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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회화 교류사

저자
한정희  저
  • 가격

    30,000 원

  • 출간일

    2012년 05월 19일

  • 쪽수

    440

  • 판형

  • ISBN

    9788964355336

  • 구매처 링크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중.일 삼국은 오랜 역사에 걸쳐 문물을 주고받으며 문화권을 이루어왔다. 이는 삼국의 미술에서도 마찬가지이며, 민족국가가 아닌 ‘동아시아’를 단위로 미술사를 새롭게 써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동아시아 회화 교류사》는 ‘교류’의 관점으로 동아시아 회화사에 접근한 책이다. 다루는 주제는 고분벽화에서 실경산수화, 그리고 방고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책은 한.중.일 미술이 이미 고유한 상태로 존재하여 한쪽이 스타일을 전파하고, 다른 한쪽은 이를 수용한다는 일방향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세 지역이 한 시대를 공유하며 어떠한 흐름을 만들어갔는지에 주목한다. 비슷한 시기에 나타나는 비슷한 주제와 비슷한 기법, 하지만 서로 다른 토양 속에서 발생하는 차이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가느다란 선으로 새겨진 목판화 한 장

책의 표지에는 《당해원방고금화보(이하 ‘고금화보’)》가 등장한다. 이 화보에 실린 그림들은 중국의 고금 명화들을 ‘방(倣)’한, 즉 원본을 보고 다시 그린 것이다. 그림의 간결하고 도식화된 형식은 또 다른 중국 화보 《개자원화전》에도 등장하며 윤두서, 강세황 같은 조선 화가들은 이러한 화보들을 보고 비슷한 화풍의 산수화를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강세황이 그린 예찬풍 산수화의 원형이 《고금화보》인지, 《개자원화전》인지, 강세황보다 앞서 이런 화풍을 접했을 윤두서의 그림인지 따지는 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전파의 시작’이 어디이고 특정한 화풍을 퍼뜨린 시초가 무엇이며, 그것이 한.중.일 어느 곳에 귀속되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이 핵심일까?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동아시아 삼국의 화화가 어떤 교류를 통해 구성되었고 그 과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추적하는 데 있지 않을까? 이 책 《동아시아 회화 교류사》는 바로 그러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왜 동아시아인가?


한.중.일 회화사에 ‘동아시아’라는 틀이 필요한 까닭

우리가 아는 세계사는 개별 민족국가 역사들의 합이었다. 적어도 교과서적 지식은 그러했다. ‘한국사’는 ‘세계사’와 분리되어 있으며, ‘세계사’는 다시 유럽과 중국을 가운데 둔 채 크고 작은 나라들의 역사로 갈라진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 서술을 반성하는 목소리가 한국에도 일었고 ‘동아시아’가 화두로 떠올랐다. ‘동아시아’ 범주는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은 지역들 간에 일종의 문화권을 형성하였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배타적인 민족국가 개념을 넘어서는 대안적인 역사 서술의 장치로 주목받았다. 

이런 경향은 미술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고유섭 이래 한국 미술사학계에서는 한국 미술의 독자적인 뿌리를 찾고 계보를 작성하는 일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식민지 경험이 ‘한국 미술’에 대한 과도한 열중으로 몰아간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미술사에도 민족국가 단위를 벗어난 새로운 인식틀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 미술’이라는 개념 자체를 문제시하는 논문들도 꾸준히 발표되었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 역시 그러한 동아시아 미술 담론 위에 놓인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 회화 교류사》는 한.중.일 회화의 비교 연구를 통해 각각의 독자성보다는 서로 섞이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한국과 중국의 회화 교류는 정치적 관계를 배경으로 긴밀했던 것이 분명하지만, 양국의 관계는 일방적인 영향관계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회화에는 있으나 한국 회화에는 없고, 한국 회화에는 있으나 중국 회화에는 없는 것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유사한 듯하면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런 점을 사상적, 역사적 배경, 그리고 기법 등 여러 측면에서 접근하여 비교 분석할 필요가 있다. 미술은 사상이나 역사의 산물이지만 지역적, 문화적 취향의 차이로 확연히 다른 양상이 배태되기 때문에 산수화, 인물화, 문인화, 풍속화 등 여러 분야가 공통적으로 존재하였지만 표현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본문 5쪽)


