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 · 학술
시·서·화에 뛰어난 ‘예원의 총수’ 강세황
강세황은 시서화(詩書畵) 삼절로 많은 작품을 남겼고, 안목이 높고 서화이론에 밝아 많은 화가들의 작품에 서화평을 썼다. 남종문인화의 토착화, 진경산수화의 유행, 풍속화의 풍미, 서양화풍의 수용 등 조선 후기 화단의 새로운 경향에 두루 관여하고 다양한 인물들과 교유하면서 당시 문예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후대 화원화가 단원 김홍도와 문인화가 자하 신위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그에게 붙여진 ‘예원(藝苑)의 총수’라는 호칭은 결코 허명이 아니다.
조선시대로부터 몇 백 년이 흐른 지금 강세황 같은 문인화가를 조명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는 강세황을 주목할 여러 이유 가운데 무엇보다 그가 일생 ‘속기(俗氣)없는 서화’의 길을 추구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동아시아 문예의 보편성’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이 터득한 문인화 정신을 다양한 작품에 담아냄으로써 이른바 한국적 문인화의 새로운 차원을 열 수 있었다. 그가 이룩한 담담하며 맑은 작품세계는 사의성(寫意性)과 한국성(韓國性)을 아우른 한국적 문인화의 경지를 잘 보여 준다. 요컨대 강세황은 동아시아 문예정신의 보편성과 조선 후기 시대적 특수성을 동시에 지닌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이 예술’이고 ‘예술이 생활’인 문인의 삶
강세황이 여러 시대와 공간을 관통하는 동아시아 시서화 정신의 보편성을 몸소 구현한 대표적인 문인화가라는 사실은 지난 시대의 의미를 대변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여전히 현재적 생명력을 가진다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다시 말해 사의(寫意)를 중시하는 문인화의 가치가 현재와 미래에도 유효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화의 본질은 이상적 보편가치를 추구하며 예술을 통해 참[眞], 진리(眞理)에 이르고자 하는 뜻[意]을 그리는 것[寫意]에 있다. 누구나 물질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지금보다 나은 상태를 희망한다. 특히 끊임없이 오욕칠정(五慾七情)으로 출렁이는 차원 저 너머 진정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고상한 경지가 과거 많은 문인들의 보편적 지향점이었다. 세속적 일상을 살면서 한가하고 맑은 풍류를 꿈꾸고 탈속적 가치를 희구한 문인들이 이른바 ‘시중은일(市中隱逸)’을 실천하였다. 시대를 막론하고 진정한 인간의 길을 향한 노력과 맑고 평온한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이상과 가치는 다르지 않다.
문화의 시대에 들어선 오늘날 인류가 지향하는 문화의 본질과 과거 문인들이 추구하던 가치는 같은 방향이라고 저자는 본다. 사람다운 사람, 고결한 정신, 맑고 시원함, 유유자적, 즉 지성, 자유, 평화 같은 높은 이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공통이다. 질적으로 나아지고자 하는 방향성이야말로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 불변의 보편성이다. 그 때문에 ‘사의’정신에서 강세황을 포함한 대표적인 문인화가들의 현재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대개의 한국적인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강세황의 작품세계가 ‘고요한 맑음, 은은한 투명성’을 생명으로 하는 한국적 미감을 체화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시서화 삼절이라 기록된 사람은 적지 않으나 실제 작품으로 입증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서양에는 그런 문화가 없었으며 동아시아를 통틀어도 귀한 예이다. 삼절의 안목과 감성을 두루 갖춘 강세황이 전인적인 문화인의 한 전형이라는 방면에서도 주목받게 될 것이다. 그는 이른바 ‘생활이 예술’이고 ‘예술이 생활’인 삶을 살았기에 문화인들이 그리는 생생한 역할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지식인들의 문예활동과 시대상황 알 수 있어
그의 문집 『표암유고(豹菴遺稿)』 등에 실린 정보들을 통해 당시 지식인들의 문예활동과 시대상황 등 의미 있는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 그 문집에는 다른 기록에서 찾기 힘든 중요한 정보들을 싣고 있어서 미술사적 의의가 크다. 특히 유고의 글과 현재 남아 있는 작품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됨으로써 작품 이해나 당시 화단의 동향, 그리고 강세황 자신을 포함한 작가들의 생각이나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 자료가 된다.
강세황은 김홍도와 신위에게 그림을 가르친 스승으로서의 역할도 괄목할 만하다. 이 사실은 화가들의 사제지간이 밝혀진 예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매우 소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특히 강세황이 쓴 김홍도 전기가 없었다면 대표적 천재화가 김홍도의 예술세계를 어떻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생각할 때 「단원기(檀園記)」 등의 가치는 실로 막대하다. 문집에 있는 부안 변산 지역과 금강산 여행, 그리고 중국사행 기록과 당시에 그린 작품들이 함께 남아 있는 점도 독보적이다.
강세황에 대한 새로운 해석 기대
저자는 개정판 발간에 대해 “초판이 절판된 후 관심 있는 분들이 강세황 관련 자료를 찾으면서 불편을 겪는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명색이 표암 전공자로서 부담을 느껴 왔다”며, “애초에 『표암 강세황 회화 연구』는 자료적 성격에도 의미를 둔 책으로, 기왕에 정리한 자료들을 여러 연구자들과 공유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나아가 “이 책이 새로 생명을 얻은 의의는 강세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기다리는 데에 있다”며, “그로 인해 조선 후기 문인들의 문예활동에 대한 해석도 더욱 다양하고 새로워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저 : 변영섭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회장, 한국미술사학회 회장,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위원, 충청북도문화재위원회 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표암 강세황 회화연구』(일지사, 1988),
『화안-동기창의 화론』(시공사, 2003),
『한국미술사』(문예출판사, 2006),
『미술사, 자료와 해석』 泰弘燮先生賀壽論文集(일지사, 2008),
『표암유고』 청명국역총서 2(지식산업사, 2010),
『중국미술상징사전』(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