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 · 학술
21세기 들어서 다채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고고학 이론의 새로운 경향을 폭넓고 밀도 있게 분석한 최신 이론 고고학 개설서이다. 이전의 고고학 사고를 비판하고, 변화하는 고고학 이론의 세계를 생생하게 서술한 이 책은 21세기 고고학자들이 자주 끌어오는 최근의 사상을 소개하면서 그것이 이론 고고학의 새로운 경향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설명한다. 나아가 글로벌 고고학 이론의 여러 학파를 아우르고, 최근 경향들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점, 장점과 단점을 드러내 보이면서 이론 고고학의 최신 연구 동향과 새로운 움직임을 소개하고 있다.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사물의 중요성에 주목
보통 ‘고고학은 과거의 잔존물을 통해 그것을 남긴 인간과 그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알고 있다. ‘고고학의 연구는 유적 및 유물과 같은 물질자료를 대상으로 하지만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으로 생각해 왔다. 이러한 믿음은 그동안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던 생각, 즉 ‘유물이란 사람이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필요에 따라 만들어 낸 것이며,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다가 수명을 다해 버려진 것’이라는 명제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서 고고학자가 유물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을 남긴 인간과 그들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인 셈이다.
이처럼 우리가 의심 없이 받아들여 온 학문적 본성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고고학적 주장들이 최근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를테면 고고학자가 알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나 사회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 관계’라고 한다거나, 고고학이 담당해야 할 것은 ‘인간 외부, 인간이 떠난 사물에 관한 연구’라는 주장, 심지어는 ‘이렇게 남겨진 사물들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도 고고학이 내놓아야 한다는 제안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표현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론 고고학의 논문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그다지 생경하다는 느낌도 주지 않게 되었다. 그만큼 21세기의 고고학 이론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사물에 중요성을 부여하게 되었고 인간과 비인간, 사물과 사고, 물질과 개념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고 존재론적으로 이미 연관되어 있다는 관계론적 사고에 빠져들고 있다.
이원론을 넘어 관계적 사고 지향
과정주의 신고고학의 주요한 아이디어를 담은 루이스 빈포드의 논문이 발표된 1960년대 초를 고고학적 자의식의 출발점, 혹은 철학적 수준의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점으로 삼는 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1982년은 이안 호더가 과정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탈과정주의의 입장과 노선들을 담아낸 책을 출간한 해이다. 다시 20년이 지나 2000년대로 접어드는 시점에 이론 고고학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으며, 그러한 전환의 움직임에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이 책에는 21세기의 이론 고고학에 빈번히 등장하는 물질성, 존재론, 관계적(relational), 하이브리드, 네트워크, 사물의 생기, 얽힘(entanglement), 꾸러미(bundle), 대칭성 등과 같은 개념이 설명되어 있고, 이론 고고학의 새로운 갈래, 즉 신유물론, 대칭적 고고학, 관계적 고고학, 어셈블리지 이론 등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21세기 사고의 전환, 즉 물질적 