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 · 학술
아날학파의 창시자 마르크 블로크의 역작. 유럽적 시각에서 20세기 초 프랑스 농촌사회의 주요 특징적 현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물질적·정신적 사회구조 면을 중심으로 해명한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농업사가들과는 달리 법적․제도적 관계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농민들이 일하고 생활했던 경지형태나 촌락의 흔적을 통해서 프랑스 농촌사를 재구성하고 종합적으로 개관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가 문제 중심의 전체사와 사회구조사여야 한다는 마르크 블로크의 독창적인 역사인식과 연구방법론이 가장 잘 구현되어 있는 대표작이다.
20세기 아날학파의 창시자 마르크 블로크의 대표작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의 번역 개정판이 새롭게 출간되다!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1886∼1944)는 20세기의 가장 걸출한 역사가 중 한 명으로, 프랑스 아날학파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그는 19세기 이래 역사학계를 지배해 온 정치사 위주의 랑케 사학을 전면 비판하고 새로운 역사학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사학사적으로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마르크 블로크는 인간은 복합적이고 사회적인 존재인 동시에 집단적 연관성과 장기 지속적인 거대 구조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역사는 전체사적이고 사회구조사적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이런 역사인식은 그가 창시한 아날학파를 통해 지금까지도 세계 역사학계를 풍미하고 있다. 공화주의자이자 실천적 역사가였던 블로크는 제1, 2차 세계대전에 자원해서 참전했으며,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에 대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가 1944년 58세의 나이에 독일군에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이번에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은 1931년 노르웨이 오슬로 소재 비교문명연구소에 의해 처음 출간된 책을 번역한 것으로, 동일한 역자의 2007년도 번역본의 개정판이다. 이번 번역 개정판에는 이 저서의 의미와 성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마르크 블로크와 더불어 아날학파의 공동 창시자인 뤼시앵 페브르가 1952년 파리의 아르망 콜랭 출판사에서 재출간한 도서에 실은 머리말을 새롭게 덧붙였다. 또한 이번 번역 개정판은 용어, 역자주석, “옮긴이 해제” 등의 일부를 수정 및 보완했으며, 특히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우리말 번역이 되도록 많이 다듬었다. 독자들은 이번 번역 개정판을 통해 마르크 블로크의 대표작을 온전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적도와 관습집, 법률서적과 문학작품 등
다양한 사료를 통해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프랑스 농촌사회의 역사를 만나다!
― 참신하고 독창적인 역사인식과 연구방법론으로 유명한 모든 역사 탐구자의 필독서
마르크 블로크의 획기적인 역사인식과 이에 따른 독창적인 연구방법론이 가장 잘 표현된 저서가 바로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Les caractères originaux de l’histoire rurale française)』이다. 이 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의 농촌사 개설서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블로크는 프랑스 농촌사를 종합적으로 개관하되, 그가 살던 20세기 초엽 당시의 프랑스 농촌사회의 주요 구조적 특징인 중소 규모의 농민적 토지소유와 대토지소유의 병존, 지역별 몇 가지 상이한 경지제도의 분포 등의 현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해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농촌사는 농업기술과 경제적 측면을 도외시한 채 법적․제도적 측면에서 평면적으로 서술한 종래의 농촌사 개설서와는 전혀 다른 문제 중심의 전체사이고 사회구조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사용된 연구방법과 사료는 매우 혁신적이다. 이를테면, 블로크는 문헌기록이 드문 농촌사 연구에서는 문헌 사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구체적인 과거 사회의 제도적·물질적 흔적의 관찰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재구성해야 한다면서, 시간의 역방향으로 추적하는 소급적 연구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또, 프랑스 농촌의 역사에서 일어난 변화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유럽적 차원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면서, 비교사적 연구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사료에 있어서도 전통적 농업사 연구자들이 특허장과 같은 증서류를 주로 사용한 데 비해, 그는 지적부와 지적도, 관습집과 법률서적, 수많은 진정서, 칙령, 포고문, 각종 단체의 결의사항과 문학작품 등 그전에는 이용하지 않은 자료를 개발하여 사용한다.
