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시각장애학생들이 사진을 찍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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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이 맞지 않은 채 흔들려버린 사진. 휑한 바닥을 덩그러니 찍어 놓았다. 유명한 사진작가들은 종종 의도적으로 이런 효과를 내어 작업을 하기도 한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이런 작품 앞에 서서 이해해보려 애쓴 기억은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 이 작품은 유명작가의 철학적 작업결과물이 아니라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학생이 찍은 사진이다.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된다. 안보이는데 사진을 찍으니 이 모양일 수밖에. 그런데, 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손화성 / 대전맹학교 (/ pp. 27~28)
시각은 오감(五感) 중 하나일 뿐
“나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나면 이름을 부르기도 하며 카메라를 아래로 향해 그 소리를 찍어요.” 대전맹학교에 다니는 화성이의 설명이다. 앞을 잘 볼 수는 없지만 시각장애인들도 자신의 앞에 있는 대상을 인식하고 인지한다. 오감 중 시각이 안 좋을 뿐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은 비장애인과 똑같이 작용한다. 오히려 시각을 제외한 감각들은 비장애인들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 시각장애학생들은 대상과 사물, 세상에 대해 시각 외의 감각들을 이용해서 알아가고 있다.
사진찍기는 그러한 그들의 인식과 인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국립서울맹학교의 예슬이는 낙엽이 굴러가는 소리를 듣고 운동장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소리를 찍은’ 예슬이의 사진에는 낙엽이 뒹굴고 있는 운동장의 쓸쓸한 정취가 고스란히 담겼다. 예슬이는 청각으로 가을의 쓸쓸함을 느꼈고 그것을 사진으로 전환하여 우리가 시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예슬이가 소리로 본 장면을 우리는 눈으로 보았다. 그렇게, 비로소 소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예슬 / 국립서울맹학교 (/ pp. 24~25)
‘본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예술가들의 모임 ‘우리들의 눈’
‘우리들의 눈’을 후원하는 디자이너들의 모임 ‘샌드위치’
화성이와 예슬이 모두 ‘우리들의 눈’ 프로젝트에서 진행하는 사진반에서 사진찍기를 배웠다. 이와 같이 시각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수업은 15년 전 (사)한국시각장애인예술협회가 주최하는 ‘우리들의 눈(Another way of seeing)’이라는 아트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 도예를 시작으로 소조, 회화에 이르기까지 선생님들(티칭 아티스트)의 도움으로 불가능한 수업은 없었다. 준맹(準盲), 약시(弱視)를 가진 친구들은 연필과 물감 등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아예 앞을 보지 못하는 전맹(全盲)인 친구들도 찰흙을 빚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물들을 사실적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던 중 4년 전에 ‘우리들의 눈’을 후원하는 디자이너들의 모임 ‘샌드위치’의 노력으로 한 학교에 사진반이 생겨서 사진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시각적인 감각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시각장애학생들의 사진찍기는 일반의 사진찍기와 달랐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카메라가 대상을 보는 법, 거리와 크기, 각도 등에 대한 감을 익혀야 했다. 처음에는 정해진 대상을 찍고 그 사진이 어떻게 찍혔는지 선생님의 설명을 통해 전해들었다. 그러다가 대상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가까이 다가가서 만져보기도 하고 소리를 듣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촬영을 계속하게 되었다. [마음의 눈]은 바로 이렇게 나온 사진작품들을 모아 엮은 사진집이다. 그리고 ‘샌드위치’는 [마음의 눈]의 수익금을 모아 전국 13개 맹학교에 사진반을 만들 계획이다.
눈이 보이지 않기에 찍을 수 있었던 사진
보이는 것이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이게 미장원 냄새가 제일 많이 나요.” 한빛맹학교에 다니는 찬별이는 자신의 사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파마할 때 사용하는 롤이 저렇게 고운 색을 갖고 있었다니. 찬별이가 자신의 후각으로 발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예쁜 색색의 파마 롤을 무심히 지나치고 말았을 것이다.
박찬별 / 한빛맹학교 (/ p.38)
소설가 윤영수는 2001년 ‘우리들의 눈’ 작품 전시에 대해 평하면서, “‘우리들의 눈’은 비장애인인 우리들의 두 눈을 되짚어보고 의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쓸데없는 것, 추잡하고 더러운 모습들을 맥맥이 담아내느라 한껏 오염된 내 눈, 내 눈은 과연 온전한가”라는 물음을 던지기도 했다(2001. 12. 7. 조선일보).
‘본다’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역설적으로 ‘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시각장애를 통해서 찾아가기 시작했다. 예술인들은 시각장애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시각장애를 미술에 있어서 치명적 결함이 아닌, 또 다른 창의적 가능성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4명의 유명사진작가들 참여,
‘보이는 것은 무엇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한편, [마음의 눈] 후반부는 사진작가 강영호, 김태은, 조선희, 최금화가 참여하여 꾸몄다. 이들 프로작가들에게는 ‘보이는 것은 무엇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다소 난해한 주제가 주어졌다.
저마다 생각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었지만 작품의 전반적인 기조는 비슷하다. 무엇보다도 작가들은 시각장애학생들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네 명 중 두 명의 작가-김태은, 조선희-는 핀홀 카메라(pinhole camera)를 사용하였다. 눈 앞의 사물이 정확하고 또렷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학생들의 느낌을 경험해보려는 적극적인 시도였다.
조선희 (본다는 것, 보이지 않는다는 것 # 1 / p.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