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 · 학술
실천적 삶과 경험을 중시한 동양 철학과 자연의 진리를 추구한 서양 철학은 마테오 리치의 중국 선교를 통해 비로소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게 된다. 중국 지식인들을 충격에 빠뜨린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와 <곤여만국전도>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이 책은 마테오 리치의 중국 입국이라는 역사적 장면을 출발점으로 삼아 동서양의 위대한 사상가들의 만남과 갈등을 조명해보고, 나아가 새로운 화해의 길을 모색해본다.
마테오 리치로 본 동서양 사유방식의 차이
이 책에서 저자는 동서 문명의 충돌을 기존의 배타적이고 일방향적인 분석에서 탈피해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다. 문명의 충돌은 오늘날 처음으로 일어난 문제가 아니라 서양과 동양이 조우한 이래 그 연장선상에서 계속되어 온 진행형의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 만남의 결정적 순간을 찾아 마테오 리치의 중국 선교라는 역사적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저자는 마테오 리치와 중국 지식인들의 만남이야말로 동양과 서양이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이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동서양의 갈등과 차이, 그리고 융합과 이해를 밝혀내는 열쇠가 된다고 말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장자와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추적해서 동서양 사유방식의 차이를 밝혀낸다. 이처럼 저자가 그 시원까지 좇아가며 동서양 철학의 차이를 밝혀내려는 이유는 어느 한쪽의 우열을 가리거나 통약불가능성을 논증하기 위함이 아니다. 동서 철학 사이에 놓인 이러한 근본적인 인식론적, 사상적, 철학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사전작업이자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만남과 엇갈림 그리고 동서 철학의 맥놀이
다양하고 입체적인 접근이 돋보이는 1부는 마테오 리치의 중국 선교라는 역사적 순간에 대한 세밀하고 종합적인 서술이자 격렬했던 동서 사상의 첫 만남을 오롯이 복원하고 있다. 저자는 마테오 리치의 행적을 꼼꼼히 되짚어가며 마테오 리치가 중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분석한다.
마테오 리치는 중국 문화와 사상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며, 선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중국 지식인층, 즉 유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마테오 리치는 유림들을 사상적으로 설득시키기 위해 유림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유교의 고전과 사상을 서양 철학의 전통 아래 받아들인다.
그 결과,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마테오 리치는 <곤여만국전도>, 『천주실의』, 『기하원본』을 출판하며 도덕형이상학이 지배하던 중국 지식인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이 책은 마테오 리치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그가 어떻게 중국사상을 이해하고 비판했는가를 탐구하고,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와 장자로 대표되는 서양의 연역추론 방식과 동양의 귀납적 추리 전통을 비교한다. 또 마테오 리치가 중국지식인들에게 끼친 영향과 한계, 마테오 리치 사상에 담긴 토미즘과 이를 바탕으로 한 중국사상 비판, 그리고 지금까지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던 다산 정약용의 사상에 마테오 리치가 끼친 영향 등 다양한 측면의 연구를 통해 동서 사유방식의 차이를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저자는 동서 철학의 담론 너머에 있는 동서양 각각의 ‘사유방식의 틀’이 존재한다는 것과 동양의 사유방식이 서양의 그것과는 어떻게 다른가를 총체적으로 규명해 낸다.
1부가 역사적 순간을 포착해 여러 각도에서 세밀하게 들여다봄으로써 동서 사유의 틀을 밝혀냈다면 2부에서는 1부의 분석을 이어받아 현대사회가 겪고 있는 본질적 문제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댄다. 저자는 동양적 세계관이 현대 사회의 문제를 치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지 성찰과 반성을 한다. 특히 객관적 세계와 사실 탐구에 매몰된 나머지 삶이 실종된 현대사회에 유교적 윤리관과 동양의 상관적 사유가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상적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자의 주장이 유교의 도덕형이상학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2부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분법적이고 배타적인 담론을 뛰어넘는 지구사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적극적으로 동양 철학의 창조적 발전 가능성을 탐구한다. 현대 정치철학자 맥킨타이어를 소개하는 것도 위와 같은 일환에서이다. 서문에서 저자가 비유한 것처럼 동서 문명의 충돌과 서구의 승리 이후 폐허가 돼버린 “동양 사상의 정원” 위에 마테오 리치 이후로 오랫동안 끊어졌던 서로에 대한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서를 주유한 학문 여정의 집대성
이 책은 중국에서『東西哲學的交彙與四維方式的差異』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기도 한 『동서 철학의 교섭과 동서양 사유 방식의 차이』(논형, 2004)에, 이후 같은 주제로 발표된 논문들을 추가하여 한 권으로 묶어낸 완정판이다.
중국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한국연구자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동서양에 걸쳐 있는 학문 여정을 총결산하고자 했다. 그래서 전공자뿐 아니라 중국의 역사와 문화, 사상에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를 위해 이전 글들을 다시 다듬고,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자끄 제르네의 「중국적 사유와 서양적 사유」를 번역하여 부록으로 수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