블로크가 이 책에서 제시한 연구지침과 연구방법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생산적이다. 그가 밝힌 견해 또한 세부적인 면에서는 부분적으로 수정이 필요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지극히 타당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농촌사 연구자들에게는 연구의 길잡이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오늘날에도 농촌사와 사회경제사 연구자들을 비롯해 모든 역사학자의 필독서가 되고 있으며, 블로크는 그들 사이에서 학문적 ‘아버지’ 또는 ‘스승’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책 속에서
블로크의 작업은 쉽지 않았다. 프랑스는 오늘날 그렇듯이 지리적 환경으로 봐서나, 보통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정착민이 뒤섞여 살면서 끼친 색다른 여러 자취로 봐서나, 또 우리가 프랑스적이라고 부르는 땅에 대한 여러 경합하는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영향으로 볼 때나, 서로 매우 다른 지방들로 구성된 나라였다. 그래서 대단히 복잡할 수밖에 없었던 농업사의 기본특성을 도출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작업은 필요불가결하였다. ― 7쪽, 「뤼시엥 페브르의 머리말」 중에서
역사는 무엇보다 변화에 관한 학문이다. 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검토하는 가운데 이런 진리를 절대로 잊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만 현재와 가까운 시기의 희미한 불빛으로 그보다 훨씬 먼 과거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경지제도와 관련해서 그랬다. (중략) 그러나 과거를 설명하기 위해서 먼저 살펴봐야 하는 것은 현재이거나 적어도 현재에 아주 가까운 과거인 경우도 있다. ― 28-29쪽, 「서론: 연구방법에 대한 몇 가지 고찰」 중에서
결국 우리는 여기서 프랑스의 개간활동을 유럽적인 차원의 현상으로 보고 다룰 수밖에 없다. (중략) 개간활동과 관련된 프랑스 고유의 특징은, 예컨대 독일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징과 비교해 볼 때, 가스코뉴 지방을 제외하면 거의 전적으로 국내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십자군의 소수 국외이주나 노르만족의 정복지 및 동유럽—특히 헝가리—도시들로의 몇 안 되는 이례적 인구유출 외에는 국외이주가 없었다. 프랑스의 개간활동은 국내에서 특별히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요컨대 이 문제에 관한 진상은 명확하다. 그러나 그 원인은 무엇일까? ― 49-50쪽, 「제1장 개척의 주요 단계」 중에서
바퀴달린 쟁기로부터 기다란 모양의 경지가 필연적으로 생겨났고, 기다란 경지로 말미암아 집단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유지되었으며, 보습에 덧댄 차대로부터 전체 사회구조가 생성되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추론하는 것은 인간 능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망각하는 것이라는 점에 유의하자. 바퀴달린 쟁기로 인해 불가피하게 밭들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쟁기가 밭의 폭까지 좁게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 150쪽, 「제2장 농경생활」 중에서
우리는 가축의 수를 늘리기 바라는 농민들에게 영주 소유의 거세하지 않은 황소와 수퇘지의 사용을 사용료의 지불 아래 강요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보통 도리깨로 두드리지 않고 말발굽으로 짓밟게 해서 탈곡하는 프랑스 남부에서는, 다수의 영주가 탈곡 작업에 비싼 사용료를 받고 대여하는 말을 농민보유지 보유자들이 사용하지 않고 다른 가축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꽤 자주 영주의 독점권은 더욱 터무니없는 양상을 보이곤 했다. 예컨대, 영주는 일년 중 몇 주 동안은 오로지 자신만이 이런저런 물품을 판매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 보통 포도주가 그 대상이었으며, 이것이 ‘포도주 우선판매독점권’(banvin)이라고 하는 것이다. ― 204쪽, 「제3장 14~15세기 위기까지의 장원제」 중에서
지대 수입의 감소는 유럽적 현상이었다. 다소 활력을 회복한 영주 계급이 재산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 역시 유럽적 현상이었다. 프랑스에서처럼 독일, 영국, 폴란드에서도 동일한 경제적 참극이 전개되어 비슷한 문제들을 낳았다. 그러나 나라에 따라 사회적․정치적 조건이 달랐던 만큼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대응방법도 상이했다. ― 288쪽, 「제4장 중세 말부터 프랑스혁명까지 장원제와 토지소유의 변천」 중에서
