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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보이스, 우리가 혁명이다

저자
송혜영  저
  • 가격

    23,000 원

  • 출간일

    2015년 05월 30일

  • 쪽수

    296

  • 판형

  • ISBN

    9791185617411

  • 구매처 링크

요제프 보이스를 모르고 현대미술을 이야기할 순 없다!


백남준의 예술적 동지이자 절친한 벗, 요제프 보이스. 

앤디 워홀, 마르셀 뒤샹과 함께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였던

보이스의 삶과 작품이 국내 최초로 소개된다.


앤디 워홀, 마르셀 귀샹과 함께 20세기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힌 거장으로 인정받는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1912-1986)를 다룬 책이 국내 최초로 출간됐다. 요제프 보이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아티스트임에도 국내에는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어 이름조차 낯설어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보이스는 한국과 인연이 매우 깊다. 백남준과의 관계 때문이다. 보이스와 백남준은 둘 다 무명이던 시절에 만나 우정을 쌓았으며, 1960년대 초반 퍼포먼스 중심의 국제적인 아방가르드 운동인 플록서스 활동을 함께했다. 훗날 백남준은 보이스를 무명의 시절에 만난 건 행운이었다고 회고했다. 1984년에는 서로의 작품에 동참하기도 했는데, 보이스가 백남준의 인공위성 프로젝트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 참여하고 백남준은 보이스가 일본 동경에서 행위한 <코요테 Ⅲ>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백남준은 1990년 7월 20일 서울의 현대화랑 마당에서 보이스를 기리며 굿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1998년에는 두 작가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백남준과 요제프 보이스 전》 이 한국의 로댕갤러리에서 열렸다. 


죽은 토끼에게 그림을 설명하는 요제프 보이스를 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현대미술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는 것과 같다.


1965년 11월 26일 뒤셀도르프의 슈멜라 갤러리에서 보이스는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라는 다소 긴 제목의 행위를 했다. 머리에 꿀과 금박을 뒤집어쓴 채 한 발에는 펠트를, 다른 발에는 쇠로 창을 댄 신발을 신고 죽은 토끼를 안은 채 약 2시간 동안 미술관의 그림을 토끼에게 설명하는 퍼포먼스다. 세상에는 이성이 아닌 직관과 영감으로 이해하는 비밀스러운 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이 퍼포먼스를 통해, 보이스는 경직된 이성적 사고의 상태에서 벗어나 내면과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관객들에게 촉구했다. 이렇듯 보이스는 복잡하고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독특한 매체 그리고 의식적인 공공 퍼포먼스와 대중

연설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요제프 보이스, 우리가 혁명이다』는 저자인 송혜영 교수가 독일 유학시절 다름슈타트의 ‘보이스 블록’을 방문한 게 인연이 되어 결실을 맺게 되었다. 저자는 당시에 갈색과 회색이 지배하는 전시장 안에 쌓여 있는 강철과 구리판, 펠트 더미, 유리진열장 안의 딱딱하게 굳어버린 지방덩어리와 왁스, 헌 종이들과 신문더미, 낡은 깡통과 유리병, 배터리와 램프들에서 낯선 이질감을 느꼈고 어떤 의미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바로 그 낯선 작품을 마주했던 당혹함이 보이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국내 최초의 요제프 보이스 연구서이자 평전인 『요제프 보이스, 우리가 혁명이다』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저자는 명쾌한 해설을 통해 보이스의 작품세계뿐만 아니라 난해하고 때로는 기괴하게까지 보이는 설치미술이나 행위예술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그동안 적지 않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던 ‘보이스 신화’의 진위여부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보이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에서 무선통신기사로 복무했는데, 복무 기간 중에 발생한 전투기 추락사건으로 ‘보이스 신화’가 탄생한다. 부상당한 보이스를 타타르인들이 구조해 동물의 지방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펠트로 그의 몸을 감싸주어 낫게 해주었고, 타타르인들과의 경험이 보이스의 다양한 행위에 반영되고 펠트와 지방을 작품 재료로 사용하게 된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이스 신화와 연관 지어 보이스 작품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끊임없이 있어왔다. 하지만 2013년 7월 8일 독일의 유명잡지 『슈피겔』은 추락 당시 사망한 동료의 가족에게 보이스가 보낸 편지를 공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보이스를 구해준 사람은 ‘러시아의 노동자들과 여인들’이었으며 타타르인들은 가공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보이스 신화’는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보이스를 운명적인 천재 작가로 만드는 데 그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보이스의 확장된 예술개념과 작품세계

