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 · 학술
우리 학자가,
우리의 시각으로,
철저히 고증된 사실(not neutrality but truthfulness)에 입각하여
이론·정책·역사가 동시에 반영된 통합적 관점으로 재조명한 국제관계사!
이 책은 지금까지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기술된 국제관계사가 은연중에 담고 있는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편향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비서구적 민족주의나 국수주의가 빠질 수 있는 역편향의 위험성을 동시에 경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관계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나아가, 이 책이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냉전 종식까지의 국가 간 관계를 “단순한 균형이나 중립이 아닌 철저히 고증된 사실(not neutrality but truthfulness)”에 입각하여 이론·정책·역사가 동시에 반영된 통합적 관점으로 재조명한 역사적 분석이다.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러시아, 베트남, 한국 등에서 비밀이 해제된 외교 문건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미 검증된 기록과 정설로 받아들여진 역사에 대한 타당성을 재검증하였고, 그 동안 영어로만 되어 있던 수많은 문건들을 이런 원본들과 일일이 비교·대조하면서 역사적 증거로서의 객관성과 타당성을 확보하고자 한 저자의 지난 10여 년간의 노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끝없는 대화’이면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누군가가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다. 그들이 실제로 살아온 역사의 한 장 한 장을 담고 있는 그 ‘편지’는 지금의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의 원인을 짚어주면서 동시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초를 제공한다. 이 책은 이러한 ‘과거와 현재 간의 대화’와 ‘먼 곳으로부터 온 편지’의 내용을 담담히 그러나 생생하고 기운차게 전달하고 있다.
책의 구성과 내용
이 책은 19세기 말부터 냉전의 종식 때까지의 국제관계사를 담고 있다.
국제관계의 역사에 대한 탐구는 주권(主權, sovereignty)이라는 새로운 유럽중심적 정치 개념이 어떠한 형태의 “수용과 변용, 저항을 거쳐 다른 권역으로 전파(傳播)” 또는 확산되었는지, 그리고 국가라고 불리게 된 이러한 주권적 정치 주체들이 이익, 이념, 위엄(prestige), 명예(honor), 가치(value)를 추구하면서 정복, 약탈, 사대자소(事大字小), 이이제이(以夷制夷), 타협, 균형, 편승 등 어떠한 수단으로 상호작용해 왔는지, 그리고 이러한 상호작용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결과와 그것이 다음 단계의 국가 간 상호작용에 어떠한 배경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와 설명을 그 목적으로 한다.
기존 국제관계사
국내에는 국제관계의 역사를 다루는 걸출한 저서들이 몇 있다. 그러나 몇 가지 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하다. 특히 이들은, 현재와 미래의 국제관계의 관점에서 본다면, 시간적으로 대과거(大過去, 너무 먼 과거)에서 출발하고, 냉전의 국제관계사를 담고 있지 않거나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고, 냉전 종식 후 비밀해제된 문건도 반영하지 않고 않다.
냉전기에 주목하고 비밀해제 문건들을 섭렵한 서양 학자의 저작 중에는 개디스(John Lewis Gaddis), 영과 켄트(John W. Young and John Kent)가 잘 알려져 있고 맥윌리암스와 피오트로우스키(Wayne C. McWilliams and Harry Piotrowski)의 책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쓰여진 역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저작은 공통적으로 미국 또는 서양 중심의 시각에 기초해 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이 저작들은 냉전의 기간과 미소 간 대립에만 초점을 맞추어 냉전이 1차대전, 러시아혁명, 2차대전 등에서 비롯되었다는 역사적 기원(起原)에 대한 토론을 생략하는 문제도 갖고 있다.
『국제관계사: 사라예보에서 몰타까지』에서 저자가 이루려는 목적 중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한국 내 국제관계사 탐구의 빈곤을 극복하고, 서양 중심 국제관계사의 ‘편향적 선택(selection bias)’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기점은 제1차세계대전
이 책은 제1차세계대전에 이르게 되는 정치외교적, 경제적, 군사적 과정에 대한 역사적 분석으로 시작한다. 1차대전은 인류가 겪은 최초의 세계 수준의 “제국주의적” 전쟁이라는 기원적(紀元的) 의미뿐 아니라,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 전역을 물질적, 관념적으로 강타한 나폴레옹 전쟁을 마무리짓고 유럽의 국제관계를 100년간이나 “보수적 유대(conservative unity)와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외교”에 기초하여 안정적으로 관리한 ‘비엔나 체제(the Concert of Europe)’가 1차대전을 기점으로 그 근원에서부터 해체되었다는 점에서 외교사나 국제관계사적 측면에서 의미심장하다 할 것이다. 나아가, 이 책의 주요 지향점이 냉전기 국제관계사에 대한 넓고 깊은 이해의 추구라 할 때, 냉전의 시작은 2차대전의 결과와 긴밀히 연결되고, 또 2차대전은 1차대전의 결과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때 분석과 논의를 1차대전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적실하고 타당하다 하겠다.
