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 · 학술
철학에 대한 나의 본질적인 관심은 언제나 어떤 사상가나 철학자가 그 삶을 살았던 그 구체적인 역사사회의 조건과 연관지어 그의 철학사상을 이해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나는 이 책에서도 무엇보다도 먼저 유교사상의 본질을―초역사적으로 타당한 ‘절대진리’로 간주하는 전통적인―‘성리학적’ 세계관과 해석에서 일단 분리하여 파악하고자 하였다.
―서문에서
시대적 아픔이 숙성시킨 문제의식과
사회경제적 조건을 통해 본 중국사회사상의 출현과 발전
『중국사회사상사』는 동서양을 주유하며 폭넓은 학문세계를 탐구해왔던 노학자가 이룬 연구의 총체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역작이다. 위에 인용한 서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독재정권 치하의 무력한 현학자였던 저자는 독일 유학을 통해 비로소 바깥의 시선으로 한국과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그 순간 기존에 저자가 매진했던 고답적 사색은 공허와 회의로 가득 차게 된다. 이 경험을 통해 저자는 모든 사상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상가 자신이 당면한 시대의 ‘아픔’을 통해서만이 그 가치가 발현될 수밖에 없다는 뼈저린 자기반성과 문제의식을 품게 된다. 이 책은 저자가 시대에 휘말린 지식인으로서 느꼈던 통렬한 문제의식의 결과물이자 젊은 철학도로서 평생 풀고자 했던 철학적 자기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사상은 당시 시대의 사회경제적 조건 아래 형성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수천 년간의 중국사상사를 숨 가쁘게 주파한다. 저자는 중국사회를 ‘유교적 사회’로 규정하고, 이를 고대중국과 현대중국을 꿰뚫는 화두로 삼아 ‘유교적 사회’의 의미에 천착하여 치밀한 구조적 통일성 속에서 사회경제적 변혁과 사상의 출현과 역사적 대립을 논쟁적 비판의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작업을 통해 저자는 유교적 질서로 대변되는 중국의 전통사회구조 뒤에 숨겨진 사회경제적 조건과 그 원동력을 춘추전국시대부터 문화대혁명까지 중국 전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면서 밝혀내고, 현대 중국의 지성사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 하는 정신사적 문제까지 총괄하여 다루고 있다.
중국사상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연『중국사회사상사』
기존의 중국사상사는 크게 역사발전 단계를 강조하는 획일적인 마르크스주의적 해석과 초월적 보편타당성을 주장하는 전통적 성리학자들의 해석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발전 단계라는 도식을 부정하면서도 사회경제적 조건을 철저하게 실증적으로 접근한『중국사회사상사』의 출간은 기존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중국사상 연구의 이정표가 되는 사건이었다.『중국사회사상사』의 독창적이고 치밀한 연구의 가치는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으며, 저자는 중국학자들이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외국학자 중 한 명이다.『중국사회사상사』는 중국에서, 인문과학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과학원 산하의 사회과학 출판사에서 2년간의 번역을 거쳐 2003년 출간되었다. 특히 사회과학원은 특별히 출판기념회까지 개최할 만큼 이 책의 출간에 큰 의미를 부여했고, “중국에서도 접하기 쉽지 않은 역저로 전공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도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라는 격찬을 한 바 있다.
동서양을 주유한 학문의 대여정을 끝맺는 완정판
이번『중국사회사상사』 완정판은 1986년 첫 출간 이후로 변화된 상황을 반영해서 최종적으로 정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번 완정판에서는 기존 판본들의 오류나 부족한 부분을 다듬고 이전에 미처 다루지 못했던 현대사 부분을 보완했다. 모택동과 등소평을 통해 문화대혁명의 의미를 탐구한 논문 2편을 부록으로 추가해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중국사회사상의 흐름을 완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동서양 양쪽에서 모두 연구를 하며 양 철학의 화합과 융합을 모색했던 저자의 긴 학문 여정을 마무리하는 책이기도 하다. 개정판이 아니라 완정판으로 이름을 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