이 책은 보이스의 전 생애와 작품세계를 골고루 다루고 있으며, 특히 보이스 작업의 핵심이 되는 ‘사회적 조각’을 중심으로 그 정신적인 배경과 시대적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보이스의 작업은 단순히 바라본다는 기존의 작품 감상에서 벗어나 관객들로 하여금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그의 의도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물에 내재된 보이지 않는 실체와 그 의미를 깨닫도록 하는 데 있다. 따라서 독일인 특유의 사변적 성향이 강한 보이스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이스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독일의 뒤셀도르프를 중심 무대로 삼아 활동했던 요제프 보이스는 전통적인 미술개념과 범주에서 벗어나 총체적인 삶으로 확장된 예술개념을 이끌어냈다. 그에 따르면 일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일상의 모든 행위들이 예술이 될 수 있다. 보이스는 모든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회적 조각’을 주창했으며, 실제로 그 자신도 미술가와 행위예술가, 교육자와 혁명가, 목자와 순교자, 진화론자와 샤먼 등 다양한 역할의 삶을 살았다. 드로잉, 그림, 조각, 설치미술, 선반작업 등 여러 가지 매체와 방식으로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을 했고, 두터운 지식으로 무장된 그의 ‘온기이론’은 모든 작업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정교함을 보여주었다. 강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던 보이스는 자신의 이론과 주장을 행동으로 실천했으며, 무엇보다 예술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노력과 의지는 한결같았다. 요제프 보이스는 수없이 많은 전시회 기회를 가졌으며, 특히 권위 있는 국제전을 통해 확고한 명성을 확보했다. 생전에는 <카셀 도큐멘타 3>(1964)부터 <카셀 도큐멘타 8>(1982)까지 5번 연속으로 참여하는 영광을 누렸고, <베니스 비엔날레 37>(1976)과 <베니스 비엔날레 39>(1980)에는 독일의 대표작가로 초대되었으며, 1979년 말에는 유럽의 생존 작가로는 처음으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주인공이 되었다. 1986년에는 빌헬름 렘브루크상을 수상하였다. 사후에도 스위스 취리히 미술관(1993/94), 파리의 퐁피두 센터(1994), 런던의 테이트 모던(2005), 베를린의 현대미술관(2008/2009)에서 대규모로 회고전이 개최되었다. 


“예술은 현실의 혁명적인 원동력인 동시에 모든 사회적 행위의 근간이 되며, 이를 바탕으로 미학의 개념은 폭넓게 확장되어야 한다. 이게 바로 내가 가장 널리 알리고 싶은 사실이다.”(1974)


“예술작품은 거대한 수수께끼와 같다. 하지만 결국 사람이 답이다. 우리는 모든 전통과 현대의 종말을 표시하는 문턱에 와 있다. 이제 과거의 원칙에서 벗어나 새롭게 태어난 아이처럼 다 함께 사회적인 예술개념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1985) 


보이스를 보는 다양한 시선들

요제프 보이스는 미술가와 행위예술가뿐 아니라, 교육자와 사회개혁가, 혁명가와 진화론자, 목자와 순교자, 샤먼으로 언급된다. 실제로 몇 차례 직접 후보로 선거에 나가기도 했다. 보이스를 받아들이는 미술계의 경향은 매우 극단적으로 나뉜다. 한편에선 그의 독창성을 극찬했고, 다른 한편에선 그를 사기꾼으로 여겼다. 이 시대의 질병과 혼돈을 치유할 진정한 ‘샤먼’으로 그를 숭배하는 경향과 거짓말과 신화화라는 전략으로 사람들을 달래주는 ‘쇼맨’일 뿐이라고 그를 폄하하는 경향이 공존한다. 영화감독이자 화가인 미국의 줄리안 슈나벨은 보이스가 자신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미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도널드 커스핏은 보이스의 신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보존하고자 했다. 반면에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교수이자 유명한 조각가였던 크리케는 보이스를 ‘키치적인 그리스도’라 부르면서 아카데미의 질서를 허물고 학생들을 현혹하는 파괴적인 독재자라 평했다. 보이스가 미국에 두 번째 방문했을 때 토마스 헤스가 뉴욕매거진에 실은 전시평 제목은 ‘독일인이 오고 있다! 독일인이 오고 있다!’였다.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렸을 때 독일의 한 주간지는 ‘미친 사람의 세계적 명성’을 머리기사로 내보냈다. 


