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양
책 소개 요약
『사피엔스혁명: 인류라고 정의하는 거의 모든 것의 시작』은 고고학 연구를 바탕으로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의 생물학적, 문화적 기원이 후기 구석기시대에 있음을 밝히는 학술교양서이다. 인류의 전 지구 확산은 신석기혁명과 농업혁명,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빙하시대 수렵채집민의 성취이며, 이때 이미 오늘날 전 세계 인류 모두가 공유하는 토대가 놓였다.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로 퍼져 나간 후기 구석기 수렵채집민은 동굴벽화와 비너스상으로 대표되는 예술과 상징, 현대 사회 존속의 근간인 공유와 협력, 평등 지향 등 이전 고인류와는 다른, 오늘날 인류라고 정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의 초석을 다졌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인 필자는 이를 ‘사피엔스혁명’이라 정의한다.
출판사 리뷰
80억 인류의 공통 토대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 책은 고고학이라는 창을 통해 “인류 공통의 토대(common ground)는 후기 구석기시대 수렵채집민이 놓았다”는 해답을 내놓는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는 이르게는 65,000년 전 동남아시아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까지, 50,000 년 전 서아시아에서 유럽까지, 다시 고위도 지방과 동아시아를 거쳐 빙하시대가 끝나기 전 아메리카대륙까지 이동했다. 구대륙과 신대륙 전역에 단일한 생물 종으로서 사피엔스가 성공적으로 퍼져 나간 것이다.
인류의 전 지구 확산은 신석기혁명과 농업혁명,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빙하시대 수렵채집민의 성취이며, 이때 이미 오늘날 전 세계 인류 모두가 공유하는 토대가 놓였다. 인간이 창의적인 의지와 노력으로 자연의 제약에서 벗어나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을 성취했다고 얘기되지만, 신석기혁명의 거의 모든 요소, 곧 토기도, 간석기도, 정주도, 식물재배도 빙하시대 끝자락 수렵채집민이 만들었다.
인류문화는 구석기시대 야만의 상태에서 신석기시대와 더불어 농업혁명이 일어나 정주마을을 이뤄 미개사회에 접어들고, 이후 금속문명을 토대로 국가가 등장해 오늘날 역사로 발전했다는 인식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하지만 고고학 연구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인류를 정의하는 거의 모든 특징은 후기 구석기시대 수렵채집민으로부터 내려온 유산이라는 것이다. 현존하는 수렵채집민이 공유하는 일반성, 집단의 크기와 이동성, 영역성, 공유, 평등사회, 인구구성과 관념, 행동패턴, 사회구조의 공통성은 후기 구석기시대 수렵채집민에 연원을 두고 있다 할 수 있다.
후기 구석기시대는 동굴벽화와 비너스상으로 대표되는 예술과 상징, 현대 사회 존속의 근간인 공유와 협력, 평등 지향 등 이전 고인류와는 다른, 오늘날 인류라고 정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의 초석이 놓인 시기였고, 이 점에서 진정한 글로벌 역사의 출발점이다.
사람은 단일한 생물종이다
한때 현재 지구상의 사람들이 단일하지 않고 서로 다른 기원을 가졌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이른바 다원기원설과 이에 기반한 인종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독일이 패망한 덕에 배격되었다. 인류는 하나의 생물 종이라는 생각, 곧 단일기원설은 찰스 다윈이 1859년 『종의 기원』을 출간한 이래 인류를 설명하는 거스를 수 없는 명제가 되었다. 이 책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피부색, 나이와 성별, 사는 곳, 외양을 막론하고 모두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라는 전제 아래 그 기원을 찾아 나선다.
생물진화와 문화진화가 만났을 때
화석 등 고고학적 자료는 후기 구석기시대(45,000~12,000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확산한 현생인류가 이전 옛 호모 사피엔스나 네안데르탈인 등 다른 인류와 해부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알려 준다. 특히 최근 인류 진화 연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DNA 분석은 이런 고고학적 연구 결과를 재증명해 주고 있다.
하지만 현생인류의 전 지구 확산은 생물학적 진화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현생인류의 성공적 확산을 이해하려면 이전 인류와 다른 생물학적 현생성(modernity)과 함께 후기 구석기시대의 행위·문화적 현생성을 고려해야 한다. 두 가지가 결합했을 때 비로소 완전한 현생인류에 이르고, 현대인까지 이어져 온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의 행위·문화적 현생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추상적 사고능력과 상징으로 동굴벽화나 비너스 조각 같은 장신구 등장이 고고학 증거로 꼽힌다. 여기에 더해 뗀석기기술과 골각기의 발달, 생계자원의 다양화, 인구성장과 사회네트워크 확립 등이 후기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행위·문화적 특징이다.
수명연장과 할머니가설
현생인류의 생물학적, 문화적 현생성이 전 지구 확산이라는 또다른 ‘혁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명연장에 따른 인구증가가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 등장한 것은 30만~20만 년 전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중기 구석기시대에 머물렀다. 또 8만~7만년 전에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의 요소가 등장했지만 세계적 확산에 성공한 것은 45,000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무리였다.
