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사상가, 철학자, 수학자, 교육 혁신가이자 실험가, 지성과 사회와 성 해방의 옹호자, 평화와 시민권과 인권을 부르짖은 운동가였던 버트런드 러셀의 일생은 놀라우리만치 많은 굴곡과 풍요로 점철된 삶이었다. 자신의 성격과 믿음들에 어긋남 없이 서술되는 그의 인생 이야기에는 박력과 매력, 그리고 진솔함이 담겨 있다. 그의 일생을 거쳐 간 수많은 폭풍우와 일화들이 눈앞에 보듯 선명하게 회고되고 있는 이 자서전은, 명쾌하고 정직한 문체로 참으로 비범한 사람의 비범한 인생을 그린 20세기의 가장 감동적인 자화상으로 알려져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1872년에 태어나 1970년에 숨졌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듬해에 태어난 그는 98년 일생 동안,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핵무기 개발과 사용, 베트남 전쟁과 같은 격렬한 정치 사회적 변동과 정신분석학, 통계학 등 현대 학문의 탄생을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다. 이 격동의 시대를 한 세기 가까이 살아낸다는 것도 보통 사람에겐 기대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의 업적에 이르면 누구나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분석철학의 초석을 놓은 철학자였고, 세계적인 연대 활동에 뛰어든 정치가였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에세이스트였다. 숱한 철학자들이 러셀의 영향을 받았지만, 러셀주의자라는 단어는 없다. 현대철학자라면 기호논리학, 분석철학과 무관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나지만, 때론 오만하기까지 한 이 무신론자의 자신만만하며 쾌활한 뒤집어 보기, 들여다 보기는 모든 철학자들의 기본 소양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굳이 말하자면, 현대철학자들은 모두 반쯤은 러셀주의자들이다.
이 자서전은 각 장마다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러셀 자신이 쓴 회고와 편집자가 수집해서 넣은 편지글이다.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을 회고해 내는 것으로 자서전을 시작한 러셀은 할 수 있는 한 가장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해내어 써두었다. 독자는 그가 언제 처음으로 키스를 했는지 알 수 있으며, 네 차례에 걸친 결혼생활의 내밀한 부분까지 엿볼 수 있다.
이 내밀한 고백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가 살아온 인생이 남다른 데에 원인이 있다. 이를 테면, 그가 친구 험담을 살짝 한다면, 그것은 화이트헤드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에 드러나는 화이트헤드의 모습은 차분하고 합리적이고 사려 깊고 분별이 있었으나, 그를 깊이 아는 사람들은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자제력 강한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는 온건하다고 보기 힘든 충동들로 고생하고 있었다'
또, 여행 중에 만난 사람에 대해 몇 마디 한다면, '레닌과 한 시간 동안 대화한 후 나는 약간 실망을 느꼈다. 애초에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으나,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지적 한계가 뚜렷이 느껴졌다'
아인슈타인, 에리히 프롬과 국제적 연대 활동에 대해 논의하는 편지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작업을 평가하고 두둔하는 편지글, 카르납, 콰인, 펄 벅, 주은래 등 셀 수 없이 많은 지난 세기의 거인들과 나눈 편지를 들여다 보는 것은 러셀의 회고를 읽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일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어떤 의미에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진정한 의미의 개인이다. 이 개인은 놀라운 지성과 실천 의지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왔고, 특유의 반성적 태도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해 두었다. 독자들은 러셀을 통해 20세기 지성사의 중심으로 뛰어든다. 그의 회고와 일기, 편지글에서 통찰과 함께 특유의 유머와 낙관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돌아보는 지난 세기 곳곳에서, 놀랍게도 희망을 발견할 것이다.
저 :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20세기 최고의 지성,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여성 성해방 운동가, 전투적 평화주의자, 철학ㆍ수학ㆍ과학ㆍ교육ㆍ정치ㆍ예술과 종교를 아우르는 전방위 문학가로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논리학자인 러셀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건재하다.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사람으로로 철학, 수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할 정도로 왕성한 지식욕을 가진 인물이었다.
1872년, 제국주의 영국의 수상을 두 차례나 역임한 존 러셀 경의 손자로 태어난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이 가진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행동으로써, 글로써 시대의 진실을 알린 저항하는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의 강사가 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중 반전운동(反戰運動)에 참여한 것이 화근이 되어 사직했고, 1918년에는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후 유럽 및 러시아와 미국 등을 방문하여 대학의 강의를 맡기도 했으나 주로 저술활동에만 전념했다.
그의 탁월함은 자신의 지능을 최대한 사용하는 놀라운 능력(그는 하루에 거의 고칠 필요가 없는 3,000 단어 분량의 글을 썼다고한다)과 기억력이 밑받침 되었지만 그의 활동력의 원천은 심오한 휴머니즘적 감수성이었다. 그의 사상은 분리된 두 개의 주제를 갖고 있었다. 그 하나는 절대 확실한 지식의 탐구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이었다. 전자는 그의 스승이며 협력자였던 화이트 헤드와의 공저 "수학원리"로 결실을 맺어 현대의 기호논리학과 분석철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이 책은 수학적 대상을 실재라고 간주하여 논리에 의해 기초를 세우고 수학을 논리로부터 도출하려는 그의 시도를 담고 있었다.
철학자로서의 그의 업적은 특히 이론철학에서 두드러지고 있다.그는 무어, 비트겐슈타인 등과 더불어 케임브리지 학파의 일원으로 19세기 말부터 영국에서 유력한 학설이었던 관념론에 대한 실재론을 주장했었다. 하지만 그는 곧 헤겔학파, A.마이농 등 당대의 철학 흐름 변화를 따라 자신의 사상을 조금씩 발전시켰으며 신실재론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는 인식론과 존재론을 사상의 소재로 활용했으며 영국 고유의 경험론을 그 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의 사상은 빈학파나 논리적 실증주의를 중시하는 철학자 및 논리학자에게 자극을 주게 된다. 논리학자로서의 러셀은 프레게의 업적을 계승했으며, 페아노와 쿠츨러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며 데데킨트와 칸토어 등의 현대수학의 성과를 근거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했다.
현실 사회에 대한 진솔한 관심과 스스로가 자유로운 무정부주의, 좌파, 회의적 무신론적 기질이라고 불렀던 그의 성향은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평화주의자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핵 무장 반대자로서 사회변혁운동에서 일관성 있게 표현되었으며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1979년 웨일즈에서 사망할 때까지 문필가, 철학자, 무정부주의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외계의 지식』,『철학이란 무엇인가』,『서양 철학사』,『사회개조의 제원리』, 『심리분석』, 『서양철학사』, 『물질의 분석』, 『의미와 진실의 탐구』, 『수리철학 서설』 등이 있으며, 특히 1950년에는 『철학에 있어서의 과학적 방법』, 『자유와 조직』, 『권위와 개인』 등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역 : 송은경
1963년 부산 출생.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프로방스에서의 1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마키아벨리』, 『안데르센 지중해 기행』, 『상처뿐인 어린 천사 엘렌』, 『라테란의 전설』, 『바나나』, 『러셀 자서전』, 『커피 이야기』, 『인간과 그밖의 것들』 등의 번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