 등을 연출하다 2001년부터 PD수첩을 맡았다. PD수첩에서는 ‘사형제도를 사형시켜라’, ‘양심적 병역 거부’, ‘군 사법제도를 기소하라’, ‘음지의 절대권력, 국가정보원’, ‘불패신화, 삼성무노조’ 등을 비롯해 ‘효순이 미선이’ 사건 관련 보도를 했다. 2005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한 이후 탐사보도의 아이콘이 되었고, 아시아 TV 어워드 시사 부문 최우수작품상(2006), 올해의 기획 보도상(2006), 한국방송협회 올해의 TV 프로듀서상(2006) 등을 수상했다. 그 외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한국의 진보 3부작’과 아프리카의 눈물 그리고 교황 방한 특집다큐 ‘파파! 프란치스코’와 ‘교황의 길’을 연출했다. 많은 프로그램을 거쳤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마음은 변하지 않고 싶다. 여전히 스타일 있는 작품 만들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