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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으니, 말해야 해요

저자
한베평화재단  엮음
  • 가격

    17,000 원

  • 출간일

    2026년 09월 07일

  • 쪽수

    200쪽

  • 판형

    125×219

  • ISBN

    9791162734346

  • 구매처 링크

이름을 부르는 건

없는 몸을 어루만지는 일이야

 



사라진 죽음을 불러오는 시의 언어

베트남전쟁 아카이브 시집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

 

베트남전쟁을 증언하는 아카이브 시집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가 출간되었다. 한베평화재단 창립 10주년을 맞아 기획된 이 책은 60여 년 전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학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피해자의 유품과 생존자의 진술을 비롯한 역사적 기록과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베트남전쟁을 다룬 한국 시들을 한데 모은다.

한국과 베트남의 인연은 본래 오래되고 평화로웠다. 조선과 안남의 사신들은 15세기 중반부터 중국 연경에서 빈번히 교류하며 시를 주고받는 창화(唱和)의 우애를 다졌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두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라는 비극이 놓인다. 한국은 베트남전쟁에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총 32만 명의 병력을 파병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군은 하미 마을을 비롯한 베트남 중부 지역에서 9천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는 전쟁의 참혹한 기억과 그 속에 뿌리내리는 인간의 양심을 아카이브 시라는 새로운 문학 형식으로 조명한다. 직접 참전했던 시인들의 작품부터 베트남전쟁의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한 후대 시인들의 신작시,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완성한 실험시로 이어지는 이 책은 용서를 빌고, 원한을 풀고, 함께 살아가는 해원풀이와도 같다”(황석영 추천사).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과거에서 다시 현재로 이어지는 시편들을 통해 베트남전쟁이 누구의 것인지, 그 어수선한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보자.

 

 


총구 앞 청년에서 학살 뒤편의 사람들까지

반세기에 걸친 전쟁의 시편들

 

1파도들이 저 멀리 수평선을 타고는 베트남전쟁에 관해 기존에 발표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신세훈, 김명인, 송기원, 김태수 등 참전 세대와 비극을 기억하고자 베트남에 찾아간 김형수, 이재무, 나희덕 등을 포함한 16명 시인들의 목소리가 또렷이 담겼다. 비둘기부대 소위로 전장에 투입된 신세훈은 차마 인간에게 총을 겨누지 못하고 더 싸워야 하는 이유를 규명하라”(총구 앞에 조준된 한마리의 새여)며 울부짖는다. 마찬가지로 참전 시인이었던 송기원은 사상과 인간과의 함수관계는 무엇”(월남에의 기억·1)인지 궁금해하며 무기 저편의 아침해를 그리워한다. 베트남 복판에서 싸움의 의미를 묻는 여러 문인들의 음성은 한국군의 만행을 반성하는 후대 시인의 기록으로 이어진다. 베트남을이해하려는젊은작가들의모임의 일원인 이승철은 한국군에 의해 주민 135명이 학살된 마을을 찾아가 추모 위령비를 어루만지며 저러이 사랑스럽고 아름답던 그날의 하미”(하미에서)를 기억한다. 시인 이종형은 전쟁으로 두 발목과 가족을 잃은 팜 티 호아 할머니의 손을 맞잡으며 제주 4·3 사건 당시 이미 섬에서 본 적이 있”(팜 티 호아)는 얼굴들을 겹쳐 떠올린다.

이처럼 시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전쟁의 시간은 제2없는 몸을 어루만지다에서 더욱 구체적인 형상을 얻는다. 한여진, 송경동, 김현아, 김해자, 김용택, 김수우, 허영선, 이대흠, 허은실 등 9명의 시인은 한베평화재단이 수집해온 사진과 문서, 피해생존자의 증언과 같은 아카이브를 마주하고 새로이 시를 썼다. 피해자의 주검에서 나온 탄환, 학살로 황폐해진 마을의 풍경, 죽은 가족의 초상화, 이름 없이 세상을 떠난 아기의 사진…… 역사를 입증하는 기록 하나하나가 시의 언어를 통과하며 선명해진다. 여섯 살 나이에 한국군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은 즈엉떤터이는 한여진의 에서 그리하여 너는 모든이었던 사람으로 다시 기억된다. 붕따우 마을에서 36명의 이웃들이 살해될 때 시신 더미에서 아이를 낳았던 릉티퍼이는 김현아의 겨울골짜기에서 목숨 있는 것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소원을 되뇐다.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는 베트남전쟁의 끝내 지워지지 않은 이름들이 쌓아 올린 아카이브를 뼈대로 삼”(손희정 추천사)는 시집이다. 시인 허은실이 말하듯 이름을 부르는 건 없는 몸을 어루만지는 일”(따이한 제사)이다. 전쟁의 기억이라는 뼈에 시는 두꺼운 살을 입힌다. 한 편의 시는 하나의 몸이 되고, 몸들은 서로 기대어 우리가 외면해오던 역사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시인에서 시민으로

전쟁을 기억하는 공동의 목소리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는 베트남전쟁에 관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3붉고 깊고 시린에는 베트남전쟁 기록물을 재료로 한 시민들의 블랙아웃 포에트리, 파운드 포에트리, 비주얼 포에트리 등 3종류의 실험시가 수록되어 있다. 응우옌티카인과 응우옌티떰 자매가 전시 성폭력을 증언했던 기사, 한국군의 학살을 폭로하는 위령비 문구, 대한민국 국방부가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에게 보낸 청원회신 문서 등에서 시민들은 단어를 고르고 지우며 전에 없던 문장들을 길어 올린다. 연대를 꿈꾸던 베트남 소설가 반레의 작품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은 해체되고 재구성되어 또 하나의 시가 되고, ‘당신이 바라는 평화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시민들의 대답이 모여 평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그림이 된다.

이 책이 되살리는 것은 60여 년 전 베트남의 비극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역사를 선택하고 어떤 역사를 지워왔는가에 대한 질문이며, 타인의 고통을 알아차린 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존재적 고민이기도 하다. 김애란 전 대법관이 말하듯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의 시들은 지워진 역사와 기억의 경계를 함께 지킨다. 한때 총을 들고 마주했던 한국과 베트남이 창화의 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시작엔 과거를 밝히는 언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거듭 말한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꼭 기억하라!”

엮음 : 한베평화재단

베트남전쟁에 대한 사죄와 성찰을 바탕으로 2016년 설립된 비영리 평화운동단체.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을 계승해 전쟁의 진실을 밝히고 그 상처를 마주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진상규명, 아카이브, 평화교육, 피해지역 지원과 문화교류 등을 통해 전쟁의 기억을 평화의 연대로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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