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 · 학술
접촉지대에서 남북의 마음을 잇는 희망을 본다
사람을 보아야 분단이 보인다
남북한 모두에게 분단은 비극이고 통일은 소원이었다. 분단의 시작은 이념의 차이였지만 독자적인 발전 전략을 추진하고 각각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그 차이는 감정, 사고방식, 가치관 등 전면적인 수준으로 확산되었다. 이제 분단은 비단 한반도라는 영토 위에서 벌어진 제도적, 이념적 사안이 아니라 남북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벌어진 심리적 현상이기도 하다. 굳이 통일 후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는 독일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사회문화적, 심리적 통합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고 하겠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다. 이제는 국가와 제도가 아닌 사람과 일상에 대한 분단과 통일 연구에 주목해야 한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만나는 곳, 접촉지대
다른 역사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충돌하고 싸우는 공간을 접촉지대라 한다. 충돌과 소통, 갈등과 공존이 병존하는 접촉지대를 관찰하면서 우리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충돌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해하고 화해하게 되는지 배울 수 있다. 이 책은 남과 북의 접촉지대를 중심으로 분단된 마음의 모습과 공존할 수 있는 미래의 실마리를 찾아보고 있다.
태영호 공사가 쇼핑하던 코리아 타운, 영국 뉴몰든의 어울림
지난 8월,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가족과 함께 탈북해 한국에 왔다. 고위 외교관의 탈북은 큰 뉴스거리가 되었는데, 그의 영국에서의 생활도 화제가 되었다. 뉴몰든의 한인마트에서 쇼핑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탈북민들의 인터뷰도 나왔다. 뉴몰든은 어떤 곳이기에 한인마트가 있고 탈북민이 있을까? 영국 내 코리아 타운인 이곳에는 남한이주민은 물론 북한난민과 조선족까지 어울려 살고 있다. 우리가 완전히 고립되었다고 인식하는 북한의 주민들과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접촉하고 있을까?
영국 뉴몰든 코리아 타운(제3부 3장)에는 남한이주민과 북한난민, 조선족까지 뒤섞여 살고 있다. 영국은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해 받아들였고, 북한난민은 영국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다 이미 한인들이 모여살고 있는 런던 남서부 뉴몰든으로 이주해왔다. 이곳에서 한인, 중국 조선족, 북한난민은 경제적, 사회문화적 소수집단으로서 다양한 방식의 협력과 갈등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인들은 여행사, 음식점, 잡화점, 미용실 등을 열고 뉴몰든에 먼저 정착하였다. 그리고 조선족과 북한난민은 한인 가게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거나 서비스직으로 일하고 있다. 영어 구사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이 한국어만 구사해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이곳에 찾아온 것이다.
정착기간이나 자본에서 먼저 온 남한이주민이 더 우월한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난민은 영국 정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남한이주민보다 더 안정적인 법적 지위와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역전된 관계는 북한난민들이 좀 더 자신감 있게 살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영국에서는 한반도의 정세로부터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점에서 남북한 주민들이 외부 사건에 영향을 덜 받으면서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제공한다.
반면 국내 접촉지대에서의 상황은 다르다. 북한의 무력도발이 있을 때마다 탈북민이 긴장한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닌데도 추궁을 받다 억울해서 화를 내고 싸우는 일도 생긴다. 인천시 남동구의 공업단지(제3부 4장)에서 일하는 북한출신 노동자들 역시 그런 어려움을 호소한다.
