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 · 학술
참고할 만한 연구서와 대학의 교재가 늘 부족한 한국의 인류학과 고고학 독자에게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수렵채집 사회의 삶에 관심 있는 일반인에게도 균형 잡힌 시각과 지식을 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고고학과 인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연구자에게 큰 도움이 됨은 물론, 관련 주제에도 앞으로 개척해야 할 더 넓고 깊은 영역이 있음을 느꼈으면 한다. 비록 수렵채집 사회를 직접 전공하지 않는 인류학자나 고고학자라 할지라도 이 책을 읽으며 과거와 현재의 인간사회에는 넓은 다양성과 함께 설명할 수 있는 패턴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렵채집 사회와 수렵채집민
수렵채집 사회는 인류학 이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19세기 진화론자들은 수렵채집 사회를 초기 인류사회의 살아남은 화석과도 같이 보았다. 에밀 뒤르켕(Emile Durkeim)의 종교 이론과 사회 이론은 호주 원주민 문화에 크게 의존했다. 래드클리프브라운(A. R. Radcliffe-Brown)의 안다만섬 사람들과 호주 원주민에 대한 연구는 구조기능주의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줄리언 스튜어드(Julian Steward)는 북 아메리카 서부의 쇼쇼니(Shoshone)족과 파이우트(Paiute)족에 대한 자세한 지식을 바탕으로 문화생태학을 세웠다. 호주 원주민 민족지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 Levi-Strauss)의 친족체계의 기본 구조를 찾는 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사실상 인류학의 토대는 원시사회에 대한 관념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인류학의 역사를 수렵채집 사회 민족학의 측면에서 쓸 수 있을 정도이다. 수렵채집 사회는 인류학의 본질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민족지적으로 알려진 수렵채집민에서 나타나는 변이에 대한 인류학적인 지식을 개괄한다. 특히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와 이론적인 논의를 담고 있다.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풍부한 자료를 담은 교과서
이 책의 원서가 처음 출간된 이후 학술서로서, 그리고 대학 강의 교재로서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이 책이 가진 다른 많은 책들과 차별화되는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책은 종합적이다. 수렵채집 사회의 삶을 소개하는 책은, 연구서와 대중서를 막론하고, 이미 알려진 것들이 더러 있다.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특정한 사례 중심이다. 일반인의 경우, 한두 가지 수렵채집민의 사례를 인간본성을 비추어주는 거울인 양 소개하는 책이나 미디어를 접하기 쉽다. 가령 부시 맨이라 알려진 주호안시족이나 핫자족같이 인류학과 고고학에서 많이 알려진 특정한 사회에 치중하고 있어, 다양한 환경과 삶의 양태를 지니고 있는 수렵채집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 책은 특정 연구에 치중한 다른 많은 대중서나 학술서와는 달리,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종합적인 진술과 비교, 분석을 담고 있으며, 기존의 책과 논문, 보고서, 민족지 등을 종합하면서 수렵채집 생활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식단, 이동성, 인구, 사회를 다루고 있는 장들뿐만 아니라, 열대림에서 온대지방, 극지에 이르기까지 100개가 넘은 족속의 사례를 표로 정리하고 기초적인 분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다른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는 강점이다.
둘째, 이 책은 이론과 방법론을 강조한다. 진화생태학, 더 구체적으로 인간행동 생태학은 현재 고고학과 문화인류학의 수렵채집민 연구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이면서 방법론이다. 수도 없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자료를 이론 또는 학문적인 시각 없이 정리하고 의미 있는 패턴을 도출하거나 설명할 수는 없다. 본래 생물학과 생태학에서 말미암은 인간행동생태학은 진화이론의 틀에서 생태학적 다양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로써 적도와 온대, 극지의 다양한 수렵채집민의 생활양태는 그저 다양성에 머무르지 않고 설명적인 가치를 지닌다.
수렵채집민은 야만적이고 미개하며, 따라서 인간이 자연의 일부였던 먼 과거를 보여 준다는 인식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팽배하다. 수렵채집민을 통해 인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 자체로 우리의 선사시대를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수렵채집 사회는 구석기시대 이후 만 년 이상 고립되어 변화와 발전의 역사와 과정을 겪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는 박제된 과거는 아니다. 이 책에서 분명하게 논의하고 있듯이, 수렵채집 사회는 다른 여러 형태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환경과 주변 집단과의 상호작용의 과정을 보여 준다.
저 : 로버트 켈리(Robert L. Kelly)
현재 미국 와이오밍대학(University of Wyoming) 인류학과 교수이며, 미시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1985). 주로 수렵채집 사회, 아메리카대륙 선사시대, 인간행동생태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미국고고학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류학에 관심을 가지고 고고학 유적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석사과정에서는 루이스 빈포드를 사사하기도 했다. 데이빗 토머스(David H. Thomas)와 함께 쓴 Archaeology는 널리 읽히는 고고학 교재이며, 1995년 이 책의 초판인 The Foraging Spectrum: Diversity of Hunter-Gatherer Lifeways를 출간하였다.
역 : 성춘택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고고학을 전공했으며, 미국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인류학과에서 고고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2001).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로 구석기시대를 비롯한 선사시대, 수렵채집민 고고학, 고고학 이론과 방법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기원과 혁명』(클라이브 갬블, 2013), 『고고학사』(브루스 트리거, 2010), 『다윈 진화고고학』(오브라이언·라이맨, 2009), 『인류학과 고고학』(크리스 고스든, 2001)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