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검색

HOME>도서>대학교재 · 학술

대학교재 · 학술

본문

미국 무역정책 연구

저자
백창재  저
  • 가격

    20,000 원

  • 출간일

    2015년 06월 29일

  • 쪽수

    201

  • 판형

  • ISBN

    9791185617459

  • 구매처 링크

수퍼 301조의 일방주의, WTO의 다자주의 그리고 TPP의 지역주의에 

이르기까지 미국 무역정책의 변화와 변이,

그 변화의 흐름에 하나의 일관된 법칙이 작용한다면?

그것은 대외적으로 미국의 국익과 가치를 관철시키고, 

대내적으로 설득과 수용이 가능한 최적화 모델을 찾는 것이다


지난 1995년 미국 주도하에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타결되고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세계 무역은 자유주의 질서와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의 법칙이 전면화되었다. 그러나 이 기념비적인 국제기구가 탄생한 지 20년, 도하라운드는 미국의 무관심하에 지지부진한 상태에 빠져 WTO 무용론까지 운위되는 상황이다. 과연 미국의 무역정책은 기존의 다자적 자유주의에서 이탈한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20년간 미국 무역정책을 연구한 저자는 건국 이후부터 미국 무역정책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추적하고 무역정책상의 행위자 그리고 이들의 목적과 이익을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세계무역질서와 미국 무역정책과의 관계를 밝히고 앞을 전망한다.


분석틀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미국 무역정책의 역사를 분석하고 선행연구를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미국 무역정책의 결정 과정에 대해 독자적인 분석틀을 제시한다. 

먼저 구조 변수이다. 국내 경제구조, 세계 무역 거버넌스, 국가 간 경제력 분포 등 국내외 경제 변수의 변화에 따라 정책을 향한 의지가 만들어진다. 

다음으로 수요변수이다. 구조 변수의 변화는 정책수요를 발생시키고, 각 개인 또는 집단의 요청이 선거 또는 이익집단의 활동에서 표출되는 내용에 따라 그 수요가 구체적으로 형성된다. 

다음으로 제도 변수이다. 무역협상권을 행정부가 갖는가, 정책결정과정에서 의회의 개입은 어느 정도인가 등이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 정책결정 행태 변수이다. 구조변수, 수요변수, 제도변수가 각각 정책결정의 장으로 들어오면, 정책결정 행태, 특히 의회와 행정부의 행태와 만나 수요가 공급으로 전환된다. 



건국 초기 보호주의를 통한 산업화 기반 구축에서 

대공황 이후 자유주의를 통한 세계시장 확대, 

그리고 신흥 산업국의 부상과 미국 리더십의 위기, 수정된 자유주의의 등장


역사 1단계: 산업화 기반 구축과 보호무역주의


아메리카라는 광활한 대륙을 개척했던 미국인들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얻기 위해서는 유럽과 교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역 이슈는 건국과 동시에 연방정부의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1789년 미국이 처음으로 채택한 관세법은 8.5퍼센트의 종가세를 설정했는데, 1850년대까지 관세수입은 연방정부 재정의 9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건국 초기에 유럽 각국이 중상주의와 고관세 정책을 취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 수준의 관세율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미국 역사에서 보호무역 정책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이후 해양봉쇄가 해제되면서부터이다. 이때 유럽 상인들이 봉쇄 기간에 쌓아두었던 재고를 미국 시장에 마구 풀기 시작하면서 미국 제조업자들이 그 구제책을 강력히 요구했던 것이다. 1828년 제정된 관세법에 규정된 관세율은 무려 60퍼센트에 달했는데, 이것은 국외 무역조건에 대한 대응이었을 뿐만 아니라 확실히 국내 제조업 육성과 면방직, 철강 등 국내산업 보호라는 목적에도 부합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무역정책을 둘러싸고 업종과 지역 간에 대립이 발생한다. 1828년 관세법은 동북부의 상공업자들과 동북부 지역에 곡물을 공급하던 서부 농민들에게 환영을 받았지만, 유럽에 면화를 수출하던 남부 대농장주들은 이 법을 ‘가증스런 관세’라 부르며 연방탈퇴를 외칠 정도였다. 이처럼 산업화에 대한 농업의 저항이 거세긴 했지만, 1896년 대통령 선거에서 제조업, 금융업, 심지어 도시근교농업의 지지를 얻은 공화당이 압승하면서 대공황기까지 산업화 정책노선이 계속되고, 결국 대공황을 더욱 악화시킨 스무트-홀리 관세법이라는 대참사로 이어지게 된다. 


