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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제1회 사회평론 스토리대상 심사평: 어린이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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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회평론 작성일2024-07-12 조회조회수: 6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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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의 즐거움이 담긴,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찾아 나선 제1회 사회평론 스토리대상 공모전 어린이 부문에 100여 편이 넘는 이야기들이 도착했다. 첫 번째 공모전에 대한 창작자들의 열기가 담긴 수많은 이야기 중 대다수는 삶과 죽음의 경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가는 이야기들이었다.  


인간은 누구도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 없으며, 누구나 한 생애 동안 단 한 번 태어나고 죽는다. 이러한 실존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인류는 이야기를 만들어 시간을 자유롭게 오가고 판타지 세계 속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기에, 다수의 응모작이 이러한 소재를 다루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상력으로 펼쳐놓은 이야기가 어린이 독자에게 재미있고 의미있는, 한 편의 완결된 동화로 읽힐 수 있는지이다. 

동화 부문 심사위원들은 어린이, 재미와 의미, 동화 장르의 본질에 초점을 두고 6편의 동화를 본심에 올렸다. 


『저승 헤심관의 탄생』은 사후 세계에 대한 우리 신화에 기반을 두고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소재와 설정 속에 속도감 있게 이어지는 사건들이 책장을 넘기게 했지만 현대화된 신화 속 캐릭터가 신비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만드는 설정, 사건이 느닷없이 제시되어 개연성이 떨어져 보이는 서술은 아쉬웠다. 무엇보다 동생의 죽음을 선택하는 주인공의 숭고한 결정은 주인공 자신뿐 아니라 서사 밖 아동 독자들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주제 의식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었다. 


『호랑 소녀 모란이』는 봉건적인 질서 안에서 소외받은 소녀 모란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힘있게 그려낸 페미니즘 서사로, 안정감과 패기를 갖춘 필치가 돋보였다. 다수의 응모작들과 달리 옛이야기 장르를 채택하고 있었고 사회문화적 관습의 한계를 극복해 가는 과정도 힘있게 서술된 점이 남달랐다. 다만 작품에서 구현한 호랑이의 이미지나 여성 차별의 에피소드가 갖는 전형성이 당대 아동 독자들과 잘 호흡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떨치기 어려웠다. 페미니즘 혹은 성차별이라는 이슈는 현재진행형이며 개인의 경험과 감수성에 따라 그 답도 천차만별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이 가진 이러한 전형성 역시 심사과정에서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다시, 생일』은 자신의 생일에 수해로 물에 잠긴 이웃을 구하다 세상을 떠난 아빠를 되찾기 위해 시간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1년이나 늦게 도착한 아빠의 생일선물이 우연히 시간여행으로 이끄는 설정부터 주인공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결말까지의 진행이 타임루프 서사의 규범 안에서 전개되었고 해피엔딩의 감동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서사구조 위에 작가의 인장을 새기고 미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언어의 역할일텐데 이 작품은 그러한 서술의 층위에서 상투적인 표현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러한 표현들은 때로 인물의 감정과 행위를 정확하게 표현하기보다 과잉된 것으로 느껴지게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과자점 연꽃당의 비밀』은 여름방학 동안 고모집에 머물게 되는 주인공 ‘정원’이 고모의 과자점 “연꽃당”에 찾아오는 ‘꿈의 손님’들과 그들의 마음을 담은 과자의 비밀을 알게 되며 펼쳐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이 작품이 여느 작품들과 견주어 탁월하게 돋보이는 지점은 요리 재료와 레시피를 매개로 인물들의 감정을 형상화하는 서술, 요리가 펼쳐지는 시공간인 주방에 불어넣은 물활론적 상상력이 활기있고 생태적인 이미지로 구현되는 장면들이다. 

