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 · 학술
스웨덴 모델, 사회민주주의, 복지 제도, 경제
우리는 얼마나 ‘차분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나라에서 ‘스웨덴’이라고 하면 대부분 가장 먼저 ‘복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스웨덴 복지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매우 선명하게 극과 극으로 갈린다. 스웨덴 복지 정책은 실패한 사회민주주의 정책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라는 한 쪽의 시선이 있다. 스웨덴 국민들은 선거에서 보수 정당 연합 세력을 선택함으로써 기존 복지 정책에 제동을 걸었고, 시장주의적 컨셉으로 복지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수술에 들어갔다는 보수적 관점이다. 물론 반대쪽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진보적 관점에서는 스웨덴 복지 정책 가운데 일부 비효율적인 부분에 대해 일시적인 미세 조정에 들어간 것이라고 본다. 또한 수출 중심의 개방적인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스웨덴이 세계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충격을 받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임시로 수정한 정책들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스웨덴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유지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동일한 시대, 동일한 국가의 동일한 제도를 놓고 이렇게 상반된 견해가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둘 다 스웨덴의 한 쪽 면만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백야(白夜)를 보고 와서 스웨덴에는 낮만 있다고 하거나, 극야(極夜)를 보고 와서 스웨덴에는 밤만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없다
이는 단순히 스웨덴 복지 제도에 대해 정치적으로 상반된 입장에 서 있는 극과 극의 시선만의 문제는 아니다. 스웨덴뿐만 아니라 어떤 모델을 바라볼 때 편파적으로 선택한 정보들만 재조합하는 우리의 전반적인 경향성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이 스웨덴 모델에서 잘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복지가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일할 수 있게, 혹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사회가 도와주는 것이다. 따라서 복지제도는 노동정책, 산업정책, 경제정책과 연동이 되게 마련인데 이상하게 스웨덴의 노동, 산업,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많지 않다. 그저 복지 제도 하나로 범위를 한정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편 제도라는 것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떠한가. 제도라는 물건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져 그 다음날부터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특정한 의도에 따라 아이디어를 내어 구체화하고, 그것을 시행하기 위해 반대파를 설득 혹은 제압하거나, 절충 혹은 좌절되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이 과정도 우리의 관심사 밖에 놓여 있다. 그렇게 스웨덴에 대한 논의는 우리 사회에서 겉돌고 있다.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차분하게 스웨덴 모델을 검토하고 있는 시선이다. 또한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른 단순한 제도 비교, 선택된 통계 싸움이 아니라 긴 호흡의 역사적, 정치경제사적 관점이 기반이 된 시선이다. 그리고 경제와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하고 세계적으로 잘 나가던 1970년대 스웨덴을 격랑으로 몰아넣었고, 그 이후 스웨덴 모델에 적지 않은 수정을 가하게 만든 ‘임노동자기금논쟁’이 책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주된 대상이다. 임노동자기금논쟁은 도대체 무슨 논쟁인가? 책은 우선 스웨덴의 현대사부터 차분하게 들여다본다.
경제와 복지의 완성. 1970년대 스웨덴의 복지자본주의
1970년대, 그러니까 전성기 시절 스웨덴은 놀라운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스웨덴 경제의 대부분은 발렌베리로 대표되는 몇몇 기업 가문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사브, 일렉트로룩스, 에릭손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제조업 기반 기업들과 금융 부문 주요 기업들까지 함께 보유하고 있는 15개 정도의 기업 가문이 스웨덴 경제 대부분을 과점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전체 생산직 노동자의 90%가 가입된 전국 단위의 강력한 노동조합(이하 LO) 또한 막강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조합원 수에 있어서 압도적이었던 LO는 진보적 성향의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당’(이하 사민당)을 정치적으로 지원했고, 덕분에 스웨덴 사민당은 거의 40여 년 동안 집권에 성공한다. 이는 서구 사회 정당정치사를 통틀어 가장 오랜 기간 장기집권을 한 기록 가운데 하나였다. LO의 지지를 업은 사민당은 여러 분야에서 진보적 정책들을 추진했으며, 경제·노동·복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 산업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관철되는 연대임금정책을 시행했고, 정부 재정의 50%, GDP 대비 30%에 가까운 돈을 사회정책에 지출하는 복지 정책을 시행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노·사·정이 이런 구도를 가진다면, 즉 강력한 힘을 가진 대기업과 노동조합이 공존하고 있다면 이해관계가 격렬하게 부딪히고 극심한 대결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는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반전을 가진다. LO와 사민당의 진보적 정책과 막강한 파워, 흡사 재벌을 연상시키는 대기업 가문이라는 물과 기름 같은 구도는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스웨덴 경제 발전을 촉진시켰다. 바로 연대임금정책 때문이었다.
