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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 ‘균형 잡힌’ 식단
『선사시대의 식탁(La Nutrition Prehistorique)』은 구석기시대의 식생활을 의학적 관점과 인류학적 관점 양쪽에서 폭넓고 깊이 있게 분석한 연구서이다. 3인의 저자들은 이 책에서 선사시대 사람들의 식단은 일반적인 선입관과는 달리 건강하고 균형 잡힌 것이었다는 주장을 다양한 고고학 증거를 제시하면서 펼친다. 나아가 과다한 영양 섭취로 발생하는 비만 등 성인병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구석기시대의 식탁은 하나의 교훈과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라는 질문에 지금 우리는 비교적 쉽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유적에서 출토되는 동물화석이나 식물화석에 기초한 동물고고학과 식물고고학 분야의 발달로 당시 사람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대답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선사시대 사람들의 구체적인 식생활은 어떠했는지, 생활에 필요한 영양소들은 제대로 섭취하였는지, 또 동물성 영양분과 식물성 영양분을 어느 정도의 비율로 섭취하였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면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고학자들은 의사나 영양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어려운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실상을 밝혀낸 역저이다. 이는 저자들이 단순한 선사고고학자일 뿐만 아니라 영양학자, 의사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들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식생활을 인류학적 관점에 의학적 관점을 더하여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다양한 민족지적 자료를 보완해서 연구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구석기시대의 식탁 vs 현대의 식탁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선사시대인은 ‘황량하고 얼어붙은 툰드라 지역의 눈 내리는 하늘 아래서, 혹은 어둡고 연기로 꽉 찬 동굴의 깊은 곳에서 사냥한 동물 고기와 강에서 잡은 물고기, 숲에서 채취한 과일, 뿌리, 잎을 먹는 그다지 지적이지 않은 사람들’이다. 게다가 그들은 ‘항상 배고픔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는 것 자체가 힘든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이는 지난 시기 영화나 TV 프로그램이 심어 준 이미지로, 최근의 연구 결과 이와는 다르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1만 년 전 신석기시대 이전까지 인류는 지방분이 적은 고기나 물고기, 섬유질이 많은 식물 등을 균형 있게 섭취하는 식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백질, 특히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섭취했다. 오늘날 가축의 부드러운 고기 속에는 25~30%의 기름기가 들어 있지만, 사냥으로 구한 야생고기는 기름기 함유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 복합당이 많이 들어 있는 적당량의 탄수화물을 섭취했으며, 심장혈관에 ‘좋은’ 불포화지방산과 ‘나쁜’ 포화지방산의 비율이 바람직하게 구성된 지방을 약간 섭취했다. 콜레스테롤은 권장치를 살짝 넘게 먹었고, 식물성 섬유소가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을 충분히 먹었다. 염분은 거의 섭취하지 않았는데, 고혈압을 예방하는 데 아주 유리했다. 칼슘을 충분히 섭취했고, 비타민 C의 함량이 높은 음식을 먹었다. 신석기시대 농경과 함께 정착생활이 시작되면서 야생곡물 대신 재배곡물, 사냥동물 대신 가축 고기를 많이 먹게 되면서 탄수화물과 지방의 섭취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중에서도 불포화지방보다는 포화지방, 다당류보다는 단당류를 선호했고, 섬유소 섭취는 줄고 소금과 향신료 섭취는 늘어나게 되었다.