주인공 ‘정원’의 작품 속 위치 또한 독특하다. 정원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지닌 당사자가 아니라, 고민을 가진 인물 옆 관찰자이자 그들에게 필요한 음식을 만드는 조력자의 위치에서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성장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특별한 과자점이라는 설정과 고풍스러운 복장의 고모 캐릭터에서 비슷한 종류의 기존 작품이 연상되어 기시감을 주었다. 그리고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동화 속 서술자의 목소리가 조숙하게 느껴져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시간여행자의 책』에서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을 통해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채윤’은 소중한 이의 죽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책에 자신이 원하는 시간을 적는, 비교적 쉬운 방법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설정 때문인지 서사 초반 채윤은 시간여행의 기회를 단순한 일에 써 버린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시간여행의 동기가 절실해지고, 서사 초반 스쳐갔던 설정이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하면서 초반의 단순함이 의도된 설정으로 정교화된다. 특히 죽음의 뱃속에서 제시되는 ‘시간도서관’이라는 시공간(chronotope)과 그곳에서 수많은 생명들의 삶을 성실히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서기관이란 인물 설정은 꽤 인상적이다. 이로 인해 이 이야기에서 ‘책’과 ‘도서관’은 그저 우연히 시간여행을 매개한 것이 아니라 각각 ‘삶’과 ‘삶을 관장하는 또 다른 세계’의 은유로 작동하며 서사 전체의 개연성과 필연적 맥락을 강화한다. 내 인생의 처음-중간-끝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주는 곳이 있다는 ‘허구’ 세계의 설정이 아동 독자들로 하여금 ‘현실’ 속 자신의 삶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게 이끈다면 그 자체로도 이 이야기는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죽살귀신 아빠』는 죽었던 아빠가 나타나 죽음의 문으로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하자 다른 가족들 몰래 아빠와 바다로 떠나는 모험을 감행하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놓인 가족이 어떻게 그 황망한 슬픔에서 애도의 단계로 들어서게 되는지를 주인공 ‘이루’와 ‘죽(었다) 살(아난) 귀신 아빠’의 여행을 통해 보여준다. 세상에 없던 귀신이라는 이야기 속 설정답게 ‘죽살귀신’ 아빠는 귀신 캐릭터에 대한 통상적인 기대에서 벗어나곤 한다. 그러한 아빠 캐릭터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이야기의 무게를 덜어 준다. 주인공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환상으로 제시될 때 현실과 환상의 이음매가 드러나지 않는 서술이 돋보였다.   

아동 독자에게 적합한 문체와 서술, 인물의 감정이 절제되어 서술될수록 작품 밖 독자는 인물의 억압된 슬픔에 공감하게 되는 상호작용의 역학이 잘 구현된 점, ‘죽음’ 또는 ‘사별’이라는 다루기 어려운 소재를 아동 독자의 눈높이에서 적절히 그려내는 이 작품의 미덕이야말로 동화의 자질이라는 데 흔쾌히 동의하며 심사위원 전원은 이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사회평론 출판사의 첫 번째 공모전 수상을 거머쥔 필자들에게는 축하의 인사를, 함께 공모전을 완성해 준 또 다른 필자들에게는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심사를 마치고 보니 우연히도 수상작 두 편 모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였다. 죽음을 맞은 이에게도 남겨진 이에게도 떠나고 보내는 일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들은 아동 독자들에게 지금 현재 내 곁에 있는 존재의 소중함,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의 고마움을 일깨워 줄 것이다. 이러한 주제가 자칫 아동 독자들에게 현실을 수용하고 긍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의미있다는 다소 소극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혹은 아동 독자들에게 죽음을 생각할 때야 비로소 삶의 이유가 더욱 명확해진다는 조숙한 이야기를 건네려 한다는 걱정 어린 시선이 있을 수 있다. 모험과 성장을 다루는 아동문학의 고전들을 떠올려 볼 때, 이번 수상작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꿈을 이루라는 패기 넘치는 주제를 건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문학은 허구를 통해 현실의 진실 한 조각을 드러내는 것임을 상기한다면 우리가 정말 아쉬워할 대상은 허구 속에 드러난 현실의 자화상일 것이다. 제1회 사회평론 스토리대상의 심사는 끝났지만, 수상작을 읽고 쓰는 모든 어른들이 동화의 독자를 위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다시 그리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어린이 부문 심사위원 : 김유 작가, 윤자영 작가, 남지현 아동문학평론가