역사 2단계: 대공황의 반성과 미국 자본의 국제화 그리고 자유무역주의의 전면화


이후 주지하듯이 1932년 대공황기에 집권한 루스벨트는 뉴딜정책이라는 새로운 자본주의 관리체제를 시행하는데, 초기 뉴딜은 지극히 보호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뉴딜에 참여한 자본은 초기에는 미국 국내시장 의존적이고 노동집약적인 자본이었다. 따라서 대공황기에 폭증하는 노동의 요구를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당시 국가기구는 노동과 자본의 첨예한 대립을 조정할 만큼 강력하지 못했다. 초기 뉴딜연합은 정부와 자본, 자본과 노동 간의 대립 속에서 여전히 과거 보호주의 정책을 답습하고 있었다.

제2차 뉴딜연합의 파트너는 제1차대전 후 해외자산을 대규모로 확보한 국제파 자본이다. 이들은 세계질서의 안정과 자유무역의 확대에 이익을 갖게 되고 자본·기술집약적인 산업의 특성 때문에 노동을 쉽게 포용하면서, 이들이 뉴딜 정책연합의 중추로 부상한다. 1934년 제정된 호혜통상법은 관세책정권을 의회에서 행정부로 이전시키면서 이후 자유무역정책이 지속 추진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때부터 미국 무역정책은 보호주의적·민족주의적 성격에서 벗어나 서서히 자유화하기 시작하여 1960년대까지 동일한 기조가 지속된다.


역사 3단계: 미국 경제의 쇠퇴와 수정주의적 자유주의의 등장


그러나 1970-80년대 독일과 일본 등 급속히 성장한 국가들의 도전에 직면하고 무역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자 자연히 보호주의 세력이 재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기초 제조업과 자동차·철강 등 고용효과가 크고 조직화된 노동이 이끄는 산업 부문으로 피해가 집중되면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들이 강력한 보호주의 세력을 형성한다. 1934년 호혜통상법 제정을 통해 관세책정권이 행정부로 이양되면서 달성된 무역정책의 중립성과 자유무역에 대한 규범적 합의가 다시 파탄난 것이다. 준사법화된 수입피해구제절차로는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고, 이것 역시 국내 보호주의 세력이 정치화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런데 이 시기 미국 경제의 대외의존도를 보면 이미 보호주의로 전면 복귀하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이었다. 예컨대 항공기의 경우 생산액 대비 수출액이 45퍼센트, 밀은 77퍼센트에 달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무역의존도가 높은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을 배경으로 타국에 시장 개방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수정주의적 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무역정책 노선이 등장한다. 이들 산업은 규모의 경제와 막대한 R&D 비용 때문에 거대 시장의 확보가 생존의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이 WTO 설립을 주도하면서 동시에 NAFTA나 APEC 등을 통한 지역주의 접근을 추구하고 수퍼 301조와 같은 일방주의 정책을 강화하는 등 비일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뉴딜 이래 자유주의의 지배가 막을 내리고 자유주의, 보호주의, 수정주의 세력이 혼재하며 각자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장면 1: WTO 출범과 동시에 WTO에 흥미를 잃은 미국 

장면 2: TPP에 집착하는 오바마 행정부와 TPP에 반대하는 집권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대립 