아프리카의 현생인류가 진화와 확산 그리고 문화혁신에서 주도적 위치에 있었던 것은 인구가 충분히 컸기 때문이다. 인구증가는 수명연장과 맞닿아 있다. 이전 인류와 달리 현생인류 때 들어서 수명이 크게 늘어났다. 노년 인구가 청년 인구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는 아이를 낳지 않는 할머니가 손주를 돌보며 자손의 생존율을 높여 인구증가를 추동했을 것이라는 ‘할머니가설’을 낳는다.
현생인류의 세계적 확산을 이끈 동력은 무엇일까?
지금처럼 전 지구에 인류가 퍼져 나간 것은 후기 구석기시대였다.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을 인류의 세계적 확산 동력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지만 고고 자료들은 이들 시기보다 앞선 후기 구석기시대에 확산의 완성이 이뤄졌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확산의 성공을 생물학적, 문화적 진화와 수명연장에 따른 인구증가로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사회네트워크’를 해답으로 내놓는다. 현존하는 수렵채집민들을 관찰 기록한 민족지 연구를 보면, 수렵채집민들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무리를 구성하고 혼인 관계를 맺는다. 이런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건강했고, 누대를 거치며 이런 행동 패턴이 자연스럽게 일반의 양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이었다. 이런 사회구성의 토대는 협력을 생각하지 않고선 이해할 수 없다. 협력은 인간사회 구성의 기본 특성이다. 이를 통해 공간에 따른 자원의 불균형, 계절 그리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생인류의 사회네트워크는 소규모 근거리 네트워크가 아니었다. 멀리 백두산이나 일본에서 유래했을 흑요석 석기가 한반도 최남단에서 발견되고, 서유럽이나 동유럽에서도 200~600㎞나 이동했을 원석이나 바닷조개가 발굴되고 있다. 이는 직접교류권을 넘어서는 간접교류의 네트워크가 그만큼 컸다는 것을 의미하고, 확산의 동력이었을 것이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매머드는 빙하시대 사냥꾼 때문에 멸종했나?
현생인류는 이런 광역네트워크를 통해 출발지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 아메리카 대륙까지 확산에 성공했다. 15,000년 전후 현생인류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 많은 유적을 남겼다. 애초 북아메리카(미국 뉴멕시코주 클로비스)에 먼저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보다 앞선 시기에 남아메리카(칠레 몬테베르데)에 도달한 현생인류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유적지가 발굴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끈 것은 이 시기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해 여러 곳에 서식하던 매머드 등 대형동물들이 절멸했다는 사실이다. 매머드 뼈 화석과 함께 발견되는 석기를 근거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해 온 현생인류가 대형동물 사냥꾼이었고, 이로 인해 매머드 등이 멸종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등장했다. 이런 상상은 아직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매머드를 멸종으로 몰아넣은 것은 사냥이 아니라 기온상승과 환경변화로 보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사냥은 절멸로 가는 불길에 그저 작은 부채질 정도였다는 것이다.
농업혁명 이전 사피엔스혁명이 먼저
지구에 살고 있는 80억 인류는 모두 같은 호모 사피엔스(현생인류)다. 생김새와 피부가 달라지고 언어와 문화가 분화한 것은 불과 만 년 전, 수천 년 전의 일이다. 신석기혁명,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이 인류 사회에 큰 전환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수렵채집민에서 시작했다. 흔히 농경은 신석기시대에 출발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른바 신석기혁명의 요소들, 식물재배와 동물사육, 정주마을, 토기, 간석기는 이미 후기 구석기 수렵채집사회에서 등장했다. ‘혁명’이라는 비유적 표현을 사용한다면 고고학 증거는 농업혁명보다 사피엔스혁명이 먼저 진행됐음을 보여 준다.
사피엔스혁명의 기저에는 공유와 협력, 평등 지향이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단일 생물종으로 가장 성공적인 진화의 역사를 가진 배경에는 불평등보다는 공유와 협력, 평등 지향을 추구한 습속과 사회 기제가 있었다. 물적 증거를 수집하고, 그 자료로 삼아 분석하는 고고학의 시각으로 보면 후기 구석기시대 사회에서 사회불평등과 위계의 증거는 빈약하다. 나아가 신석기시대 1,000년이 넘게 지속된 차탈회위크 정주 농경마을에서도 위계화의 증거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평등을 지향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사회였기에 그렇게 오래 이어졌을 것이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수많은 고고학 자료에서 수렵채집민의 공유와 협력의 증거가 위계와 불평등의 구조화를 압도한다.
저 : 성춘택
서울대학교와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수학했으며, 충남대학교, 경희대학교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선사고고학과 고고학 이론과 방법론, 수렵채집사회, 석기 분석, 고고학사와 관련한 글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2017년 『석기고고학』(2019년 삼불학술상 수상)을 저술했으며, 『인류학과 고고학』(크리스 고스든, 2001), 『다윈 진화고고학』(마이클 오브라이언·리 라이맨, 2009), 『기원과 혁명: 휴머니티 형성의 고고학』(클라이브 갬블, 2013), 『수렵채집사회: 고고학과 인류학』(로버트 켈리, 2014), 『고고학사(2판)』(브루스 트리거, 2019), 『빙하 이후: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 20,000∼5000 BC』(스티븐 마이든, 2019), 『고고학의 역사』(브라이언 페이건, 2019)를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