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재 · 학술
네 명의 사회과학자가 의기투합하여 지리학, 정치학, 경제학 등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후변화와 사회변동의 문제를 살펴본다.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위기는 이 시대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도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기후변화를 정의하기 위한 과학적 노력의 사회적 의미, 기후변화에 따른 사회변동의 역사적 사례와 고기후학적 연구, 온실가스 감축과 재생 에너지 전환이 야기하는 사회적 과제와 그 영향, 그리고 기후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본 감축(mitigation) 부담의 공정한 분배와 글로벌 자본주의 대전환의 과제 등 네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학계의 연구성과를 소개하고 그 시사점에 대해 논한다.
최근 들어 기후변화로 인해 화석연료 및 탄소에 기반한 인류 문명의 문제점이 가시화되면서 변화에 대한 노력을 촉구하는 대중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지구적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비하여 위기 대응을 위한 행동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구촌의 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방해 요인에도 불구하고 공동 대응을 추동하고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는 기후변화의 의미와 그에 대한 사회적 대응 방안을 다룬다.
기후변화 및 그에 대한 대응과 관련된 이 같은 근본적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출발점으로서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하여 답해보고자 한다.
첫째, ‘기후변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실인가?
둘째, 기후변화가 사실이라면 그 원인은 무엇이고 인간의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셋째, 인류는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특히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및 국제적 대응의 주요 논점은 무엇이고 그에 어떤 대응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기후변화의 의미와 그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
1장에서 김대현은 ‘기후’와 ‘기상’을 엄밀히 구분하면서 우리의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기후변화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자연과학 측면에서의 실험 결과 및 축적을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흔히 지구온난화가 극한적 기상의 원인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으나, 둘 사이의 신빙성 있는 연결을 위해 현대 과학이 수집하고 축적해야 할 자료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류는 하늘에서 벌어지는 기후변화와 극한기상 현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장기적으로 전 지구적으로 생물다양성 감소나 해안저지대의 소멸 등을 유발할 것으로 예측되며, 극한 기상은 현재 인명과 재산에 즉각적으로 피해를 준다. 일반적으로 후자의 영향이 더 즉자적이기에 초미의 관심사이며 뉴스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다. 하지만 극한 기상의 빈도가 장기간에 걸쳐서 꾸준히 증가하여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추세를 형성해야 비로소 이를 기후변화 문제로 취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변동을 언급하기에 앞서 기후변화와 각종 기상현상 자체가 상당히 복잡하고 난해한 개념임을 인지해야 한다는 점을 김대현은 강조한다.
기후변화와 사회변동의 역사 그리고 대응
인간들의 삶에 대한 태도의 전환과 관련하여 증거 축적에 기반한 과학적 접근 못지않게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경험한 역사 속에서 환경, 특히 기후변화가 사회변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 2장에서 박정재가 잘 설명하고 있듯이, 기후변화와 사회변동에 대한 관심은 고고학이나 역사학에까지 영향을 미쳐 기후변화가 구체적으로 사회에 어떤 변동을 가져왔는지에 대한 상관성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에 존재했던 과거 사회의 성쇠(盛衰)가 기후변화와 깊은 연관을 가진다는 연구들이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과정은 워낙 과거에 일어난 일이어서 완전한 검증이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박정재가 지적하였듯이 과학적 분석을 중시하는 고(古)기후 학자의 입장에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회적 요인들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도 안 되겠지만, 인문사회학자가 고기후 연구들을 증거가 충분치 못한 결정론적 해석이라고 폄하해서도 안 될 것이다.