공장에서 북한출신주민과 남한주민은 사용자와 노동자로서, 또는 동료 노동자로서 부딪힌다. 상대적으로 남한에서 요구하는 조건이나 노동 기술을 갖추지 못한 북한출신주민들은 불합리한 노동조건과 대우를 감내하게 된다. 또한 북한보다 긴 노동시간과 높은 노동강도도 부담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은 대가가 뚜렷한 만큼 강도도 높아 그것에 힘겨워한다. 하지만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진다는 것에 만족하는 이들도 있다.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임대아파트 단지(제2부 1장)에는 북한이탈주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탈북자지원정책의 일환으로 임대아파트에 거주하게 된 북한출신주민들은 남한 주민들과 이웃으로서 공간을 함께 한다. “동네사람들 집에 숟가락 몇 개 있는지도 알던” 북한사회와는 다른 아파트의 익명성과 폐쇄성에 북한출신주민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다고 한다. 이들은 이런 답답함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원 동기나 동향 출신끼리 어울리며 불안과 외로움을 해소한다. 남한주민들은 북한출신주민들의 센 억양의 사투리와 웃음소리, 다투는 소리, 음식 냄새 등이 아파트의 고요함과 프라이버시를 깨뜨린다고 생각한다. 소음과 쓰레기 분리수거부터 복도에 물건을 놔두는 문제에까지 생활 속의 작은 일들로 이들은 충돌하며 갈등을 겪는다. 남한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북한출신주민에겐 낯선 것이다.
개성공단(제2부 2장, 3장)은 2016년 2월부터 전면 가동 중단이 되었지만 그전까지는 남한 기업 124개 사, 남한 당국자 및 기업 관리자 800여 명, 북한 근로자 5만여 명이 함께 생활했던 남북한 최대 규모의 접촉지대였다. 경영진이거나 중간관리자였던 남측 관계자들은 처음엔 비협조적이고 데면데면했던 북한 근로자들이 어떻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협조적이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는 남측 관리자들의 포기하지 않는 노력도 있었다. 한 입주기업 관계자는 매일 정문에 나가 출퇴근하는 북측 근로자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받아주지도 않다가 어느 순간 답례도 하고 말도 주고받게 되었다며 술회했다. 이밖에도 북한 근로자의 남한 관리자를 대하는 태도의 극적인 변화는 구체적인 발언을 통해 생생히 전달된다.
이 책은 이러한 직접적 접촉지대들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독일 통일과 동서독 주민들의 내적 통합 문제(제2부 5장), 남북한 공식 대화에서의 상호인식(제2부 4장), 북한의 핵에 대한 초기 인식과 그 변화(제3부 1장)도 자료를 짚어가며 분석하고 있다. 남북관계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는 실증적 연구들이 분단과 통일을 고민하는 독자의 눈을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저 : 이우영
연세대학교에서 지식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저 : 구갑우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적’ 공공정책> 연구로 서울대학교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있다.
“동아시아지역 국제경제기구의 형성 및 제도화”(공저, 2000) “국제정치경제(학)와 비판이론:존재론과 인식론을 중심으로”(2004) “남북한 관계에 대한 메타이론적 접근”(2004)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동아시아 다자간 안보협력에 관한 연구”(공저, 2005) “한국의 평화외교:평화연구의 시각”(2006) “The System of Division on the Korean Peninsula and Building a ‘Peace State’”(2006) 등의 주요 논문과 『북한연구방법론』(공저, 2003) 『현대 국제관계이론과 한국』(공저, 2004) 『남북한 관계론』(공저, 2005) 『북한 도시의 위기와 변화』(공저, 2006) 『한반도 경제론』(공저, 2007) 등의 저서가 있다.
저 : 양문수
일본 도쿄대(東京大)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매일경제신문 기자, 문화일보 기자, LG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저 : 이수정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재)무지개청소년센터 부소장, 북한대학원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북한이주민/난민, 북한사회/문화, 이주, 평화, 젠더 등이며, 주요 저서로는 <인류학 민족지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공저, 2012)), 주요 논문으로는 「다문화주의와 통일담론」(2012), 「탈냉전 민족 스펙터클: 2000년 여름 남북 이산가족 상봉」(2014), 「영국 뉴몰든 코리아 타운 내 남한이주민과 북한난민 간의 관계와 상호인식」(2014), 「북한 속어 ‘석끼’ 담론을 통해 본 북한 주민의 마음」(201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