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출판업 자체를 바꾼 대형 미디어 기업의 진출
저자는 출판업이 본래 큰돈을 벌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분야라고 말한다. 출판은 사업(business)보다는 직업(profession)으로 여겨졌으며, 아무도 출판이 대단한 이익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돈을 벌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출판업에 뛰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출판계는 작은 이익에도 만족하던 사람들로 가득한 세계였다.
하지만 거대 미디어 기업이 출판사를 인수하기 시작하면서, 출판업에는 본질적 변화가 생겼고 이내 적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켰다. 좋은 책의 출간이 아닌 높은 수익률이 출판사의 지상적 과제가 되었고, 출판인들은 자신들이 만족하던 소박한 이익이 아닌 투자회사가 기대하는 엄청난 영업 이익률을 달성해야 했다. 대학 교수와 비슷한 연봉을 받았던 출판사 사장들은 이제 자신들의 연봉을 은행가와 비교하고, 편집자는 채용 면접에서 자신이 달성해야 할 매출 할당액이 얼마인지 물어본다. 출판사의 차별성을 드러내던 기획은 찾아보기 힘들고, 모두들 더 많이 팔 수 있는 책에 집중한다.
좋은 책을 출간하는 ‘착한 출판사’를 지원하는 방법들
위기에 처한 출판사를 돕기 위해 어떤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까? 저자는 대형 출판사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책을 출간하는 소규모 독립 출판사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지방에서는 수지를 맞추기 어려운 책을 출간하는 프로젝트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독립 출판사를 돕는다. 프랑스도서협회는 훌륭한 기획의 책을 직접 구매하고, 도서관을 통해서 구매를 돕는다.
비영리 단체나 협동조합을 구성하는 것도 출판의 본질을 흐리지 않고 좋은 책을 출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한결 압박이 덜한 대학 출판부도 독립적인 출판 활동의 거점이 될 수 있다. 프랑스의 저명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시작한 출판활동이 프랑스 최고의 정치 관련 출판사로 성장했던 일화는 훌륭한 사례를 제공한다.
독립 서점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방법들
서점의 어려운 상황은 전 세계적인 현실이다. 프랑스 파리의 서점들은 임대료를 내지 못하고 대형 패션몰로 대체되어 갔다. 뉴욕의 서점 수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숫자의 10분의 1 수준이다. 대형 서점들은 독립 서점 바로 옆에서 아주 낮은 가격으로 책을 팔아 망하게 만든 다음, 다시 가격을 올리는 방법으로 독립 서점을 없앴다.
저자는 서점은 책을 파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분명한 공공적, 문화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파리 시에서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특정 지역의 가게를 서점이나 출판사로 임대하도록 유도한다. 저자는 아예 특정 위치의 몇몇 가게를 시에서 소유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한 방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출판사나 대학도 서점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대형 출판사들이 서점을 직접 지원한다. 지역 도서관 내에서 해당 지역의 독립 서점들이 도서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자는 지원도 귀를 기울일만한 의견이다. 또한 대학 출판사가 인근 독립 서점에서의 구매를 권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벼랑 끝에 몰린 종이 신문을 구해낼 방법은?
신문과 잡지의 쇠퇴는 너무나 심각한 상황으로, 최근 몇 년간은 인쇄매체의 지속 가능성 여부 자체가 논쟁의 대상이었다. 특히 미국의 상황은 매우 심각해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같은 유명 신문사가 부도로 쓰러지고, 많은 신문사들이 큰 폭의 감원을 단행해야 했으며, 저자가 만난 신문업계 종사자들은 그저 “자신이 퇴직할 때까지만” 신문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절박한 바람을 고백한다.
미국의 경우, 종이 신문 발행부수가 크게 줄면서 기자들의 대량 해고가 이어졌다. 당연히 취재의 질은 낮아졌고, 당장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연성 기사가 지면을 채우게 되었으며, 탐사보도나 심층취재는 갈 곳을 잃었다.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심도 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했던 언론의 본연의 기능은 신문사의 새로운 주인이 된 대형 미디어 기업 경영자의 안중에는 없었다.
그러나 젊은 층에게 신문을 대신하고 있는 웹은 선정적이고 질 낮은 콘텐츠로 가득하며, 신뢰성도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점차 “편파적이고 그릇된 주장을 확산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오히려 웹을 통해 잘못된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훈련된 인력이 만들어 내는 심층 기사와 사회에 대한 정제된 분석은 웹이 대신할 수 없는 신문의 고유한 역할과 기능으로서 여전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신문이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는 것은 독자를 되찾아 오고, 신문의 중요성을 사회에 환기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비영리 탐사보도 회사 [프로퍼블리카]는 주류 언론이 무시하는 화제를 취재하여 창립 4년 만에 두 번이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대학과 연계를 맺고 지역 신문사에 기사를 제공하는 활동이나, 기자로서 수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신문사에게 신입 기자의 연봉을 지원하자는 아이디어도 흥미롭다.