성공의 딜레마, 연대임금정책
사민당 정부가 실시한, 렌-마이드너 모델로 더 유명한 스웨덴의 연대임금정책은 앞서 말한 대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이다. 이 정책의 설계도는 대략 다음과 같다. LO는 매년 사용자들의 전체 연합 단체인 SAF와 협상을 통해 전 산업 노동자의 임금을 정한다. 그리고 동일한 노동을 하는 경우 그 노동자가 대기업에 다니건 중소기업에 다니건, 흑자 기업에 다니건 적자 기업에 다니건 모두 동일한 액수의 임금이 정해진다. 덕분에 같은 노동에는 같은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는 진보적인 원칙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스웨덴 경제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견인차 역할 또한 수행한다.
연대임금정책이 시행되자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흑자 대기업은 더욱 경쟁력이 증가했다. 유사 업종의 외국 기업보다 인건비 부분에서의 경쟁력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외국 기업의 경우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숙련, 고급, 전문 노동자들에게 고임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스웨덴 대기업의 경우 이들에게 말 그대로 업계 평균 임금만 주면 되는 것이다. 인건비 부분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스웨덴의 수출 대기업은 일종의 정부 보조금과 같은 컨셉의 흑자가 발생하게 되었고, 이것은 기업 발전에 있어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은 연대임금정책으로 갑자기 인건비 충격을 받게 된다. 낙후된 기업들도 노동자들에게 업계 평균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즉 이 기업들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인건비 비중이 높아지게 되는 효과가 발생하며, 이는 기업의 경쟁력 하락을 가속화시켜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으로 연결된다.
재미있는 것은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인 파업이 막강한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스웨덴에서 오히려 드물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가입되어 있는 전국 조직이다 보니 진정한 의미의 총파업이 가능했고, 이 가능성은 사용자들과의 협상에서 높은 협상력을 보장했다. 굳이 파업을 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공장이 멈출 일도 드물었다. 한편 단일한 전국 단위 노동조합(LO)이 존재하는 구조에서 산별 노조나 개별 기업의 노조 지부는 중앙의 승인 없이 파업을 할 수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스웨덴 전체적으로는 기업 경쟁력이 상승하면서도 노동자 세력과 사용자 세력 사이의 관계가 적절하게 통제되는 힘의 균형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한편 스웨덴 정부는 기업들로부터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구조조정된 기업에 근무하다 실직한 노동자들이 빠르게 재취업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펼친다. 이와 더불어 강력한 수준으로 진행되는 복지 정책은 안전망을 구성해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적 스트레스를 줄인다. 이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게 국가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매우 훌륭한 성과를 달성한다.(참고로 스웨덴은 GDP 총량으로는 2009년 기준 세계 21위 정도이지만, 1인당 GDP로 계산하면 4만 7천 달러로 세계 7위다)
하지만 연대임금정책이 장기간 시행되자 새로운 문제점이 발생했다. 우선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을 받는 셈인 대기업 노동자들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수출 대기업 노동자들은 분명 자신의 노동이 더 많은 수익을 내고 있음에도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불만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임의로 임금협상을 진행할 수도 없었다. 임금협상권은 LO에 넘긴 상태이기에 개별 사업장은 단독으로 임금협상을 할 수도 쟁의를 일으킬 수도 없었다. 그래서 중앙 단위 노동조합의 지도를 무시하고 벌이는 ‘살쾡이 파업(Wild Cat Strike)’이 속출하기 시작한다. LO 중앙의 하부 조직에 대한 통제력에 점차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임노동자기금, 민주적 사회주의 기획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연대임금정책으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을 입은 것은 수출 대기업들이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경제는 성장했지만 스웨덴 전체 경제에서 이들 소수 대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심각하게 커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발렌베리와 기업가문들에 쌓이는 부는 계속 증가했지만 이런 상태는 계속 심화될 전망이었다. 오랜 기간 진보적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펼쳤더니 부의 편중 상태가 심화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이한 것이었다. LO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연대임금정책의 개발자 마이드너에게 용역을 의뢰한다. 자신이 설계한 연대임금정책이 이런 문제에 봉착할 것을 이미 예견하고 있던 마이드너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기업에서 발생하는 이윤 가운데 일부를 신규 발행 주식의 형태로 바꾸어 노동조합이 소유하는 기금에 적립한다. 적립된 기금은 노동자 개인에게 분배되지도 시장에서 거래되지도 못하게 법적으로 묶어 놓는다. 이렇게 약 30년 정도만 누적이 계속되면 노동조합은 자연스럽게 기업의 지배주주가 될 수 있고, 스웨덴의 대부분의 민간 대기업이 노동조합의 지배력 아래 놓이게 된다. 즉 피를 보지 않고도 기업이 사회화되는 ‘민주적 사회주의’ 사회가 되는 것이다.