한.중.일 회화는 제각기 홀로 존재해온 것이 아니라, 지리적 인접성을 바탕으로 오랜 역사를 공유하며 서로를 형성해왔다. 때문에, ‘동아시아 회화’라는 범주는 어쩌면 ‘한국 회화’, ‘중국 회화’, ‘일본 회화’라는 범주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비슷해 보이는 것들을 나란히 놓을 때 비로소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한.중.일 각각의 지역적 특수성을 찾는 데에도 동아시아라는 범주는 유용할 수 있다.

저자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소재가 상당 부분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고, 따라서 ‘한국의 고분벽화’를 중국의 것과 별개로 보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중국에서 먼저 나타난 것이긴 하나 중국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았던 소재들이 주요하게 등장하고 있다. 사신도(四神圖,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동서남북을 지키는 신을 그린 그림)가 그 대표적 예다. 중국 고분에서는 단독상으로 거의 등장하지 않던 사신이 고구려에서는 한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이는 문화적 습속, 사회 분위기에 따른 스타일의 차이를 보여주며, ‘어떠한 그림이 왜 하필 그 동네에서 나타나는가’라는 미술사학의 오래된 질문을 꺼내들게 한다. 왜 고구려에서는 사신을 선호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왜 중국에서 사신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았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당시 중국은 현실세계에서 무덤 주인의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장치들을 선호하여, 의장도, 행렬도, 묘주도 등 인물화가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에 비해 고구려에서는 토속 신화나 귀신, 신선 소재를 자주 사용할 만큼 좀 더 신화적이고 도교적인 색채가 강했다. 여기에는 사회.정치적인 여러 조건들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이처럼 동아시아 회화 교류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동아시아 문화권 저변에 흐르는 ‘반복’과 ‘차이’의 양상을 확인하는 일이며, 이는 한.중.일의 문화적 풍토를 더욱 섬세하게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진경산수화는 과연 ‘한국적인’ 그림인가

명말청초의 화가 홍인이 묘사한 중국 황산의 모습과 조선 후기 정수영이 한강과 임진강 주변의 명승을 그린 두루마리 그림을 나란히 놓아보자. 각각 17세기에 제작된 판화, 18세기에 그려진 수묵담채화로, 전혀 다른 매체의 그림이지만 각진 바위산의 모습이 묘하게 포개어지는 듯하다. 정수영의 그림에는 지명이 적혀 있어 조선의 산천을 그린 것은 분명하나, 한 세기 전 중국 황산의 그림과 몹시도 닮아 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정수영이 그린 것은 정말로 조선 산천의 모습일까?

