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 · 학술
뉴욕의 명소,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지난 5월 5일, 미국 패션·예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행사인 ‘메트 갈라’가 개최되었다.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이 기부금 모금을 위해 특정 드레스코드에 맞춰서 모이는 파티인 메트 갈라는 아카데미 시상식만큼이나 스타들의 화려한 패션이 주목받는 행사로, 작년엔 가수 싸이와 탤런트 고소영이 참석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메트(MET)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Metropolitan Museum)의 약자로, 이 행사는 어느덧 뉴욕의 명소가 된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
1870년 설립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연간 500만 명이 방문하는 미국 최대 박물관이다. 파리 루브르박물관, 런던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2014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계 박물관 연간 방문객 순위에서 파리 루브르박물관, 워싱턴 자연사박물관, 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화려한 명성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한국인에게도 매력적인 곳이다. 아마 미국 드라마 [가십걸]을 본 사람이라면 주인공들이 앉아서 수다를 떠는 이 박물관의 입구 계단을 떠올릴 것이다. 여행사 투어가 아닌 자유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센트럴파크나 자유의 여신상 같은 기존 패키지 코스의 관광지보다 문화예술을 즐기기 좋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더 매력적일 것이다. 최근 SNS에서 이른바 뉴욕 방문 인증샷으로 심심찮게 등장하는 등,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한국에서 뉴욕의 대표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가이드북』은 30년 만에 나온 개정판인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공식 가이드북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Guide의 한국어판으로, 토마스 P. 캠벨 박물관장의 주도하에 박물관 내 17개 학예부서에서 만들었다. 이 책에는 박물관이 소장한 5000년에 걸친 세계 전 지역의 작품 330만 점에서 엄선한 대표작 600점을 시대와 콘셉트에 따라 각각 ‘고대’, ‘다양한 문화’, ‘유럽’, ‘미국’, ‘근대’의 다섯 파트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공식 가이드북의 최초 한국어판
이번 한국어판 출간은 한층 높아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세계에 박물관을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로 공식 가이드북인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Guide를 10개 언어로 출간하였는데 이번 개정판에 한국어가 포함된 것이다. 이는 2013년 1차로 출간된 스페인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중국어, 일본어, 이탈리아어 판에 이어 독일어, 러시아어, 아랍어와 함께 출간되는 7번째 외국어 판으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한국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한국 미술품 400점을 소장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1998년 6월 한국관을 개관하였고, 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 2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과 함께 공동으로 '한국의 황금 왕국, 신라'전을 열었다. 이 전시전은 1981년 '한국미술 5000년' 이후 최대 규모이자 박물관 내 한국관이 아닌 특별 전시실에서 열린 것으로, 박물관은 이를 위해 5년 동안 공을 들였다고 한다. 해당 전시 동안에는 약 20만 명이 방문하였는데, 이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지난해 마련한 가을과 겨울 전시전 가운데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은 것이다.
이처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가이드북 한국어판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책에는 삼국시대의 '보살반가상', 고려의 '뚜껑 있는 함'과 '수월관음보살상',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 네 점이 ‘다양한 문화’ 파트에 실려 있다.
'한국의 황금 왕국, 신라'전에 이어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에서 '조선왕실잔치'전이, 올해 3월 2일에는 필라델피아 박물관에서 '조선미술대전'이 연달아 열리는 등 한국이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일조하고자 사회평론 출판사는 런던 내셔널갤러리 가이드북의 공식 한국어판인 『당신이 내셔널 갤러리에서 꼭 봐야 할 그림들』에 이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공식 가이드북의 최초 한국어판을 출간하였다. 사회평론 출판사는 이후에도 해외 유명 박물관의 한국어판 가이드북을 지속적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세계 최고의 미술 컬렉션을 내 서재에서
가이드북 그 이상의 책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된 책들을 대상으로 하는 Independent Publisher Book Award의 2013년 여행 가이드 분야 금상 수상작으로, 평범한 박물관 가이드북으로 보기에는 아까운 점이 많다. 엄청나게 다양하고 많은 수를 소장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특성상, 그 소장품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세계 미술사 전체를 개괄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여러 걸작들을 시대와 콘셉트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어, 사실상 박물관이 아닌 미술을 소개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에서는 이 책에 대해 “학년에 관계없이 선생님들이 전 세계의 미술을 소개하는 책으로 활용하기 좋다”라고 평한 바 있다.