프랑스의 농촌사가 안개 속을 벗어나기 시작하던 이른바 중세 초기에는, 토지보유의 단위인 동시에 인간의 사회적 구성단위이기도 했던 것이 촌락 및 장원과 같은 상대적으로 큰 집단조직의 하부에 위치하면서 농촌사회의 기본적 세포조직을 이루고 있었다. 작은 인간집단이 거주하는 주택과 이들이 경작하는 일단의 농토로 구성된 그것은 프랑크 시대의 갈리아에서는 거의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이것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가장 널리 불린 이름은 ‘망스’(manse, 라틴어로는 mansus)였다. ― 336쪽, 「제5장 사회집단」 중에서
구 프랑스에서는 어디에서나 황야, 늪지대, 숲이 주민들의 집단 이용에 국한해서 사용되었다. 울 쳐진 경지제가 실시된 지방에서 경작자가 자기의 농경지를 완전히 자신의 마음대로 사용하는 경우에도, 농경지의 이런 자유로운 사용은 정확히 말해서 공유지로서의 황무지가 존재함으로써만 가능했다. 그뿐만
저 :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1886년 프랑스 리옹의 유대인 교수 집안에서 태어났다.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역사학과 지리학을 수학했으며, 1908년에 역사학 및 지리학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하고 1920년에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스트라스부르 대학과 소르본 대학 등에서 역사학 교수를 역임했다. 현실사회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과 책임감을 가진 실천적 역사가이자 공화주의자였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자원하여 참전했으며, 나치의 프랑스 점령 아래서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가 1944년 독일군에 체포되어 58세의 나이로 고향 근처에서 처형되었다.
참전과 불안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10여 권의 저서와 100편에 이르는 논문 등 다량의 우수한 연구업적을 남김으로써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역사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역사연구는 단순히 탁월하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19세기 이래 역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사건사 내지 제도사 위주의 랑케 사학과는 달리, 그는 인간은 복합적·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집단적 연관성과 장기 지속적 거대 구조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역사는 전체사적이고 사회구조사적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획기적 역사인식과 이에 따른 혁신적 역사연구 방법론은 이른바 아날학파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후 기존의 직관적·반(反)과학적인 랑케 사학을 밀어내고 오랫동안 세계 역사학계를 풍미하게 된다. 그의 새로운 역사학이 가장 잘 표현된 대표적인 고전적 저서로는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과 『봉건사회』를 들 수 있다.
역 : 이기영
동아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문학박사).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 중세 봉건사회의 구조와 형성 및 농촌경제이며, 전공에 관한 수십 편의 논문이 있다. 지금까지 단독 저서와 번역서는 다음과 같다.
『고전장원제와 봉건적 부역노동제도의 형성: 서유럽 대륙지역을 중심으로』(사회평론아카데미, 2015)
『고대에서 봉건사회로의 이행: 서유럽 농노제와 봉건적 주종관계의 형성 및 인종문제』(사회평론아카데미, 2017)
이르미노 저,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한국문화사, 2014)
마르크 블로크 저, 『서양의 장원제: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한길사, 2020)
마르크 블로크 저,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사회평론아카데미, 2023)
B. H. 슬리허르 판 바트 저, 『서유럽 농업사 500-1850년』(사회평론아카데미,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