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 · 학술
국내 처음으로 소개되는 알제리 소수민족 카빌리 베르베르 문화 연구 보고서
‘베르베르’는 한국 독자들에게 낯선 단어다. 포털 사이트에 이 단어를 검색하면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가 나오는데, 선사시대부터 북아프리카에 거주해 왔고 지금까지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를 간직하고 있는 이 책의 주인공 베르베르인(Berber)과는 관련이 없는 분이다. 철자도 다르다.
‘카빌리’는 한국 독자들에게 더욱 낯선 단어다. 알제리 동북부 고산지대의 지명이면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베르베르인들을 지칭하는 이 단어는, 포털 사이트의 인공지능이 ‘파빌라’를 검색하려던 것이 아니었는지를 되물을 정도로 우리에게 생경하다.
그러나 카빌리 베르베르 문화는 알제리, 프랑스, 그리고 지중해 문화를 이해하려 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주제다. 알제리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거꾸로 프랑스에 유무형의 영향을 미쳤고, 지중해의 수많은 민족들이 로마와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며 사라져갔음에도 지금까지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바로 카빌리 베르베르인들이다. 우리에게 익숙하게는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의 혈통이며, 알베르 카뮈를 포함한 여러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지역이다. 또는 20세기의 위대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사회학의 길을 걷게 된 계기였던 인류학 탐사의 대상이기도 하다.
카빌리는 ‘이슬람 국가 알제리’ 내의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베르베르인의 집단 거주지’라는 특수한 위상에 있다. 1830년 알제리 정복을 시작한 프랑스 정부는 원활한 식민통치를 위해 베르베르인 대 아랍인이라는 이분구도에 기초한 분열 정책을 구사했고, 카빌리는 이러한 정책에 활용되어 ‘프랑스화’의 대상이 되었다. 초등학교와 직업학교 설립으로 프랑스어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고, 지금도 주요 도시의 간판이나 게시물 등 기호학적 환경 측면에서 프랑스에 대단히 가까운 친프랑스 지역이다. 카빌리인들은 7세기부터 시작된 북아프리카의 아랍화에 따라 이미 오래전에 이슬람교로 개종하였지만, 쿠란보다 자신들의 관습법 ‘카눈’을 따를 만큼 쉽게 길들여지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이슬람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이 책은 이런 배경 요소들과 함께 카빌리 베르베르 문화의 세세한 부분을 깊게 살피고 있다. 한국어로 처음 출간되는 본격적인 베르베르 문화 연구서인 만큼, 관련 연구자들 및 알제리 기업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한국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700여 개 표제어로 정리한 카빌리 베르베르 문화
이 책은 사전 형식을 빌려 카빌리 베르베르 문화의 구성 요소들을 700여개 표제어로 정리한 인류학 보고서다. 카빌리 사람들의 축제와 의례, 관습, 신화와 예술, 식생활, 정치 조직 등 문화의 전 영역을 담아냈으며, 현대의 독립전쟁과 이민, 정치운동 등 알제리의 현대사와 깊이 관련된 마그레브의 당면 문제까지 깊게 다루고 있다.
한국어판은 알파벳순으로 된 원서의 형식을 재구성하여 지리, 생태, 역사, 종교 등 14개 대분류를 두고 그 안에서 우리말 순서에 따라 단어를 재배치했다. 원하는 항목을 사전처럼 쉽게 찾아볼 수도 있고,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어나갈 수도 있도록 절충 형식으로 구성하였다.
옮긴이의 글인 ‘알제리 카빌리 지방: 인류학적·역사적 접근’은 카빌리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위한 상세한 설명이다. 카빌리의 지정학적 위치부터 현대의 사건들까지를 개괄하여 카빌리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 지식을 소개했다.
또한 옮긴이는 카빌리 베르베르어를 한국어로 최대한 정확히 옮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원 저자의 설명을 듣고, 현지를 여러 차례 방문해 직접 확인하고, 한국에 거주하는 베르베르인 학생의 도움을 받는 과정을 거쳤다. 또 이렇게 정리한 단어 목록을 원 저서에는 없는 ‘카빌리어 용어표기’ 항목에 우리말 순으로 정리하여 연구는 물론 현지 활용까지 가능하도록 배려했다.
카빌리 문화 연구의 독보적 권위자가 남긴 생생하고 세밀한 보고서
저자 카미유 라코스트-뒤자르댕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지만, 가장 권위 있는 베르베르 문화 연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카빌리 구전설화를 수집하여 번역하고 분석한 방대한 양의 출판물 외에 15권의 저서가 있으며 발표한 논문 수만 150여 편에 이른다. 베르베르 문화, 특히 카빌리 문화와 관련한 연구로는 독보적인 업적이다. 뒤자르댕은 알제리에서 지리 교사로 근무하며 카빌리 문화에 매료된 이후 1968년부터 1992년까지 매년 한 달씩 카빌리에 머물며 필드워크를 수행했으며, 이 책은 이런 한 인류학자의 평생을 바친 연구의 결실이다. 카빌리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오랜 연구 없이는 알 수 없는 삶의 결들을 세심한 시선으로 풀어내 엮은 결과인 만큼, 기업인들에게는 현지에서만 알 수 있는 생생한 정보를, 인류학을 공부하는 예비 연구자들에게는 연구자의 방법과 태도 측면에서 적잖은 귀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총서 소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불어문화권연구소는 1989년 설립되어 전문학술지 《불어문화권연구》를 중심으로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전 세계 프랑스어권 지역의 문화 전반에 대한 학제적·종합적 연구를 수행해왔다. 지역 간 교류가 활성화되고 문화 상호 간의 관심과 이해의 필요성이 점점 더 커져가는 오늘날의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불어문화권연구총서를 발간하게 되었다. 이는 그간의 축적된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다른 문화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이해를 촉발하고자 하는 작은 노력의 일환이다.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퀘벡, 카리브 해 지역 등의 문화 현상 전반, 언어·문학·예술·역사·사회·정치 등을 아우르는 총체적 현실에 대한 인문학적 시각의 저작들을 계속 발간해 나갈 것이다.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총서 1 『아프리카: 열일곱 개의 편견』, 엘렌 달메다 토포르 지음, 이규현·심재중 옮김, 한울(한울아카데미), 2010.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총서 2 『검은, 그러나 어둡지 않은 아프리카』, 이영목·이규현·강초롱 외 지음, 사회평론아카데미, 2014
저 : 카미유 라코스트 뒤자르댕 (Camille Lacoste dujardin)
인류학자, 프랑스 국립학술연구원 명예 연구실장. 카빌리 설화 번역과 연구에 독보적 업적을 남겼다. 『카빌리 설화. 인류학적 연구』(2003), 『여성 대화의 인류학』(2002), 『여성에 반대하는 어머니들. 마그레브의 가부장제와 모성』(1996), 『‘푸른새 작전’. 카빌리 사람들, 인류학자들 그리고 알제리전쟁』(1997) 외 150여 편의 논문이 있다. |
역 : 김정숙
배재대학교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 북아프리카-마그레브연구소 소장. 『마그레브, 북아프리카의 민족과 문명』(공역), 『북아프리카 지역에서의 부족집단 간 갈등 양상에 관한 기초연구』(공저), 「프랑스어권문학: 탈식민화 기획과 실천의 가능성」, 「마그레브 프랑스어문학: 모호한 정체성과 위상」, 「알제리 카빌리 지방: 인류학적 역사적 접근」 외 다수의 논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