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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한국 미술사 연구

저자
안휘준  저
  • 가격

    35,000 원

  • 출간일

    2015년 01월 26일

  • 쪽수

    800

  • 판형

  • ISBN

    9791185617282

  • 구매처 링크

배움에서 물러남이란 있는가

은퇴한 학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떤 일이든 ‘은퇴’라 하면 그 일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한다. 배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은퇴를 한다면 배움을 그만둔다는 의미가 될까. 하지만 교수라는 직책에서 물러남은 있어도, 학자 즉 ‘배우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규정하는 이에게 은퇴라는 것은 애당초 어불성설 아닐까.

『한국 미술사 연구』는 한국 미술사학 교수로 30여 년의 강단 생활을 마치고 2006년 정년 퇴임한 안휘준의 마흔 번째 책이다. 퇴임 후에도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15권 정도의 책들을 차례차례 펴내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말하던 다짐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에서 나온 또 하나의 결실이다.

‘15권의 책’이라는 것이 학자 개인에게는 의미가 있다 할지라도, 그가 몸담은 이른바 ‘학계’라는 커뮤니티, 연구자 공동체에 유익한 무언가를 던져줄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다. 『한국 미술사 연구』는 이러한 고민 속에서 원로 학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을 담은 책이다. 배우는 사람으로서 저자는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고, 원로이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는 질문을 앞장서 던진다. 그는 그것이 학자로서의 책임이자 공동체에 대한 기여라고 믿는다.

이 책은 과거의 업적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그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저자 스스로도 “만년의 연구 동향”(서문 5쪽)이 담겨 있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제5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2000년대 이후에 발표된 논문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단순히 숫자를 채우기 위한 논문이 아니라 학문적 열정에서 생산된 논문인 것이다.

『한국 미술사 연구』를 읽는 것은 미술사학의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의 현재적 관심이 어디에 쏠려 있는가, 수십 년간 한국 미술사학계에 몸담으며 이곳의 생태를 관찰해온 사람이 느끼는 문제점,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문제의식은 무엇인가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이 책의 담백한 제목은 저자 안휘준이 한국 미술사를 ‘여전히’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 미술사에는 ‘여전히’ 연구할 거리들이 많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이 없는 작품에 대해 말하기

『한국 미술사 연구』에서 다루는 주제는 백제의 회화, 솔거의 화풍, 겸재 정선의 정체, 조선시대 무덤벽화 등 이른바 한국 미술사의 ‘미개척 분야’들이다. 저자 스스로 일군 전공 분야(한국 회화사) 중 이미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고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주제가 아니다. 원로는 다시 개척자가 되어 이제 막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 주제들을 위주로 새롭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부족한 자료를 과감한 추론으로 메우기도 한다. 사실상 그간 쌓아놓은 연구로 신뢰성을 보장받은 원로 학자가 아니면 위험 부담이 커서 시도하기 어려운 일이다. 완결된 연구로서보다는 선학이 후학들에게 새로운 방향으로 길을 터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저자는 작품조차 남아 있지 않은 솔거를 한국 회화사의 3대가 중 한 명으로 꼽으면서, 그가 8세기 중엽에 활동한, 서예가 김생과 쌍벽을 이룬 전채서(신라 때 그림 일을 맡아보던 관아) 화원이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다. 역사 연구가 결국 상상력에서 출발한다는 ‘기본’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합리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런 식으로, 또 저런 식으로 생각을 굴려보는 것. 저자는 “그것이 1세대 연구자로서……짊어져야 할 책무”(본문 256쪽)라고 말한다. 물론, 상상력도 개연성이 있어야 완성된 주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개연성을 담보하는 원천은 무엇일까? 이는 다름 아닌 사료들, 즉 미술사 연구의 기초인 ‘작품사료’는 물론이고, 그 외에 기록물 등 ‘문헌사료’까지 포함하는 방대한 사료들이다.

저자는 『삼국사기』의 「열전」, 「동사유고」, 『지봉유설』, 「백률사중수기」 등 여러 문헌기록을 대조하며 솔거의 신분과 활동연대, 화풍을 복원해나간다. 이를테면 『삼국사기』의 「열전」에서 솔거에 관해 어떻게 쓰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솔거는 승려화가다’, ‘솔거는 진흥왕대 사람이다’라는 등의 통념이 근대 이론가들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여기에는 어떠한 논리적 비약이 있는지 찬찬히 뜯어본다.

