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 · 학술
고고층서학 최초의 교과서
고고학 유적의 발굴에 적용되는 고고층서학의 기본원칙과 기록 방법 등을 자세하게 다룬 이 분야 최초의 교과서적 저작이다. 저자는 사람의 행위에 의해 형성된 층서의 해석에 자연적 퇴적층, 즉 지질학적 층으로 구성된 유적 층서를 분석하는 지질층서학의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잘못을 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1979년 초판 발간 이래 비판자들에 맞서 10년간 여러 사례를 통해 내용을 보완하고 가다듬은 제2판의 번역서이다. 유적을 구성하는 퇴적층과 각종 유구의 층서를 잘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보고서가 흔치 않고, 상하 중복된 유구보다 평면에 흩어져 발견된 유구가 더 많은 우리나라 유구의 층서 해석에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질층서학이 확립한 층서의 법칙
지질학적 퇴적층이 하나의 층 위에 다른 층이 놓이며 층서를 이룰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질층서학이 확립한 층서의 법칙은 누중의 법칙, 수평퇴적의 법칙, 연속의 법칙이다. 누중의 법칙은 육괴를 구성하는 일련의 지층에서 위의 것이 후대에 만들어졌고 아래의 것이 더 오래되었다는 가정이다. 수평퇴적의 법칙은 지층은 수중에서 대체로 수평면을 이루며 형성되는데 표면이 경사진 지층은 퇴적 이후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연속의 법칙은 지층은 원래 전체가 한 덩어리를 이루며 쌓인다는 가정이다. 따라서 만약 지층이 노출되어 있다면, 그것은 침식의 결과이거나 혹은 원위치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또 다른 법칙은 동물상 계승의 법칙(혹은 화석 동정의 법칙)으로, 이것은 이어지는 시기에 살았던 여러 생명체의 화석 유해는 지층들이 원위치를 벗어났거나 뒤집혔을 때 그 상대 순서를 알려줄 수 있다는 가정이다.
고고학자들은 지질층서학의 기본원칙은 사람이 만든 층서로 구성된 고고 유적의 해석에도 적절하다고 생각해왔다. 다시 말해 고고층서를 자연적 퇴적층과 동일한 원칙에 따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의 모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간과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류의 등장과 함께 자연적 영력에 의해 진행돼오던 층서화 과정에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 거대한 변화는 최소한 세 가지 주요한 측면을 갖고 있다. 첫째로 인류는 자연선택을 통한 유기체의 진화과정과 들어맞지 않는 물건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둘째로 사람들은 지구 표면에서 살고 이용하는 지역을 선택하기 시작했고, 셋째로 사람들이 본능이 아닌 문화적 이유 때문에 땅을 파기 시작한 결과 궁극적으로 층서 기록은 비지질학적 방식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간 행위에 의해 형성된 고고층서
이러한 혁명적 변화는 고고층서와 지질층서, 즉 문화적 층서와 자연적 층서를 구분하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이 땅을 파기 시작하면서 지질학적으로는 동등한 상대를 찾을 수 없는 층서적 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궁극적으로 인류의 모든 문화는 자그마한 구덩이나 도랑을 파는 일에서 마을과 도시를 세우는 데 필요한 물자 획득을 위한 대규모 굴착에 이르기까지 층을 이루며 목적에 따라 고유한 방식으로 땅을 팜으로써 형성되었던 것이다. 근세의 산업혁명과 같은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인류의 생활을 말해주는 층서상 지표는 지질 퇴적층으로서의 성격이 점점 줄어드는 대신 인공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도시생활이 시작되며 고고층서의 성격은 더욱 극적으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인간 역할의 층서학적 의미는 고고학에서도 지질학에서도 그다지 중요하게 검토되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결과 일부 고고학자는 아직도 수천만 년이나 수억 년 전의 퇴적조건 아래 형성된 지층을 연구하기 위해 한 세기 전에 고안된 일련의 법칙에 따라 고고층서의 수수께끼를 풀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발굴에서 층서에 대한 기록, 특히 복잡한 도시 유적의 층서 자료는 지질학적 개념에 기초한 부적절한 지침에 따라 수집돼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고층서학이 고고학의 기초를 이루고 있지만, 근래 수십 년 동안 이에 대한 관심은 매우 작았다고 지적한다. 거의 모든 고고학 교과서는 층서의 기본원칙을 한두 페이지 분량으로 다루고 있으며, 그 내용도 대부분 싸구려 지질학적 설명을, 그것도 잘못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고층서학의 네 가지 법칙
이 책의 처음 네 장은 지질학과 고고학에서 사용하는 층서의 개념과 고고학 발굴과 기록 방법의 변화를 학사적으로 개괄한 것이다. 5장에서는 초판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설명한 고고층서학의 네 가지 법칙을 모아서 설명하였는데, 이 장에서는 필요에 따라 해리스매트릭스와 층서의 의미와 관련된 생각도 설명하였다. 6장과 7장은 쌍을 이루는 내용으로서, 고고층서에서의 퇴적층 및 퇴적층 사이의 경계선, 다시 말해 퇴적층의 표면을 뜻하는 경계면과 관련된 생각들을 다루고 있다. 8장과 9장은 단면과 평면을 기록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다. 이어 10장과 11장에서는 시기구분에 필요한 단계의 설정 및 층의 순서와 관계된 유물 분석의 개요를 다룬다. 끝으로 마지막 장에서는 훈련을 쌓지 못한 평균 초심자도 주어진 방법을 부지런히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발굴에서 층서를 사실적으로 확실히 파악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간단한 절차를 제시하고 있다.
층서 해석은 고고학자가 일차적으로 부닥치는 가장 어려운 작업이다. 층서 해석이 잘못되면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연구작업이 오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규모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유적을 구성하는 퇴적층과 각종 유구의 층서를 잘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보고서가 많지 않고, 수백 채의 집자리로 구성된 유적에서도 상하 중복된 유구보다 평면에 흩어져 발견된 유구가 더 많은 우리나라 발굴조사 종사자들에게 이 책은 특히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 : 에드워드 C. 해리스 (Edward C. Harris)
1975년 학술지 World Archaeology에 고고층서의 성격과 분석방법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1982년에 Society of Antiquaries of London의 펠로우가 되었으며, 1997년 런던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 이래 버뮤다를 중심으로 조사활동을 했다. 1973년 개발한 해리스매트릭스는 고 고학에서 층서를 기록하고 분석하는 일종의 표준적 방법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
역 : 이선복
서울대학교 고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 조교수로 부임해 2022년 정년퇴임하였으며, 재직 중 한국, 베트남, 아제르바이잔 등에서 발굴을 지휘했다. 주로 구석기 시대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고, Current Anthropology, Science, Nature를 비롯한 국내외 학술지에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주요 저역서로 『고고학 개론』(1988), 『동북아시아 구석기 연구』(1989), 『이선복 교수의 고고학 이야기』(1996, 2005), 『벼락도끼와 돌도끼』(2003), 『구석기 형식분류』(번역, 2012), 『방사성탄소연대 측정법』(번역, 2013), 『동물고고학 입문』(번역, 2014), 『고고층서학의 기본원칙』(번역, 2016), 『인류의 기원과 진화』(제2판, 2018), 『지질고고학 입문』(2018), Archaeology of Korea(2022) 등이 있으며, 『한국 고고학 강의』(2007, 2010) 편찬에 집필과 책임편집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