이 기이한 현상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


주지하듯이 미국의 주도하에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되고 WTO가 출범한 것은 클린턴 대통령 집권기이다. 그런데 미국이 다자적 무역질서에 이탈한 듯한 징후가 보이는 것 역시 클린턴 행정부 시기부터이다. 이 모순되고 당황스러운 현상에 대한 저자의 분석을 보자. 집권 초기 클린턴 행정부는 WTO의 출범과 NAFTA의 체결이라는 큰 업적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 업적은 역설적으로 국내 보호주의 세력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미 의회가 우루과이 라운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당시 클린턴 행정부에 대해 무역촉진권의 부여를 거부한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WTO 차원의 다자협상을 새롭게 추진할 여지가 없었던 클린턴 행정부는 APEC을 자유화 기제로서 활용하려고 했으나 이마저도 실패로 돌아갔다. 이 시기 전 세계적으로 특혜무역협정(PTA)이 급증했는데, 다자협상의 교착 속에서 각국이 양자적·지역적 해결책을 강구해 나간 것이다.

새로 출범한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위기로 인식했다. PTA 경쟁에서 미국이 소외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세계 무역질서의 규칙 제정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확고히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의회가 부여한 무역촉진권을 동력으로 이른바 ‘경쟁적 자유화’정책―미국 시장으로의 접근을 위한 경쟁을 유발하여 상대국들의 시장개방을 유도하고 미국식의 시장 친화적인 법규와 제도를 채택하도록 장려하며, 미국의 가치를 지지하도록 유도한다는 목적으로 무역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의회가 부시행정부에 무역촉진권을 부여하면서 그 조건으로 외국과의 무역협상에 의회의 개입과 감독을 더욱 강화하고 협상에 노동과 환경조항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강제했다. 이에 부시행정부는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기 어려운 다자협상보다는 양자협상을 통해 무려 17개에 달하는 PTA를 추진하며 미국식 제도와 가치를 확산시켜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뒤이은 오바마 행정부는 경쟁적 자유화 정책을 온전히 계승하지 않았다. 물론 보호주의로 회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른바 공정무역론을 펴며 미국 또한 무역의 수혜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고 무역으로 인한 실업과 저임금의 발생에 예민한 태도를 보였다. 무역정책의 추진이 개방화와 자유화를 의미하는 한 오바마 행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한 가지 예외가 바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의 지역주의적 기획이다. 마땅한 협상 대안을 찾지 못한 이유도 있겠으나, 오바마 행정부의‘아시아로의 회귀’전략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TPP 참여국들 간의 기존 PTA들을 조정하고 TPP와 양립시키는 문제가 쉽지 않아 보이며, 오바마가 공언한 ‘높은 수준의 21세기적 기준’을 TPP에 관철시키는 것을 참여국들이 받아들일지가 미지수이다. 국내적으로도 최근 무역촉진권 부여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었다고는 하나 무역피해구제법안의 문제가 남아 있고, 설령 TPP가 타결된다고 하더라도 의회가 최종 비준하는 것이 언제일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역은 무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 1970년대 독일과 일본, 그리고 21세기 중국의 등장과 미국 패권의 위기

- 무역 문제의 정치화 

- 다자주의의 한계와 미국적 가치의 관철을 향한 세계무역질서 새 판 짜기


제2차대전 이래 미국 무역정책의 기조는 다자주의에 의한 자유무역의 확대로 규정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미국은 WTO와 같은 다자주의에서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러한 변화를 만들었고 앞으로 만들 것이냐가 중요하겠다.

