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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재 · 학술

본문

평화권의 이해

저자
이경주  저
  • 가격

    26,000 원

  • 출간일

    2014년 03월 21일

  • 쪽수

    590

  • 판형

  • ISBN

    9788964357149

  • 구매처 링크


권리로서의 평화, 기준으로서의 헌법 

인권이 갈등 조정의 실질적인 근거가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사회운동으로서의 인권이 법적 판단 기준으로서의 인권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은, 권위주의적 독재가 민주주의적 법치로 변해가는 최근의 과정이었다. 

평화는 인권과 함께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헌법적 기준을 제공한다. 우리 헌법은 평화를 단순한 도덕적 당위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 당위의 근거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구체적 헌법 개념으로서의 평화를 재발견하고,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적용된 평화권의 사례를 검토해, 당면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시해준다. 


갈등 조정의 낯설지만 오래된 개념, 평화권 

책은 평화권의 개념을 역사적으로 추적해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그 속에서 탄생한 평화권의 맹아를 추적한다. 20세기의 평화주의, 장 조레스와 레닌의 사회주의적 평화주의, 전쟁위법화와 켈리그-브리앙 조약 등에서 보이는 평화주의의 흐름과, 이를 반영한 다양한 국제 문서에 포함된 평화권의 개념을 추출한다. 그 과정에서 평화권이 이름의 생소함과는 다르게, 여러 문서에 다양한 형태로 언급이 되는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평화권은 사실상 보편적?현대적 개념의 인권과 함께 출발한 개념이고, 인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개념이라는 점을 확인한다. 


평화권을 반대한 패권국, 미국 

수천만 명의 사상자를 냈던 세계대전의 비극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연합(UN)은 그 창립 목표부터가 평화였다. 평화권, 즉 개인이 향유하고 그에 대한 보장이 공적으로 약속되는 개인의 ‘권리로서의 평화’가 국제연합에서 논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오히려 평화권이 각종 문서에서 다소간 추상적으로만 선언되고 있는 것이 의문스러운 일이다. 이는 평화권이 가지게 될 위력과 기존의 국제 관계가 대립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유네스코 총회는 1997년 평화권 선언문을 채택하려 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당시 비공식 석상에서 미국 대표단의 일원은 “평화를 인권 범주로 끌어올려서는 안 된다. 평화를 인권으로 인정하면 전쟁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패권국 미국이 평화권이 실정법화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은 가장 강력한 형태의 평화헌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고, 한국은 남북한의 대치로 평화가 가장 위협받고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두 국가 모두 평화권에 지속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문 pp. 43~48)


헌법과 평화권 

국제 문서에 포함된 평화권은 개념의 역사와 정당성, 의의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이라면, 실제로 평화권이 어떻게 운용될 수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의 헌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제 개별 국가 헌법의 평화권 근거를 찾는 작업에 들어간다. 여기에는 대한민국헌법도 포함된다. 

책은 2차 대전을 기점으로 정립된 헌법들 대부분에 평화와 관련된 조항이 포함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방식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군대의 사용에 강한 제약을 걸거나 아예 군대를 없애는 강력한 방식이라는 큰 흐름에서는 동일하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도 예외가 아니었다. 법제사의 관점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이 바뀌어온 모습을 분석하면, 그것이 수용되고(1948년 제헌헌법), 잠식되어 괴리가 발생하다(1962년 헌법), 형해화되며(1972년 헌법), 지체되기는 하지만(1987년 현행 헌법), 평화주의에 대한 내용은 계속 유지된다. 사실상 평화권의 존재에 대한 헌법적 근거는 충분히 그리고 보편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기본권으로서의 평화권 

하지만 국제적인 선언이나 각국의 헌법들이 포함하고 있는 평화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쨌건 추상적인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다. 특히 평화가 인민 개인이 누릴 수 있고, 이것을 국가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있다. 국제문서와 헌법이 가져야 하는 광의성에 기반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으로만은 피상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평화권이 실제 재판에 적용이 되어, 개인이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의 하나인지에 대한 사례 연구에 들어간다. 


