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 · 학술
상식을 뒤집는 유쾌한 사유, 실용적 장자 읽기
이 책은 장자莊子의 철학을 ‘형이상학形而上學적인 실체론적 사유의 해체를 통한 마음의 실용’이라는 시각에서 분석하고자 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장자의 사유를 <부정의 소극적 사유> 혹은 <현실도피적인 초월적 사유>가 아닌 <부정의 부정을 통한 세계 긍정의 활달하고 적극적인 사유>로 통찰하고자 한다.
언어의 개념적 고정성을 해체한 장자
장자는 자신의 독특한 언어 구사를 펼쳐 보이면서, 우리의 사유를 계속해서 자극하며 반성하고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장자가 사용하는 언어는 기존의 언어 규칙에서 벗어난 이른바 <비통상 담론 abnormal discourse>에 속하는 언어 행위인데, 이를 통해 장자는 언어의 개념적 고정성을 해체하고자 한다. 그래《장자莊子》에는 좀처럼 동어반복을 허용하지 않는 다양한 어휘군이 체계를 이루며 사용된다.
예컨대, 《莊子》에서 존재의 과정, 존재(세계)의 실상, 자연 등을 의미하는 개념인 도道는 개념적 고정화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강조점에 따라 다양한 범주의 어휘로 표현된다. 가령, 존재의 다양성을 강조할 때는 천뢰天?, 존재의 연속성과 관계성을 강조할 때는 도추道樞와 만연曼衍, 비실체성을 강조할 때는 대괴大塊, 조화를 강조할 때는 천균天鈞 혹은 천예天倪, 얽혀 있는 채로 편안한 조화의 실상을 강조할 때는 영녕?寧, 원초적인 구별 없음의 평화를 강조할 때는 혼돈渾沌, 변화를 강조할 때에는 물화物化, 무한한 창조적 가능성을 강조할 때는 천부天府(보광?光), 인간의 의지가 개입될 수 없는 한계를 논할 때는 명命 등등이 그것이다. 이 어휘들은 마치 별개의 의미를 가진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일관성 있는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또 장자는 많은 우언寓言과 은유, 역설, 반어 등을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여 황당무계한 것으로 돌려버릴 경우 그것이 시사하는 본뜻을 파악하기 어렵다. 게다가 곡해하여 쓸모없는 것으로 돌려 버릴 경우 장자의 진의를 결딴내 버릴 우려가 있다. 그 결과로 남는 것은 독자의 손해뿐이다.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장자 사유의 중심문제: 연관되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우리의 마음
장자는 현실의 인간 역사를 보면서 그 문제를 고민하였다. 그러나 그 문제의 해결은 인간 역사 안에서의 원리에 따른 해결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해결을 도모하였다. <문제의 해소>를 통한 문제의 해결이 그것이다. 장자가 다루고 있는 문제는 사회적인 구체적인 문제들이 아니라 그 문제를 바라보고 대처하는 우리의 사유 자체이다. 따라서 장자에게서 중심 문제가 되는 것은 연관되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우리의 마음이다. 그리고 마음과 세계의 연관을 매개하는 것은 언어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또 만들어 나간다. 언어는 세계 이해에 필수적이지만, 한편으로 그것을 제약하기도 한다. 장자가 언어 문제에 그토록 천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자는 개별자의 시각에서 세계의 실상과 본성은 무엇이며, 또 어떻게 해야 우리가 허구적인 것들에 지배되지 않고, 본래부터 <스스로 각각이면서 차별되지 않는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이를 위해 장자는 우리의 허구적인 인식체계를 어떻게 해체하고, 참된 <제일齊一의 평등>을 이룩할 것인가에 대해 논한다. 그의 철학은 결코 현실 도피적이거나, 역사적으로 무책임한 허무주의 혹은 상대주의가 아니다. 그의 철학은 소유적 시각과는 다른 차원에서의 실용성을 지니고 있다.
장자 사유의 실용성
장자 사유의 실용 가운데 하나는 세계로부터의 단절을 방지해 준다는 데 있다. ‘이미 세계와 하나로 연속되어 있는 존재’라는 깨달음은 타자를 대상화하여 분리하지 않으며, 나아가 자연을 개발이나 지배를 위한 대상으로 분리하지 않는다. 하나의 생태계로 세계를 이해하는 연속적 유대를 갖게 해준다.
또 장자 사유의 실용은 우리에게 세상의 “새로움(novelty)”을 제시해 준다는 데 있다. 우리의 삶은 순간순간 늘 새로운 것이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같은 것은 한 번도 반복되지 않는,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다. 순간순간 경이롭고 창조적인 삶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변화를 수용하면서,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실체(substance)’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고정되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다른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고 있음을 장자는 볼 수 있게 인도한다.
겸허하게 ‘변화’를 ‘새로움(novelty)’으로 수용할 수 있는 개인과 공동체는 항시 해당 시기에 요청되는 <문제>의 해결에 유연하고 실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시적이나마 ‘판단의 기준’을 세우긴 하지만, 그 기준이 경제적 이해관계나 당위적 이념의 관철여부로 기우는 것을 경계한다. 사태의 해결을 위한 판단의 기준이 <필요>에 있기 때문에 상황에 대해 냉연冷然하게 판단할 수 있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없다는 전제는 다양한 의견을 편견 없이 검토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준다. ‘하나의 의견’과 그 ‘반대의 의견’을 은현隱現의 관계로 성찰하도록 인도해준다.
장자는 자신의 해체작업을 수행하는 가운데에서 다각적이고 기발한 언어와 우화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자극한다. 즉 차원을 달리하는 사유를 보여주어 시각의 전환을 꾀하고, 경직된 머리를 유연하게 하는 사유를 제시한다.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세상을 관조하고 달관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준다. 이것은 이 작업을 통해 저자가 얻은 유익함이다.
저 : 정용선
서울에서 중고교를 마치고,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성균관대학교 유학과에서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특질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장자의 해체적 사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경원대학교에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사상』』(한샘출판사)가 있고, 역서로 『『동양 삼국의 주자학』』 (성균관대학교출판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