전환, 관계적 전환, 그리고 존재론적 전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러한 최근 고고학적 이론의 변화에 관해 저자들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까지 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나 사고의 중대하고 근본적인 변화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근본적 변화란 그동안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던 이원론, 즉 세상을 자연과 문화, 물질과 관념, 인간과 비인간, 객체와 주체로 깔끔하게 나누어 생각했던 사유의 방식에서 벗어나 통합적으로 그들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제2장에서는 고고학적 사고의 발전을 짤막하게 서술하면서 그동안 과정주의와 탈과정주의의 논쟁과 교체도 따지고 보면 과학적 설명이냐 아니면 문화적 해석이냐 하는 이원론에서 어느 한쪽에 서는가 하는 문제였다고 진단한다. 저자들은 현재의 고고학 이론이 이원론을 넘어 통합적, 그리고 관계적인 사고를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고고학 이론의 최신 경향 소개
과학기술이 빠르게 진보하면서 우리의 삶의 조건들에도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우리는 얼마 전 생각하는 기계와 인간의 지능이 경쟁하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인공지능(AI)과 최고의 바둑기사가 대결하여 기계의 승리로 끝난 일을 잘 알고 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준 충격은 승부의 결과 아니라 기계의 생각과 인간의 사고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하기 어려워졌다는 현실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그간 당연시해 왔던 서로 대립되는 단위체, 혹은 고유한 독립체들로서 물질과 정신, 자연과 인공물, 몸과 마음, 사람과 기계와 같은 것의 구분이 이제 불가능해졌고 그러한 포스트휴먼 시대의 현실이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사고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고고학의 새로운 이론도 시대의 변화에 따른 우리 삶의 현실과 조건에 대해 깊이 사색한 결과로부터 나온 것이다. 21세기 이론 고고학은 도나 해러웨이 등 포스트휴먼 사상가들의 아이디어를 수용해 사고의 지평을 넓혀 가고 있다. 최근 일부 이론 고고학자들은 프랑스의 신세대 철학자 퀭탱 메이야수로부터 시작된 이른바 사변적 실재론, 그중에도 그레이엄 하만의 객체-지향적 존재론을 받아들여 사물을 위한 정치학에 관해 이야기하고, 인간 이후의 사물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고고학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우리는 과정주의와 탈과정주의를 거치면서 새로운 사고의 방식과 방법론을 배우고, 또한 중요한 아이디어와 개념들을 습득하여 지금 자연스럽게 그것을 구사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21세기의 이론 고고학도 새로움, 그 이상의 중요한 생각들을 제안하기 때문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자는 말한다. 어쩌면 지금은 우리에게 낯설어 보이는 이론적 사고와 개념들, 평탄한 존재론, 관계적 물질성, 신유물론, 대칭적 사고, 사물 에이전시, 어셈블리지, 되어감, 사물의 생기, 꾸러미, 엮임, 영역화 등은 앞으로 고고학자들 사이에 꾸준히 사용되고, 결국은 익숙한 개념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은 인용한 많은 원자료를 직접 대조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였으므로 고고학 전공 대학생과 이 분야를 다시 익히고자 하는 전문가들에게 최신 고고학 이론의 기본 안내서로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차례
한국어판 서문 6
머리말 8
박스 목록 14
그림 목록 15
표 목록 16
제1장 고고학 이론의 현주소: 이원론에 맞서서
머리말 17
패러다임을 넘어서 20
새천년의 이론 22
이론의 이미지 25
이론과 저자 27
책의 구성 29
제2장 패러다임을 넘어서: 고고학 사고의 간략한 역사
머리말: 이론에 따라 달라지는 구덩이 유구에 대한 이해 35
문화사 고고학 40
과정주의 고고학 43
탈과정주의 고고학 47
이원론의 역사적 연원 54
이원론의 문제 59
맺음말: 교수 세 사람 61
제3장 사고와 사물: 이론과 에이전시
머리말: 신기한 물건과의 만남 63
실천과 에이전시 이론이란 무엇인가? 66
인류학과 사회학으로부터의 영향 69
실천과 에이전시의 고고학 76
