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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세계정치

저자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변영섭, 윤진영  편
  • 가격

    20,000 원

  • 출간일

    2013년 10월 14일

  • 쪽수

    340

  • 판형

  • ISBN

    9788964356913

  • 구매처 링크

군사작전으로서의 강간 

현재 발생하고 있는 많은 국제분쟁에서 전시 성폭력, 계획적?조직적?집단적 강간의 피해는 심각하다. 하지만 이것은 분쟁의 결과물로서의 피해라기보다는, 분쟁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보스니아 사태가 발생했을 때 세르비아군은 지역 민병대의 도움을 받아 19곳의 강간캠프를 설치했다. 이는 전시 상태의 통제되지 않는 남성병사들의 성욕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적국의 남성과 여성 모두를 모욕하고, 정체성을 훼손하기 위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군사작전의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보스니아 여성들을 장기간 억류하면서 성폭력을 행사하기 위한 이곳에서는 이슬람교도나 크로아티아 여성들도 억류되어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다. 1992년 한 해 동안만 피해 여성이 2~6만 명이 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심지어 평화유지활동을 위해 주둔했던 유엔군도 강간에 참여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전시 성폭력이 전쟁의 결과가 아닌 전쟁 그 자체라는 뜻이다. 세르비아군의 군사작전과 유사한 사례는 르완다,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콩고, 부룬디 내전 등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본문 66~64쪽) 국제정치학이 다루는 중요한 주제가 전쟁이라면, 전시 성폭력 문제는 단순 피해자로서 여성을 보호하는 차원이 아닌, 국제정치학적으로 분석하고 규명해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중요한 주제가 된 것이다. 이는 전쟁과 전시 성폭력과 같은 극단적인 문제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부치는, 부쳐야 하는 여성들 

세계은행의 2008년 자료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외국에 나가 있는 국민이 자국으로 보내는 해외송금이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 중국, 멕시코 그리고 필리핀이다. 이 가운데 인도와 중국은 모두 인구가 10억이 넘는 인구대국으로 해외 이주자 수 역시 많다. 멕시코는 2005년 현재 1,150만 명이 외국에 나가 있는 세계 최대 이주 송출국이지만, 주로 국경이 맞닿은 미국으로의 이주가 많다. 다들 그럴 법한 이유들이 있는 라인업. 하지만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필리핀이다. 인구가 많지도 않고 국경을 마주한 잘 사는 나라가 있는 것도 아닌 필리핀에는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까? 

1974년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부는 경제개발의 활로를 찾기 위해 해외 노동력 수출 정책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정책은 점차 힘을 받아 1984년에는 필리핀해외고용국이 신설되기도 했다. 이런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정책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2012년 현재 필리핀 GDP의 10%는 해외에 나가 있는 이주민들이 필리핀으로 부치는 돈이다. 

이렇게 외국에서 돈을 벌어 고국으로 송금하는 필리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여성이다. 이 여성들은 이주한 국가에서 주로 특정 분야 업무에 종사하는데, 바로 가사노동이다. 전 세계 130여 개국으로 이주해 나간 필리핀 여성의 2/3가 가사노동자로 분류될 수 있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필리핀에서 온 가사도우미다. 그렇다면 가사노동자가 아닌 나머지 1/3에 해당하는 이주여성들의 경우는 어떨까? 일본은 가사노동자의 이주를 허용하고 있지 않는 반면 엔터테이너 이주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일본으로 가장 많은 엔터테이너 여성을 송출하는 나라가 필리핀이다. 2004년 기준 불법체류를 포함해 약 9만 명의 필리핀 여성이 엔터테이너 자격으로 일본에 체류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성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아키노 정부에서는 해외로 나가 돈을 벌어 고국으로 부치는 여성 이주자가 ‘영웅’으로까지 칭송되었지만, 해외로 돈을 벌기 위해 나간 필리핀 여성들은 그가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 등과는 크게 관계없이, 그저 인건비가 저렴한 ‘여성’이라는 점에서만 고용되고 있다.(본문 241, 246~254, 300쪽)


여성의 문제인가 국제정치적 문제인가 

한 나라의 여성문제로 읽힐 수 있는 이 이야기는 사실 복잡한 지구적 이슈다. 필리핀의 경제는, 종속이라는 표현이 지나치기는 하지만 이주여성들이 보내는 돈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달리 표현하면 선진국 가사노동과 성산업에 대한 아웃소싱이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그 규모가 한 국가의 단일 산업 수준이 된 것이다. 이주여성을 받아들인 유입국에서는 한편으로 원주민 일자리 감소 효과가 발생해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편으로 이주여성들의 정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마찰들로 사회통합 문제가 등장한다. 송출국도 문제를 겪는 것은 마찬가지. 이주 전 여성들은 자국에서 해외이주를 장려 받는 정도를 넘어 반강제적인 출국 압력을 받기도 하지만, 이주 후에는 이주여성들이 빠져나간 곳에서 송출국 공동체의 붕괴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에 송출국과 유입국 사이에는 탈?불법의 국제적인 기업형 브로커가 등장하기도 한다. 모두 글로벌한 관계를 맺는 이슈인 것이다. 