안휘준의 연구 역시 하나의 추론일 뿐이다. 하지만 ‘작품이 없는 작품’, 즉 입으로만 혹은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작품이 미술사에는 훨씬 더 많다. 따라서 문헌사료와 작품사료의 상호 보완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온 안휘준 자신의 연구방법론을 뒷받침하는 예시로서, 이 솔거 연구가 가지는 의의는 분명하다. 미술사의 빈 곳을 버려두지 않고 거기서 화제를 이끌어냄으로써 미술사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그 추론의 과정에서 ‘노송도 같은 자연주의적인 그림은 진흥왕대에는 나오기 힘들다’는 식으로 언제나 ‘미술사적 맥락’이 토대가 되고 있음은 다른 분야 역사 연구와 변별되는 지점이다.


신화의 껍질을 들추고 겸재 정선을 보다

솔거의 경우 기존 연구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일단 화제를 던지는 것부터가 중요한 일이었다면, 이와 반대로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겸재 정선은 다른 식의 접근이 필요했다. 겸재를 둘러싼 숱한 ‘말’들이 오히려 정선과 그의 화풍을 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생산된 연구들을 다시 점검하며, 오히려 뭔가를 새롭게 추가하기보다는 더께를 지워나가는 방식의 연구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리하여 누구도 쉽게 건드리지 못했던 겸재 정선 신화, ‘진경시대’의 아우라에 실증의 날을 들이댄다.

사실 정선은 그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솔거와 마찬가지로 신분이나 정체가 불분명한 인물이다. 또한 그 특색 있는 화풍이 도대체 어디서 비롯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달리 말하면 여전히 논쟁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선이 1970년대 이래,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해방 전후 무렵부터 ‘민족 화가’로 굳어지게 된 것은 정선을 그렇게 보려고 하려는 의지 때문이었다. 의지의 중심에는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연구실장이 있다. 그는 ‘조선성리학이라는 우리 고유의 학문을 바탕으로, 진경산수화라는 우리 고유의 회화양식을 창안하여 국가와 민족의 자부심을 충족시킨’ 정선을 ‘화성(畵聖)’으로 추앙해야 한다는 의견을 20년 넘게 피력해왔다(본문 439~440쪽 참조).

정선이 조선성리학을 회화적으로 계승했다는 관점은 정선이 그런 사상적 체화가 가능한 사대부화가였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를 무력화시키는 사실들은 속속 발견되고 있다. 예컨대 장진성을 비롯한 신진학자들에 의해 정선이 조선성리학이라는 사상의 발현으로서가 아니라 사고팔 수 있는 물건으로 그림을 그리고 ‘몽당붓이 무덤을 이룰 정도로’ 남작을 했다는 사실(본문 452쪽), 또 김조순의 『풍고집』 등 여러 기록에 정선이 도화서의 화원이었다는 언급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안휘준은 드러나는 기록과 정황을 무시한 채 신화를 보존하려는 태도의 불합리함을 지적한다. 그리고 정선이 한때나마 도화서 화원이었으며 자기만족과 수양보다는 주문에 응할 목적으로 그림을 그린 직업화가였으며, 그럼에도 높은 수준의 화격을 이루어 분야 최고가 된 사람일 것으로 짐작한다.

정선뿐만이 아니라, 신라의 솔거, 고려의 이녕, 조선 초기 안견, 조선 후기 김홍도 등 한국 미술사를 대표해온 다른 미술가들 역시 기록의 불충분과 민족주의적 의지에서 비롯한 ‘애정의 오류’ 때문에 쉽사리 신화화로 빠질 우려가 있다. 안휘준의 문제 제기는 단지 정선에 국한되지 않으며 한국의 미술가들에 대한 미술사적 재조명을 요구하는 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안휘준은 진경산수화에 대해서도 가치 부여가 아닌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한다. ‘진경’을 ‘진정한 우리 국토의 모습’이 아니라 ‘남종화법을 가미하여 그린 실경산수화’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본문 454쪽). 진경산수화가 그려질 당시 사람들의 인식에 최대한 다가감으로써, ‘진경’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현재적 관점으로 끌어오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이다. 이어서 그는 진경산수화가 조선성리학의 회화적 표현이라는 최완수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때 출발점은 ‘사상과 회화의 관련성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연구방법론적인 측면에 있다. 

저자는 조선성리학 사상(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영역)이 실질적으로 화풍(그림은 정신 혹은 내면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술과 물리적 행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의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사상의 영향은 규명이 어렵기도 하지만, 어떤 기술적인 요령이나 훈련 같은 게 필요한 화풍의 차원으로 직접 이어지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요컨대 “사상이 큰 흐름을 지배할 수는 있지만 화가들 개개인의 표현양식에까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본문 714쪽) ‘진경시대’ 같은 용어를 만들어 씀으로써 사상과 회화 경향을 한 덩어리로 묶어 한 시대를 정의하는 것은 ‘진경산수화’에 대한 핵심을 비껴간 의미 부여라고 할 수 있다.