혁명 없이, 합법적인 제도를 통해 복지자본주의 사회를 사회주의 사회로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에 LO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리고 LO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사민당은 이 아이디어를 법제화시키기 위한 정치를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임노동자기금논쟁’이다. 즉 복지와 자본주의 두 부분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었던 스웨덴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 정체 국면으로 접어든 사민주의 체제를, 복지자본주의로 계속 끌고 갈 것이냐 아니면 민주적 사회주의로 변화시킬 것이냐에 대한 기획이자 승부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임노동자기금논쟁은 치열한 담론 투쟁, 정치 투쟁 끝에 LO의 패배로 마무리된다. 임노동자기금이라는 아이디어는 말 그대로 아이디어 단계에서 급하게 무대 위로 올려진 물건이었고, 이에 대한 보수 정당들과 사용자 연합의 치밀한 반격은 만만치 않았다. LO와 사민당은 최초의 의도 및 내용과는 거리가 먼, 이름뿐이고 한시적이기까지 한 임노동자기금법안을 만드는 것으로 이 논쟁을 마무리해야 했다. 역사상 최초로 시도된 합법적 사회주의 이행이라는 기획은 이렇게 좌초되었고, 스웨덴 모델 역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진보와 보수, 노동조합과 사용자연합 사이의 팽팽했던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점차로 보수, 사용자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스웨덴의 제3의 길 정책이나 새롭게 등장하는 신자유주의적 제도들은 임노동자기금논쟁의 결과에서 어느 정도 단초를 찾을 수 있다고 책은 이야기한다.
제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가 중요하다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는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초까지 스웨덴에서 벌어졌던 임노동자기금논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수준으로 탐색한다. 여당과 야당들, 사용자단체들과 노동조합들, 학자, 노동자, 일반 시민까지 이 논쟁에 참여한 대부분의 행위자들이 어떻게 사고하였고 행동하였는지를 복원한다. 그리고 이들의 고민과 전략적 선택, 그것을 정치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을 자세하게 추적한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의 제도가 어떻게 탄생해서 만들어지고 변형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요소들이 개입하며, 행위자들이 어떤 행동을 취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스웨덴 모델의 실제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 조금 더 선명하게 정리되는 것이다.
이들이 벌인 정치와 담론 투쟁의 과정은 사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고민들과 그 상황에 있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념적으로 선명하지만 현실적 장애가 명백한 선언을 전면에 내걸 것인가 아니면 이념적으로 다소 불분명하더라도 현실적인 고려가 있는 방안을 제시할 것인가? 이 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면 어느 수준까지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어느 단계에서 이념과 이론을 정책의 전면에 내걸어야 하는가? 막연하게 이야기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와 복지 모델은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기반에서 운영이 되어야 하는가? 사회민주주의와 복지 모델이 운영되는 과정에서는 어떤 문제점들이 발생할 것인가? 그 문제점들을 진보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보수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마지막으로 스웨덴은 보수적, 진보적 입장에서 어떻게 해결책을 만들고 수정하고 관철시켜나갔는가?
다시 한 번 필요한 생산적 논의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이 책은 2000년 초판 간행된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라는 저자의 책에 그동안 변화된 내용을 보충하고 저자의 견해를 추가한 작업이다. 이미 10년 전에 한 번 소개되었고,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 전의, 지역적?문화적 거리가 먼 곳에서 벌어진, 그것도 실패로 끝난 논쟁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금 운용되고 있는 제도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역사적, 정치경제적 조건과 과정의 산물이다. 따라서 현재 제도가 운용되는 사용설명서를 들여다보는 것은 직수입이 가능한 경우에나 의미가 있을 뿐이며, 우리 입맛에 맞는 제도를 만들려고 할 때에는 물건의 제작과정일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앞서 말했듯 지금 우리 사회는 여전히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모델과 복지 제도에 대한, 끊임없는 하지만 소모적 논쟁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조금은 어렵고 힘들고 번거로운 일일지 모르지만, 편하게 사용설명서를 들여다보지 않고 묵묵히 제작일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이 책을 다시 한 번 펼쳐들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스웨덴 모델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마이드너를 직접 인터뷰한 저자의 녹취 원고, 경제학 전공자의 입장에서 분석한 객관성이 돋보이는 스웨덴 모델에 대한 계량화된 분석들은 이 책이 선사하는 또 다른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