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 · 학술
‘통일’은 여전히 우리의 소원인가?
통일교육협의회에서 실시한 2013년 청소년 통일의식 조사에서 통일이 ‘필요하다’(74.3%, 매우: 23.6%+대체로: 50.7%)고 생각하는 응답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 ‘전쟁 위협 등 불안감에서 벗어남’이 33.3%로 가장 높았고, ‘우리나라 국력이 더 강해짐’ 25.1%, ‘이산 가족 문제를 해결’ 21.5%, ‘역사적으로 한민족임’ 19.9% 순으로 높았다. 이는 2008년 조사에서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청소년들이 ‘우리나라의 국력이 더 강해질 수 있기 때문에’ 28.4%,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24.7%, ‘역사적으로 한민족이었기 때문에’ 24.6%, ‘전쟁위협 등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18.1% 순으로 이유를 들었던 데 비교해 ‘한민족’과 같은 통일의 당위성보다 ‘국력’, ‘전쟁 위협 탈피’와 같은 실리적 필요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기반하여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분단민족의 입장에서 ‘분단-통일’의 개념을 당연하게 사용해왔다. 그러나 남북관계 및 통일에 대한 국민적 인식은 당위적인 차원을 넘어서 점차 경제적/안보적/정치적으로 다각화되고 있다. 남북관계에 대한 접근 시각이 분단-통일의 특수론에서 분리-통합이라는 일반론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전 세계적 이슈, 분리와 통합
얼마 전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 실시한 분리 독립에 대한 투표는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분리 독립 움직임이 있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그 결과를 예의 주시했을 것이다. 개표 결과 반대 55.3%, 찬성 44.7%로 307년 만의 독립은 무산됐고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일부로 남게 됐다. 하지만 투표율은 역대 최고인 84.6%에 달했으며, 스코틀랜드는 훗날 또다시 분리를 시도할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와 마찬가지로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분리 독립 움직임이 있다. 그 대표적인 지역으로 스페인의 카탈루냐와 바로크, 벨기에의 플랑드르, 캐나다의 퀘백, 미국의 텍사스, 일본의 오키나와, 중국의 티베트, 신장, 네이멍구, 이탈리아의 남티롤과 베네토 등이 있다. 이러한 분리 독립의 움직임은 국가와 해당 지역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 내의 갈등을 야기하며, 그 양상은 물리적 충돌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스페인 동북부의 카탈루냐는 문화와 역사가 스페인과 다르며 카탈루냐어도 스페인어와 다른 점이 많다. 1714년까지 카탈루냐는 독립된 지역이었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때 프랑스 왕국의 지원을 받은 스페인 왕가에 대항해 신성로마제국 및 영국연합군에 가담했다가 바르셀로나 공방전에서 패배, 자치권이 소멸되었다. 카탈루냐는 스페인 전체 면적의 10%에 불과하지만 스페인 총인구의 16%인 760만 명이 거주하고 국내총생산의 20%를 차지한다. 카탈루냐에 위치한 바르셀로나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관광수입도 상당하다. 하지만 지역의 총생산 중 9%가량이 중앙정부를 통해 남부 안달루시아 등 다른 지방정부를 도와주는 데 사용돼 주민들의 불만이 크다. 이 지역에서 지난 2012년부터 3년째 이어진 독립시위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오는 11월 시행 예정이었던 국민투표는 헌법재판소가 적법성 여부를 가릴 때까지 연기됐지만, 현재 카탈루냐 주민 중 분리 독립에 찬성하는 비율이 반대하는 비율보다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13억의 인구와 55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다민족 국가이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의 통제 아래에서도 일부 소수민족들은 분리/독립 또는 자치 확대를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광대한 자치구를 형성하고 있는 티베트와 신장이 대표적인 분리주의 투쟁지역이다. 티베트는 13세기 이후 중국의 통치와 영국의 영향을 번갈아가며 받아왔던 지역으로 1950년 인민해방군을 동원한 중국에 점령됐고, 이후 티베트는 1951년 5월 중국 5개 자치구의 하나인 서장 자치구로 통합되었다. 위구르족은 중국의 주류인 한족과 다른 아랍인 외모를 가지며 종교, 문화, 언어 등 모든 면에서 중국인과 이질적이다. 위구르족은 1759년 청나라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이래 42차례에 걸쳐 독립운동을 벌였고, 국공내전의 틈을 타 1933∼1934년, 1943∼1949년 독립국가인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을 건립했으나 1949년 중국의 지배체제에 완전히 편입되었다. 최근에는 비교적 안정적인 지역으로 알려졌던 네이멍구 자치구에서도 반중시위가 벌어졌다.