권력, 문화적 상호작용 그리고 역사에 관한 재고 78
맺음말: 그 신기한 물건에 대한 마지막 단상 82
제4장 물건의 사회 내 자리 잡기: 정체성과 인격성
머리말: 그들은 누구이고 우리는 누구인가? 85
실천에서 정체성으로 87
성과 젠더의 수행 92
인격성의 수행 97
체화된 정체성 104
맺음말: 정체성, 우리의 전제를 넘어서 106
제5장 물건의 비밀스런 일생: 사물 에이전시와 생애사
머리말: 박물관 방문 109
사물 에이전시 111
매료된 수집가 117
물건의 생애사 121
식민지적 ‘생애’의 추적 123
맺음말: 다시 박물관으로 127
제6장 사물이 사람을 만든다?: 물질성, 현상학, 경험과 얽힘
머리말: 에임스버리 궁수 만들기 131
물질성이란 무엇인가? 134
변증법과 객체화 136
현상학 142
세계 내의 경험 150
얽힘 154
맺음말: 사람이 화살을 만들고 화살이 사람을 만든다 157
제7장 세계를 매개함: 고고학적 기호학
머리말: 외딴 숲속의 기호 159
소쉬르의 이항 163
퍼스의 삼부모형 169
고고학에서의 기호학 173
맺음말: 숲으로 돌아가서 18213
제8장 대칭의 발견: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과 신유물론
머리말: 총이 사람을 죽이는가, 아니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가? 185
근대성에 대한 라투르의 비판과 그 너머! 188
고고학, 사물의 학문 192
대칭에서 신유물론으로 198
고고학에서의 신유물론 203
맺음말: 과정주의와 탈과정주의 고고학을 넘어서 209
제9장 다종의 고고학: 사람, 식물 그리고 동물
머리말: 고고학, 인류를 넘어 215
고고학, 식물 그리고 동물 218
다종의 세계에 대한 사고 221
인간 그 이상의 고고학 229
역사와 진화를 넘어서 233
생물기호학 236
맺음말: 순화의 문제로 돌아가 238
제10장 ‘타자들’: 탈식민주의, 존재론적 전환과 식민화된 사물
머리말: 타자의 돌에서 타자로서의 돌로 241
탈식민주의 이론: 공유된 세계 내의 타자에 대한 이해와 표상 247
신유물론과 다른 세계들 254
사물에 대한 변론 262
맺음말: ‘타자’에 대한 다양한 접근 266
제11장 맺음말: 벽을 허물고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머리말 269
새로운 패러다임인가? 273
저자들 사이의 대화 276
맺음말: 다시 함께 297
주 300
참고문헌 323
역자해설 343
찾아보기 371
저 : 올리버 해리스
영국 레스터대학의 고고학 및 고대사학부 조교수로 영국 선사시대와 이론 고고학을 담당하고 있다. 주로 신유물론의 관점에서 유럽의 선사시대를 재해석하는 연구를 진행해 온 촉망받는 신세대 고고학 이론가이다. 2002년 셰필드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다음 카디프대학에서 2010년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지도교수는 유럽 신석기문화 연구의 대가인 알스데어 위틀(Alasdair Whittle)이었다. 그 후 사람 몸에 관한 생각이 장기적 역사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관한 학제-간 연구 프로젝트로에 참여하여 The Body in History(2013)라는 유명한 책을 존 로브와 공동출간했다.
저 : 크레이그 시폴라
캐나다 로얄 온타리오 박물관의 북미 고고학 분야 학예연구사로 있으면서 토론토대학의 인류학과 조교수를 겸직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을 졸업한 다음, 같은 대학에서 역사고고학으로 석사과정을 마치고 2010년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연구 분야는 북미지역의 식민주의 고고학(colonial archaeology)으로, 그중에서도 뉴잉글랜드 지역과 오대호 일원의 역사고고학에 집중하고 있다.
역 : 이성주
경북대학교에서 한국사를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고고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취락과 고분에서 출토되는 원삼국시대 토기를 분석하면서 기술혁신과 생산체계의 변동을 설명하는 시도를 해 왔으며, 고고학 이론과 고고학사에 관한 비판적 논의를 발표한 적이 있고, 청동기시대 물질문화 변동에 대한 연구와 고분군의 공간조직 분석을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역사가 어떤 사건과 과정으로 시작되며 그것은 지금의 민족이나 국가형성과 관련하여 어떻게 해석되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배리 컨리프의 저서를 번역하여 『영국 철기시대 사회』(2017)라는 이름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신라·가야 사회의 기원과 성장』(1998), 『청동기·철기시대 사회변동론』(2007), 그리고 『토기제작의 기술혁신과 생산체계』(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