신문과 출판의 콘텐츠로 손쉽게 돈을 버는 아마존과 구글,
저자는 구글과 아마존이 올리고 있는 수익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다시 묻는다. 기사를 취재하거나 편집하지 않았으면서도 기사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구글), 책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저자의 인세를 가져간다(아마존)는 것이다. 원래부터 공익적 목적으로 개발된 웹을 이용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구글에 웹의 공익적 역할을 일깨우고 공공 목적의 과세를 해야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장인 로버트 단튼은 아예 구글의 데이터베이스를 공적인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자는 주장을 편다. 또한 저자는 구글과 아마존이 신문사와 출판사에 콘텐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공공적 목적의 정부 과세를 통해 기존 미디어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반세기 넘게 출판 현장의 중심에서 권력과 자본의 압력에 맞선
‘미국 출판계의 전설’
출판계에서 저자 앙드레 쉬프랭은 ‘미국 출판계의 전설’이자 ‘세계적인 편집자’로 불린다. 아버지 자크 쉬프랭은 앙드레 지드, 알베르 카뮈 같은 유럽의 지성을 미국에 소개했던 명망 있는 출판사 판테온의 창립자였고, 저자는 그 뒤를 이어 30여 년간 판테온을 이끌었다. 그가 판테온에 취임한 초기, 미국의 출판계는 매카시즘 광풍으로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지성적 작가들을 상대로 한 마녀사냥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던 상황에서도 꿋꿋한 소신으로 책을 출간하던 모습은 그의 전작 [열정의 편집](원제:Business of Books)에도 잘 나타나 있다. 자본과 권력에 맞서 자신의 출판 철학을 고집하며 판테온을 최고의 인문사회 출판사로 지켜나가던 그는, 그러나 결국 1989년 새로운 주인이 된 거대 미디어 그룹 경영진과의 마찰로 회사를 떠나게 된다.
1990년, 저자는 쉰다섯의 나이로 새로운 모델의 비영리 출판사 뉴 프레스를 설립한다. 비영리 출판사라는 모델은 당시로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었지만, 자본의 간섭을 받지 않는 출판을 지속하기 위해 그가 생각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지금까지도 재단의 기부 등을 바탕으로 비영리적으로 운영되는 뉴 프레스는 그의 출판 철학을 지지하는 노암 촘스키, 피에르 부르디외, 하워드 진 등의 유명 저자들을 보유한, 대표적 인문사회 출판사로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했다.
거대 미디어 기업에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니던 출판계의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출판 철학을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실현시킨 그의 경험 덕분인지, 이 책은 자본과 미디어의 관계를 갈등과 대결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최소한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불안한 경제 속에서도 정부에 기대해봄 직한 정책들, 시민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발상들로 독자를 설득한다.
돈에 갇힌 말이 갈 곳을 잃은 시대, 말의 가치를 다시 묻다.
이 시대의 말의 가치를 지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심층 취재를 포기하지 않는 언론사, 돈이 되지는 않지만 가치 있는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 베스트셀러뿐만 아니라 누군가 찾을지 모르는 책들에게 서가를 기꺼이 내주는 서점들이 바로 그들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이들이 존속하도록 지원하고 응원할 때, 말을 ‘가격’이 아닌 ‘가치’로서 제대로 인정해줄 때, 이 사회의 민주주의의 안녕은 가능할 것이다.
책에 나타난 대형 미디어 기업의 인수나 자본의 간섭은 우리의 미디어 시장에도 진행 중인 위기이며 더욱 거세게 닥칠 현실이다. 작지만 차별성 있고, 다양한 시선과 균형 잡힌 눈을 갖게 하는 미디어를 지켜내기 위해 이 책에 소개된 방법들은 저자가 스스로 거대한 자본의 압력에 맞서며 체득하고 짚어낸 것들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자본의 힘에서 완전히 독립된 미디어를 갖는 것은 어쩌면 너무 이상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그 ‘이상’을 위해 지금 우리가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시도와 실험, 그리고 시행착오들은 시민과 사회가 우리의 말을 건전한 민주주의의 도구로서 다양하고 풍성하게 지키고 가다듬는 데 충실하고 귀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 앙드레 쉬프랭(Andre Schilffrin)
1935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6살 때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망명한 아버지 자크 쉬프랭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버지 자크 쉬프랭은 독일에서 망명한 쿠르트 볼프와 함께 뉴욕에서 판테온 출판사를 설립해 앙드레 지드, 알베르 카뮈 등의 유럽의 지성을 미국에 소개했다. 그러나 판테온은 1961년 크노프를 인수한 랜덤하우스에 100만 달러도 안 되는 금액에 매수되었고 앙드레 쉬프랭은 1962년에 판테온에 입사했다. 쉬프랭은 판테온에 입사한 지 1년도 안 돼 편집담당 임원이 되었고, 이후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30여 년간 판테온을 이끌면서 매카시즘 같은 사상의 압력을 이겨내며 주로 유럽의 지성인과 문인을 발굴, 미국에 소개하는 일에 주력했다. 그가 일할 때만 해도 판테온은 수준 높은 출판물을 추구하며 세계로 창을 연 매우 미국적인 출판사였다. 그러나 수익이 있는 책만 펴낼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경영주의 압력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출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결국 1989년 판테온을 퇴사했다. 그는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출판을 신념으로 1990년 비영리 출판사 뉴 프레스를 설립해 운영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