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절판도서입니다.
전쟁과 혁명의 세기에 마침표를 찍고, 21세기 새로운 세계를 구상하는 윤리 테제!
헤겔은 도덕을 주관적인 것으로 보고, 윤리를 습속 규범(가족, 공동체, 국가)으로 생각해 그 상위에 둔다. 그러나 이것은 헤겔 특유의 구별이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도덕과 윤리는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단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무엇을 말하는가를 분별하는 일이다. 책 끝에 참고 자료로 칸트론의 마지막 장을 덧붙였다.
역자 후기
이 책은 가라타니 고진의 {倫理21}(平凡社, 2000)을 번역한 것이다. 가라타니가 이 책의 제목을 {윤리 21}로 한 것은, 21세기는 윤리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알다시피 지난 20세기는 전쟁과 혁명의 세기였다. 그런데 이 책의 번역을 다 마친 21세기의 첫 해 초가을, {윤리 21}이라는 제목을 무색케 하는, 아니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터졌다.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미국방성 건물에 대한 테러, 그리고 그에 대한 미국의 즉각적인 보복 전쟁(엄밀하게 말해 보복 살인이나 폭격일 것이다)의 선포가 그것이다. 이 사건은 지난 20세기의 산물이면서 그 해결 방식이 21세기의 성격을 규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전쟁의 세기 20세기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 종교와 인종간의 갈등, 빈부의 격차, 환경파괴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단적으로 말하면 윤리성이 결여된 세기인 것이다. 그래서 가라타니는 21세기는 윤리성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윤리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가라타니는 도덕과 윤리를 구별한다. 즉 사회나 공동체의 도덕을 '도덕', 세계시민으로서의 도덕을 '윤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동체 내에서는 도덕적이지만 윤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윤리의 문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내의 사고에 대해 의심해보는 데서 시작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의 테러사건은 윤리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나 그에 대한 보복 전쟁을 다짐하는 미국 모두 그들 사회나 공동체 내에서는 도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윤리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떤 점에서 이슬람 원리주의는 타자에게서 자신의 모습만을 발견하려는 서구의 욕망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그들의 절망을 껴안지 못한다면 즉 '타자'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또 다른 절망만을 낳을 뿐이며, 그 절망은 다시 그들 공동체의 존재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가라타니의 말대로 윤리적으로 행동하면 그 사회나 공동체 내에서 곤란한 처지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 이 책에서 가라타니는 서양 여러 나라들의 식민지주의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도 말한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사죄 문제를 말할 때 항상 비교되는 국가가 독일이고, 사실 이 두 나라만이 전쟁에 대한 책임 추궁을 당했다.
일본이 홋카이도, 오키나와, 대만, 한국, 만주 등에서 행한 식민지 지배가 '침략'으로 비난당하고 사죄를 요구받는다면 인디언을 몰아내고 국가를 건설한 미국 그리고 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를 식민지화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 역시 사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게 다가온다. 그것도 일본 쪽에서 나온 말이라서 더욱 그럴 것이다. 가라타니가 말하듯 이것은 상대적으로 일본을 면죄하는 것도, 비서양 국가들의 원한이나 보복의 문제도 아니다. 그저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낯설게 다가온다는 사실이 더 문제인 것이다.
이번 테러 사건에서 자유, 문명, 빛 등의 말을 사용하면서 핵무기 사용도 검토하겠다는 미국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사용해 수십 만의 민간인을 살해한 적이 있다. 일본의 항복이 시간 문제인 상황에서 진주만 공습을 이유로 또 자국 지상군의 피해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수십 만의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것은 아무리 전시라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일본 천황과 군부의 책임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지는 않는다.)
또한 미국은 한국전쟁에 일본을 끌어들여 식민지 지배의 문제에 면죄부를 주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일본의 군사력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해 일본은 평화헌법을 개정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그래서 경제적인 문제를 별도로 하고서라도 이 사건은 지금 우리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은 주로 전쟁책임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라고 해서 그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한일간의 역사 문제든 최근에 문제가 된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든 결국 우리 내부의 문제가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제주도의 4·3 항쟁, 한국전쟁 중의 양민학살 사건, 베트남 전쟁, 5·18 광주민중항쟁, 그리고 역사 교과서 문제를 비롯한 한일간의 문제 등에 대해서도 사회나 공동체 내부의 시선에 갇혀있는 한 진정한 해결을 기대할 수는 없다. 공동체 내부의 사고에 대해 의심해 보는 것, 윤리의 문제는 거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저 : 가라타니 고진
가라타니 고진은 '인문학계의 무라카미 하루키' 라고 불릴만큼 한국 젊은 인문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역사, 건축, 철학 등 전방위 문예평론가이다. 현재 컬럼비아대학 객원교수로 있다. 일본의 1960~70년대의 인문학계는 일본의 샤르트르라고 불린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가 이끌어왔다면, 1970년대 후반은 가라타니 고진으로 대표된다. 그의 사유 특징은 비서구인이 가진 주변부적 문제의식을 서양의 근현대사상으로 풀이함으로써 세계적인 보편성을 얻는 다는 점이다.
역 : 송태욱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대학교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하며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사랑의 갈증』, 『비틀거리는 여인』, 『세설』, 『만년』, 『환상의 빛』, 『탐구 1』, 『형태의 탄생』, 『눈의 황홀』, 『윤리 21』, 『포스트콜로니얼』, 『트랜스크리틱』, 『천천히 읽기를 권함』, 『번역과 번역가들』,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소리의 자본주의』, 『베델의 집 사람들』, 『매혹의 인문학 사전』,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핀란드 공부법』, 『빈곤론』, 『유럽 근대문학의 태동』, 『세계지도의 탄생』, 『십자군 이야기』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호모 이그니스, 불을 찾아서』,『바이바이, 엔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