보이스의 주요 작품들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 1965.11.26, 슈멜라 갤러리, 뒤셀도르프

1965년 11월 26일 뒤셀도르프의 슈멜라 갤러리에서 보이스는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라는 다소 긴 제목의 행위를 했다. 저녁 여덟시쯤 전시장 문이 잠기면서 행위는 시작되었고, 관객들은 밖에서 창문을 통해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얼굴과 머리에 꿀과 금박을 바른 보이스는 죽은 토끼를 팔에 안고 펠트가 깔개처럼 얹혀 있는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오른쪽 신발과 그 아래 철판은 가죽 끈으로 묶여 있었고, 의자의 한쪽 다리에도 펠트가 감겨 있었다. 보이스는 토끼를 바라보며 말을 하고, 일어나서는 토끼와 함께 전시장을 돌았으며, 토끼에게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여주고 토끼의 발로 그림들을 만지게 했다. 이렇게 한 바퀴 전시장을 둘러본 다음 다시 의자에 앉아 토끼에게 말을 했다. 그리곤 가끔 토끼를 안고 갤러리의 바닥 한가운데 놓여 있었던 전나무 가지를 건너뛰었다. 보이스의 모든 행위는 부드럽고 세심하게 진행되었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난 후 전시장 안으로 들어간 관객들은 여전히 토끼를 팔에 안고 구부린 자세로 입구에 앉아 있는 보이스를 보았으며, 얼마 후 보이스는 의자 위에 토끼를 놔둔 채 퇴장했다. 당시 서른세 살이었던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 이 행위를 지켜보았으며, 보이스의 행위에서 “진지함과 에너지, 열정”을 느꼈고, “멀리서 바라본 그의 행위는 이전의 그 어떤 행위들보다 매우 흥미로웠다.”고 훗날 회고했다.

보이스 역시 “토끼는 탄생과 직접 연관된다… 토끼는 ‘육화(肉化)’의 상징이다. 왜냐하면 토끼는 인간이 생각만 하는 것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끼는 스스로 흙을 파서 굴을 만들고 대지로 돌아간다. 이것만으로도 토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머리에 바른 꿀은 물론 사고와 연관된 그 무엇이다. 인간의 능력은 단순히 꿀을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생각하고 사고를 발전시키는 데 있다. 이로써 죽은 사고는 다시 생동적으로 살아난다. 꿀은 의심할 여지없이 살아 있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 역시 되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의자>, 1964, 의자에 왁스와 철사, 100×47×42cm, 보이스 블록, 헤센주 미술관, 다름슈타트

보이스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지방의자>에서 모서리가 발견되는데, 이에 대해 그는 흥미로운 설명을 했다. 즉, “쐐기모양의 모서리들은 지방의 본질에 해당하는 매끄럽고 불규칙한 횡단면을 보여준다. 나는 의자를 통해 일종의 인간 해부학을 표현하고, 한 걸음 나아가 소화기능이나 분비물과 관련된 따스한 과정의 영역, 심리적으로는 의지와 연관된 생식기나 흥미로운 화학적 변화를 의미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펠트양복>, 1970, 펠트에 박음질, 170×60cm, 멀티플: 르네 블록 갤러리, 베를린

펠트는 지방 다음으로 보이스의 작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보이스는 펠트 그 자체의 성향인 촉각과 시각, 청각에 큰 관심을 가졌다. 다시 말하면, 펠트는 일종의 단열재에 비유할 수 있다. 부드럽고 따스한 펠트는 외부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덮개의 기능을 하고, 펠트의 회색은 심리적인 잔상의 효과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색들을 드러나게 해주며, 시끄러운 소리를 흡수하고 약화시키는 침묵의 효과를 거둔다. 