흔히 조선 후기 실제 경치를 묘사한 그림을 ‘진경산수’라 알고 있다. 진경산수는 ‘우리 땅에 대한 관심’이나 ‘민족 자주성’에서 비롯한 한국 특유의 미술형식이라는 통념이 있다. 하지만, 이 무렵 동아시아에는 실제 경치를 그리려는 의지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른바 ‘실경산수’라는 새로운 양식이 등장한 것이다. 특히 중국(명나라)에서는 황산을, 한국(조선)에서는 금강산을, 일본(에도막부)에서는 후지산을 소재로 한 그림이 많았다. 우리가 잘 아는 겸재 정선과 그 일파의 그림들도 대략 이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실경산수가 나타난 배경으로 흔히 강조되는 실학의 대두 이외에 여행(기행)문학의 붐과 중국 산수화보의 유입을 든다. 특히 이 책에서 강조되는 것은 중국 화보의 유입이다. 실경이라는 말뜻대로라면, 그리고 서구 회화의 자연주의적 전통이나 인상주의 회화에 오히려 익숙한 우리로서는 마땅히 실제 경치를 직접 보고 ‘실물과 유사하게’ 그리는 것이 실경산수라 여기기 쉽지만, 당시 동아시아의 실경산수는 그런 그림이 아니었다. 중국 화보의 화풍을 보고 그 스타일을 익혀, 기억 속 여행지의 느낌을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그 재구성의 과정에서 역시 한.중.일의 회화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조금씩 틀어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동아시아 회화사의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비슷한 시대적 흐름을 공유하는 속에서 서로를 닮아가고, 그런 와중에도 사회적 토양의 차이로 갈라지는 지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 말이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중심 테마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고대 고분벽화에서 17~18세기 실경산수화, 그리고 ‘방고회화’라는, 노골적으로 ‘모방’을 전면에 내세우는 종류의 그림들을 통해 동아시아의 회화권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는지, 또한 그것이 동일성에 기반하기보다 나름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면서 어떻게 지역적 특색을 만들어갔는지 증명한다.


동아시아 회화사는 교류의 역사, 반복과 차이의 역사

물론 한.중.일 미술의 관계를 해명하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그리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한국에서 일본으로 선진 문물과 문화가 ‘전파’되었다는 도식을 사용하곤 했다. 저자도 이러한 수용의 경로를 부정하지는 않는다(“국가 간 교류 형태에서 한국은 중국에서 일방적으로 선진 문화를 선별 수용했다면, 일본에게는 한국식으로 변화.발전된 문화를 전해주는 문화 전파의 매개자 역할을 하였다.” 본문 13쪽). 하지만 미술은, 어느 것이 더 우월하거나 발전되었다는 절대적인 기준을 둘 수 없기에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는 식의 문물 수용 경로를 고스란히 이어받지 않는다.

‘교류’는 교차하면서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수용이나 전파와는 차이가 있다. 수용과 전파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특정한 스타일을 누가 먼저 만들었느냐가 중요해진다. 이는 곧 스타일의 소유권 문제이며, 자칫 문화적 패권주의로 흐를 위험도 있다. 하지만 교류사에서는 누가 먼저냐보다는 한 시대를 관통하는 분위기, 인식체계 속에서 공유되는 흐름이 중요하다. 따라서 교류사의 관점에서는 어떤 스타일이 특정 민족국가에 귀속되는 것이라 보는 대신, 교류 속에서 스타일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이것이 현실 사회에서 문화가 흘러가는 모양에 훨씬 더 가깝다.

동아시아는 원본 없는, 엄밀히 말하면 원본을 알 수 없거나 원본이 별로 중요해지지 않는 모방을 통해 하나의 회화 문화권을 형성해왔다. 그러니 서로 비슷해 보이는 게 당연하달 수도 있는데, 모방이라는 것이 그저 무심결에 가져다 쓰는 게 아니라 취하고 버리고 하는 선택의 과정을 동반하기 때문에 결국은 ‘똑같음’을 지향할 수 없다. 모방은 복제와 다르다. 같은 중국 화가의 그림을 원형으로 삼았음에도 한.중.일의 그림이 저마다 다른 색채를 띠게 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저 : 한정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캔자스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동기창의 회화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장, 대학원 미술사학과장, 홍익대학교 박물관장을 역임하였다. 프린스턴대학교 방문교수, 한국미술사학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미술사연구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화 감상법》(대원사, 1994), 《옛 그림 감상법》(대원사, 1998), 《한국과 중국의 회화》(학고재, 1999), 공저로 《동양미술사》(미진사, 2007), 《근대를 만난 동아시아 회화》(사회평론, 2011)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산수화의 세계》(예경, 1992), 《중국미술사》(예경, 199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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