이 글로벌 이슈에서 우리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는 엄연히 불법임에도 강남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아이템(?)이고, 베트남 신부와의 국제결혼은 7만 여 건에 이르며, 한국 유흥업소에서 이주여성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렇게 여성들의 국제이주 증가, 그것이 가능해진 조건, 이로 인한 송출국과 유입국에 미치는 영향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세계적 현상들은 우리 눈앞의 현실이다. 


젠더와 세계정치

젠더와 젠더연구는 오랫동안, 그 영역이 한정되어 있는 소수자만의 문제로 인식되었다. 혹은 남성성에 대한 공격적 폄하 대 성적 차이에 기초한 사회적 불평등의 인정이라는 극단적인 대립 등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런 선입견들은 젠더연구의 개념과 방법론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어 가려는 움직임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젠더연구는 많은 분야에서 여전히 변방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국제정치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앞서 등장한 수많은 사례들은 국제정치학에서도 젠더라는 개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가 기획하는 <세계정치> 시리즈의 열아홉 번째 이야기는 그래서 <젠더와 세계정치>다. 국제정치학과 사회학, 젠더연구 분야의 필자들이 모여 그동안의 연구 성과들을 정리하고, 향후 과제와 전망을 논의한 결과물이다. 필자들은 단순하게 여성의 눈으로 기존의 세계정치를 검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정치가 성별과 무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라는 범주를 생산 또는 재생산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은 그 범위가 소수자 문제로 한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젠더가 어떻게 중후장대한 스케일의 국제정치학 핵심 이슈들에 접근해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 평화와 안보라는 국제규범에 여성이 포함된 실제 사례와 그 한계는 무엇인지, 국제 여성인권운동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또한 개발원조에서 ‘성평등’이라는 개념이 좀더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여성의 국제이주의 현황과 문제는 무엇인지, 특히 우리와도 밀접하게 연결된 베트남과 필리핀은 결혼이주에 대해 어떤 현실인식을 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어떤 정책을 세우고 있는지 등에 대해 다양한 시선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국내에서는 아직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젠더와 세계정치>는 세계정치와 지역연구를 공부하는 독자들에게 낯설지만 꼭 필요한 이정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정치 시리즈

<세계정치>는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가 기획하는 작업이다. 한국의 국제정치학이 과도한 정책지향성을 극복하고, 세계정치의 보편성과 동아시아와 한국의 경험과 관점을 균형 있게 바라보면서 한국 국제정치학의 정체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커뮤니케이션 세계정치>는 18번째 책이다.


1권 주권과 국제관계 / 2권 개념도입사 / 3권 세계정치와 제국 / 4권 세계정치와 동아시아 공간 / 5권 세계정치와 동아시아 안보구상 / 6권 자유무역협정의 정치경제 / 7권 문화와 국제정치 / 8권 이승만과 제1공화국 / 9권 지식네트워크와 세계정치 / 10권 국제사회론과 동아시아 / 11권 안보위협과 중소국의 선택 / 12권 동아시아 전통지역질서 / 13권 탈사회주의 체제전환 20년 / 14권 데탕트와 박정희 / 15권 글로벌 금융위기와 동아시아 / 16권 남북한 관계와 국제정치 이론 / 17권 동아시아에서 정책의 이전과 확산 / 18권 커뮤니케이션 세계정치

편 :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최근작 :<글로벌 냉전의 지역적 특성>,<동아시아의 보편성과 특수성>,<국제정치학 방법론의 다원성> 

편 : 변영섭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회장, 한국미술사학회 회장,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위원, 충청북도문화재위원회 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표암 강세황 회화연구』(일지사, 1988), 
『화안-동기창의 화론』(시공사, 2003), 
『한국미술사』(문예출판사, 2006), 
『미술사, 자료와 해석』 泰弘燮先生賀壽論文集(일지사, 2008), 
『표암유고』 청명국역총서 2(지식산업사, 2010), 
『중국미술상징사전』(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등이 있다.

편 :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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