<펠트양복>은 단추와 단추 구멍, 밑단 없이 보이스의 양복에 맞추어 재단되었는데, 이는 실제로 착용하는 양복의 기능에서 벗어나 생명의 온기를 간직한 살아 있는 인간의 존재를 암시한다. 또한 보이스가 <펠트양복>의 부제로 언급한 <오시리스> 역시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구하는 이집트의 신, 바로 부활을 의미한다.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 앞에서 첫 번째 참나무를 심는 보이스, 1982.3.16, 《카셀 도큐멘타 7》 3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의 참나무와 현무암, 2012.8.12, 뒤셀도르프의 하롤드 거리

1981년 가을 보이스는 다음 해에 참여할 《카셀 도큐멘타 7》을 구상했다. “나는 7000그루의 참나무를 심고, 그 옆에 각각 한 개의 돌을 세우고자 한다. 참나무는 최소한 800년을 생존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따라서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역사적 순간은 지속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노동과 기계, 물질주의와 정치적 이데올로기, 산업화와 자본주의, 공산주의로 인한 폭력적인 황폐화 과정에서 벗어나 올바른 재생의 과정, 다시 말해 자연뿐 아니라 사회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생명을 부여하는 소생의 과정인 ‘사회적 유기체’를 완성할 때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내겐 돌이 필요하다.”

보이스가 계획한 대로 참나무와 돌을 함께 심으려는 <7000그루의 참나무>는 《카셀 도큐멘타 7》의 야심찬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도시의 행정화 대신 도시의 산림화’라는 모토를 내걸고 산업화로 황폐해진 카셀의 도시 공간을 녹색의 자연 공간으로 바꾸고자 했으며, 이는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생을 주창한 보이스의 생태학적 관점을 보여준다. 

보이스는 <7000그루의 참나무>가 마무리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1986년 1월 23일 세상을 떠났고, 이 미완의 프로젝트는 《카셀 도큐멘타 8》(1987)의 개막일에 완결되었다. 

1987년 6월 12일 보이스의 아들인 벤첼은 보이스가 심었던 첫 번째 나무 옆에 마지막 나무를 심었다. 카셀의 여러 지역에 분포된 참나무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 그 숫자는 조금 감소했지만 꼿꼿한 모습으로 성장하였다. 2012년 3월 16일 카셀 시는 30년이 된 <7000그루의 참나무>를 기념하면서 ‘요제프 보이스 거리’를 만들었다. 보이스의 말대로 <7000그루의 참나무>는 사회생태학적인 관점에서 ‘확장된 예술개념’을 성공적으로 입증한 ‘사회적 조각’이 되었다. 


요제프 보이스의 작품은 세계의 유명 미술관에 분산·소장되어 있는데, 작품들 가운데 상당수 가 그의 행위에 사용된 부산물들이다. 대표적인 곳은 독일의 다름슈타트에 있는 헤센주 미술관으로, ‘보이스 블록’으로 불리는 일곱 개 방에 그의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베를린의 함부르크역 현대미술관, 뮌헨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영국의 테이트모던, 뉴욕의 모마현대미술관 등에서도 보이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리움미술관이 <조지 마치우나스를 위한 수사슴 기념비>(보이스가 플럭서스 운동의 창시자인 마키우나스를 추모하기 위해 백남준과 함께 벌인 퍼포먼스에서 사용했던 피아노에 지방과 구리를 조합시켜 완성한 작품, 1978)와 보이스가 즐겨 사용했던 칠판의 하나인 <함부르크 흑판>(1975)을 소장하고 있다.




 

저 : 송혜영

영남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미술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덕성여대, 서울대, 숙명여대, 술종합학교, 홍익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서양미술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로 바실리 칸딘스키와 요제프 보이스에 관해 연구하고 발표했으며, 그 외의 논문으로는 「토머스 게인즈버러의 풍경화 연구」, 「쉴레 작품의 허무주의에 관하여」, 「마사치오의 성 삼위일체」, 「필립 오토 룽에: 바이마르 공모전과 독일 낭만주의 미술의 태동」, 「나폴레옹의 선전 초상화」, 「콘라드 피들러의 조형예술론」, 「19세기 프랑스 회화: 반연극성과 관람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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