이 같은 균형 잡형 잡힌 식생활에도 불구하고 선사시대 사람들의 수명은 매우 짧았는데, 인류보다 훨씬 전에 지구상에 나타난 일반적인 균에 감염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저자들은 보고 있다. 한 예로 아브리 빠또 유적에서 신생아와 함께 발견된 젊은 여성은 감염 또는 과다출혈로 인한 출산 합병증으로 출산 직후 사망한 것으로 여겨진다. 높은 영아사망률 역시 감염성 질환이 주원인으로 이들의 평균 수명을 낮추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들은 화석의 상태로 판단할 때, 슬기슬기사람(호모사피엔스)의 건강 상태는 대체로 양호해서 좋은 균형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척추관절염과 같은 관절염·골절·치주질환이 있지만 결핵이나 초기 또는 전이성 악성골종양.골다공증.골연화증.구루병은 없으며 충치질환은 아주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
여기서 저자들은 만일 구석기시대의 식탁이 현재보다 영양학적으로 우월하다면 그 시대의 식탁, 즉 먹을거리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양 과다에 따른 질병 치료를 위한 식이요법 처방전에 의사가 가장 먼저 적어야 할 말은 모두 우리의 과거에서 착상을 얻을 있다는 것이다. ‘육류와 유제품의 동물성 지방을 줄이고, 단당류와 소금을 줄이고, 물고기ㆍ다당류ㆍ섬유질이 많은 식물과 식물성 지방을 늘리고, 약간의 포도주를 제외한 알코올 음료를 마시지 말고, 담배를 멀리하고, 신체 활동을 할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새로운 시각의 끊임없는 업데이트
이 책은 프랑스 학자에 의해 프랑스어로 쓰여진 고고학서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라스코 동굴벽화 등 선사시대 유적이 풍부한 프랑스의 첨단 선사학 연구 성과를 접하는 것은 영미권 저작물 편중의 학계 풍토에서 자주 있는 기회는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 책이 한국어판으로 나오는 것을 기뻐하면서 기꺼이 한국어판 서문과 함께 그동안 이루어진 새로운 연구 결과와 경향을 정리한 <원저자의 한국어판 추가 내용>을 보내 주었다. 이는 고령의 저자들이 지금도 쉬지 않고 선사시대를 연구하고 있다는 증거임과 동시에 저자들과 역자들의 3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학문적 교류의 결실로, 이 책은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선사문화 교류의 또 다른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
저자들의 구석기시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단지 이러한 영양학적 분석에 그치지 않는다. 당시 사람들이 식량을 어디에 어떻게 저장하였는지, 또 어떤 조리법으로 음식을 만들었는지 등 식생활의 전모를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밝혀내고 있다. 이 또한 새로운 시도로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식량원의 소비 방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삶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그려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은 또한 매우 드물게 출간되는 구석기시대 문화 연구의 성과물이며, 특히 유물이나 유적의 분석이 아닌 사냥, 소비, 영양 등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독특한 분야의 책이다. 비단 구석기시대뿐만 아니라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선사시대의 식탁』은 인류학과 고고학 분야 전공자나 학생들뿐만 아니라 영양학자나 각종 성인병을 진료하는 의사들에게도 참신하고 유용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건강한 삶과 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줄 것으로 여겨진다.
저 : 질 들뤽 (Gilles Delluc)
내분비학 전문의로 프랑스 페리괴 병원 내분비과 수석과장 등을 역임했다. 어렸을 적부터 선사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50년부터 라스코 동굴 조사에 참여했으며, 앙드레 르루와-그루앙의 지도로 파리VI대학에서 제4기 지질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앙리 드 룸리의 지도로 동대학에서 고인류학과 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 선사부에 소속된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선사예술 분야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하였고 선사시대의 섭생, 성, 고병리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부인인 브리지트 들뤽은 평생을 함께하는 학문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저 : 브리지트 들뤽 (Brigitte Delluc)
파리I대학에서 앙드레 르루와-구르앙의 지도로 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2년부터 1982년까지 선사민족지학연구소의 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 선사부 연구원이다. 아브리 빠또 유적지박물관 관장을 지냈으며, 2013년 보르도 국립과학문학예술아카데미의 통신회원으로 위촉되었다. 선사예술 분야가 전공으로 프랑스 레제지 지방의 베제르 계곡 일대의 동굴예술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였으며, 특히 프랑스 라스코 동굴 연구에는 1970년대 이후로 계속 참여하고 있다.
저 : 마르틴 로크 (Martine Roques)
의학박사로 전공 분야는 인체영양학이다. 그녀는 낭시 의과대학에서 인체영양학 전공 교수인 제라르 데브리 교수를 사사했다. 페리괴 의료센터에서 근무했고, 현재 랑마리 의료센터에서 진료 활동을 하고 있다. |
역 : 조태섭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 사학과와 동대학원(고고학 전공)을 졸업한 후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 선사고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주 석장리, 단양 금굴 등 여러 구석기 유적의 발굴에 참여한 바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구석기시대의 동물화석연구, 동물고고학이다. 현재 공주 석장리박물관 자문위원, 제4기학회 부회장, 한국구석기학회 감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화석환경학과 한국 구석기시대의 동물화석』(2005년), 『실험으로 배우는 구석기문화』(2013년, 공저) 등이 있다. |
역 : 공수진
한불구석기문화연구소 소장이다. 연세대학교 사학과와 동대학원(구석기고고학 전공)을 졸업한 후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 선사고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구석기문화의 국제교류에 많은 관심을 가져 중국 주구점 유적 전시, 프랑스 또따벨 유적 전시, 프랑스 한국구석기특별전을 공동으로 기획하였다. 연세대 원주박물관 학예실장을 거쳐 현재 공주 석장리박물관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실험으로 배우는 구석기문화』(2013년, 공저), 『행위와 말 I: 기술과 언어』(2015년)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