나가누마(長沼)는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인구 2만 명의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쌀농사를 주로 짓는 나가누마에는 가뭄과 수해를 방지하기 위한 숲이 마오이(馬追) 산에 조성되어 있었고, 이는 보안림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 정부가 소련을 겨냥한 방공기지를 이곳에 배치할 계획을 세운다. 항공자위대 기지 건설과 나이키 미사일의 배치가 결정되었고, 일본 정부는 마오이 산 일대 10만 평(33만m2)을 부지로 결정했다. 그리고 1969년 숲의 보안림 지정을 풀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주장과 함께였다. 

이에 마을 주민 173명은 기지 건설을 위한 보안림 지정 해제 처분에 대해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한다. 숲의 보안림 지정은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친다는 것이었다. 군사기지가 들어서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 평화권에 위협을 받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후 소송인단은 359명으로 늘어났고, 일본 사회는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대립한다. 법정으로 간 싸움에서 첫 번째 승리는 주민들에게 돌아갔다. 

1심 법원은 “일본 헌법에 비무장평화주의를 규정하고 있는데도 그 규모로 보나 장비로 보나 군대에 해당하는 자위대를 두는 것은 헌법원리에 반하며, 따라서 자위대의 일부인 항공자위대의 미사일기지 건설을 위한 보안림 지정 해제는 공익과 무관하다”라고 판결했다. 자위대의 현황이 이미 헌법에 위배될 정도에 이르렀으며, 그런 자위대의 군사기지가 배치되면 유사시 상대국으로부터 1차 공격목표가 될 수 있고, 이는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을 위협하는 평화권 침해 행위라는 것이다. 

이후 재판은 계속되었다. 고등재판소를 거쳐 최고재판소의 최종 결정을 받은 1982년까지 14년의 시간이 걸렸고, 결국 나가누마에 항공자위대의 미사일기지는 건설되었다. 하지만 1심 판결이 주는 의미는 여전히 주목을 끈다. 평화적으로 살아갈 권리, 평화권이 재판에 사용되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법적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본문 pp. 331~333)


1991년 미국이 주축이 된 다국적군과 이라크가 벌인 걸프전에, 일본은 다국적군의 전쟁비용 720억 달러 가운데 100억 달러 이상을 부담했지만 자위대 병력을 파병하지는 못했다. 자위대가 해외에 파병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일본의 군사적 지원에 대한 미국의 요청과, 자위대 해외 파병에 적극적이었던 일본 정부의 입장이 만나 PKO법(국제연합평화유지활동 등에 대한 협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다. 하지만 PKO법에 따르면 자위대는 전투행위가 끝난 다음 후방 지원만 가능했다. 파병에 있어 한계가 뚜렸했던 PKO법을 극복하고자 일본은 1999년 주변사태법을 만든다. 일본 주변에서 미군이 전투행위를 벌일 때 일본이 후방지원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곳이 아프가니스탄이었는데, 아프가니스탄은 일본의 주변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본은 다시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공격 등에 대응하여 이루어진 유엔헌장의 목적 달성을 위한 외국 국가들의 활동에 대하여 일본이 실시하는 조치 및 관련된 유엔의 결의 등에 기초한 인도적 조치에 대한 특별조치법>이라는 긴 이름의 법을 제정한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에 들어가는 미국을 지원할 수는 없었다. 일본은 또 <이라크에서 인도부흥지원활동 및 안전확보지원활동의 실시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병한다. 그리고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이 일본 국민의 평화권을 침해한다는 소송이 제기되었다. 