‘미술사학은 범죄 수사와도 같다’

미술사학은 실증을 기반으로 한다.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샅샅이 찾아서 실마리를 풀어간다. “어떤 단서들을 찾아서, 그 단서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실마리를 풀어가는 방법은 어찌 보면 하찮아 보이는 증거들을 수집하여 범인을 색출해내는 범죄 수사와 비슷한 면도 있다. 이상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접근 방법 자체는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미술사학은 확실하거나 믿을 만한 증거에 의거하여,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객관 타당한 결론을 끄집어낼 때에만 학문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본문 703~704쪽)

그런데 그렇게 미술작품을 발굴하고 문헌기록을 뒤져서 미술사를 엮어나가는 일이 우리 사는 데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미술사적 탐사는 범죄 수사와는 달리 현재의 삶에서 너무 멀리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미술은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인간 삶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형식이며, 대체로 물질성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 오늘에도 어느 정도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음악이나 문학 등 다른 예술에 비해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류 문화를 꿰뚫을 수 있는 매개로 톡톡히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저자는 미술 작품이 감상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사료이며 과학문화재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나의 미술 작품은 인간 삶의 수많은 비밀을 담고 있는 해석 도구라는 것이다.

저자가 학계에 만연한 ‘표절’ 문제를 특히 민감하게 의식하는 것 또한 실증에 엄격한 그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증거를 채집하고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실증의 과정이 결여된 극단적인 예가 바로 표절이기 때문이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끌어들여 작품의 시간성을 읽어내려는 수고를 기울이지 않고, 남의 고민과 노력을 의심 없이 가져다 쓰는 태도는 ‘불성실과 무책임, 몰염치, 자존심 결여’의 소치이며 학자로서 결격 사유가 된다. 참고문헌과 주석 달기를 유난히 강조하는 저자의 고집스러움도 그러한 맥락에서다. 자기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힌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 주장이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고, 다음 연구를 이어받을 동료나 후학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경력의 길고 짧음을 막론하고 학자가 지녀야 할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동료 미술사학자들에게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제몫을 다함으로써 ‘동지애’를 실천하자고 당부하는 저자의 말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룰 만큼 이룬 원로 학자의 배부른 소리가 아니라, “어차피 저술은 고생스러운 일이며 그 고행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사명”(본문 754쪽)이라 여기고 그 일을 실제로 해내며 살아온 이가 여기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고행’을 사서 하는 이가 옆을 지나고 있다면, 그 길을 함께 가는 이들에게도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저 : 안휘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고고인류학과(문학사) 

미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문학석사, 철학박사)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수학 


전(前)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박물관장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박물관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대 예술연구실장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초대 이사장 

한국대학박물관협회 회장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대표 

한국미술사학회 회장 

문화체육부 학예사운영위원회 위원장 

국립중앙박물관 운영자문위원회 위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영정·동상심의위원회 위원장


현(現)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 

문화체육관광부 영정·동상심의위원회 위원장 


상훈 

우현상, 동원학술대상, 한국미술저작상, 간행물윤리상(저작 부문), 위암 장지연상(한국학 부문), 보관문화훈장, 대한민국문화유산상(학술 부문), 옥조근정훈장, 안견미술문화대상, 세종문화상(학술 부문), 용재학술상, 효령상(문화 부문), 대한민국학술원상(인문학 부문) 


주요 저서 

『한국회화사』(일지사, 1980), 『한국회화의 전통』(문예출판사, 1988), 『옛 궁궐그림』(대원사, 1997), 『한국회화의 이해』(시공사, 2000), 『한국회화사 연구』(시공사, 2000), 『한국의 미술과 문화』(시공사, 2000), 『한국미술의 역사』(시공사, 2003)(공저), 『고구려 회화』(효형출판, 2007), 『미술사로 본 한국의 현대미술』(서울대학교출판부, 2008), 『한국미술의 美』(효형출판, 2008)(공저), 『개정신판 안견과 몽유도원도』(사회평론, 2009), 『역사와 사상이 담긴 조선시대 인물화』(학고재, 2009)(공편),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사회평론, 2010), 『한국 그림의 전통』(사회평론, 2012), 『한국 미술사 연구』(사회평론, 2012), 『한국 고분벽화 연구』(사회평론, 2013), 『조선시대 산수화 특강』(사회평론, 2015),

한국의 해외문화재』(사회평론, 201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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