먼저 미국의 국내정치가 두 가지 큰 변화를 겪었다. 1970년대 미국 경제의 쇠퇴론이 부각된 이후, 자유무역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붕괴되고 무역협상에 대한 의회의 개입과 감독이 강력해졌다. 정당 간의 노선 차이도 극명해져, 민주당은 반자유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공화당은 교조적 자유무역주의를 제기할 정도이다. 사회적으로도 1970년대 이후 실업, 산업 공동화, 저임금 등 무역 자유화의 역효과가 부각되면서 노조가 다시 보호주의 정책의 강력한 보루가 되었다. 한미 FTA에서 보듯, 이미 체결된 무역협정에 대해서도 의회는 재협상과 보완을 요구하는 상황이며, 이에 따라 행정부는 의회와 사회세력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협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 무역정책이 타협적이기보다 일방주의적으로 흐르거나 또는 무기력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대외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먼저 경제적으로는 2009년 기준으로 미국 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25퍼센트에 달하고 무역 상대국으로 개도국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대중 무역적자가 2천억 달러가 넘는 상황에서 이것이 미국 무역정책의 뇌관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따라서 미국 무역정책은 중국 의존도를 서서히 줄여가면서 무역 상대국의 범위를 넓히고 노동, 인권, 환경 분야에서의 미국적 기준으로 자유화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TPP와 TTIP는 그 좋은 도구가 된다. 여기에 더하여 생산 네트워크의 세계화 즉, 세계 곳곳에 분산된 생산망에 부품과 중간재를 공급하고 조립된 완제품을 분배하는 형태의 무역이 양적·질적으로 중요해졌다. 이것을 공급망 무역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참여할 수 있는 나라는 기업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상품과 인력의 자유로운 흐름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을 통제하는 규칙은 대부분 각국의 국내정책과 얽혀 있는 것이어서, WTO와 같은 다자협정에서 다룰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또한 WTO가 출범한 이후 세계무역질서가 WTO의 규칙 제정과 분쟁 해결에 의해 유지되었고 DDA의 다자협상을 통해 개방화를 추구해 왔으나, 중국, 브라질, 인도 등 신흥시장국들의 발언권이 강해지면서 미국 중심의 선진국들과 개도국과의 타협이 점점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그 대안적 접근은 양자주의와 지역주의가 된다. 더구나 현재 DDA 협상의 핵심은 제조업에 대한 시장접근인데, 이 부문에서 성과를 거둔다고 해도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중국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의 시장잠식을 막기 위한 위안화 절상 문제 역시 다자협상에서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 때문에 미국은 점점 다자 테이블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새 글로벌 무역규칙은 미국적인‘높은 수준의 21세기적 기준’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미국 무역정책이 한 가지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선 무역의존도가 증대되고 미국 경제의 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보호주의로 회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큰 틀에서는 자유주의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WTO 다자질서에서 미국의 자유화 가치를 실현하기에는 참여국들이 너무 많고 미국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또한 공급망 무역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국가들과의 무역 조건을 해결하는 것이 무역정책의 선순위가 될 것이다. 무역 문제는 선거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민주당 중심의 반자유주의 세력은 공정무역과 무역의 사회적 책임과 연결된 노동, 인권, 환경에 대한 높은 수준의 기준을 관철하고자 한다. 설령 향후 교조적 자유주의 세력이 집권한다고 하더라도, 미국 무역정책은 다자협상의 한계를 벗어나 더 높은 21세기적 기준을 관철시킨다는 일관된 노선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패권이 지속되고 당분간 세계무역질서의 규범과 규칙이 여전히 미국의 주도하에 수립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미국이 WTO를 대체하는 수단으로서 TPP와 같은 거대 지역협정체를 설정하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가 이로부터 이탈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여기에 적극 참여하여 발언권을 높이는 시도를 통해 규칙의 수범자가 아닌 제정자로 나서는 것이 국익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저 : 백창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소장,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미국 무역정책 연구』, 『미국 패권 연구』, 『21세기 한국외교와 국가이익』(공저), 『현대 미국 정치의 이해』(공저), 『20세기의 유산, 21세기의 진로』(공저), 『정치학의 대상과 방법』(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미국 사회과학의 기원1, 2』(공역),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공역) 등이 있다.

책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