3,200여 명에 달하는 원고들은 왜 이라크전쟁에 자위대가 파병되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자신의 삶에 비추어 반대하는 진술서를 모두 각자 작성하였다. 태평양전쟁에서 공습으로 부모를 잃은 경험, 오키나와전투에 참가했던 기억, 제자를 전장에서 잃은 경험, 베트남전쟁 당시 NGO 활동가로 베트남에 겪은 일들, 재일한국인으로서 겪은 식민지와 전쟁의 경험 등 각자의 다양한 경험에 근거한 반대 주장이 진술되었다. 작성된 진술서 가운데 일부가 법정에서 한 번에 4명씩 각 15분, 모두 3시간여에 걸쳐 직접 진술되었다. 

나고야 고등법원은 이라크에 파병된 자위대의 철수와, 평화권 침해의 대가로 1인당 1만 엔의 손해배상을 주장한 원고들의 주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이 헌법에 위반하는 활동을 포함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원고들이 주장한 평화권이 재판에 사용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 개념임을 인정했다. 


“평화적 생존권은......극히 다양하고 폭넓은 권리라 할 수 있다......평화적 생존권은 현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이 평화의 기반 없이 존립할 수 없는 이상 모든 기본적 인권의 기초이며 그 향유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 권리로 인정되어야만 한다......평화적 생존권은 국면에 따라 자유권적, 사회권적, 또는 참정권적 성질을 띠고 나타나는 복합적인 권리라 할 것이고......보호/구제를 구하는 법적 강제조치의 발동을 청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구체적 권리성이 긍정되는 경우가 있다......단지 평화적 생존권만 평화개념의 추상성 등으로 인해 그 법적 권리성과 구체적 권리성의 가능성이 부정되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

(본문 pp. 335~336, 475~480)


1987년 말,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는 용산에 있는 미군기지를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후 대통령 당선자 노태우는 이 공약을 추진했으나 이전 비용 등의 문제로 사업은 정체에 빠졌다. 20여 년의 시간이 지난 2004년, 국회에서 용산에 있는 미군기지와 주한 미군의 핵심 전력인 미2사단을 평택으로 옮길 수 있는 협정이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기지 이전에 반대하고 나섰다. 반대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평택으로의 기지 이전이 한반도에서 주변국 사이의 무력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여,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곧 이에 대한 위헌확인소송이 제기되었고, 2006년 헌법재판소는 각하 판단을 내린다. 결과적으로 평택으로의 미군기지 이전은 결정이 되었지만, 헌법재판소는 주목할 만한 언급을 하였다. 평화권이 법적 판단의 근거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오늘날 전쟁과 테러 혹은 무력행위로 자유로워야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이므로, 달리 이를 보호하는 명시적 기본권이 없다면 헌법 제10조와 제37조 제1항으로부터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기본 내용은 침략전쟁에 강제되지 않고 평화적 생존을 할 수 있도록 국가에 요청할 수 있는 권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 pp. 59~62, <헌법재판소 2006.2.23. 선고 2005헌마268>)


이를 통해 평화권은 아직 보편적으로 실제 재판규범으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은 것을 지적하지만, 앞으로의 가능성 부분에서 열린 전망과 가능성을 내놓고 있다. 


평화권의 이해 

갈등이 해소되는, 제도적인 마지막 단계 그리고 가장 강력한 단계가 법이다. 그런 점에서 법이 가장 느리게 움직이기는 것은 일면 올바른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가 너무 느릴 경우에는 자신의 본래 기능마저 상실하게 될 우려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속도의 이야기를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에 대해, 새 기준을 발견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새롭고 특별한 무엇인가를 고안해내는 것이 아니라, 꽤 오래전부터 논의가 진행되어 왔던 평화권을 서둘러 재발견하는 것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저 : 이경주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 전(前)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 전문위원,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유권자의 권리찾기, 국민 소환제(2005), 헌법I(2012), 헌법II(2013), 세상을 바꾼 인권(2012), 헌정주의와 민주주의(2007, 공저) 지음. 헌법의 역사(1999)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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