박정재는 기후변화가 분명히 진행되고 있다면, 새로운 환경을 오히려 발전의 기회로 삼는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과거 사회의 다양한 사례들은 기후변화에 최대한 적극적으로 대응했을 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적 대응 – 에너지전환
3장에서 신범식은 기후변화에 대하여 인류가 기울이고 있는 대표적인 노력으로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하여 검토한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된 기재인 석탄이나 석유 등의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지구촌에서 전반적으로 시도되기 시작했다. 이는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더 이상 높이지 않기 위해 필요한 조치이다. 하지만 탄소 배출이 없거나 적은 태양광, 풍력,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려는 노력 또한 다른 오염과 환경 파괴를 야기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가령, 태양열 발전이나 풍력 발전을 위해 숲과 농경지가 잠식되는 상황은 에너지 전환의 딜레마를 구성한다. 원자력이나 수소 등에 대한 기대가 있지만 원자력의 사용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이나, 대체 에너지의 사용이 야기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에 대해 충분한 대책과 해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함께 고민하며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상황을 활용하려는 어떤 이들은 화려한 친환경 수사와 기획을 통해 돈과 권력을 획득하려 할 수도 있으며, 비현실적인 반(反)탄소문명적 접근으로 사회의 퇴행을 선동할 수도 있음에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기후 정의와 자본주의의 변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핵심적인 과제 중의 하나가 탄소 감축을 위한 노력의 부담을 어떤 방식으로 배분하는 것이 정의로운가에 대한 기준 관련 합의를 도출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 책의 4장에서 주병기는 지구적 정의의 관점에서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접근한다. 이런 노력은 UNFCCC를 중심으로 감축 의무를 할당하려는 노력과 연관된다. 일정 수준에서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 각국은 향후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정해야 한다.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오염자 부담의 원칙, 공유자원에 균등한 권리, 역사적 책임, 균등한 비용분담 등 다양한 원칙들이 국제 사회와 학계에서 논의되었는데, 특히 기후위기와 관련하여 특별히 관심을 모은 것이 공유 자원에 대한 ‘균등한 권리’와 오염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다. 주병기는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과연 공정한 분배의 원칙을 어떻게 도출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원칙에 대한 합의가 기후정의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21세기 인류 최대의 난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 답은 국가 간의, 개인 간의 정의(正義)뿐 아니라 현 세대의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까지도 고려한 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병기는 계속하여 자본주의의 자기 혁신의 필요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어떤 사람의 소비활동 혹은 기업의 생산 활동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이나 기업에 직접적 피해를 주게 될 때에 경제학은 이를 외부효과 내지 외부성으로 파악한다. 이런 외부성과 무관하게 이기적 경제주체는 자신의 이익과 비용만을 고려하여 순이익 혹은 만족을 극대화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대기오염 같은 나쁜 외부성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기 때문에 나쁜 외부성은 과잉 발생할 수밖에 없다. 외부성은 비효율적인 자원배분, 즉 시장의 실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된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성장으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지구환경에 미치는 외부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재 수많은 지구 환경문제들이 인간의 경제활동이 야기하는 외부성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 자체가 이런 외부성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수준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본주의의 자기 혁신이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렀다.
새로운 문명적 기초에 대한 발걸음
기후변화가 야기하는 위기와 관련하여 기술결정론적 사고에 입각해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기술의 진보가 기후위기에 대한 해법을 찾을 것이라는 사고는 위험하다. 4차 산업혁명이 에너지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논의들을 살펴보면 4차 산업혁명이 전기에너지에 대한 수요를 엄청나게 증가시킬 것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인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테이터를 적용하는 생활패턴이 확산된다면 2040년 경 현재 수준의 100만 배의 정보량이 소비될 것이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 인류는 현재보다 약 100배의 전기를 증산해야 한다.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편의만을 주된 기준으로 사고하며 기후변화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를 완화하고 적응하기 위한 에너지전환의 과제는 정책적이거나 경제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생태적이며 문명전환적 차원에서도 인류의 의미 있는, 아니 가장 중요한 숙제가 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이제 우리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도전으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이 기후변화는 우리 삶의 터전으로서 자연과 사회를 모두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역사 속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인류가 할 수 있는 대응이란 어쩌면 대단히 제한적인 것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한계 속에서 경주하는 노력에 따라 인류는 상이한 변화의 경로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결단은 가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 : 신범식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국립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MGIMO) 정치학 박사
2021, 『러시아의 사이버안보』 (서울: 사회평론아카데미)
2020, “지정학적 중간국 우크라이나의 대외전략적 딜레마.” 『국제·지역연구』
2020, 『중앙아시아 이슬람의 현재: 정치·사회·경제적 선택』 (파주: 한울아카데미)
2020, 『(북·중·러 접경지대를 둘러싼) 소지역주의 전랙과 초국경이동』 (서울: 도서출판 이조)
2017, 『유라시아의 심장 다시 뛰다』 (서울: 진인진)
저 : 김대현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A&M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연지리학, 생물지형학, 생물지리학 등을 전공했으며, 기후변화에 의한 해안, 하천, 산림 환경의 역동성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며 후학을 양성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제13회 여천생태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저 : 박정재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이며, 현재 학과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물지리학, 고기후학, 고생태학 전공자로 기후변화와 인류세를 연구한다. 주요 저서로 『기후의 힘』(2021) 등이 있다.
저 : 주병기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이며,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분배정의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미국 로체스터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캔자스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 재직했으며 한국응용경제학회장, Journal of Institutional and Theoretical Economics 편집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경제이론, 미시경제학, 재정학, 정치경제학으로, 분배적 정의, 불평등과 소득분배, 공정한 경제기제 등을 주제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