‘고대’ 파트에서는 메소포타미아, 고대 이집트, 고전 그리스의 주요 유물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아슈르나시르팔 2세 왕궁터에서 출토된 아시리아 부조군,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였던 하트셉수트의 기념비적 조각상, 고전 그리스의 채색 도기 등 고대 문명 연구에 족적을 남긴 유물들이 눈에 띈다.
‘다양한 문화’ 파트에서 소개하는 유물은 중국 상 왕조의 청동기, 동남아시아 크메르 왕조의 조각, 무굴제국 궁정의 세밀화와 페르시아의 전통 양탄자,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의 가면과 장식품,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장신구·가면·조각 등으로, 그야말로 전 세계를 망라한다. 또한 무기와 갑옷, 악기 등 다소 독특한 유물들도 실려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서양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어지는 ‘유럽’, ‘미국’, ‘근대’ 파트에서 소개되는 여러 작품들에 흠뻑 빠질 것이다. 2008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죽기 전에 봐야 할 걸작 20점’에 선정된 렘브란트의 '호메로스의 흉상을 응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하여 르누아르의 '피아노 앞의 두 소녀',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고갱의 '이아 오라나 마리아', 고흐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 등 일일이 나열하기 벅찰 정도로 많은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프란스할스와 베르메르 등의 17세기 네덜란드 미술, 엘 그레코와 고야 등의 스페인 회화, 신고전주의에서 후기 인상주의까지의 프랑스 회화, 17세기 이탈리아의 인상파 회화,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 18-19세기 프랑스 조각, 이탈리아 마욜리카, 프랑스와 독일의 자기로 대표되는 15-20세기 조각 예술품 등 중세부터 현대까지의 작품들이 있어 유럽 미술사 전체를 개괄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발튀스, 브라크, 마티스, 미로, 모딜리아니, 미국 초대 모더니스트의 작품들이나 재스퍼 존스의 '백기', 척 클로스의 '루카스', 잭슨 폴록의 '가을의 리듬' 같은 추상 표현주의 화가들의 작품 등 근·현대의 주요 작품들과 19-20세기 유럽·미국의 의상들, 앤디 워홀의 '자화상'을 비롯한 여러 사진들도 있다.
이처럼 전 세계를 아우르는 다양한 유물 컬렉션과 중세 미술부터 현대 사진에 이르는 방대한 미술 컬렉션을 보고 있으면 ‘세계 미술사 가이드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게다가 이 책이 공부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소장한 600점의 걸작들을 핵심만 간략히 한 설명과 함께 큼직한 도판으로 실어, 부담 없이 손 가는 대로 아무 페이지나 펼쳐 봐도 보는 재미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휴가철에 편하게 누워, 책을 읽기보다는 작품을 감상한다는 생각으로 여유롭게 보기에 이보다 좋은 책도 없을 것이다.
맞춤형 가이드북
그렇다고 이 책이 가이드북 기능에 충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박물관 가이드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 박물관에 대한 관심에 비하면 의외로 시큰둥하다. 가이드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물관 측도 방문객을 고려하여 가이드의 질을 높이는 데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경우 입장료 25달러를 지불하면 가이드 투어를 할 수 있고, 7달러를 지불하면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다. 이러니 사람들이 굳이 비싼 돈을 들여 가이드북을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갔다 온 사람들을 보면 돌아보는 데 시간이 부족해서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18만 6천 평방미터에 달하는 박물관의 규모 자체가 크기도 하거니와 볼 게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200개가 넘는 전시실에 전시된 수많은 컬렉션은 그 수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하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의 그림, 도기, 가면, 장신구 등 그 컬렉션은 가히 세계적이다. 게다가 회화, 판화, 조각 등의 미술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등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봄직한 거장들의 작품들로 빼곡하다. 이러다 보니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는 시간이 부족하여 결과적으로 인증샷만 찍고 오게 되는 것이다.