분단-통일에서 분리-통합으로
이 글은 분단-통일과 분리-통합의 개념쌍을 비교했다. 규범과 분석적 차원에서 분단-통일과 분리-통합 개념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그것은 서로 동전의 앞과 뒤처럼 연관되어 한 쪽의 장점이 다른 쪽의 한계가 되곤 한다. 분단-통일 개념은 민족적 감정과 열망에 입각한 규범적 지향성과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을 잘 파악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분리-통합은 가치중립적 개념으로서 지나친 통일지향성과 획일주의의 위험을 피할 수 있으며, 일반론적 접근이 가지는 다양성과 개방성의 장점이 있다. 그동안 우리가 분단-통일의 개념에 치중해온 점을 고려할 때 이제는 분리-통합의 일반론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개념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분단-통일이라는 용어 대신 규범적 정향을 배제하고 단순히 현실을 기술하는 분리-통합의 개념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이 책의 필자들이 현재의 분단 상태를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려는 민족적 염원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북한 관계 및 통일 문제와 관련한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서 가치정향적인 분단-통일의 개념보다 가치중립적인 분리-통합의 개념이 더 많은 이득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발붙인 남북관계 논의를 위하여
‘분리와 통합’의 역사는 한반도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 나아가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 모든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모든 분리와 통합의 사례에는 나름대로의 특수성이 있지만 그 특수성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무수히 많은 일반적인 사례들의 비교연구를 통해 일반적인 경향과 패턴들을 발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책은 우선 분리-통합의 초보적인 개념 정의(김학노)에 입각하여 주요 사례들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를 시작한다. 먼저 구 유고슬라비아와 구 체코슬로바키아,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과 노르웨이, 미국, 일본, 중국 등을 비교 사례로 선정했다. 유고슬라비아와 체코슬로바키아(박정원)는 모두 분리의 사례로서, 각각 폭력적 방식과 평화적 방식의 분리를 대표한다. 영국(정병기)은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및 북아일랜드와의 통합과정이 다채롭고 분리와 통합의 헤게모니 투쟁 또한 다양한 양태를 보인다. 독일(이호근)과 이탈리아(김종법)는 모두 19세기 후반에 통일된 근대국가를 수립한 사례지만, 그 속에 다양한 분리주의 움직임이 있고 다양한 형태의 분리-통합 기제가 제도화되어 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김인춘)는 통합과 분리가 모두 비교적 평화롭게 이루어진 사례로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와 대조적이다. 미국(이옥연)은 분리주의 세력과 통합주의 세력이 전쟁까지 치르면서 대결했지만 내전 이후 비교적 평화적 통합을 이룬 사례로서 비슷하게 전쟁을 치른 남북한 관계에 시사점이 크다. 일본과 중국은 미국과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국제정치의 주요 관련국들이다. 중국(차창훈)은 티베트와의 관계에, 일본(김용복)은 오키나와와 재일 조선인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분리-통합 개념은 규범적 전제에 얽매이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인종 등 다양한 부문에 적용할 수 있으며, 그 양상도 매우 다양하다. 이는 우리의 현실, 즉 남과 북이 동질성보다 이질성이 많은 두 개의 사회와 체제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분단의 역사 속에서 굳어져온 두 개의 국가와 국민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줌으로써 앞으로 이어질 연구들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이 책은 분리통합연구회에서 처음 내놓는 책이다. 분리통합연구회는 2012년 말에 소수의 사람들이 만나서 정치와 정치학 및 사회과학 전반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면서 시작했다. 다양한 지역 전문가,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연구자들이 모였고, 각자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다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많은 현상(남북한의 분단과 통일 문제뿐만 아니라,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지지세력이 모이고 흩어지는 현상, 특정 종교나 이념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세력 결집과 와해 현상, 물질적 이익을 둘러싸고 모이거나 갈라서는 일, 남녀가 사랑해서 같이 살고 또 헤어지기는 일까지도)을 ‘분리-통합’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