비밀해제된 문건의 반영
저자는 『국제관계사: 사라예보에서 몰타까지』 전체에 걸쳐 새롭게 발견된 역사적 증거나 새롭게 형성된 정설(定說)들을 충실히 반영하였다. 오랜 기간 동안 검증이 이루어진 양차대전에 관한 기록들은 비교적 논쟁의 여지가 덜하나 냉전기에 생산된 문건과 기록들은 검증 시간의 부족과 이념적 대결·투쟁이라는 개입변수로 인해 상대적으로 논쟁 가능성이 높으며 이로 인해 정설이 도전받을 여지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베트남, 한국 등에서 비밀해제된 외교문건들을 면밀히 검토 분석하여 이미 검증된 기록과 정설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새로운 지식은 새로운 정설을 위한 건설적 논쟁을 추동하는 원동력을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제관계의 역사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한 깊은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 강대국 중심주의에 대한 재성찰
국제관계사의 학문영역에서 서구 강대국 중심주의란 “19세기 이후 국제관계의 역사에서 서구문명을 주체로 설정하고 비서구문명을 타자로 포섭하면서, 서구문명이 구성한 국가 간 관계의 역사를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역사기술”을 의미한다. 서구 학자가 서구 중심의 국제관계사를 생산하게 된다는 것은 불가피한 사실일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학문적 의제설정 권력(어떤 것이 연구될 가치가 있는가, 어떻게 연구되어야 하는가 등을 둘러싼 담론적 권력)”을 행사하여 비서구인들에게 “문제의식의 서구화”를 강제함으로써 “자기 사회에 대한 독자적인 문제의식을 형성하지 못하거나 자기 사회의 맥락과 유리된 문제의식”을 갖게 만든다는 데 있다.
실제로, 주류적 서구 강대국 중심주의적 관점은 한국인, 아시아인 또는 비서구인들이 알아야 할 역사 또는 현재나 미래의 사활적 이익이 걸려 있는 역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명하지 않고 있고, 한국을 포함하여 비서구적 국제관계사의 대부분도 서구의 담론적 권력에 포섭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구 강대국 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는 사적(史的) 관념의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관점에서 자못 의미심장하다 할 것이다. 저자는 기존 국제관계사의 관심과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인과 비서구인의 입장에서 알아야 할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카(E. H. Carr)의 용어를 빌리자면,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s)”의 영역으로 포함하는 것을 『국제관계사: 사라예보에서 몰타까지』의 주요 집필 목표로 삼고 있다.
국제관계사의 새로운 시각과 정설의 발전을 추동하는 징검다리
저자는 국제관계사라는 특수한 주제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책과 이론과 역사를 종합적으로, 그리고 유기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인식의 틀, 즉 국제정치 특유의 이론·정책·역사의 ‘통합적 삼각인식구조’를 상정하는 총체론적(holistic) 접근법이 필수불가결하다고 판단한다. 저자는 역사적 결정과 행위, 그리고 그것들과 교호하는 구조의 힘과 변동에 대한 역사 주체들의 주관적 인식을 분석할 때뿐 아니라, 그것들을 국제관계의 역사로서 선택하고 분석·서술하는 사가의 객관적 시각을 추구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통합적 삼각인식구조’를 일관되게 유지하고자 한다.
사실 이 세상 어디에도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역사서는 없다. 구체적 시·공간의 영향하에 놓인 사가의 가치관이나 관심사에 따라 사실들이 선택되고 “역사적 사실”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국제정치를 주도하는 현실적 역학관계의 역사를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인이나 비서구인이 알고 싶은 역사, 어떻게 보면 서구적 주체들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흑역사”를 드러냄으로써, 비로소 진정으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역사에 근접하는 역사서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되고 낯익은 주제에 대한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면서, 나아가 “국제관계사란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퍼즐을 제시하고 국제정치 특유의 이론·정책·역사의 ‘통합적 삼각인식구조’를 상정하는 총체론적(holistic) 문제의식하에서 당시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각국의 비밀해제 외교문건들을 수집하고 읽고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사건이나 개념에 관한 사가들의 논쟁을 추적하며 정설(定說)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하였다. 그후 저자는 쓰기와 읽기, 그리고 수정과 보완을 병행하면서 『새로 쓰는 냉전의 역사』를 내놓은 지 16년 만에 비로소 하나의 작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역사는 저자가 “지금(now)” 알고 있는 제한적인 사실에 대한 해석의 결과일 뿐이다. 저자는 이 책이 국제관계사의 새로운 시각과 정설의 발전을 추동하는 데 있어 하나의 작은 징검다리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저 : 박건영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콜로라도대학교(University of Colorad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UNESCO-한국위원회, 학술논문상 수상, 2014, 수상작: “미중관계와 한반도의 통일: 전략적 상호주의”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 코리아펠로우, 2005
한국국제정치학회 학술상 수상, 2000, 수상작: 『한반도의 국제정치』
가톨릭대학교 국제대학원장, 1999-2001
현)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