컬렉션이 이렇게 엄청난 이유는 왕실의 후원으로 성장한 유럽의 유명 박물관과는 달리,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민간의 기부금과 기증품으로 설립,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국립박물관이 자국의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하거나 특정한 콘셉트의 작품들로 컬렉션을 채우는 반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작품이 구해지면 구해지는 대로 컬렉션을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엄청난 자본력 덕분에 결과적으로 세계의 모든 지역과 시대를 아우르게 된 것이다.
특히 1917년 미술품의 기부액만큼 세금을 공제해주는 법률 시행과 함께 기업가들의 기부, 기증 러시가 시작되면서 박물관의 컬렉션이 질적,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였고, 현재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을 뜻하는 ‘기업 메세나’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되었다. 일례로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미술품은 1969년에 사업가이자 정치가인 넬슨 록펠러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명품은 1969년에 은행가 로버트 레만이 기증한 것이다.
이 같은 박물관의 엄청난 스케일 때문에 갔다 온 사람들은 볼 작품들을 미리 정하고 가기를 권하고 있다. 이 책은 박물관에 대한 설명은 서문에서만 간략히 하고 박물관 내 작품의 위치나 동선, 기타 정보들은 과감히 생략하여, 볼 만한 주요 작품들을 다루는 데 집중하였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갈 계획인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볼 작품을 미리 정하고 구체적인 가이드 서비스는 박물관에서 직접 제공하는 것으로 받는다면, 결과적으로 인증샷만 찍고 오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요컨대, 이 책은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특성에 맞춘 맞춤형 가이드북이다.
예술을 대중에게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1866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을 맞아 모인 일군의 미국인들 중 변호사 존 제이가 미국만의 박물관이 필요하다고 선포한 후 4년이 지난 1870년에 설립되었다. 이후 박물관은 비록 세계 3대 박물관 중에서 그 역사는 가장 짧지만 예술을 일반 대중에게 제공하겠다는 사명감과 함께 빠르게 성장하였다. 그 설립 취지문에서 “뉴욕에서 박물관과 미술 도서관을 설립·운영하고, 예술 연구를 장려·발전시키고, 제조업과 실제 생활에서 예술을 응용하고, 예술과 관련된 일반 상식을 향상하며, 이를 위해 일반 대중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듯이, 대중을 위한 박물관을 지향하며 1889년부터 근로자를 위해 일요일 개관을 시작하였고 현재는 방문객이 기부금으로 입장하도록 하고 있다.
이 책에는 예술을 대중에게 제공하겠다는 박물관의 설립 취지가 잘 담겨 있다. 박물관보다는 박물관이 소장한 걸작들을 소개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 책 한 권으로 미술을 즐기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물론 박물관을 방문하기 전 이 책을 보며 볼 작품들을 미리 생각해두면, 엄청난 크기에 수많은 작품들이 전시된 박물관을 관람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처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가이드북』은 이 박물관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미술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 모두를 아우르는 최적의 가이드북이자 그 이상의 책이다.
저 : 메트로폴리탄 박물관(Metropolitan Museum)
330만 점에 이르는 막대한 소장품을 자랑하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영국 대영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뉴요커들은 보통 '멧(Met)'이라는 애칭으로도 부른다.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폭넓은 지역, 다양한 장르의 미술품과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1872년 5번가에 처음 개관했으며 1880년 뉴욕 시가 부지를 기증하여 지금의 장소로 이전했다. 센트럴 파크를 설계한 캘버트 보 등이 건물을 설계했다. 1912년에는 커다란 보자르 양식의 파사드가 완성되었고, 그 후 수차례 증개축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